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씩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25톤 화물기사가 월부를 만나 생애 첫 집을 마련했고, 온라인 쇼핑몰로 맨땅에 헤딩하던 실패의 기록은 책으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인생의 진짜 시간을 사자는 의미로 '타임셀러'라 지었습니다. 바보같이 Sell을 썼지만, 어쩌면 지난 8년은 시간을 팔아 지금을 산 과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월부카페 회원에서 전문가 칼럼니스트가 되기까지 8년. 이제 돈을 위해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닌, 진짜 시간을 사는 삶의 여정을 풀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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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월부 카페 회원에서 전문가칼럼 크리에이터까지 생사를 넘어 8년이 걸렸습니다.

월부 카페 회원에서 전문가칼럼 크리에이터까지 생사를 넘어 8년이 걸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카페 회원 8년만에 전문가 칼럼에 글을 쓰게된 타임셀러입니다.  2017년 네이버 월부 카페에 가입  등업신청합니다, 임장다녀왔습니다 등 글을 작성했고, 8.2대책을 얼마 앞두고 내집마련을 했다는 후기를 올렸습니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신축, 역세권, 서울.. 그런 아파트 아닙니다.   그저 나중에 결혼하면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집 근처의 3억대 아파트를 골랐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부동산 투자를 10여회정도 경험하였습니다.   25살, 25톤 화물차 운전기사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던 저는 어느 한 지방의 대학교에 간신히 붙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습니다.  대학교를 다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였습니다. 안그랬으면 아버지께 맞아 죽었을겁니다.   그래도 대학교가 사람 만들어주는지 영어도 배워보고 전공이라는 것도 배우며 나름 열심히 학과 생활을 했습니다.  소문에 토익 700점이여야 졸업할 수 있다길래 이때 영어를 시작하게됩니다. 결국 4학년 때 간신히 점수를 맞췄고, 이제 이력서를 쓰려던 찰나에 정신차려보니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700점은 사라져버리고 제 20대의 ½은 운전대 앞에서 보내게 됩니다.  읍내의 한 건물주 소개 받은 공장이 충북 음성에 있다보니 또 다시 숙소를 구해서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화물차 운전도 처음인데다 타지에서 생활하니 정말 마음도 몸도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운전과 텃세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였습니다.   “ 도대체 이렇게 큰 차는 어디서 고치지? ”    아는 사람없이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하니 괜찮은 정비소가 어딨는지조차 모르고 맨날 눈탱이만 맞고 다녔습니다.그러던 어느날 제가 살고 있는 건물을 보니 다른 방에 불들이 켜져있었습니다. 문득 방이 몇개인지 궁금했습니다.    세어보니 13개더군요.   월세를 40만원 내고 살고 있었으니 건물주는 520만원을 매달 벌고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어디서 어떻게 사는걸까.. 이 궁금증 한줄이 지금까지의 부동산 투자를 있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8년이 흐르고.. 8년간 전국을 떠돌며 운전을 했더니 어느덧 100만 KM를 넘겼습니다.   때로는 4주택자인 순간도 있었고, 역전세를 내어주기위해 식구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결국엔 분양권 하나를 지켜내어 현재 세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니 가족들과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때 제 삶을 송두리 째 바꿔버린 궁금증이 생깁니다.  시간이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걸까? 아직까지도 운전을 하고 있었기에 같이 일했던 100여명의 기사님들을 돌아보게됩니다.그분들의 삶은 곧 제 미래였습니다. 화물 운송을 테슬라가 해주지 않는다면 정해진 미래였죠   결론은 운전을 그만해야한다는 사실이였습니다. 그것은 수입이 0원이 된다는 뜻과도 마찬가지죠.   외벌이인 저희집 구조상 제가 벌지 않으면 단 1원도 집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럼 운전을 평생 그만둘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죽음이 눈앞에 찾아온 사고가 한번 발생합니다.   멈출 수 없는 속도수십톤의 화물   그 화물이 저를 덮치기전 남은 거리는 약 30cm, 겨우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다리로 집에 돌아와 신생아인 딸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 내가 사고로 없다면 아내와 딸은 어떡하지? ”   사실 직업을 바꾸기위해 시도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2019년 블로그를 시작한것도 누가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다길래 시작하였고, 해외구매대행을 프로그램으로 등록하면 한달에 천만원씩 번다길래 따라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기에 무엇인가 다른 방식을 택해야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면서 사이드잡을 키워갈 수 있는 방식, 그게 쇼핑몰이였습니다.   