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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세계은행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상장기업은 4642개 사, 독일은 10분의 1도 안 되는 429개 사다. 프랑스는 457개 사다. 독일과 프랑스가 미국보다 작아서 그렇다고? 아니다. 캐나다는 3534개 사고, 일본은 3865개 사다. 자본시장이 발달했느냐 아니냐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차이를 인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환자가 되면 의사는 평소 그냥 지나치던 신체 부위도 면밀히 살펴보게 마련이다.
유럽은 디지털 전환이 늦었다. 미국 빅테크에 완전히 점령당했다. 한국과 중국은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있지만. 유럽은 전무하다. 검색을 비롯한 IT솔루션은 구글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유럽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2010년대를 보냈다. 그러다 2020년대 중반 들어 다음 단계인 인공지능의 무대가 펼쳐지다 위기감이 커졌다.
유럽은 실패 원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따.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자본시장의 미성숙에 있다는 걸 비로소 절감하고 있다. 거대한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미국은 가능성 있는 기술 기업에 거액을 투자해 빠른 속도로 키워낸다. 반면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유럽은 다르다.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큰돈을 유통하기 어렵다. 은행은 여신 심사를 까다롭게 한다. 스타트업이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믿고 투자해주세요”라고 할 때 은행은 시큰둥하기 마련이다. 결과는 기술 기업의 속도감 있는 성장을 저해하는 쪽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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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다르다. 막대한 규모의 자본시장을 운동장으로 삼는 큰손들이 기가 막히게 신기술 냄새를 맡는다. 싹수가 보이는 기업에 큰손이 거액의 투자금을 내고 일정지분을 가져간다. 이런 미국의 투자 시스템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유럽이 누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규모의 차이도 크다. 유럽의 자본시장은 각각 나라별로 나뉘어져 있다. 규모의 힘이 부족하다. 놀라지 마시라.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경기도보다 인구가 더 많은 나라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루마니아, 네덜란드까지 불과 7개국이다. 나머지 20개국은 모두 경기도보다도 작은 나라들이다. 이런 작은 나라들이 각자 조그마한 주식시장을 둔다는 게 미련한 초식이라는 자각이 분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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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리더들은 자본시장이 덜 발달한 게 단지 금융 차원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기술 기업의 혁신을 발목 잡는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걸 자각하게 됐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자본시장을 키울 수 있느냐가 유럽이 반등할 수 있는지 여부에 큰 열쇠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경기도보다 인구가 작은 나라가 20개국에 달하는 EU에서 각국이 알아서 자본시장 키우기를 한다는 건 규모의 경쟁력 차원에서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럽의 리더들 사이에서는 통합된 유럽 전체의 자본시장을 키우자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중략)
그러나 지난한 일이다. 관성적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하는 유럽 기업들이 수백 년 묵은 관행을 깨뜨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EU 회원국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단일 자본시장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중략)
유럽이 단일한 거대 자본시장을 구축한다면 전 세계 돈의 흐름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에 관심 있는 K투자자라면 유심히 지켜봐야 할 포인트다.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일을 해내려면 엄청난 반대급부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투자공부를 해보겠다고 이렇게 대전까지 와서 임장을 한는 것 또한 예전의 내가 가진 관성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집에 누워서 조금이라도 더 자고, 빈둥거리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 그렇게 한다고해도 사실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아니 생기지 않는다고, 생기지 않을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살고 있었던 거다.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 그 변화에 발맞춰 걸으려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유럽도 나도 사실은 도태된 거다. 도태되었음을 깨닫고 변하고자 하는거다. 사실 유럽보다는 내가 더 나은 상황이다. 나는 나 하나만 바꾸면 되는 문제인데 유럽은 혼자가 아니다. 여러 나라들이 머리를 맞대고 변화에 대한 논의를 한다. 그런데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그러니 실행에 옮기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조차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렇게 유럽과 나를 비교하면서 보니 나의 상황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래도 꽤 있구나 하며 지금도 이렇게 독서 기록을 남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것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수십 년 동안 그냥 지나왔던 나의 관성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 이런 노력들이 10년 뒤의 나 뿐만 아니라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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