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후기

[돈버는 독서모임 5월] 인생은 순간이다 독서후기

  • 24.05.02




[알리딘 책 소개 참고한 저자의 삶 요약]

대한민국 대표 야구인. 82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야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성근


재일교포였다가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가족 한 명 없이 혼자 한국으로 옴. 오로지 야구를 위해서.

하지만 ‘쪽발이’라는 조롱을 들으며, 꽃피우기도 전에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던 비운의 투수,

꼴찌만 거듭하던 약팀의 감독…….

이른 나이에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지만 우승을 거머쥐기까지는 무려 25년을 벼려내야 했다.


토끼들처럼 재주를 타고나지도 못했고 꾀를 부릴 줄도 모르지만,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멈춰 서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숙고하며

오직 ‘내 안에서’ 답을 찾는 우직한 거북이였다는 에세이집.

 

다 읽고 나니 아래 이미지로 집약할 수 있는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항상 '왜?'라는 생각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라.

타협하고 후퇴하지 마라. 

시선은 늘 앞으로, 미래로."

-내가 야구를 하며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1) 야구에 미친 사람

'오늘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하는 설렘 속에서 야구장에 갔다고 한다. 

언제나 선택의 기준은 야구를 할 수 있느냐였고, 수술로 피를 흘리면서도 야구장에 갔고

매일 야구 연습이 끝나면 새벽까지 개선점을 고민하고 데이터를 분석한 사람. 



2) 인생 철학 

1장.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일구이무 一球二無)인생이란 결국 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진다.


혈혈단신으로 야구 하나를 위해 가족을 버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지만

그는 부상으로 선수로서의 삶이 빨리 마감되었다. 소속되었던 기업은행에서 사무직을 맡게 된 그는

절망하지 않고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며 도장찍기나 서류복사같은 일을 성실히 했다고 한다. 

창피하게 어떻게 은행을 다니느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꿋꿋이 묵묵히 성실히 임했다 한다. 


어제, 오늘, 내일 마주치는 순간들,

매 순간에 한 결정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된다. (중략)

인생을 살아보니, 기회란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매일의 순간순간을 허투로 보내서는 안 되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중략)

무엇인든 자기가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운도 내 편이 된다. 

매일의 흐름 속에서 자기의 베스트를 다해야 한다.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도록, 이번 공을 칠 수 있도록. 


이런 마음으로 살았던 그에게 거짓말처럼 모교 야구부의 감독을 맡아 달라는 기회가 왔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다시 야구계로 돌아갔고 인생이 바뀐다. 

이 기회를 그는 '반드시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고 했다. 


[dora의 생각] 나는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가? 

아니오. 그렇다면 나는 왜 열심히 하지 않는가?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누구나,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지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지금 내가 자꾸 턱턱 뭔가 걸리는 것처럼 불편한 이유는

이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핑계, 합리화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확신으로 바뀌던 차에

최근 개인적으로 매우 안좋은,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그러고 나니 좀더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투자가가 아니다.

라는 생각. 그럼에도 10억은 벌고 싶은 생각.

이 마음을 좀더 들여다 봐야겠다.




[이 책의 한 문장]

살아보니 인생에는 그런 게 중요하다. 버리는 것 말이다. 

선입견을 버리는 것, 상식을 버리는 것, 과거를 버리는 것.



[이 책에 대한 생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해 나갔다는 점,

그래서 자신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위대한 개인들이 모여 야구를 한다는 점에서

위대한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에 경외의 박수를 보낸다.


여기서 박수의 팔할은 성취나 한계를 넘은 데 있지 않다.

나는 성공했음에도 끝없이 노력하는 '자세'에 경외를 표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묵묵히 하루하루를 똑같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멋있다.


중간중간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그건 '사명감' 반드시 해내야한다' 등의 압박적 단어들 때문인 것 같다.

