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특정한 활동이 나타나는 기간을 말한다.
부를 쌓는 것은 3막짜리 드라마다.
경제적 부는 봄, 여름, 가을 동안 성장한다.
<부자의 언어> 中 - 존 소포릭
제 1막. 0~30세 경제적 안정기
친구들과 그저 놀기 좋아하고 공부는 해야하는 것이니 시켜서 했던 아이,
한 때 어머니가 보내주신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한번을 치고 하나의 동그라미에 색 칠하는 걸
반복해서 10개의 동그라미를 칠해야 했는데 한번치고 3개씩 칠했던 아이,
그 철부지 같은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 지났는데도 성적도 그저그렇고
미래에 대한 걱정만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그렇다. 어릴때,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나의 이야기이다.
이 때 처음으로 나는 삶의 '신념'을 가져보기로 했다.
1. 신념화 과정
"내 성격과 행동양식은 어떻지?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해내고 남을 도와주는 것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나고 자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가져보자. 경찰, 소방관, 군인이 있네. 경찰은 사회의 안좋은 면을 많이 보면서 회의감이 많이 들 것 같고, 소방관은 처우가 안좋다고하니 「군인」을 해보자.(당시 뉴스에는 소방관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고 정말로 소방관분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한다고 느끼던 때였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내 인생 첫 목표이자 이후 성공 경험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치열하게 공부했고 원하던 학교를 진학하지는 못했으나
대학생활 이후 상위 2%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임관하고
장기복무도 1차에 되어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각종 표창, 상장들을 항상 주기적으로 받고
군생활 기간의 90%를 우리가 대적하고 있는 주적인 북한군을 눈으로 직접 보며
나의 국가와 사랑하는 사람을 내손으로 지키고 있다는 신념과 보람으로
격오지에서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흔히 말하듯 "상급자에게 인정받고 하급자에게 존경받는 군인"라고 자부할 수 있다.
2. 가치관의 변화
7년 간 전방에서만 있었던 힘든 군생활을 임관때부터 같이 해준 아내.
아내와 함께였기에 고된 전방생활을 잘 마치고
결혼과 동시에 전방에서 내려와 군생활 처음으로 도시권에서
내 신념을 이어 쓰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내심 기대도 했다.
'전방에서의 군생활 중에 신념이 흔들리면서 그만둘까 생각하는 힘든순간도 있었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대 내 특정계급 22명이 전역하는데 그 다음달 들어오는 그 계급의 인원은 10명.
다른 계급, 다른 부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12개의 직책은 공석이었고 그 자리의 일은 다른 누군가가 해야할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안가 그 누군가는 내가 됐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기는 전역희망자와
양성기관부터 채워지지않는 병력부족으로부터 업무는 3중 4중으로 가중되고
초과근무와 주말출근으로 아이는 없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전방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않았다.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나의 군생활은 이어졌고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고, 나만 성실하게 하면 지금 같은 군대 사회에서
진급도 하고 몇가지 불편한 것만 참으면 괜찮겠는데?'
아..지금 돌아보면 정말 한심하고 미친 생각이다.
일도 열심히하고 있었고 성과도 있었으며 주변에서도 인정도 받고 있었지만
내면의 매너리즘, 도전정신이 결여된 생각들이 들면서 구역감이 느껴졌다.
군의 현실, 그로부터 발현된 내면의 생각들, 변해가는 신념 속에서
나는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고민하다가 전역지원서를 냈다.
제 2막. 30~60세 경제적 축적기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1. 행복 2. 경제적 자유 3. 시간
매일의 야근, 주말과 휴가에도 비상전화가 올까 전전긍긍하며 안정되지 않았던 나는
하루의 2/3을 보내는 직장에서, 그리고 주말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월급은 안정적이였지만 정말 딱 그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념일이나 주변사람을 챙길때가 되면 약간은 부담스러워 고민하게 되는 상황이 싫었다.
나의 시간이 나에게 없고 부대에 있었다. 내 시간이 아니였다.
내 나이 30살.
누군가보면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시기지만
군생활에만 집중했던 나는 불안했고 전역지원서를 낸 이상
누군가가 또는 조직이라는 것이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느꼈다.
다른 능력을 갖춰야할 필요성과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3. U턴, 아는 만큼 보인다.
내 전역지원서가 상급부대로 보고되기전 한달 간의 시간이 있었다.
이때 나는 잘 몰랐으나 오며가며 나를 좋게 봐주시던 분이 가까이에 계셨고
내 전역에 대한 생각을 들으시더니 재테크와 그 중 한 방법인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책과 유투브를 보면서 다시한번 더 고민해보라고 알려주신
여러 유투브채널 중에 <월급쟁이 부자들> 도 있었다.
