[달달십억달성] 월부챌린지 537회 진행중 : 8월 24일차 [고생만 하다 망하는 이유-부는 고생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고 정주영회장의 조언)] 영상필사 출처 : YOUTUBE 부의방향
나는 평생을 두 발로 뛰었다.머리보다 몸을 먼저 썼다.그게 살아남는 길이었다.사람들은 쉽게 말한다.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땀 흘리면 반드시 보상 받는다고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고생이 길어질수록 낙은 멀어지기도 했다.많이 버틴다고 많이 가진 게 아니었다.나는 고생으로 부자가 된 게 아니다.기준으로 버텼고, 책임으로 버텼고, 판단으로 벌었다.고생 만으로는 안된다.그건 생존일 뿐이다. ‘부’는 생존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아무리 고된 길을 걸어도 방향이 틀리면 결국 돌아간다.아무리 오래 일해도 기준이 없으면 반복이다.성실은 기본이지 전략이 아니다.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몸을 던졌지만 그걸로 부를 쌓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건 출발선이었을 뿐이다. ‘부’는 방향과 책임의 합이다.고생이 나를 만들었다고?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나를 만든 건 고생을 견디는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불확실한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 지가 부의 기준을 결정했다.나는 무작정 오래 일하는 사람보다 짧게 일해도 정확히 판단하는 사람을 신뢰했다.시간을 얼마나 들였느냐 보다 무엇을 결정 했느냐가 중요했다.그걸 모르고 고생으로 승부 보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허리 휘도록 일하고,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벌어도 끝에는 남는 게 없었다.왜냐하면 자신의 시간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남이 정한 잣대, 남이 정한 시스템, 남이 정한 보상 위에 자기 인생을 올려놓고 있었다.나는 거기서 빠져나왔다.고생의 길이 아니라 내가 설계한 길 위에 서기로 했다.처음엔 바보 취급 받았다. 무작정 뛰지 않으니까 게으르다 했다.가만히 생각만 하니까 겁쟁이라 했다.하지만 결과가 말해줬다.일이 아니라 기준이 돈을 만든다는 걸몸이 아니라 선택이 ‘부’를 부른다는 걸이 세상은 고생한 만큼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절대 아니다.그 착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부의 설계가 시작된다.나는 말한다.고생은 출발선일 뿐이다.부는 방향이다.그리고 방향은 결국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누구는 말했다.고생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적도 있었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됐다. 배신하지 않는 건 고생이 아니라 선택이었다.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더 오래 일해도 더 적게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더 많이 참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도 있다.그때마다 나는 한 가지를 점검했다.내 선택은 맞았는가?아니, 기준은 있었는가?부를 만드는 건 지속 가능한 선택이다.즉흥이 아니다.감정이 아니다.그 순간에 분노, 질투, 초조함으로 내린 판단은 결국 대가를 청구한다.나는 그런 대가를 수없이 치르고 나서야 사람을 기준에 넣었다.돈이 아니라 사람결과가 아니라 태도같이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인지욕심보다 책임이 앞서는 사람인지잘 할 때보다 틀릴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인지그게 보이면 일의 방향이 보였다.그게 안 보이면 고생이 길어지고, ‘부’는 멀어졌다.나는 고생보다 사람을 붙잡았다.사람을 보면 그가 가는 방향이 보였다.그리고 그 방향은 나의 선택이 되었다.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의미 없는 고생을 피해야 한다.내가 왜 지금 이 자리를 버티고 있는지 그걸 모르면 고생은 그냥 통증이다.기준 없는 선택,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 그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로 이어지지 않는다.나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나를 소모하지 않는 선택만 하자.그리고 나를 성장 시키는 사람만 곁에 둔다.그 기준만 지켜도 내 인생은 손해 보지 않는다.그리고 그 기준 위에 서면 고생은 자산이 되고 실패는 설계가 된다.나는 고생을 줄이려 하지 않았다.단지 헛된 고생을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그 차이가 ‘부’의 차이를 만들었다.똑같이 일하는데 누구는 남고, 누구는 잃는다.차이는 기준이다.선택의 기준이 고생의 가치까지 바꾼다 처음엔 나도 버텼다.안되면 더 하고, 모르면 더 배우고, 깨지면 더 달렸다.