한 블로그의 글이 삶을 바꾸다   컴퓨터를 옮길 때마다 삭제되지 않게 가장 중요하게 보관하며, 클라우드에도 백업을 해놓은 한 블로그의 글입니다. 저는 1번 선택지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것의 2배의 근무시간을 8년째 해오고 있었죠.   그런데 이 글에서는 2번 선택지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생계는 누가 책임져야하나? 매달 생활비는 들어가는데..자연스럽게 이 고민이 따라옵니다    이 고민은 글의 끝단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번과 2번을 동시에 한다.    몸이 갈려나간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만큼 제 몸은 갈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새벽 3시에 일어나서 충청권으로 화물을 운송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와 주차를 한 뒤 집에가서 택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화물차를 가지고 저녁까지 운송을 마쳤습니다.     이것을 쇼핑몰 매출이 천만원이 넘을 때까지 반복하다가 결국 23년 8월 제 삶의 일부였던 화물차를 처분하게 됩니다.  담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갔습니다.   그전에는 언제든 쇼핑몰이 망하면 화물차로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언제든 차만 가지고 나가면 돈을 벌 수 있고 조금 남들보다 힘들게 살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있었던거죠.   그런데 동아줄같았던 화물차를 팔아버려서 더 이상 기댈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쇼핑몰 성공 vs 단순 노동자로 돌아가기  제 사업의 성과는 둘 중 하나로 정해졌습니다. 단순 노동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걸로 먹고 살아야하는 상황에 처하니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습니다. 생계비는 이자와 같아서 잠을 자지 않고, 24시간 청구됩니다. 난 라면을 사먹어도 생계비는 하루에 10만원씩 쌓여갑니다.    그런 불안감을 원동력 삼아서 끝없는 시도끝에 현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업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도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베이스이던 그 시절보다는 거래처들도 생기고, 자리잡은 아이템들도 생기면서 저축도 하고, 재테크도 다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상 25살 화물운전기사 였던 제 삶의 10년에 대해 소개해보았습니다.    다음글에서는 말년휴가 나와서 웨이터로 3년동안 저축하며 배운점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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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인생을 바꿔준 사장님의 조언 4가지, 듣는 것 만으로도 20대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사장님의 조언 4가지로 20대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인생의 진짜 시간을 사고있는 타임셀러입니다. 오늘은 10년 전 제 삶을 바꿨던 사장님의 조언 4가지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군대 전역이 코앞인 22살.당시 병장 월급이 15만원정도였으니 돈을 모아서 전역한다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할 수 있을까? 22살 웨이터 시절 알바 일자리들을 보다가 우연히 ‘웨이터’라는 알바를 알게 되었습니다.하는 일은 호프집과 똑같지만 팁을 받아서 월급이 되는 신기한 구조였죠.  고소득이 가능하다길래 말년 휴가를 나와서 면접을 보았습니다.그만둘 때 쯤 사장님께 왜 저를 뽑으셨냐고 물어보니 피부도 새까맣게 타서 막 전역한 티가 나서 열심히 할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2012년 6월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방학마다 불러주신 덕분에 때마다 가서 일을 했습니다.당시 중소기업 첫 월급이 100만원정도였지만 웨이터 일이 익숙해지며 소득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일 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사장님께서 부르시더니 제게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곳에 빠지지말고 착실히 돈을 모아라가장 먼곳으로의 여행술은 위스키골프를 배워라남자 나이 40까지 번 돈은 니 돈이 아니다 이런 곳에 빠지지말고 착실히 돈을 모아라 대부분의 사람은 환경이 큰 영향을 받습니다.일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운동선수부터 은행원, 사업가, 상속자등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의 술값으로 1~2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씁니다. 제 한달 월급에 버금가는 돈을 단 한번의 술값으로 내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 신기하더라구요.   착실히 돈을 모아라    이게 첫번째 조언이였습니다. 매일매일 현금으로 팁을 받아서 생활을 하다보니 돈이 흩어지기 마련이고, 가벼워집니다. 