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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후기

[열중47기 7행운이 2리로 들어오조 용맹] 독서후기 13 - 미움받을 용기

25.09.29

도서명: 미움 받을 용기

저자/출판사: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읽은날짜: 25.9.27~28

 

 

 

 

총 평: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형식으로 만들어 풀어준 책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다른말로 용기의 심리락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고민은 인간관계로 부터 비롯된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우리의 행복은 환경이 아닌 나 스스로가 선택할수 있다고 한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으로 인해 불편함을 참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핑계 대지 말고 이제는 더이 상 미루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의 행복을 위해 용기를 내어야겠다. 뷰티풀 마이 인생을 위해^^

 

 

 깨달은점/ 느낀점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지. 가령 엄청난 재해를 당했다거나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네. 분명히 영향이 남을 테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야.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가령 그 친구가 ‘나는 부모에게 학대받아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에게는 큰소리를 내고자 하는 목적이 먼저였네. 즉 소리를 질러서 실수를 저지른 웨이터를 굴복시키고, 자신이 하는 말을 듣게 하고 싶었던 거지. 그 수단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꾸며낸 거야

 

 하지만 자네는 큰소리로 화를 냈지.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서 저항하지도 않는 상대를 더 값싼 수단으로 굴복시키려고 한 것일세. 그 도구로 분노라는 감정을 동원한 것이고.

 

 자네는 지금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네. 삶이 힘들게 느껴지고, 심지어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하지만 지금 자네가 불행한 것은 자네 손으로 ‘불행한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일세.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트라우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었다. 경험 그 자체가 핑계가 될수 없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이래야 해, 이럴수 밖에 없어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앞으로 더 나아갈수 없게 만드는 감옥과도 같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이 경험을 해석하고 의미를 주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인식으로 남을 수 있다. 트라우마 이야기를 하며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저자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목적, 나의 가련한 인생을 봐달라는 목적, 복수하고자 하는 목적, 나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목적 등 그 안에 담겨있는 그 이상의 목적을 보려고 한다면 의도를 알수 있을 것이고 상대를 행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이며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그리고 진흙탕속에서 스스로 벗어날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불행을 핑계로 탓으로 돌리지 말자. 결국 나만손해인것이다. 불행도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행복해질 용기!! 나 자신이 행복한 쪽으로 용기를 내어야 한다.

 

실제로 뭔가가 결여되었거나 뒤처진 것이 아니었다는 뜻일세. 분명히 155센티미터라는 키는 평균보다 작아. 게다가 객관적으로 측정된 숫자라서 언뜻 보면 열등하게 느껴지지. 하지만 문제는 그 키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어떤 가치를 주느냐 하는 점이지.

 

 내가 내 키에 대해 느낀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통해 만들어낸 주관적인 감정이었네. 만약 비교해야 할 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내 키가 작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자네도 지금 이런저런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열등성’이 아니라 주관적인 열등감’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키에 관한 문제조차 주관이 개입하지.

 

 인간은 내면에 자리한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더욱 전진하려고 하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하네. 열등감이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 그런데 한 발 내딛을 용기도 내지 못하고 ‘상황은 현실적인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차피 나 같은 건”, “어차피 열심히 해봤자”라며 포기하는 사람들 말이야.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네. 구체적으로는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하거나 “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난 걸세. 

 

 물론이지. 나는 패션에 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열 손가락 모두 다 루비 반지와 에메랄드 반지를 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미적 감각의 문제라기보다는 열등감의 문제, 즉 우월 콤플렉스의 증거라고 봐야겠지.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고 ‘특별’해지는 거지. 병에 걸렸을 때, 다쳤을 때, 실연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태도를 취하며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네....... 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들지. 첫날 말했던, 집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사람들은 곧잘 불행을 무기로 하는 우월감에 빠지네. 아들러가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라고 지적했을 정도야.

 

 물론 상처를 입은 사람이 “너는 내 마음을 이해 못해”라고 하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겠지. 당사자의 기분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도저히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네.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앞서 걸으나 뒤에서 걸으나 관계없어. 쉽게 말해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열등감”에 대해서도 쉽게 풀어말해주는 대목이다. 열등감을 좋게 활용하면 더 전진하고 나아가는 방향,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좋게 활용할수 있다. 