그게 정답이라 믿었다.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면 남들보다 더 나아질 줄 알았다.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열심히 사는 건 쉽다.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는 게 어렵다.사람은 버티는데 익숙하다. 하던 일 계속하는 건 쉽다.익숙한 고생은 익숙한 만큼 위안이 되니까 하지만 그게 결국 가장 위험한 고생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왜냐하면 그 고생은 계속해도 아무것도 안 바뀐다.버티는 고생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고생이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그건 그냥 남의 시스템 안에서 내 체력만 깎이는 일이다.누군가는 시스템을 짜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허리를 굽힌다.나는 두 번째가 되지 않기로 했다.지금 당장 버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이 고생이 나중에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가? 그걸 따져야 한다.자유를 향하지 않는 고생은 종속이다. 그리고 종속은 늘 내 삶의 선택권을 빼앗아 간다.나는 행동의 기준을 바꿨다. 힘든가?보다 바뀌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지금 이 행동이 과거를 반복하는 건지 미래를 설계하는 건지단 한 걸음이라도 내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그 고생은 가치가 있다.그게 아니라면 버티는 게 아니라 길을 잘 못 든거다.나는 시스템을 바꿨다. 사람을 바꿨고, 기준을 바꿨고,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하던 데로 하지 않았다. 그게 무섭고 두려웠지만 결국 그 한번의 변곡점이 모든 걸 바꿨다.고생은 구조를 바꿀 때 자산이 된다. 그게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나는 내 시간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내 기준을 쌓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을 바꾸는 순간 모든 판단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판단들이 모여 하나의 ‘부’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든데 못 그만 두냐고 물었다. “이건 힘든 게 아닙니다. 이건 바꾸는 중입니다. 그리고 난 그걸 위해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고생이 밑거름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밑거름이 되려면 뿌릴 씨앗이 있어야 한다.고생만 있고, 방향이 없으면 그건 그냥 진창이다.나는 똑같은 실수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 말을 체험했다.일찍 일어나고, 늦게 까지 남고, 남들보다 두 배로 일했는데 결과는 늘 제자리였다.왜일까?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결과는 얼마나 고생했는가 보다, 어떤 구조 안에서 일했는가?로 결정된다.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혼자서 뭐든 해내려 했고, 모든 걸 기억하고 모든 걸 내 손으로 붙잡았다.그게 성실 인 줄 알았다.그게 책임 인 줄 알았다.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그건 그냥 내가 시스템 없이 에너지로 버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정말 중요한 건 일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구조 안에 있는가? 였다.그리고 그런 구조는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만들어야 한다. 설계해야 한다.그걸 모르고 버티면 그 고생은 결코 자산이 되지 않는다.나는 해야 할 일을 기준으로 일정을 짰던 사람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반드시 성과로 연결돼야 하는 일만 남긴다.나를 소모하는 루틴은 과감히 지운다.결과가 없는 피로감은 성과가 없는 충성심은 언젠가 나를 가난한 모범생으로 만든다. 나는 나의 구조를 다시 짰다. 일의 흐름, 사람과의 관계, 내가 개입하는 방식까지 반복되는 실수는 자동화했고, 필요 없는 결정은 규칙으로 대체했다. 모든 피로는 설계의 오류였다. 지금 고생하고 있다면 그 고생의 경로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그 길 끝에 결과가 없을 거라면 그건 멈춰야 할 타이밍이다.계속하면 언젠간 될 거란 희망보다 어떻게 해야 지금 바로 바뀌는지를 봐야 한다.‘부’는 고생의 양이 아니라 시스템의 정확도에 비례한다.나는 일을 바꾼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그리고 그 변화가 내 삶 전체를 바꿨다.‘부’는 한 번 잘해서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한 번 버틴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진짜 ‘부’는 반복 가능한 구조에서 나온다.