평소 그 분과는 인사만 하고 지내던 사이였던지라 크게 생각하지 않고
투자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적도 없는 나였기에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알려주신 채널들을 그냥 보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 동영상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않지만 구해줘 월부였던 것 같다.
'너나위'라는 사람이 사연을 듣고 울면서 진심어린 조언 하는 걸보고
'와.. 저렇게 진심어리게 일하는 사람 또 오랜만에 보네. 그것도 요즘 자극적인 것만
나오는 유투브에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간 퇴근하고나서 저녁을 먹으면서는 월급쟁이부자들 채널을 쭉 봤다.
그러다가 2024년 추천도서라고 알려주는 동영상을 봤다.
전역지원서를 내고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독서도 하고 있었는데
동영상을보고 우선적으로 추천도서 먼저 읽어보자라는 생각에 처음 주문한 책이
'자본주의'였다.
충격이었다.
적금과 예금만 하고 있던 나인데, 내 돈이 녹고 있다는 개념과 사실은
그때의 내 상황에 무섭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서 경제관련 책을 몇권 더 읽어보니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 직업이 가져다 주는 "경제적인 이득"을 생각해보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여유와 마음의 심지로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내 직업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가지고있고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수인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직업을 유지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있었다.
세상은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나는 그 "경제적 가치"와 "레버리지"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직업을 그만두면서 그것까지 잃을 뻔 했다
가치관이 변화하고 돈을 벌겠다고 작정한 내가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들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과 부자가 되겠다는 마인드셋을 하고,
행동으로 스며나오니 그걸 알아봐주는 분이 계셔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지금의 내 상황과 자산,
직업이 줄수 있는 거시적인 이득 즉 "레버리지"의 활용성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내와 가족들, 군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선후배, 전역후 다른인생을 살고 있는 선후배
다각도로 다시한번더 조언을 구하고 대화했다.
그러나 역시 답은 내가 내리는 것이었고
나는 전역지원서를 회수했다.
부대에서는 그냥 한달 간의 해프닝처럼
그저 내가 잠시 지쳐서 '이상한 선택'을 한 것처럼 여겨지며
위로하는 사람도 놀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나를 정말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한달이었다.
그리고 전역지원서를 회수했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든 전역할 수 있는 준비를 하기위해
행동을 시작했다.
월부와 시작한 24년
24년이 시작하기 이전부터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행동하기 시작했다.
'1월 1일부터 시작' 이런 것은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있었던 월부 전화상담을 통해
나의 상황과 지식에 알맞은 강의가 실전준비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준반을 수강했고 매주 조원들과 과제와 임장을했다.
여기에 더해 나는 평소부터 가지고 있었고 전역지원서를 내고나서 더 갈증이 생긴
또 다른 나의 돈버는 능력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나는 공직이었기에 아내의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해외구매대행도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고 나는 잠을 줄였다. 하루 3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의 쪽잠.
지옥같이 힘들지만 마음만은 안정되고 꽉차는 느낌이었던 한달을 보냈다.
그리고나서 나는 자실을 하며 1기 신도시부터 임장을 가봤다.
그리고...이제부터 본격적인 고민의 시작이었다.
투자? 청약?
혼자하는 첫임장을 평촌으로 정하고 분위기 임장을하며
당시 내가 알아본 것은 청약이었다.
매물을 보며 투자를 해야할지, 분양을 보며 청약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나의 상황과 종잣돈, 청약의 여러 장단점을 따져봤을 때
청약이 더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결론내렸다.
당시 나는 전역지원서를 회수하고 본업인 군생활에 다시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었지만
이후 전역이라는 결정을 다시 하게된다면 몸붙이고 살 '내집'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갈망이 있었고
우선 전역지원서를 회수한 이상 10년의 군생활은 채워야했기에,
그리고 아내와 같이 하고있는 부업에도 집중해야했기에 투자보다는 청약을 해서
시간을 레버리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준반에서 배운대로 나는 평촌 임장을 수차례 더하며
직장, 교통, 학군, 환경, 공급을 따졌다.
분양가가 적정한지 주변 신축과 분양 예정인 것들과 비교했고,
추후 매도한다면 가격은 어떻게 될지 전고점을 보면서 판단하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청약인지 계산했다.
지금와서 진단해보자면 원씽을 하지않아 고민과 노력이 분산되었고
최선의 결정을 하였음에도 그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무리한 것이었는지
계속해서 마음의 짐처럼 가지고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경험이 전무한 내가 그때까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너무 성급히 계약금으로 사용한 것도 고민이 계속된 원인중에 하나였다.
위기
불편하고 안타깝고 부끄럽기도한 이야지이지만 여기서 털어내 본다.