그러나 열등감 자체도 인간관계,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한다. 나 혼자있다면 열등감 자체는 존재할수 없을 것이다. 

열등감은 내가 부여하는 의미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치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작은 키는 타인과 비교했을때 열등감을 가질수 있다. 하지만 이것또한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오는것이다. 키가 작지만 나는 다른 장점이 있음을 알고 크게 게의치 않는다면, 그렇게 나 스스로가 생각한다면 문제시 되지 않는다. 불행의 요인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열등감에서 나오는 특별감으로 나 자신을 제한하고 묶으려하지 말아야겠다. 불행이 무기로 작동할수 있다고 한다. 특별히 조심하고, 이러한 사람들 역시 경계해야겠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쪼그라들게 하고 발전하지 못하고 발목을을 스스로 잡고 있을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건전한 열등감을 바꾸어 어제와 나와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성장하고 행복할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보자~~^^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남으니까.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세계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걸세. 더는 세계를 위험한 장소로 보지도 않고, 불필요한 시기심이나 의심에 눈이 멀지도 않을 걸세. 대신에 세계가 안전하고 쾌적한 장소로 보이게 되겠지.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도 눈에 띄게 줄어들 걸세

 

 아니. ‘참는다’는 발상은 자네가 아직 권력투쟁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일세.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그리고 그것이 권력투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서둘러 싸움에서 물러나게.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네.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 있으면 불행에서 벗어날수 없다고 한다. 왜냐면 경쟁은 패자와 승자가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권력투쟁에 사로 잡히지 말고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보다 세계를 안전하고 괘적하게, 사람들을 ‘친구’로 보는게 중요하다!!

나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경쟁이 보일때는 이를 피해야 한다. 그래야 불행을 막을수있다. 

 

 

 먼저 행동의 목표로는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라는 두 가지를, 이러한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로는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과 그로부터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을 제시했네.

 

 

 아들러는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관계를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라는 세 가지로 나누고 이를 합쳐 ‘인생의 과제’라고 불렀네.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인생의 과제네

 

 아들러 심리학은 타인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일세.

 

하지만 A의 결점을 용서 못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에게는 ‘A를 싫어한다’는 목적이 앞서고, 그 목적에 맞는 결점을 나중에 찾아낸 거니까.......A와의 관계를 피하기 위해서지.

 

 아들러는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태를 가리켜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했어.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뿐이야.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고, 자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일세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은 내 과제야.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고.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개입할 수 없네. 물론 전에도 말했듯이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가는’ 노력은 할 걸세. 하지만 거기서 물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지.....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는 불가피하다. 이것이 인생의 과제이다.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해 ‘인생의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타당성을 찾으려는 본능과 같은 거라고 느낀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지를 구분하여 타인의 과제에 침범하지 않는것이 중요하겠다. 타인의 과제를 내가 평가에 지나친 간섭과 두려움도 있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지, 부모와 교사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네. 개입이란 타인의 과제에 불쑥 끼어들어 “공부해”라고 하거나 “그 대학에 가야 해” 하고 지시하는 걸 뜻하네. 반면에 지원이란 과제의 분리와 수평관계를 전제로 하지. 공부는 아이의 과제라는 것을 이해한 상태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거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부하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거라네.

 

 칭찬은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이지.

 

 그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네. 평가란 수직관계에서 비롯된 말일세. 만약 수평관계를 맺고 있다면 감사나 존경, 기쁨의 인사 같은 더 순수한 말이 나오겠지.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지금까지 논의했던 ‘공동체 감각’이나 ‘용기 부여’에 관한 말도 전부 이와 연결되네.

 

 과제를 분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네. 따라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란 말이지. 내가 말하는 자기수용이란 이런 거네.

 

 교환이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의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낸다. 그것이 자기수용이야.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네. 그저 ‘용기’가 부족한 거지.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라네.

 

거듭 말하지만 과제를 분리할 수 있게 되면 인생은 놀랄 만큼 단순한 상태로 돌아간다네. 다만 과제의 분리라는 원리원칙을 이해하는 것은 쉬워도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 타인의 과제에 끼어들거나 개입하지 않기! 자녀에게 지시하고 나의 뜻을 전달할때 수평적 관계임을 잊지말자! 내 자녀이지만 아이의 과제에 불쑥 끼어드는 것을 경계해야겠다.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며 아이의 과제에 깊은 개입을 하고 있는 부모인 나다. 결국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나를 위해서가 포함되어 있을수 있음을 경계하자. 

