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가격』
Chapter 8. 부의 격차를 만드는 양적완화의 민낯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긴급 처방의 실체
"위기를 구실 삼아
찍어낸 돈은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된다."
p. 167~
‘교만은 추락의 전조’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2004년 중앙은행들이 우리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1980년대 이후 저물가, 저금리의 안정적 경제성장기)에 진입했다고 자축하기 시작했을 때, 위기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리한 통화정책 덕분에 위험한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에서 세계 경제가 벗어날 수 있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교만은 불과 4년 만에 대가를 치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중앙은행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디플레이션, 즉 물가 하락이라는 낯설고 위험한 적과 전투를 벌이게 된 것이다.
p. 168~
2008년 금융위기의
진짜 원인
2008년이 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선진국은 전형적인 경제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실제 거품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태의 경제는 바늘로 살짝 찌르기만 해도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8년, 그 거품을 터뜨린 바늘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갑작스러운 붕괴였다. ‘서브프라임subprime’이라는 단어는 은행가들이 고안한 ‘상환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뜻하는 일종의 미사여구였다.
이 사태 이면에 있던 원인은 주택 소유자의 탐욕이 아니라 ‘금융 혁신’이었다. 은행은 여러 개별 모기지를 묶어 패키지화하고, 수학적 기법을 동원해 그 전체 패키지를 어떻게든 ‘안전하다’고 주장한 다음, 이를 다른 금융기관에 되팔아 큰 수익을 올렸다.
그러다 더 이상 기존 대출을 묶을 수 없게 되자 은행들은 대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무리하게 신규 대출을 내주기 시작했다. 결국 많은 채무자가 대출을 갚지 못하고 집 열쇠를 반납하기 시작하자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부실채권을 손실 처리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많은 금융기관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고 일부는 실제로 파산했다.그 결과 갑자기 돈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대출을 통해 창출되었어야 할 새로운 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만일 모두가 너무 들뜬 상황에서 과도하게 돈을 빌리고 과소비 했던 것이 위기의 원인이라면 그런 상태가 진정되고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두고 보는 것이 해결책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의 고통을 감수하자’라는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현재의 재정 상황에 불만을 품으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끔찍한 사태에 직면한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지금 고통을 감수하고 끝내자’라는 식의 대응과는 정반대의 조치를 취했다. 대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화정책이라는 비장의 수를 꺼냈다.대부분의 중앙은행은 빠르게 금리를 인하했따.
몇몇 국가는 이러한 파격적인 금리 인하만으로도 경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가계와 기업의 부채 수준이 높고, 이 모든 혼란을 초래한 금융 부문에 크게 노출되어 있었던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 정도 조치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 외에는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었던 또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것이 바로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 QE’였다.
‘양적’은 무언가의 양(이 경우는 돈)을 의미하고, ‘완화’는 ‘더 많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양적완화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돈을 찍어내는 것creating money’을 의미한다.

p. 172~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헬리콥터 머니’의 정체
양적완화로의 전환은 중앙은행의 역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면서, 그들은 돈의 창출 과정에 훨씬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따. 그 규모도 어마어마했따. 미국에서는 2008년 한 해에만 6,000억 달러를 새로 찍어냈고, 영국도 몇 달 후 2,000억 파운드를 시장에 투입했다.
양적완화는 지극히 단순한 과정이다. 실제 돈을 창출하는 과정 자체는 간단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앙은행은 단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새로 찍어낸 이 돈을 어떻게 세상에 풀 것인가이다.
양적 완화 과정의 핵심은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새로 발행된 국채를 직접 사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이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으로부터 ‘기존’ 국채를 구매한다. 따라서 기본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중앙은행이 ‘무’에서 새로운 돈을 만들어낸다.② 이 돈으로 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이 보유한 국채를 매입한다.
③ 결과적으로 그 기관이 새롭게 창출된 돈을 보유하게 되고, 중앙은행은 해당 국채를 자산으로 보유하게 된다.
얼핏 이 모든 과정이 다소 이상하고 무의미해 보일 수 있다. 현금과 국채를 단순히 맞바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심은 이 교환을 성사시키려고 돈이 새로 창출되었따는 점이다.
p. 175~
중앙은행은 어떻게
시장에 돈을 푸는가
양적완화는 별개이지만 상호 연관된 4가지 효과를 통해 소비지출을 촉진하고, 그 결과로 소비자물가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① 효과 1: 국채 가격 상승을 통한 소비지출 증가
- 시장의 원리가 그렇듯 (국채에 대한)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 이는 기존 국채 보유자들의 자산 가치가 갑자기 커진다는 의미이며, 영국은행은 이로 인해 부가 증가한 사람들이 소비지출을 늘릴 것이라고 보았다.
- 이와는 별개로 국채 수요의 증가는 정부의 차입 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가져왔다.
② 부동산, 주식시장 등 다른 자산의 가격 상승을 통한 소비지출 증진
- 대출금리와 마찬가지로 국채 가격은 다른 모든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즉 국채 가격이 오르면 그 여파로 부동산, 주식 등 다른 자산의 가격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낸다.