만약 그가 '성취'만 이야기했다면, 한계 극복만 이야기했다면

나는 아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뉘앙스는

이제는 거부감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쾌락적으로 현재를 즐기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충실히 현재를 살고 싶지만

억지로 울면서 현재를 버리듯이 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근데 한계를 넘으려면 이 악물고 해야만 하는건가? 싶어서 고민이다. 모르겠다ㅜㅜ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적용할 점]

자본주의에 무지했던, 잘못된 투자에 미련 갖지 않기

대중들의 선입견(조급함이나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것 등)에서 벗어나기

상식(보통)의 삶에 집착하지 말기(남다르게 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지)






1장. 그저 편하고자 한다면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잠재능력을 깨우는 '의식'의 힘/ 


그는 결국 한계를 돌파하는 것은 '의식'의 문제라고 했다. 

어제의 한계가 열 개 였다면 오늘의 한계는 스무 개라 생각하며 자기 한계를 높여 나간다고 한다. 


야마다 히사시가 투수 아다치 미쓰히로의 주무기를 배우기 위해 밤새 관찰하고 따라하며 한 말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훔칠 수밖에 없지!"

라는 마음으로, 절박하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정말 절박하다면 아프니 뭐니 핑계 댈 정신이 어디 있냐고, 

밤에 잘 시간도 없고 쉴 시간도 없어야 맞다고,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한구석에서는 이 길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시작부터 목적지에 곧바로 도달할 수는 없지 않는가. 

원래 모든=든 일은 힘이 든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의식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뭘 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했다. 힘들다기보다는 '어려운 길'이란 생각만 하지 않았나 싶다.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오르기 어렵고 그만한 고통이 있다. 시간도 걸린다. 힘든 게 당연하다. 

힘들 때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나는 심하게 반성됐다. 내가 계속 아팠던 건, 어떠면 자기 방어적 도피였을지 모르겠다. 

아파도 계속 한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봐야 하는 것 같다.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 같다.

아주 정확한게 다른 길로 가려는 마음을 언제나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월며들지 못했던 것 같다.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한 쪽 발은 밖으로 빼 놓았었다. 


생각해 보면 엄청 빡센 일정들로 온전히 하루를 살아냈을 때가 많아졌는데,

그때의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도록 행복하긴 하다. 아마 그게 아래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그 틈에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약점도 사라져간다. 살 길이 생겨나고, 스스로에 대한 동기가 생겨난다. "


하지만 방향이 과연 맞는가? 하는 생각이 요즘들어 계속 든다.

짧고 굵게 살겠다고 죽어라 연습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그런 삶이 과연 맞는가?싶은 생각을 하는 삶도 있다.


그 중 나는 후자의 삶을 살아왔다.

나는 위플래시를 보면서도 끝까지 갈등했었다.

주인공이 인격적인 모독으로 인해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는 장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인생의 화두인 적도 있었다. 과연 과정이 엉망이지만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걸까? 인격적 모독이 없다면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울까? 혹은 도달했더라도 그렇게 빠르게 도달할 수 없는 걸까?


당시 나의 결론은 no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대학만 가면'의 마약으로 아이들을 수렁으로 몰아 넣듯

'00만 하면'이라는 가정으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위플래시에서도 주인공이 인생 최고의 연주를 했지만 인격적 모독과 마음의 상처는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도달한 사람은 다음에도 인격적 모독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성공의 기쁨 안에 깊은 슬픔과 빡침이 함께 있어서 온전히 기쁨을 누릴 수 없지 않을까?

그런 기쁨이 과연 좋은걸까? 자신도 제자에게 같은 방법으로 도전하게 하지 않을까?

그런 기쁨이라면 나는 사양이다.



굵고 짧게 살겠다고 죽어라 연습하면

거기서 잠재능력이 개발되고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나의 베스트다' 싶을 만큼 연습했는데도

여전히 실력이 모자라고 도저히 못 살아남을 것 같다면?

그러면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으니

더 빨리 다른 길을 찾아 노선을 틀 수 있다.

그래야 아무 미련도 남지 않는다.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의 흡족감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짧고 굵게 살기 위해 죽어라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듯이,

내게 맞지 않는 성공포르노에 중독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게으르게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이하영의사의 말처럼 소처럼 충실하게 개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한때 가려고 했던 투자자의 길은

힘이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세계였다.

이 정도면 되겠다는 정도의 의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프로의 세계였다.

나는 이 세계가 너무도 덜그럭거린다.