칭찬이 또하나의 평가이므로 조심히 하자. 

과제를 분리하면 인생이 단순해진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나도 이를 실천해서 경험해봐야겠다. 

 

인간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철학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즉 행복이란 ‘공헌감’이라고.

 

 왜 ‘특별’해지려고 하는 걸까? 그건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특별히 잘하는’ 상태가 실패로 돌아가면 극단적으로 ‘특별히 못되게 구는’ 상태로 빠르게 넘어가는 걸세. 그런데 보통인 것, 평범한 것은 정말로 좋지 않은 걸까? 어딘가 열등하다는 뜻인가? 실은 누구나 평범하지 않나? 그 점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네.

 

= 행복은 공헌감이라고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나의 가치를 느껴보자, 눈에 보이는 행동적인 뿐 아니라 존재감 그 자체에도 공헌감을 가져보자! 나는 공헌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가? 존재 자체가 귀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이미 존재가치가 있는, 타인에게 존재 자체로 공헌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연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분필로 그어진 실선을 확대경으로 보면, 선이라고 여겨진 것이 실은 연속된 작은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다시 말해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이라네

 

 여행을 하는 목적이 뭐지? 예를 들어 자네가 이집트로 여행을 갔네. 그때 자네는 되도록 효율적으로, 되도록 빨리 쿠푸 왕의 거대 피라미드(Great Pyramid of Khufu)7에 도착했다가 그대로 최단거리로 돌아올 텐가? 그런 건 여행이라 부를 수 없지. 집에서 나온 순간,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네.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순간이 ‘여행’이야. 물론 어떤 사정이 생겨 피라미드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네. 그것이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이야.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자네의 ‘지금, 여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걸세.

 

생활양식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네. 직선처럼 보이는 과거의 삶은, 자네가 ‘바꿀 수 없다’는 결심을 번복한 결과로 그렇게 보이는 것에 불과하지.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완전히 백지 상태에 놓여 있네. 쭉 뻗은 레일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야기는 없어.......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네.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라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거지. 자네는 지금까지 ‘지금, 여기’를 외면하고 있지도 않은 과거와 미래에만 빛을 비춰왔어. 자신의 인생에 더없이 소중한 찰나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던 거야.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는 뜻이지. 아들러 심리학을 배우고 나면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이제 과거의 세계가 아니라네.

 

 = 삶은 점의 연속! 인생이란 순간이라는 것! 또한 인생을 여행이라고 많이들 표현하는데 왜 여행이라고 표현하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이집트 피라미트 여행을 효율적으로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최단거리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인생을 과제처럼 수행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인생은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그 순간의 모든것임을 알아야겠다. 

순간의 최선이 모여서 목표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눈부시기 때문에 그 밖의 앞뒤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만 있을 뿐이다. 

지금을 외면하지 말고 허투로 보내지 말자.

 지금이 최선이고 빛이다. 

내 인생은 백지 위에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거기에 자유롭고 행복해질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적용할 점

 

1.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에 대해 두려움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지자. 나의 중요한 일을 위해 눈치를 보는 등 소모적인 감정은 버리자. 나의 과제를 하자. 나의 과제에 집중하자. 타인의 과제에, 감정에 소모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말아야겠다. ---> 나의 삶을 좀 더 단순하고 행복으로 물들여보자. 타인의 과제에, 평가에, 감정에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지 말자. 결국은 타인을 원망하게 되는 악순환이 됨을 기억하자. 그저 감사만이 내가 할일이다. 

 

2. 분노!! 나의 분노~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은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서 저항하지도 않는 상대를 더 값싼 수단으로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도구로 분노라는 감정을 동원한 것  ====> 분노, 화, 짜증내지 말고 자녀의 과제(숙제, 공부)에 크게 개입하며 수직적 관계보다 수평적 관계로 부모로써 격려, 지지,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자. 칭찬보다는 고맙다는 말로 대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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