돈의 속성이라느 책에서도 나오듯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과 들쑥날쑥한 돈은 무게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쉽게 지출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아셨는지 꼭 돈을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항상 출근하기전 ATM기에 들려 2만원만 빼고 남은 돈들을 계속 통장에 넣었습니다. 8개월이 지난 2013년 2월 제 통장에는 1,000만원이 있었습니다. 1젊을수록 가장 먼곳으로 여행을 가라 유럽, 미국등 가장 먼 국가로 여행을 가봐라. 젊을수록 멀리가야한다. 나중엔 돈이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가질 못한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안간터라 비행기를 아직 못타봤었습니다.  그래도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무작정 유럽행 패키지 여행을 예약했습니다.10년도 지난 이 여행이 현재까지 다녀본 해외여행 중 가장 장거리가 될 것이라곤 꿈에도 몰랐죠.  당시 서유럽 패키지를 250만원정도 결제했는데 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 너무 먼 국가는 못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와 배우자까지 있으니 여행비가 몇배로 드는 것도 사실이고, 유럽과 한국은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어서 업무를 보기 어렵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0대에 다녀왔던 여행들, 숙소비를 아끼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나 캡슐침대에서 생활했던 추억들은 이젠 다시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경험을 쌓는다라는 이유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 이것으로 얻는 가치보단 가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얻은 가치가 더욱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술은 위스키를 먹어라 이젠 술을 잘 안먹지만 20대엔 일주일에 두세번정도는 친구들과 마시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비싼 위스키를 먹으라고 하시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요.  단순히 마시는 술을 바꾸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지만 부동산 투자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지방에 소액 물건들 여러개를 사지말고 좋은 물건 1개를 사라.  가장 주택수가 많았을 때는 4주택이였고, 3개는 인천에, 나머지 1개는 천안에 있었습니다.2017~2019년은 영끌을 한다면 서울에 한채 투자해볼 수 있는 금액이였지만 다주택자가 되어야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주택 수를 늘리기 급급했었죠.  아쉽게도 지금까지 해온 모든 투자 성과를 더해도 당시에 똘똘한 한채를 샀었더라면.. 예상 수익의 반도 안되는 슬픈 현실입니다. 3볼링,당구 치지말고 골프를 배워라 이젠 하다하다 친구들이랑 볼링치는 것까지 잔소리를 하시는구나 싶었는데 10년이 흐르고 골프의 시대 오고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말이 맞았구나!  아직까지도 골프라는 운동을 한번도 안해봤지만 당시에 사장님께서 말씀해주셨던 명분은 가장 넓은 필드를 사용하고, 2:2 팀을 이루기도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너가 골프를 잘치게 된다면 팀원으로 데려갈 수 밖에 없다.  직업이 화물차 운전이 되고, 쇼핑몰을 운영하게 될 줄은 그때 당시엔 몰랐지만 10년을 내다본 안목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4남자 나이 40까지 번 돈은 돈이 아니다 이 말만은 실천하고 싶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많은 사업이 실패하며 ‘저축 조금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실패의 쓴 맛을 봐야했습니다.  공간임대업에서 5천만원을 손해보고, 코인 투자에서 1억을 손해보고,간신히 원금의 일부를 건져서 재개발에 넣었더니 프리미엄 1억이 또 사라졌습니다.      코인보다는 그래도 실물 자산이 좋겠다라는 제 판단은 어김없이 빗나가버리고, 공사비 증가와 조합 이슈로 인해 프리미엄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죠.  그 뿐만 아니라 친구와 PC방을 창업하여 2년동안 자영업자의 길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투자가 한 3~4번 쯤 실패했을 때 이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남자 나이 40은 도대체 무엇인가.. 40세불혹(不惑)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세상을 경험하여 판단이 서는 나이라고 합니다.2~30대에는 주변의 유혹이 많고, 투자 성향에 대해서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부동산 투자가 나에게 맞는지, 주식투자, 코인투자, 배당투자, 성장주투자, 지수투자 등등 본인의 스타일을 찾아가는데에 경험비용이 발생합니다.   이걸 내야 비로소 그 경험들이 저에게 축적이 되더라구요.그래서 마흔까지 많은 경험을 쌓아야하니, 돈이 내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잘 실천하여 돈이 제 것이 아니되었습니다. 보고계십니까 사장님?고맙습니다. 인생의 진짜 시간을 사는 과정이 궁금하시다면타임셀러의 블로그를 방문해보세요 :) ▶네이버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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