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eolbu.com/s/KITkEPxjU0
어제에 이어서 읽는 부분.
p. 186
그렇다면 UBS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빈부 격차는 어떨까. 성인 1인당 평균 자산은 25만 1223달러이며, 중위 자산은 10만 4067달러다. 평균 자산이 중위 자산의 2.41배다. 미국의 사례에서 봤듯 이 비율이 높을수록 빈부 격차가 심하다는 뜻이 된다. 다른 선진국의 이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의 상대적인 빈부 격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편리하다. UBS 보고서에서 일본의 1인당 평균 자산은 20만 5221달러로 우리나라보다 22.4%나 낮다. 반면 일본의 1인당 중위 자산은 10만 2198달러로서 불과 1.8% 낮다. 평균 자산이 중위 자산의 2.01배로서 빈부 격차가 우리나라보다 덜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에서 엇비슷하다. 그런데 왜 평균 자산은 제법 차이가 클까. 우리나라는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비율이 높은데, 근년의 수도권 주택 가격이 급등해 자산 가치가 확 올랐다. 일본은 가계의 자산 가운데 주식과 예금 등 금융 자산의 비율이 60%에 달하며 부동산 가치 상승이 훨씬 더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살지만, 일본은 우리보다는 훨씬 고르게 분포돼 살아간다. 도쿄 부동산이 비싸다고는 해도 집중도는 서울이 훨씬 높다.
또한 미국 주식을 비롯한 해외 투자를 한국인들은 근년에 가파르게 늘렸고, 일본인들은 오래전부터 투자했을 뿐 근년에 투자 규모를 확 키우지는 않았다. 따라서 달러 강세와 글로벌 주식 시장 호조로 꽤 많은 단기 차익을 누린 한국인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큰 재미를 못 봤다.
임금 상승률도 21세기 들어 일본은 정체된 반면, 한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확 올랐다. 또한 고령화가 일본이 더 심각한 것도 영향을 줬다.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많은 일본에서는 고령 가구들이 적극적인 투자 활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현금이나 위험도가 낮은 예금 같은 금융 상품에 묻어두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이런 한일 간 차이를 보면 우리나라가 근년에 돈 잔치를 벌이는 과정에서 부자가 많이 늘어났고, 과실을 일부만 가져가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과 일본 외에 다른 선진국의 평균 자산과 중위 자산의 비율은 어떨까. 캐나다(2.41배)가 우리나라와 거의 같다. 하지만 프랑스(2.06배), 영국(1.93배), 호주(1.92배), 뉴질랜드(1.9배), 이탈리아(1.72배) 등은 우리나라보다 꽤 낮다. 대한민국의 빈부 격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빈부 격차는 이제 막을 수 없는 수준인가보다. 소수의 가진자가 부를 더 독점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AI의 시대는 그것을 더 가속할 것 같다. AI를 사용하는자(부를 가진 자)와 AI에게 부림을 당하는 자로.
관계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최근 예능 중에 ‘냉장고를 부탁해’가 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명한 스타들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들고와서 그 안에 있는 재료로 스타만을 위한 요리를 해주는 컨셉의 프로그램이 왜 인기가 있을까. 나에게 해주는 요리도 아닌데. 나는 그 이유를 지금 시대 상황에서 찾았다. 조금 애매모호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대는 ‘못 가진 자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리만족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사실 스타들의 냉장고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중위 자산 정도의 사람들의 냉장고에도 있는 그런 식재료가 아니다. 고급 치즈, 큰 맘 먹어야 살 수 있는 비싼 해산물, 처음 보는 와인, 독특한 향신료들. 세계 여러 나라의 술. 일반인들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식재료들이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그것을 누릴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선택하기로 했다. 굴비를 매달아놓고 식사를 했던 그 옛날의 자린고비처럼. 눈앞에 있는 식사보다 화면에 집중한다. 쉐프들이 만들어준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먹고 있는 스타들의 보며 재밌어 한다.
사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냉장고를 부탁해’, ‘흑백요리사’에 나온 요리사들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식사를 한다. 인스타 업로드를 위해서든, 진짜로 그것을 맛보고 싶어서 왔든 말이다.
점점 더 빈부 격차는 심해질 것이다. 지금 내 가장 큰 걱정은 21세기 중에 새로운 계급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 흑수저, 금수저라는 표현이 이제는 계급을 나누는 선이 될 지도 모른다. 흑수저는 대리만족으로 만족하고, 금수저는 실제경험으로 만족하는 시대를 원하지 않으나 이미 오고 있는지도.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인기🏅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