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정말 무서운 기업이다. 지난주 발표된 젬마 4(Gemma 4) 인공지능 모델을 지켜보며 필자는 다시 한번 이 거대 IT 공룡의 치밀한 전략에 소름이 돋았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전장에서 구글은 단순히 하나의 무기를 선보인 것이 아니라, 전장의 규칙 자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거대한 설계를 드러냈다.
이번에 공개된 젬마 4의 핵심은 이것이 ‘진정한 오픈 모델’이라는 점에 있다. 과거에 등장했던 이른바 오픈 모델들은 상업적 이용의 제한이나 특정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젬마 4는 완전한 오픈 모델로 배포되었다. 이는 구글이 자사의 최첨단 기술력을 아무런 대가 없이 전 세계에 뿌렸음을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선 사업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매우 정교한 비즈니스 로직이 깔려 있다.
구글이 성능 좋은 모델을 무료로 배포하면, 수많은 기업은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체 모델을 개발하거나 비싼 유료 API를 쓸 이유가 사라진다. 기업들은 젬마 4를 활용해 각자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구축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발생한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연산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다. 현재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은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Azure), 그리고 구글(GCP)이라는 3대장이 장악하고 있다.

예상대로 젬마 4 모델은 구글의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환경에 최적화되어 설계되었다. 기업 입장에서 젬마 4로 가볍게 서비스를 시작했다가 사용자가 늘어나고 컴퓨팅 수요가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구글의 인공지능 인프라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이는 과거 질레트가 면도기를 공짜로 뿌리고 비싼 면도날을 팔아 수익을 챙겼던 ‘면도기-면도날(Razor and Blades)’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인공지능 모델이라는 면도기를 공짜로 주는 대신, 데이터센터라는 면도날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구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공지능 모델을 어느 누구나 공기나 ‘물’처럼 쓸 수 있는 범용적 재화(Commodity)로 만들어버리는 데 있다. 인공지능 모델 자체가 흔해지고 범용화되면, 이를 유료로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오픈 AI나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은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부가가치의 중심이 소프트웨어(모델)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와 하드웨어(반도체)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뛰어난 모델을 무료로 배포하면 전 세계 수만 명의 최고 수준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이 모델을 연구하고 개선한다. 구글이 단 한 푼의 인건비를 쓰지 않아도 전 세계의 인재들이 젬마 4를 뜯어보고, 파인튜닝 기법을 공유하며 모델의 성능을 자동으로 향상시킨다.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면 다른 경쟁사들은 도저히 따라오기 힘든 강력한 생태계 해자가 형성된다.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모델의 안정성과 효용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은 하드웨어 강자인 엔비디아와도 닮아 있다. 엔비디아 역시 인공지능 모델들의 배포를 장려하며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더 많이 쓰도록 유도한다. 인공지능 사용이 늘어날수록 결국 그 모든 연산을 처리할 하드웨어와 인프라 기업이 부가가치를 독점하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젬마 4로 시작한 기업은 고객이 늘어남에 따라 더 강력한 성능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종국에는 구글의 최상위 모델인 ‘제미나이 울트라’ API 결제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에 올라타게 된다. 인프라를 장악한 자가 생태계를 지배한다는 시장의 진리를 구글은 젬마 4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기술을 무료로 풀어서 인공지능 시장의 표준과 인프라를 장악하려는 구글의 전략은 확실히 영리한 것 같다. 참고로 구글은 작년 말에 자신들의 TPU와 데이터센터 생태계를 외부에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련 기사는 아래와 같다.

https://www.ai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37391
댓글
개발이라고 하는게 집단지성을 발휘하면 계속 좋아질 수 있으니 오픈소스로 제공하는게 좋은 전략으로 보입니다. 소프트웨어의 시대에서 하드웨어의 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겠네요. IT 환경 변화 관련 유용한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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