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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중 48기 부의 그릇이 거대한 4람2 될지니 와아앙냥냥] 독서후기 #18 - 그릿

25.12.29

 

그릿

 

그들 대부분이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이 늘 부족해 보였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였다. 

그럼에도 불만을 가지는 자신에게 정말로 만족을 느꼈다. 

그들 각자가 비할 바 없이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목표의 달성만큼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꼈다. 

그들이 해야만하는 일중에서 일부는 지루하고 좌절감을 안기고 심지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들은 추호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열정은 오래 지속됐다.
자신의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결단력이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갈 방향도 알고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점은 열정과 결합된 끈기였다.

 

이 문단이 그릿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 험난하더라도 즐기는 것 (즐거운 것)

나한테 이런 느낌을 주는 일이 있나 싶다;
뭐든 어려우면 그냥 포기하고 싶은데, 이런 일을 내가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릿이란 한번에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흥미롭고 목적이 뚜렷한 목표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다. 

매일, 몇 주, 몇 해씩 도전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다.

 

근데 꼭 즐거운 일이 아니더라도, 매일 즐겁진 않더라도 

목표를 이뤄낼 때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세분화하여 높은 수준으로

 

최상급 기량은 사실 수십 개의 작은 기술 및 동작 하나하나를 배우거나 우연히 깨우치고, 

주의 깊은 연습을 통해 습관으로 만들고, 전체 동작으로 종합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부분 동작들 중에서 비범하거나 초인적인 동작은 하나도 없다. 

정확하게 실행된 동작들이 합해져 탁월한 기량이 나올뿐이다

 

이게 모든 단계를 쪼개서 모두 잘해야한다는 그 말이랑 일치하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독강임투 그 자체에도 적용이 되고, 

여기서도 더 잘게 쪼개서 책선정하기/읽기/생각하기/정리하기 등으로 나눠서 

각 항목별로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내용이 몰입에도 나왔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나에게도 이제 좀 적용이 되는 거 같다

 

 

유연하게,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실 하위 목표를 포기하는 행동은 용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꼭 필요하다. 

원래 설정했던 하위 목표는 이를 대체할 수 있고 실현 가능성이 더 높은 목표가 나타나면 포기해야만 한다. 

경로 변경이 필요한 또 하나의 경우는 다른 하위 목표, 

즉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더 효율적이거나 재미있다는 등의 이유로 원래 계획에 더 타당할 때다.

 

적절한 예시가 생각났다.

난 진짜 유익함이 1도 없는 책도 시작한 이상 끝까지 읽곤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걸 읽고 있는 내 시간이 아까워서 중도하차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끝까지 해보지 않고 버리는거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있는 편...
안 된다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만두는 건 찜찜하달...
근데 때론 차라히 안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ㅋㅋㅋㅋ 그런 결과를 찾는 거 같다 ㅎㅎ; 

이런 생각도 이겨내려고 노력중...

 

 

그릿 키우기

 

인생철학이 생기고, 거절당하고 실망한 뒤에도 툭툭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고, 

얼른 포기해야 할 하위 목표들과 좀 더 고집해야 할 상위 목표들의 차이를 알게 되면서 그릿이 성장하는 듯하다. 

이런 성숙 가설에서는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장기간 열정과 끈기를 유지하는 능력이 발달한다고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잊을 수없는 인생의 교훈을 얻고, 점점 증가하는 상황의 요구에 맞춰 적응해 간다. 

그리고 점차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이 습관이 된다. 

급기야 이전의 미성숙했던 자신을 기억도 할 수 없는 날이 온다. 

우리는 적응하고, 그렇게 적응한 행동들이 반복되어 마침내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체성으로 발전한다.
하나는 우리가 성장해온 시대 문화에 의해 그릿이 결정된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릿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두 설명 모두 사실일 수 있으며 둘 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잘한 부분보다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틀린 부분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는 즉각적인 피드백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그릿도 연습하면 된다는 건데, 사실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당시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도 뒤돌아보면,

최선이었을까? 더 할 수 없었을까? 라는 의심이 들다보니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달까...


그리고 예전엔 그릿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나에게 그릿이 있나?라는 의심도 든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 때 하나 더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라고 생각하자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을 때만 강인한 어른 쥐로 성장시켰다.

 

이 부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없는 상황, 압도적인 상황 아래에서는 강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무력이든 정신질환이든 뭐든간에 모든 상황을 노력으로 이겨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설명과 예시가 있길 바랬지만 호다닥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어서 좀 아쉬웠다.
그래서 GPT를 켜보았다.

 

 

1. 통제 가능성이 핵심이다

 

발췌문에서 중요한 건 노력의 크기 자체가 아니라 ‘통제 가능성’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을 때만 강인해진다.

