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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모]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 독서후기 [복식부기]

26.07.16

✅ 도서 제목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

✅ 가장 인상 깊은 구절 1가지는 무엇인가요?

 

 

✅ 책을 읽고 알게 된 점 또는 느낀 점

1장. 한양 10리 밖을 벗어나지 말라

정약용은 왜 한양에 살라고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토지 소유권이 형성된 후 지속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났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방의 토지 가격이 하락하는 데 한양의 집값만 오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인구 집중 때문이었다.

한양의 집값 상승을 막을 수 없었으니, 그 주된 원인은 19세기초를 고비로 시작된 강력한 인플레였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더 확고해져 역대 정권이 서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출발점이 되었다.


2장. 나라님이 당백전 찍어낼 때, 내 재산을 지킬 방법은?


3장. 장남만 상속받으라는 법 있나요?

자작농이 늘어나자마자 하회 혼란이 종식되었다. ‘지킬 것’이 생긴 사람들은 재산권을 위협하는 이에 저항할 것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에 뿌리내린 가족주의 문화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농지 개혁은 정치와 사회에 안정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의 효과도 가져왔다.

교육은 재산권의 강화를 유발해 포용적 사회를 만든다는 점에서 경제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포용적 사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제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고 경제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공평하게 보장받는 사회를 말한다. 경제적 기회의 평등, 성장 과실 공유, 사회적 배제 방지, 기본적 삶의 질 보장 등을 특징으로 한다. 반대 개념은 배타적 사회로 특정 계층만 경제적 혜택을 독점하고, 불평등이 심한 사회를 말한다.

 

식민지 시기 일본 유학생 상당수가 공산주의에 빠져든 것은 기본적인 기회의 균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가가 지적하듯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기회를 박탈 당한 지식인 계층이다.

농지개혁이 단행된 1950년 전국의 토지 가격은 연간 상승률로 환산하면 11.1%. 물가가 연 21.2% 상승했음을 감안한다면 토지 가격은 오히려 하락한 셈이다. 그러나 4.19와 5.16이후 본격적인 경제 개발의 시대가 출현하면서 토지, 특히 서울의 토지는 인상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다시 한번 투자의 대세로 떠오르게 된다.


4장. 폭격을 맞아도 도시가 좋아!

클러스터: 교육과 기업 그리고 인재들이 모여 혁신을 창출하는 곳을 뜻한다. 

집값이 아무리 비싸도 정보 통신 산업 전문가와 영화 산업 종사자는 이곳으로 끊이없이 몰려든다. 클러스터에 일자리와 정보, 그리고 인재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적산 매각이 경제 성장으로 연결된 이유는 성공을 열망하는 이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부분이 크다. 아무리 헐값이라도, 전쟁 이후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모르는 상황이라 적산을 인수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서울에 큰 비가 내릴 때마다 강남역이 물바다가 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강남 3구는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나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분산할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 최적의 후보는 인천-부평-영등포 방향이었다. 이계획이 추진되었다면 아마 강남 개발은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1967년 일어난 2가지 사건이 영등포 - 인천이 아닌 강남으로 개발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①한남대교 (제3한강교) 착공

②소양강 댐 건설

  박정희 3대 국책사업 1. 소양강 댐 2. 경부고속도로 3.서울 지하철

지금 올림픽 종합 경기장이 있는 잠실이 1960년대에는 섬이었다. 잠실섬 북쪽에는 신천강이 흘렀고, 지금의 석촌호수 방향으로 흐르던 강은 송파강이라고 불렸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인 압구정과 반포 그리고 잠실이 바로 공유 수면 매립으로 만들어졌다. 공유 수면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함으로써 건설사는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정부는 사회 간접 자본 프로젝트의 비용을 조달하며,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두둑한 정치자금을 챙길 수 있었다.

 1960년대 발생한 강력한 부동산 가격 상승

①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로 이동이 집중된 것

②베트남 파병과 한일 국교 정상화에 따른 대규모 외국 자본의 유입

→강남 개발은 전국적인 주택 가격의 상승 탄력을 강화한 계기로 보아야 한다.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새로운 도시의 건설로 강남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올라서게 된다.

5장. 정부를 믿을 수 없을 때, 어떤 자산이 유망한가?

1970년대 고질적인 자금 부족 문제가 수출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정부가 시도한 변화

①금리 정책

역금리 제도 도입 이후 예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1963년 480억 원에 불과하던 예금 잔고가 1970년 7,897억 원으로 거의 20배로 늘어났다.

②대규모 차관

전망이 밝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업가들은 자기 돈만 가지고 사업을 하기보다 다른 이들의 돈을 빌려 사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에 닥친 위기

①리처드 닉슨이 1969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후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빼기 시작. 베트남 호황도 막을 내리게 된다.

