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후기

열반스쿨 중급반 몰입 독서 후기 [ 열반스쿨 중급반 39기 48조 라파스피릿]

  • 24.09.03

이 책은 한 구절 한 구절을 읽고 느낀점이나 적용할 점을 적기에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나는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는데, 페이지 수만해도 거의 600쪽 (590p)이었다.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되어있지 않는 터라 처음에는 쪽 수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초보 독서가는 사실 엄두도 내지 못할 양이다. 중급반 마지막 주차의 필수 도서라니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일 제쳐두고 읽어 내려갔는데, 프롤로그부터 재미있어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새벽 4시, 5시, 늦어도 6시에 일어나서 노트북 화면을 켜고 조용히 읽어내려갔다. 지난 몇 년간 독서에 온전히 몰입을 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한 느낌이라 할 정도로 푹 빠졌다. 읽는 속도가 느렸기에 과제 마감일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고민이었는데 하루에 100페이지 이상씩 읽어 내려갔더니 딱 디데이에 독서 독후감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에 50페이지도 읽자, 읽자하며 겨우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아이들 하원시간 몇 분을 남겨두고도 더 읽고 싶어서 눈을 못 뗐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처음 읽는 책은 아니었다. 21년 첫째 아이가 100일쯤 넘었을 때, 처음 접했는데(그때도 밀리의 서재 추천작이라 봤던 기억이..), 그 때도 열심히 읽었었지만 읽으면서 내용도 어려웠고 아이가 하루 종이 옆에 있어 집중도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재독임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감탄을 하며 읽은 책으로 그 두번째 이야기도 나왔다 하니 얼른 읽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군데 군데 있다. (물론 전반적인 내용이 다 좋았다.) 그 중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죽음’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숙명적인 죽음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 언제가 될지 모르나 죽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는다. 우리는 죽음을 저항할 수 없다. 그런데 슬픈 일은 아니다.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불사조처럼 평생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도 문제다. 계속 살아있다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죽음은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는 게 재밌었다. 죽음을 밀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유일하게 죽음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유일한 기회라 생각하고 우리의 삶을 정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우리가 정한 명확한 목표를 향해 몰입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몰입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앞서 노후 대비를 위해 우리의 자산의 목표를 취하라는 ‘월급쟁이부자들로 은퇴하라’의 저자, 너나위님 말씀처럼, 내가 삶을 다하는 그날 나의 인생이 후회되지 않도록 내가 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몰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 교육법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의 4장은 어린아이들에게 몰입을 통한 교육법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인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더욱 더 집중해서 읽었다. 나는 평소 시냅스와 신경가소성과 학습에 대해 궁금했었는데, 학습과 관련해서 시냅스의 역할과 시냅스의 가소성의 특징을 알고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학습에 연관시켜야하는지 그 원리를 알려주어 나의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조금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몰입적 사고를 세대에 걸쳐 가정과 학교에서 두루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유대인의 교육 방법은 우리나라 교육 방침에도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에게도 몰입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여러 case study가 많이 나온다. 몰입을 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동감있게 전달되어 더 집중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마지막 장은 그동안 몰입 교육을 받지 않은 성인인 우리도 몰입을 할 수 있도록 그 방법에 대해 설명해준다. 아직은 첫 단계인, slow thinking부터 시작해야하지만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도 과연 몰입의 단계를 거칠 수 있을까라는 반신반의한 마음과 기대가 교차되면서.. 마지막 [당신도 할 수 있다, 몰입8계명]에서 나오는 우리가 몰입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8가지를 충분히 베이스로 두고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직은 쉬운 문제도 찾지 못한 상태다. 평소에 중학 수학 문제집을 풀려고 사놓은 것이 있는데 한번 실천해볼까 한다. 일단 나의 일상에 바로 접목시키는 것보다 지금은 나의 몰입 능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아서 매번 지식을 주입하기만 했는데 나의 생각만큼 잘 될까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한번 시작해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에.. 이제 몰입을 해보는 준비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며 후기를 마친다.

 

 

[밀리의서재 p335~340] 능동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죽음에의 통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거부감을 주는 것도 없지만 이보다 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없다. 이 거북하고 달갑지 않은 문제를 직시하며 통찰할 때 성숙한 삶을 찾을 수 있다.

칙센트미하이는 천재와 범인의 차이를 죽음에 대한 통찰에서 찾았다. 보통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 처한 경우에만 최선을 다하고, 위기가 사라지면 최선을 다하려는 동기도 사라진다. 그러나 천재들은 위기 상황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무엇인가를 부단히 추구하고 최선을 다한다. 마치 이들에게 일은 생계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왜 이들은 평상시에도 위기 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칙센트미하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최선을 다하려는 공통적인 동기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이들은 다가올 죽음을 항상 의식하면서 최선의 삶을 살 것을 다짐했던 것이다.

기요르기 팔루디는 일곱 사의 나이에 시인이 되고자 결심한 이유를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죽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죠.” 거의 평생을 몰입 상태로 보내면서 불가사의할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내 ㄴ전설적인 방랑 수학자 에르되시 역시 어릴 때 죽음의 의미를 깨달았다. “애들은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을 안 해요. 나도 네 살 때까지는 그랬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가다가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지요. 그때 이후 나는 늘 좀 더 젊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두 개가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라고 했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톨스토이

내가 몰입을 하게 된 동기 역시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 즉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면서부터였다. 우연인지 나의 지도 학생이 몰입을 시도한 동기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통찰만큼 최선의 삶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일까, 몽테뉴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죽기를 공부하는 것”;이라는 일갈을 남겼다. 우리가 불멸의 생을 산다면, 혹은 영생을 얻는다면 죽음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의미도 없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삶이라는 개념도 성립할 수 없고 우리는 그저 무생물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 된다. 삶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어야 죽음에 대한 통찰도 가능한데, 삶에 쫓기다 보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젊음의 가치는 또 얼마나 될까?

사고 실험을 한번 해보자. 수천 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 어떤 젊은이에게 서로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자고 제안한다면 이 젊은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의 젊은이는 이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이런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우리의 인생은 몇천 억,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돈과 물질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몇천 억보다도 소중한 인생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으니 그 가치에 걸맞게 인생을 보내야 한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는가? 오늘 하루 내가 한 일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활동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나?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이 바로 스스로 몰입을 선택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죽음을 통해서 다시 읽는 삶의 의미

죽음에 대한 통찰은 다른 사람이 죽음에 대하여 써놓은 글을 읽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죽음의 의미를 가슴 깊이 사무치게 느껴야 한다. 나는 과거 영겁의 세월 동안 세상에 없었고, 앞으로 다가올 영겁의 세월 동안에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지금 잠깐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광활한 우주 가운데 한낱 티끌에 불과한 지구라는 행성에서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의 존재와 삶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사실은 적어도 생명이 있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반드시 죽는다는 점에서 나는 사형수와 같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다. 다만 사형 집행일이 언제인지 모른 채 살고 있을 뿐. 교통사고로 오늘 당장 죽을지, 암 선고를 받아서 몇 달 후에 죽을지, 아니면 운이 좋아 한 30~40년을 더 살고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머지않아 죽는다는 거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 결국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이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숙명적인 죽음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에 대하여 내가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죽음에 대하여 내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이 유일한 기회이고 이 삶의 기회를 잘 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나한테 달려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죽음과 가장 반대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생동감 넘치고 삶의 희열로 꽉 찬, 그리고 작지만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음이 나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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