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매니아_The ValueMania] 1월 22일, 매일 독서 10분 실천 『돈의 대폭발』
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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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굿하트는 영국의 저명한 통화 이론가다. (중략) 평소 통화론자들의 근시안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통찰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굿하트 교수는 2023년 말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30년은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행동 양식도 그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중략) 그의 메시지는 갇단했다. 높은 물가가 잠깐 찾아왔다가 물러가는 게 아니고, 시대적 대세로 우리 곁에 남는다는 것이었다.
굿하트 교수는 “우선 요즘 흔히 쓰는 ‘고금리’라는 표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고 했다. 2023년 금리 수준은 1800년 이후 220여 년을 볼 때 평균보다 약간 높은 정도라서 고금리로 볼 수 없다는 얘기였따. 그는 “지금이 고금리라는 말보다는 지난 30년간 금리가 이례적으로 매우 낮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며 “1990년대 초부터 30년가량 이어진 저금리의 배경을 이해하는 게 앞날을 예측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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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굿하트 교수의 권고대로 사고방식과 행동을 ‘개조’ 내지는 ‘조절’할 필요는 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부분 경제 활동 주체의 머리 속에 금리란 대개 연 1~4%대를 왔다 갔다 한 걸로 경험상 기록돼 있따. 하지만 1960년대부터 30년간은 평균 연 7%대 금리였다. 앞으로 연 6~7% 이상의 아주 높은 금리가 우리 삶을 강타할 가능성은 낮지만 2010년대 초저금리보다는 높아질 개연성을 충분하다. 2025년 상반기 미국 기준금리는 연 4.25~4.5%로 쭉 이어졌는데, 낮은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굿하트 교수의 말처럼 굴러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불어난 글로벌 ‘머니 파티’로 급등했던 물가가 2010년대 수준까지 낮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관세 공격을 펼치고 있고, 이것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 원인으로 부상했다.
게다가 인건비가 저렴한 다른 나라의 노동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는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정치적으로 자국 중심주의가 기승을 부려 탈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트럼프식 관세 장벽이 들어서면서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이야기했던 ‘비교우위론’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나라별로 각자 더 싸게 생산할 수 있는 경쟁 우위 품목을 만들고 서로 자유무역을 해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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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다. 추가적인 변수는 전쟁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자유무역에 동참한 이후 30년 정도는 세계 경제를 강타할 만한 대규모 전쟁이 없었다. 이 역시 저물가를 유지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개시한 건 ‘30년 평화’를 깨뜨린 행위였다. 전쟁은 오래가고 있다. 중동에서도 계속 무력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그건 ‘예상 외 돌발 변수’가 아니다. 다들 ‘올 것이 왔구나’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30년이 세계사에서 이례적인 평화의 시기였다는 건 분명하다. 나라 간 분쟁은 물가와 금리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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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상의 금융 환경은 어떻게 될까? (중략) 중요한 변수는 고령화다. 어떤 학자들은 지구 전체의 고령화가 심각해져 수요 부진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중략) 어떤 학자들은 고령화의 영향을 정반대로 본다. 일할 수 있는 젊은 근로자들이 희귀해져 전 세계적으로 인건비 수준이 높아지고, 그 결과 고물가가 만연할 것으로 예상한다.(중략) 앞으로 금리 수준을 점쳐 보려면 고령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경제도 생물과 같다. 오랫동안 당연히 여긴 전제와 믿음이 바뀔 수 있다. 예전의 경제 공식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2010년대 통화량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면서 세상의 흐름이 바뀐 것처럼. 그리고 짧은 인생 동안 진리로 여겼던 믿음이 긴 인류 역사에서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계사적인 긴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 그래프에서 개별 아파트 단지의 가격 변화 그래프가 보이는 느낌이다. ‘전고점’을 뚫을 것인가, 다시 ‘전고점’을 뚫으면 어디까지 솟아오를 것인가. 물가상승률이 ‘전고점’을 뚫는다는 건, 단순히 숫자가 오르는 게 아니다. 화폐라는 종이 조각의 ‘지지선’이 붕괴된다는 뜻이다. 투자 차트에서 저항선을 뚫고 전고점을 돌파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듯이, 물가가 전고점을 뚫으면 내 지갑 속 현금의 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한다. 이것은 ‘상승장’이 아니라 현금 가치의 ‘폭락장’이다.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했다. 트럼프가 만든 관세 장벽이 ‘비교우위론’을 무너뜨리면서 예전의 경제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경우처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금기’는 더이상 ‘금기’가 아니게 되었다. 상식의 시대가 저물어간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어둠은 단순히 낯선 ‘비상식의 시대’인가, 아니면 이성조차 사라진 ‘몰상식’의 시대인가.
30여년간 이어진 ‘평화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었다. 우리는 그동안 이 따뜻한 평화가 영원할 줄 알고 반팔을 입고 소풍을 즐겼다. 하지만 굿하트 교수의 말대로라면 이제는 “진짜 겨울”이 온다. 우리가 춥다고 느끼는 지금의 고금리와 고물가가 사실은 정상이고, 지난 30년이 비정상적으로 따뜻했던 ‘보너스 스테이지’였던 것이다. 이제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칼바람이 부는 시장을 견딜 수 있는, 두툼한 “겨울철 임장 복장”이 필요하다.
앞으로 금리는 높아질 것이고, 통화량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뉴스에서는 집값이 더 오르고 있다고 떠들 것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변해가지 않는다. 변화를 탓하거나, 이미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나를 더 벼락 거지로 만들 것이다. 겨울이 왔음을 인정하고, 옷깃을 여미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