②기업들의 부실 문제

금본위제의 폐지는 무역거래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고민해 가격을 책정해야 하는 어려운 업무를 함께 수행해야 했다. 금본위제 폐지는 무역 위축 뿐만 아니라 강력한 인플레도 촉발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4차 중동전쟁이 원유 가격을 끌어올렸다.

금융 억압정책으로 후퇴였다.

1972년 8.3 조치

1079년 8.8 대책

양도소득세율이 기존 30%에서 50%로 인상된 데 이어 매입한 후 2년 이내에 매도하는 경우에는 70%의 세율이 부과되었다.

①주택 가격 상승의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 성장률 변화

②강력한 주택 시장 안정 대책은 성장률 둔화의 충격을 키운다.


6장. 공급 앞에 장사 없다!

1980년대 중반 3저호황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중화학 공업 부실화와 만성적인 인플레 그리고 무역 적자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외채에 대한 높은 의존으로 인해 외환위기 가능성이 시시각각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내부 요인 외에 해외 여건 개선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82년 가을을 고비로 전 세계의 인플레가 꺾이기 시작한 것이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 체제가 붕괴되고 1981년 레이건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회복된 것도 외채 위기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84년부터 시작된 3저 호황은 경제 성장을 더욱더 촉진했다. 

3저호황 : 저물가, 저금리, 저환율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를 버리고 중앙 처리 장치 분야에 아예 집중하기로 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 생산 설비를 넘겼던 것이다.

1979년 발생한 2차 석유 위기로 경기가 급격히 나빠진 데다, 1970년대 말의 대규모 택지 개발로 공급 과잉 현상이 출현한 것도 주택 경기 침체를 가져왔다. 전두환 정부는 1980년 9.16일  “경제 활성화 대책”을 통해 주택 매매 차익에 붙는 양도세를 5~20%로 인하했다.

전세 가격 급등 요인

①1980년  중반까지 의 주택 공급 부족 

②1989년 전세임대차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 데 있었다.

저금리, 공급부족, 강력한 주택매수 열기로 가격급등에 대응할 방법: 대규모 주택공급과 양도세 강화 등 부동산 규제

1989.2.4. 긴급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통해 노태우 정부는 대도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분당과 일산 등 5개의 신도시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7장. 일본형 장기 불황을 겪지 않는 이유는?

1986~1990년 한국의 생산성은 8.5% 높아졌지만 임금은 10.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 미국 정부가 한국과 대만을 이른바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던 것이다. 

한국이 ‘슈퍼301조’ 적용 대상 국가가 된 것도 문제였다. 슈퍼301조란 무역 상대국을 우선 협상 대상으로 지정하는 한편 광범위한 보복조치를 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이다.

1989년 해외여행을 전면 자유화하는 등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부동산이 외환 위기 이후 회복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요인은 주택 담보 대출이 미미한 데 있다.

한국 주택 시장은 1998년 말을 전후해 살아나기 시작했다.

1999년 이전까지 한국의 주택 시장은 성장률과 주택 공급만 보면 되었지만, 이때부터는 금리와 대출 조건도 투자 의사 결정의 중요 부분으로 부각되었다.


8장. 수도권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면, 인구를 지방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강남 13개 구의 독주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강남 접근성이 좋은 지역(판교, 광교, 위례, 동탄 등)에 집중적으로 2기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2008년 12월에야 입주 가능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고비로 입주가 일제히 줄어드는 것

노무현 정부의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제정된 특별법을 통해 2030년까지 인구 50만명 규모의 행정 수도를 건설하기 결정했다.

수도권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목적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하락하는 이른바 하우스푸어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역 균형 발전 정책뿐만 아니라 남동 임해 밸트를 중심으로 제조업 도시들이 큰 호황을 누린 것도 서울 주택 가격의 하락을 유발한 요인이다.

2010년대 중반에 양극화 흐름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한 보금자리 주택 공급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2014년 9.1. 에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 규제를 상당 부분 폐지하고 LTV를 낮추기에 이르렀다.

1970~1980년대에는 수출과 주택 공급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인구 이동, 금리 변화, 종목별 수출 동향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9장. 분양가 상한제와 임대차 3법의 불행한 만남

당국이 재건축, 재개발 관련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한 것도 공급 차질을 유발했다.

분양가를 억제하면 재건축, 재개발의 채산성이 악화된다.

일반 분양 시대의 분양가를 통제하면, 재건축을 추진하는 이들 입장에서 굳이 사업을 서둘러 추진할 이유가 없어진다. 집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즉 ‘자기 분담금’을 규제 이전보다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청약이나 추첨 등을 통해 일반 분양 아파트를 받는 사람들이 횡재한 것에 거부감이 존재한다는 점도 문제다.