- 이렇게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 자산 소유자들은 더 부유해졌다고 느낄 것이고 따라서 재화와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③ 은행의 대출 능력과 의지 증진
- 은행이 대출을 늘리면 소비자들이 더 많은 돈을 늘려 지출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④ 영국은행이 2퍼센트 인플레이션 목표에 전념하고 있음을 확신시키기
-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p. 178~
양적완화는
약일까, 독일까
영국은행은 양적완화의 효과를 정량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창출된 3750억 파운드의 신규 통화가 GDP를 1.5~2퍼센트 가량 성장시켰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를 계산해보면 230~280억 파운드의 추가적인 소비지출을 유발한 셈이다.
다시 말해 위에서는 3750억 파운드를 쏟아부었지만, 그 결과 아래에서는 많아야 280억 파운드만이 추가 지출 형태로 흘러나온 것이다. 나머지 돈은 금융 시스템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고, 재화와 서비스로 이루어진 ‘실물경제’로는 유입되지 못했다.
p. 181~
빚으로 만든
위태로운 경제 회복
어떠한 경제적 충격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위기가 지나가고, 신뢰는 회복된다. 그때가 되면 시행했던 경기부양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간단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GDP 성장률 역시 양국 모두 위기 이전의 추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훨씬 더 많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였다.
초저금리는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기에 충분했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양적완화는 단발성 충격으로 경기 회복을 이끌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역사상 전례 없는 일도 벌어졌다. 영국은 기준금리를 인하한 뒤, 10년이 지나도록 단 한 차례도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했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경제가 여전히 ‘비상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어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위험한 상황이다. 이미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낮춘 상태에서 일상적으로 돈을 창출하고 있다면, 다음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선택지가 남게 될까? 필연적으로 다음 위기는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위기는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찾아왔다.
p. 185
Money Lessons
위기가 닥쳐 돈이 증발하자,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라는 주문을 외웠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허공에서 숫자를 입력해 돈을 찍어내는 것.
그러나 그 돈의 대부분은당신의 지갑이 아닌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부풀려놓았다.
긴급 처방은 어느새 상시 정책이 되었다.
실물경제의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는데,
시장은 값싼 돈에 길들여졌다.
다음 위기가 오면
당신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이제는 운영체제가 정해져 버렸다. ‘양적완화’는 디폴트값이다. 이제는 경기침체가 올 때마다 정부는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부가 뿜어낸 물줄기는 거대한 표토층(기득권층, 자산가 등)의 비대한 흡수력에 가로막혀, 정작 생기가 필요한 심토층(사회적 약자, 저소득층 등)에는 닿지 못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계속 해서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정부가 수도꼭지를 여는 이유가 심토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뉴스를 통해 심토층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이 정책을 시행합니다’라고 자신들의 기만적 행위를 ‘약자를 돕기 위한 정책’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표토층에게 계속 해서 흘러간 물줄기(돈)는 표토층에 속한 이들이 더 좋은 자산을 구매하는데 사용된다. 그들끼리 가격을 경쟁하기에 자산의 ‘가격’은 상승한다.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상승한다. 화폐 자체의 양이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에 똑같은 부동산의 가격이 5년전, 10년전과 크게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산의 가격은 ‘프리미엄’이 붙는다. 여기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한다. 우리나라 최고 아파트라고 불리는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84의 가격은 약 65억 정도다. 내가 사는 광주에 있는 봉선 제일풍경채의 전용 84의 가격은 약 9억 정도. 같은 면적의 아파트지만 가격은 천지차이다. 이제는 그 이유를 ‘거품’이라고만 단정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더 좋은 것에 끌린다. 그리고 모두가 쉬쉬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 세상 또한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인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그 약육강식을 가열차게 가속화한다. 자산을 가진 강자들은 자산이 없는 약자들의 자본을 이용해서 더 많은 자산을 쌓는다.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다.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가난까지도 떠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자산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절대적 가난’의 단계까지로 굴러떨어지게 될 것이다.
정부가, 중앙은행이 바뀔리는 없다. 앞으로도 똑같은 운영체제를 사용할 것이다. 맥북프로에 윈도우를 설치하려는 노력을 하는 이가 없는 것처럼, 지금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힘든 노력이 필요한 다른 방법을 시도할리는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자산’을 갖는 것. 그리고 그냥 ‘자산’이 아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산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 자산은 단순히 비싼 것이 아니라, ‘희소성이 있어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물리적으로 늘릴 수 없는 가치’를 품은 것이어야 한다. 남들이 지원금 몇십만 원에 안도할 때, 나는 그들이 평생을 바쳐 지불해야 할 '입지의 가치'를 선점하는 공부를 멈추지 않겠다. 이것이 내가 택한, 자본주의라는 잔혹한 연극 속에서 주인공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시나리오다.

[오늘의 핵심 - 세 줄 요약]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은 파산 위기를 막기 위해 '양적완화'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주문을 상시화했다. 찍어낸 돈은 실물경제(심토층)로 흐르지 못하고 자산시장(표토층)에 머물며 주식과 부동산 가격만 기형적으로 부풀렸다. 시스템에 길들여진 시장은 값싼 돈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결국 부의 불평등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시켰다.
[Value 한 줄 인사이트]
양적완화는 가난한 자의 미래 소득을 압류하여, 부유한 자의 현재 자산 가치를 지탱해 주는 정교한 사기극이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
[프리미엄 분석] 우리 지역에서 래미안 원베일리 같은 '상징성'을 가진 아파트 딱 1곳을 찾아, 왜 가격 차이가 나는지 요인 3가지만 분석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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