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월급쟁이입니다. 월부 2년, 9채나 집이 생겼어요 - 섬나무님
📌의심하지 말고 꾸준히!
📌 내가 가진 것에서 베스트를 하자!
안녕하십니까
아직 40세는 되지 않은 30대 극 후반 월급쟁이 섬나무입니다.
이제 월부 2년차에 접어든, 바닥에서 올라갈 곳밖에 없는 행복한 투자자입니다.
“형 요즘 잘 지내세요? 진짜 안부를 묻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오늘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섬나무님이 아니라 형이라는 말을 들었더니 신기했습니다.
안부 인사를 하며 그동안 울었던 이야기, 웃었던 이야기를
우리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형,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거에요?”
“저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특이하게도 그렇게 연락이 없었는데 같은 날
또 다른 후배에게도 연락이 왔습니다. 내용은 똑같았어요.
어떻게 지내냐, 어떻게 살거냐
답은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지금은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인생?! 그게 뭐야?
전 모두가 여기도 임장가야하는지 물어보는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2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루종일 노는 아이들과 함께 동네에서 뛰어놀던
그저 평범한 어린이였습니다.
한 주택에서 자랐고, 집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이따금 ‘똥퍼’라고 불리는 차가 와서 청소해줘야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거미가 그렇게 싫었던 평범했던 어린이였습니다.
하지만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제 부모님은 절 가난하게 키우지 않았으니까요.
“공부?! 그게 뭐야?”
저는 공부도 평범했습니다. 전교에서 3자릿수로 떨어지기도 했고
또 열심히 하면 2자릿수로 들어가기도 하는 정도였습니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습니다.
주변에도 학원을 다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니 공부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하는건지, 뭘 해야하는 건지 몰랐지만 1년동안 혼자서 죽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난 수능날
조심스럽게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시더라구요
‘모두 다 떨어졌어. 내가 미안하다’
“노력?! 그게 뭐야”
전 모두 떨어졌기에 재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요.
우리반 꼴찌에서 시작한 성적은 반장 3수형보다 훨씬 더 높은 모의고사 성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입시 지원 과정에서 방법을 몰라 또 한 번 실수해 성적보다 낮았지만,
그래도 모두가 가고 싶었던 학교로의 진학에 성공했습니다.
“잠?! 그게 뭐야”
학교를 마치고 경쟁 사회로 나왔습니다.
공부할 떄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씻는 것이 사치일만큼 하루하루 무탈하기만 바랄 뿐이었습니다.
돈과 빽.
이것이 내 실력 중 하나라고 느껴질만큼 쓰디쓴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인간성은 지옥 같이 힘들 때 드러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꽉 물고 버텨야했고, 더 위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돈?! 그게 뭐야"
이렇게 다 버티면 돈은 자연히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에 대해 약간의 의심이라도 있었따면 달려오지 못했을 겁니다.
내 노후뿐만 아니라 적절한 부도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정도의 연봉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와이프와 맞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점점 좋은 집에 살고 싶어졌습니다.
여기는 빨리 떠나고 싶어 여보.
매매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빚은 내기 싫었고 무서웠습니다.
최대한 모았고 저축했고 전세값을 모으고 거의 1-2년마다 이사했습니다.
더 좋은 곳을 향해 한발씩..
“자본주의?! 그게 뭐야”
자본주의가 뭔지는 몰랐지만, 드디어 원하는 생활권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시장 폭등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세 만기 되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할 것 같아 여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았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집을 사기만 했던 친구들보다
인생은 너무나도 후퇴해있었습니다.
재테크를 알아야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대충 재테크라고 적힌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월부?! 그게 뭐야”
천운으로 제 주변에는 월부를 열심히 하던 친한 형이 있었습니다.
쌍욕을 섞어가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던 중 이거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너나위 멘토님 ‘저평가 아파트 찾는 법’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금부에 매일 30분 쉬는 시간을 뒀지만
그마저도 아까워서 없애버렸습니다.
“부동산?! 그게 뭐야”
의지와 열정만 가득한 어린이였습니다. (지금도 어린이입니다)
부동산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틈도 없었습니다.
전화하는 것은 버튼을 누르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더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실전반, 월부학교와 같은 전문 양성반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좁디좁은 앞마당을 혼자 혹은 저와 같은 실력의 동료분과 뒤져가며
앞마당을 늘릴 때마다 아주 조그만 실력으로 매물을 찾아 문의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에서 베스트를 했습니다.
“매수?! 그게 뭐야”
끝까지 질문하고 끝났는데 또 질문하라고 해주시는 방랑미쉘 멘토님
자주 본다고 알아봐주시고 모든 걸 주고 싶어하시는 주우이 멘토님
조심해야할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해주신 양파링 멘토님
치열한 자본주의 속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자산?! 그게 뭐야”
무주택 월급쟁이에서 아홉개의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 자본가가 되었습니다.
그 자산들은 크게 오른 것은 아니지만
내 의도와 다르게 상승장에 끼어주었고
순자산은 10억대 중반 정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노력한 40년에 가까운 세월 죽어서 노력해서 모은 돈보다
부동산 자산이 늘어난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건 제 실력이 아니었지만, 현실었습니다.
그래서 서러웠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습니다
월부에서 하는 길,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마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