“청무피사(청약은 무슨. 입주권 프리미엄 주고 사)"라는  말이 유행어로 떠오르는 것을 감안할 때 분양가 상한제가 주택 매수세를 약화한다는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다.

2020년 7.31. 부터 시행된 임대차 3법 도 주택 시장의 수급 균형을 무너뜨렸다.

① 전월세 상한제 : 임대료 인상률을 직전 계약의 5% 이내로 제한

② 계약 갱신 청구권 : 집을 빌린 사람이 계약 갱신을 1회 요구할 수 있는 계약

③ 전월세 신고제 : 임대차 계약 체결 후 30일 이내에 계약 내용을 신고하도록 의무화

전세상승의 영향

① 전세 가격 상승이 매매 가격과의 차이를 줄여, 이 주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매수를 촉발

② 전세 각격에 반영된 주택 사용 가치의 상승으로 집값이 오르는 것

금리하락

① 가계의 저축 욕구가 낮아지는 가운데, 경제 전반에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다.

② 주택 구입의 기회비용이 낮아진다.

③ 차입 비용의 감소

주택 구입 부담지수 : 각 지역의 중위 소득 가구가 장기 분할 상환 대출을 이용해 중위 주택을 구입할 때 짊어지는 부담을 숫자로 환산한 것이다.

이 지수가 100이라는 뜻은 집을 구입함으로써 발생하는 부담이 소득의 25%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2부.
10장. 왜 2022년 말에 서울 아파트를 샀나?

김대중 정부는 200년 초부터 정보 통신 기업 주가가 폭락하며 경기가 나빠지자, 2001년 카드 발급 규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이 카드 사태의 츨발점이 되었다.

2003년 말 기준으로 신용 불량자 수가 372만 명으로 불어나, 경제 활동 인구 여섯 명 중 한 명이 은행 등 금융권에서 거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결과 2003년 민간 소비 증가율은-0.4%를 기록했고, 2004년에도 0.4% 성장에 그쳤다. 더 나아가 신용카드 회사의 연쇄적인 경영 위기가 시작되었다.

외환은행이 미국의 사모펀드인 론 스타에 팔린 것도 카드 부문 부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은행은 이자율이 낮아서 이자 마진을 넓히기 편하고, 주택 가격이 상승해 충분한 담보 가치가 확보된다고 판단될 때, 대출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

2008년이나 2022년 처럼 환율이 바닥처럼 400~500원 이상 상승한 시기에 주택 가격이 급락했음.

환율(경제의 신호등)의 상승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

①글로벌 외환 시장의 동향이다.

② 국내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향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이나 채권의 미럐를 비관하면서 매도하면, 외환 시장에서 ‘달러 매수’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의 단기적인 흐름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환율과 금리 그리고 정부 정책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장. 중국 부동산 시장은 왜 회복되지 못했나?

한국은 2023년 3월을 고비로 새로운 상승 사이클에 올라탔다.

중국 주택 시장이 불황의 늪에 빠져든 이유

①중국 당국의 지나친 대출 규제 정책

②부동산 버블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부풀어 오른 데 있다.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이유는 ‘소유권 부재’에 있다. 

③저가 매수의 실종이다.

2022년 말 ‘챗지피티 3.5 쇼크’에서 보듯, 신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는 매우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전광리로 대표되는 신성장 산업에 정책 자금이 대거 투입됨에 따라, 건설 부동산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디플레 기대 심리가 부각되고 물가가 하락할 때,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곳은 빚을 짊어진 가계와 기업이다. 


12장. 정부 정책만 보면 부동산 바닥을 잡을 수 있다

PF: 각각의 프로젝트 단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

2022년 초를 고비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PF의 연체율, 다시 말해 빌린 돈의 이자나 원금의 지급이 늦어지는 일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가장 큰 자금이 투자된 곳이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었다.

DTI(Debt to Income): 총부채 상환 비율. 즉 연소득 대비 원리금 또는 이자를 갚는 데 드는 비용

저점을 확인하는 정책 지표

①분양가 상한제 완화, 

②양도세 중과 해제, 

③투기 과열 지구 해제

13장. 서울 아파트를 팔고 수도권에 단독 주택을 지으면 안 될까?

1970년 서울시가 분양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분양 개시 2개월도 안 되는 1,584가구가 모두 완판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중앙난밤은 물론 엘리베이터를 설치함으로써 생활 편의서을 극적으로 높여 아파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여기에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며 지어진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가 주거 혁명을 가져왔다.

다가구주택 : 한 명의 소유자가 건물 전체를 소유하고 등기도 건물 전체에 하나만 존재. 다른 이들에게 세를 주는 형태로 3층까지 주택으로 사용

다세대주택 : 빌라. 각 호실을 여러명이 소유할 수 있는 공동주택. 등기도 호수별로 존재. 660제곰미터 이하의 연면적에 주택으로 사용되는 층수가 4개 층 이하라는 특징


14장. 새집 줄게, 경기도 살자

‘광주대단지사건’ 연평균 증가율을 계산해보면 전국이 1.45%인 반면, 서울은  9.4%. 

