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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부학교 겨울학기 👼🏻2ㅣ쁘다 빈쓰튜터님 오셨네👼🏻 앵자]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서후기

26.02.05 (수정됨)

 

 

1. 책의 개요

 

 제목 :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 : 빅터 프랭클(이시형 옮김)

 출판사 : 청아출판사

 읽은 날짜 : 2026.01

 점수 : 10점만점에 9점🎵

 

 

2. 느낀점

 

#결국’Why’ #의미를찾고자하는의지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아우슈비츠 관련하여서는 역사적 사실로는 알고 있고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학교에서 본 기억이 전부다. 많이 미화된 영화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고 그럼에도 너무 슬펐는데 그래서 딱히 이런 주제로는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뜬금없이 월부에 와서 읽을 줄이야? 

 나는 전쟁나면 바로 죽을거야, 살 이유가 없잖아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고도 마음 한 켠에 아직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건지 고문의 역사가 너무 강렬한건지) 죽는게 더 편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읽다 보니 결국 살아야 할 이유가, 목표가, 삶의 의미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단정짓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책에서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의 상태를 표현 하는데 간청, 주먹질, 위협도 효과가 없고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그렇게 누워 있으려고만 하며 병실로 옮겨지는 것, 그 밖에 어떤 도움도 거부한다고 했다. 이런 걸 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이유라는 것은 참 중요한 거 같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이 책에서 이 문장을 봤을 때 문득 수용소에 있지 않으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사실 나도 내 인생은 기대할 게 없어 방황하던 사람이었지만) 책에선 우리가 삶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중요한 거라고 말한다. 스스로가 삶으로 부터 질문을 받고 있음을 알고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수행하며 행동하는 것. 내게 주어진 시련은 나를 힘들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이며 오로지 내가 나를 구해야 한다. 뭔가 종교적인 철학 같기도 한데 듣다보니 또 맞는 말인게 당면한 과제에 어떤 태도로,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아빠, 왜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지요?”

    딸아이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얘야. 몇 주일 전에 네가 홍역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때 ‘선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낫게 해 주셨잖니?”

“하지만 아빠, 이걸 잊지 마세요. 처음에 홍역에 걸리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에요.”

 

근데 왜 나일까, 저사람이 아니고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온 걸까, 그냥 편하게 살아도 될 삶인데 왜 나일까. 수용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어깨를 으쓱했따 이후 이렇게 생각할 쯤 로고테라피를 설명하며 나온 문장인데 초의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꼭 하는 질문. 애초에 그런 고통을 주지 않았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인데 어쨌든 왜 나인지,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당면했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겨내는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한 것. 이럴려고 나를 그런 시련에 두었구나 하다가도 굴곡없는 삶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3. 책에서 본 것

 

[1장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보통사람 이야기]

 

- 대상자를 가리는 과정이 곧 수감자 사이에, 혹은 수감자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이나 친구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기차는 망설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불쌍한 우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구해 내고 싶다는 듯이

 

- 나와 함께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 언젠가는 자기에게 집행 유예가 내려질 것이며,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 잠시 후 그 방에서도 채찍 휘두르는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 계속됐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 그때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 하나둘씩 차례로 무너져 갔다. 그다음에는  ─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 섬뜩한 농담기가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조차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했다.

 

-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 우리는 정말로 혐오감과 공포, 동정심 같은 감정을 더는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 가거나 또 이미 죽은 것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소에서 생활한 지 몇 주가 지나면 그런 것들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 방금 전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었다.

 

- 나는 또다시 아내와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당시 나는 내 고통에 대한 그리고 내가 서서히 죽어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때로는 다른 동료들이 미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풀려난 후 어느 날 저녁 초대를 받았는데, 자기가 풀려났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는 그 집 안주인에게 이렇게 부탁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밑바닥에서 퍼 주세요.”

 

- 만약 강제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킬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 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 수용소에서 사람 목숨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만약 병자 중 한 명이 수레가 떠나기 전에 죽는다 해도 마찬가지로 수레에 던져진다. 리스트에 올린 번호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번호뿐이다. 오로지 죄수 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이 의미 있는 것이다. 

 

-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때로는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때도 운명이 자기 대신 결정해 주기를 원했다. 

 

- 그날 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친구들은 트럭에 실려 그 수용소로 이송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사 안에 갇힌 채 불에 타 죽었다.

 

-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 인생이란 치과 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강제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가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에 사망률이 증가한 것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 조건, 식량 사정 악화, 기후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꿈에 사기를 당해 왔던가!

 

-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점점 비통해지면서 자기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겪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神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2장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 우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 “과연 이 모든 시련,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이런 상황이 의미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궁극적으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탈출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 인간은 조건 지어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3장 비극 속에서의 낙관]

 

-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그렇다면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아주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견지에서 보자면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됐다.

 

 

4. 적용할 점

 

✅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한 선택은 오로지 내가 하는 것이다.

 

 


댓글


우다위
26.02.04 23:59

앵자님 너모 좋은 책인 것 같아요!! 후기 작성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뎅
26.02.05 13:20

캬……. 앵자님 늦은시간 까지 고생해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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