 

이는 노력 → 보상 → 통제감 이 연결될 때 회복탄력성, 그릿, 강인함이 자란다는 뜻이다.

 

강인함은 ‘고통을 많이 겪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통제 가능한 실패를 반복하며 쌓이는 감각에서 자란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람은 강해지기보다 무기력해질 확률이 훨씬 높다.

이건 낙관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과학·심리학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 너무 이른 좌절
  • 너무 큰 압도
  • 너무 오랜 무력감

이런 조건들 그 자체는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부서지게 만들 가능성이 더 크다.

 

2. ‘압도적인 상황’이라는 정확한 지점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없는 상황,

압도적인 조건 그 자체로는 사람이 강해지기 어렵다는 말은 냉정하지만 사실에 가깝다.

 

폭력, 학대, 통제 불가능한 질병, 구조적으로 불리한 환경 같은 조건에서는 

“이겨내라”, “강해져라”는 말이 성장 조언이 아니라 2차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믿음은 잘못되었다는 결론은 

나약함이 아니라 건강한 분별이다.

 

다만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다.

 

  •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는 → 그릿과 강인함이 자라기 어렵다 (맞다)
  • 하지만 그 상황을 벗어난 이후 → 강인함이 형성될 가능성까지 부정되지는 않는다

 

이 차이를 흐리면 의도치 않게 “조건이 나쁘면 끝이다”라는 결정론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3. 그래서 더 정확한 이해

 

통제 가능한 실패의 반복은

강인함이 자라는 가장 안정적인 경로이지만,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실제로는 다음 같은 요소들도 함께 작용한다.

  • 이후에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했는가
  • 실패의 원인을 자기 탓으로 고정하지 않았는가
  • 회복 국면에서 새로운 통제 영역을 확보했는가

 

즉,

  • 통제 가능한 실패 = 매우 좋은 토양 ✅
  • 통제 불가능한 경험 = 항상 파괴적 ❌

라고 단정하는 것은 과하다.

 

결론

 

강한 사람은 모든 걸 이겨낸 사람이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체성과 그릿

 

투지를 발휘할지 말지 판단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 
다른 어떤 요인보다 우리의 정체성에 의해 좌우 될 때가 많다.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한 모습이 우리 힘의 원천이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것은 무슨 상황인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가?

 

여기서도 정체성 이야기가 나오네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한참 나와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페르소나 역할일 때의 그릿을 발휘하기 위한 정체성은 

페르소나로서의 정체성인지 아니면 편안한 상태의 온전한 나의 정체성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도 GPT의 힘을 빌려봤는데 아래와 같이 답변 받았다, 만족스럽다.
(페르소나는 사교로 설정했다)

 

 

1. 페르소나는 ‘가짜 나’가 아니라 ‘선택된 역할(도구)’

 

필요해서 쓰는 사회적 기술·전략이며,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거짓이라 보기 어렵다.

다만 이 역할이 반복될 경우, 상위 정체성을 지지하거나 소모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2. 그릿은 ‘역할의 정체성’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음

 

그릿은 “지금 어떤 역할을 쓰는지”보다

“나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가치 있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상위 정체성에서 나온다.

 

페르소나는 그릿의 근원이 아니라, 그 선택이 실행되는 맥락에 가깝다.

 

3. 지속되려면 ‘연기’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다’로 연결해야 함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로 인식되면 힘든 순간에 그릿이 흔들리기 쉽고,

“내 목표를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이야”로 묶일 때 그릿은 유지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역할의 강도를 조정할 수 있어야 상위 정체성의 소모를 막을 수 있다.

 

결론

 

페르소나 상황에서 그릿을 결정하는 정체성은

“페르소나 정체성” 자체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상위 정체성”이야.

즉, 편안할 때의 나냐 사교 페르소나의 나냐가 아니라,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감당하는 사람인가”가 그릿을 좌우해.

 

“나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닐 수 있지만, 필요할 때 역할을 선택해 수행하고,

그 역할이 나를 소모시키기 시작하면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이 정체성이 페르소나 상황에서도 그릿을 지탱한다.

 

 

자신은 힘겨운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그런 자아개념을 확증해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아무런 힘도 낼 수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한 발짝씩 떼다 보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일도 달성할 방법이 생기고는 한다.

 

그리고 위의 정체성 이야기와 함께,

결국은 행동함으로써 방법을 찾는 것까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RAS 신봉자이기 때문에 아주 동의하는 내용인데,

그럼 나는 정말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후기

 

1회차 때는 정말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2회차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독서후기를 쓰는 동안은 재밌었다, GPT만세!

 

책을 읽는 동안 동료들 생각이 많이 났고,

그런 동료들 곁에 있고 싶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도 투자도 항상 하나 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꼭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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