청약은 당첨이 되었다.
그렇다고 청약 당첨이 위기는 아니었다.
청약당첨 이후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 나와 아내는
결혼 직전 마련해서 군 관사로 이사하기 전까지 지내려고 계약하고 살던
빌라 전세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알아보니 전세사기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아내는 인생이 망한듯 낙담했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2금융권 은행 대출담당자, 집주인, 부동산 중개인이 모두 연관된 사기였고
같은 지역내에 피해자들이 100명이 넘는 사건이었다
당연히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들도 문제였지만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따져보니 거의 금융문맹이었던 때에 빌라 전세집의
매매가를 따져보지않고 알아보지않은, 전세금이 매매가 대비 70% 이하인지 따져보지않은,
월세일경우는 보증금이 해당 지역의 최우선 변제금 이하인지 알아보지 않은 채로 계약했던
안일한 나의 실수도 있던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생각하면 나도 놀랍지만
그때 나는 우는 아내를 안아주며 해결할 수 있다고, 아내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했고
나조차도 무섭도록 침착한 태도로 전세사기 관련한 일들을 아내와함께 처리했다.
아니, 지금도 처리하고 있다.
투자코칭(그런데 이제 용맘님과 함께하는ㅎㅎ)
갑자기 생긴 리스크.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유투브를 통해 알게된 블로거에게 잔금에대한 분석을 의뢰하기도,
구해줘 월부에 사연을 보내며 정리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부업은 접어두고 투자생활을 통해 시세차익으로 자금을 확보하는게 좋을지,
잔금시기까지 이게 가능할지,
부업에 집중해야하는지,
물음표들과 방향성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않고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내가 기본과 원칙이 부족한 상태로 분양받은 탓도 있지 않을까..
실준반으로 시작하고 내공없이 진행한 탓에 기본과 원칙이 부족한 결정을 했나..
고민이 많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열기반을 수강하기로 했다.
열기반 수강중 놀이터에 질문을 올렸는데
투자코칭이 다시 생겨서 진행한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어플을 켜서 다음 투자코칭 신청일자를 확인하고
알람까지 맞춰놓으며 신청일을 기다렸다.
신청 당일
1초 전까지대기하고 있다가 바로결제!
용맘 튜터님이 해주시는 코칭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코칭 전 올리브 매니저님이 아주아주 친철하고 자세하게 안내해주셨다.
(작성할 상담양식은 구글시트로 안내되고 코칭을 준비해주시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코칭일 기준 7일전까지 작성해야합니다!)
나와 내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코칭 간 더 필요한 자료를 부탁하셨고
나는 해당 내용의 자료를 보내드리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신청자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원활한 코칭시간이 되도록 준비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그리고 매니저님이 알려주신 대로 코칭을 좀더 공감대있는 상태로 받기위해
용맘님께서 올리셨던 칼럼들을 읽어보며 코칭일을 기다렸다.
코칭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코칭장소로 갔다.
(코칭장소는 코칭 3일 전 안내되고 배우자, 예비배우자까지만 같이 참석 가능합니다!)
무리이니 분양권을 포기하라고 하실까..?
괜찮은 단지이니 축하한다고 해주실까..?
어떤말씀을 해주실지..
걱정반 기대반.
드디어 용망 튜터님을 만났고 가벼운 인사 이후 처음 하시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해움성님 자료를 보고 가장 많이 고민하고 분석했습니다. 이제 시작해볼까요?"
잔잔한 위로와 기대로 코칭을 시작했다.
결론은
청약은 좋은 입지에 괜찮게 잘했다.
가계부 유지와 지출도 잘하고 계시다.(아주 예쁜 부부라고 하심ㅎ..)
다만, 소득과 저축액을 더 늘려야 안전하게 집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부업을 하고계신거나 아내분 아르바이트를 통해 리스크를 대비하자.
이 네가지였다.
또 어떤 지역을 무슨 방법으로 계속해서 확인해야하는지, 이유는 뭔지,
내 상황에 맞는 투자자로서 앞으로의 방향성은 어떤것이 좋을지 말씀해주셨다.
속이 시원했다. 똬리를 틀고 앉아 있던 물음표들과 질문들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코칭시간은 40분으로 되어있었으나,
나 이전분부터해서 나까지도 모두 정해져있는 코칭시간 이상으로 진행해주셨다.
어떤 질문이든 하라고 하셨고, 조언이후에는 피드백 질문을 통해
직접 내가 정리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같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코칭이 끝나고 나서는 매니저님이 찍어주시는 사진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마무리했다.
코칭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10배 아니 100배의 돈을 지켜주는 조언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용맘 튜터님ㅎㅎㅎ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월부 투자코칭을 추천하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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