즉 다시 써먹을 수 있어야 그게 자산이 된다.한 번 운 좋게 된거라면 그건 행운이지 자산이 아니다.다시 안되면 그건 경험이 아니라, 사건이다.나는 고생을 반복하지 않았다.대신 구조를 반복했다.일이 잘 풀렸을 때, 그 원인을 기억했고관계를 잘 풀었을 때, 그 대화의 흐름을 복기 했다.성과가 났을 땐 그 과정을 정리해서 시스템으로 만들었다.그리고 다음엔 더 빨리, 더 쉽게, 더 작게 움직여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 구조를 만들었다.그게 진짜 부의 시작이었다.처음엔 느리다.정리하고, 정비하고, 구조화하는데 시간이 걸린다.하지만 한 번만 구조를 만들면 그 이후의 고생은 줄어들고 결과는 쌓이기 시작한다.이때부터 삶이 바뀐다.고생이 줄었는데 성과는 늘어난다.노동은 줄었는데 가치는 올라간다.그 순간이 온다.“아! 이게 되는 구조구나.”그때부터는 그 구조를 키우는 일만 남는다.단순히 고생의 양이 아니라, 그 구조의 반복 횟수가 부의 크기를 결정하게 된다.사람들은 복리를 이자 계산할 때만 생각한다.하지만 시간도, 행동도, 선택도 복리로 작동한다.좋은 시스템은 반복할수록 강해지고, 나쁜 습관은 반복할수록 가난해진다.그래서 나는 모든 일에 복리 구조를 만들었다.사람도, 일도, 시간도그리고 중요한 건 이 복리를 가능하게 하는 게 회복력 이라는 사실이다.잘 될 때만 작동하는 구조는 진짜가 아니다. 한 번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설계가 진짜 자산이다.나는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넘기지 않았다.내 감정, 내 관계, 내 시간표까지 다시 뜯어봤다.그리고 구조를 보완했다.그 덕에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았고, 같은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복리의 조건은 성장보다 회복이다. 나는 거기서 부의 비밀을 알았다.고생의 양이 아니라 복의 속도가 나를 다르게 만들었다.부는 결국 돈이 아니다.기회도 아니다. 더는 소모되지 않아도 되는 삶의 상태다.내가 무엇에 시간을 쓰고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를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상태 그게 진짜 부다.고생은 그 선택권이 없을 때 시작된다.남이 정한 시간에 움직이고 해야 하는 일에 매이고 버텨야만 하는 관계를 감당하며 사는 날들이 쌓이면 내 삶은 어느 순간 내 것이 아니게 된다.그게 진짜 가난이다.삶의 통제권을 되찾고 싶었다.어떻게 일할지, 언제 멈출지, 누구와 함께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돈이 아니라, 구조였다.고생을 설계로 바꾸고 설계를 반복으로 만들고 반복을 회복력으로 연결하는 시스템 그게 쌓이고 나니 부가 따라왔다.그래서 나는 안다.부는 내가 만든 선택지의 총 합이다.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가?누구를 붙잡지 않아도 되는가?그 여유와 기준이 부를 만든다.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삶을 설계하지 않으면 ‘부’는 오지 않는다.결국 삶 전체가 구조화되어야 ‘부’는 유지된다.그날 그날 고생은 누구나 한다.하지만 그 고생을 쌓아 삶을 설계로 바꾸는 사람만이 ‘부’를 갖는다.나는 아침마다 물었다.“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을 바꾸는 설계인가? 아니면 그저 버티기 위한 고생인가?”그 질문이 나를 바꿨다.나의 하루를나의 시간표를나의 인간관계를 통째로 바꿨다.삶은 감정으로 사는 게 아니라 설계로 살아야 지속된다.감정은 내일을 못 만든다.계획도 충분하지 않다.결국 나를 ‘부’로 이끄는 건 나의 구조다.그 구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돈도, 사람도, 시간도나는 구조부터 세웠다.고생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생이 쌓여도 결국 결과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이제는 안다.지금 이 고생이 어디를 향하는 지만 분명하다면 버티는 것도 두렵지 않다.사방이 막혀 있는 것 같아도 그 안에 설계가 있다면 그건 갇힌 게 아니라 쌓이고 있는 것이다.그 설계가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반복을 만들고 그 기준이 결국 삶 전체를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고생은 ‘노동’이 아니라 ‘투자’다.버티는 게 아니라, 쌓는 것이다.불확실한 희망이 아니라 구조화된 확신이다.그리고 그 순간부터 삶이 달라진다.같은 일을 해도 결과가 달라지고같은 하루를 살아도 남는 게 달라진다.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건 고생의 양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다.방향 없는 고생은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방향이 있는 고생은 사람을 키운다.고생을 구조로 바꿔낸 사람만이 결국 부를 쌓는다. 챌린지에 참여하는 멤버에게 응원 댓글을 남겨주세요.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어요.🚶♀️🚶♂️
...더보기 ∙ 5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