매년 인구가 10% 가까이 늘어나는데 주택 공급이 이를 따르지 못하니, 주택 보급률은 1944년 59.8%에서 1966년 50.0%까지 떨어졌다. 

13만 가구의 판잣집 중 3만 가구를 지금의 성남 지역에 보내는 것이 ‘광주대단지사건’을 유발했다.

교통 인프라 문제가 가장 심한 곳이 위례 신도시다.


15장. 제2의 강남은 어디일까?

‘제2의 강남은 없다’

당시 운행 시간과 거리로는 천안아산, 건설 비용과 수요에서는 대전이 유리했는데, 엉뚱하게도 청주 오송이 갈림역으로 결정된 것은 세종시 때문이었다.

세종시를 계획한 이들이 “다른 도시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생활권을 만든다”라는 목표를 설정

강남이 가진 강력한 교통망과 주거 편의성을 따라갈 경쟁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16장. 한국 부동산, 버블인가?

대기업 실적이 크게 호전된 2025년~2026년의 억대 연봉자 비중이 10%선을 돌파할 전망이다. 근로자의 10% 이상이 억대 연봉자인 나라에서 서울 아파트 중윗값(10.9억)이 지나치게 높은 것 같지는 않다.


17장. 일본은 왜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나?

일본의 생산 활동인구(15세~64세)가 1995년 정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

일본에 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주택 가격이 급등했을까

①2000년 대 고이즈미 개혁 :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 공공 주택을 짓는 정책을 폐기하고 세계 최대 클러스터인 도쿄-요코하마 등 핵심 지역 노후 건물을 초고층 오피스 빌딩으로 재건축, 재개발을 유도하는 정책

②아베노믹스: 

③메가시티 집중현상

2008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지만 도쿄도 지역만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대도시와 지방의 토지 가격 차이가 확대되고 있다.


18장. 버블에 매도할 용기를 내는 법

2020년 말에 ‘적정가’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이유(매도 관점에서 주택 시장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①갭 투자 붐→갭 투자 장세가 펼쳐지면서 비인기 지역마저 집 값이 급등하는 등 과열 징후가 뚜렷

②인플레 위험이 커지며, 시장 금리가 상승

③2020년 6.17 대책 발표→ 정부가 문제의 근원을 파악해 유동성을 조이기 시작


19장. 상승 잠재력이 높은 집을 고르는 법

①강남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보면, 먼저 보아야 할 포인트는 강남으로 이어지는 교통

②언제 지어졌는지

③대단지

미국 리츠 상장 지수 펀드 

리츠: 부동산 투자 신탁 증권으로 여러 투자자의 돈을 모아 건물을 매입한 후 발생하는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상품

지방은 어떻게 합니까? 지방 아파트와 주택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가겠지만, 인플레를 이길 만큼 충분한 상승세가 지속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20장. 서울 아파트값 잡는 법

창신 숭인 뉴타운이 제일 먼저 해제된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다.

2008년 서울 뉴타운 26군데를 전수 조사한 결과 재개발 후 세대 수가 줄어드는 곳이 14군데에 이르렀다. 

최근 서울시의 정비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건축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가파른 건축비 상승을 감안할 때 토지는 서비스로 주는 셈이었다. 따라서 이 일대의 건물들은 재건축이 불가능한 상태로 낡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었다. 아무도 새로 건물을 짓지 않고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로 주변 환경이 유지되는데, 미래에도 임차인들이 이 건물을 선택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재건축, 재개발 등의 정비 사업이 신속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토지 가격이 매우 비싸야만 한다. 조합원의 열의를 꺾는 장벽이 하나 있다 바로 분양가 상한제다.


21장.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도시의 미래, 도쿄를 보라!
도쿄의 신축 빌딩은 탄성을 자아내는 일종의 소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미드타운 야에스나 아자부다이 힐수 같은 거대 복합 건물들은 오피스 기능 뿐만 아니라 쇼핑부터 교육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편리하게 제공함으로써 ‘직주 근접’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심을 고밀도로 개발함으로써 환경 비용을 줄이는 한편 통근 시간을 단축해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드는 대안에 대해서도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한 때다.

 

✅ 나에게 적용할 점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를 통해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은 사람들의 심리가 더해진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시장을 왜곡 시키지만 결국 수요와 공급이라는 본질에 따라 움직인다.

과도하게 불안해하기 보다 시장 안에서 큰 흐름을 읽고 시장의 파도를 의연하게 넘어가는 투자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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