물론  

뭐든 끝끝내 해내고 말겠다는 의식이 있어야 위기가 와도 돌파하고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더 벼르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점은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도 맞는지는 좀더 질문하고 고민해 봐야하지 않나 싶다.




1장. 시행착오가 많은 인생이야말로 베스트/남들의 위로 속으로 도망가지 마라.



물론 떠올린 아이디어가 막상 틀린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단 말인가.

틀리면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하고 힌트를 얻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

문제를 해결하면 길이 열리니까.

일단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시 고민하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려내서 또 시도하는 것.

그것이 시행착오다.

시행착오는 고민과 아이디어 없이는 있을 수가 없다.

즉 시행착오 뒤에는 수없이 거듭하고 반복한 고민, 생각, 도전이 있다.

그러니 시행착오가 많은 인생이야말로 베스트 인생 아니겠는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해명이라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해명은 곧 책임 전가와 같다.

'이것 때문'이라고 무언가를 탓하는 것이니

그게 책임 전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중략)


진심으로 동정하고 위로하던 사람도

한 번을 넘어 두 번, 세 번 실패하면 비난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렇다.

앞에서는 위로할지 몰라도 뒤돌아서는 지금까지 뭘 한 것이냐며 비난을 한다. 

그래서 남의 위로는 진심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거기에 도취되어서는 더욱이 안 된다. 

나는 위로를 받아도 그저 담담하게 흘려들을 뿐,

거기에 위안을 느끼지 않았다. (중략)

인간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엔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남에게 기대봐야 변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발상이 내게 제일 필요하다. 

나는 시행착오없이 한번에 성공하고 싶어하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러니 실패를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효과가 있기도 했지만 대신 안전한 선택만 했던 것.

오죽했으면 dora라고 했겠는가. (do전해 보ra)

하지만 인생을 피할 수 없는 법.

결국 나는 큰 실패를 마주했었고 그때 드디어 의식적 고민과 연습을 제대로 했다. 

그렇게 나는 도약했었는데, 그 순간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자꾸 또 피하게 된다. 


그리고선 '인생을 즐겨라'같은 말에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계속 변명하고 해명한다. 철저히 혼자서 꼿꼿이 살아온 자의 얼굴을 한 김성근 감독인 만큼 

위로 받지 않으며 해명하지 않으며 살아왔다는 말이 얼마나 진심에서 나온 말인지 느껴진다. 


하지만, 그처럼 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아니오, 라고 자신있게,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1장 파울은 실패가 아니다. 


파울을 쳤다는 건 냉정하게 말하면 실패나 마찬가지다.

안타를 친 게 아니니까 그렇다. 

하지만 다음 기회는 계속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야구가 알려주는 인생 아닌가 싶다. 

누구든 실패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곧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라고. 

내 인생도 그렇다.

나는 파울을 무지하게 친 사람이다.

프로야구팀 감독직에서 잘린 것만 일곱 번이니. 

나는 그럴 때마다 다음이 있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인내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그걸 보면 인내란 마냥 참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 그러니까 기회가 아닌가 싶다. 

누구든 실패를 겪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기회는 온다. 

설사 그 다음에 주어진 기회에서

또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배운다. 

문제를 알고 고칠 수 있게 되며, 프로세스를 얻는다.

포기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쌓여 인생을 바꾼다. 

한계를 넘으려고 온 힘을 다했던 경험,

뭘 하든 남에게 지지 않을 거라는 마음.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 이 과정을 성공하면 참 다행이겠지만,

혹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희들이 도전하고 시도했던 정신만큼은

잊어버리지 마라. 평생.

여기에서 가능성이란 걸 배워가라.

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볼게."


실패했을 때, 실수했을 때,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거기서 그냥 포기하는 사람과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 

사이에는 갈수록 차이가 넓어진다.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포기한다는 것은 곧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순간순간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 역시 또 하나의 성공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식은 밥을 잘 먹는 사람이 출세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인생은 역경에 몰렸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역경이 왔을 때 포기하는 사람과 거기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의 인생은 

시간이 지나보면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

역경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넘기느냐가 중요하다. 

홈런을 치고 안타를 만들 수 있다면 

파울은 몇 번을 쳐도 괜찮다. 

감독에서 잘려도, 수없이 비난받아도 

나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도 야구를 한다.



이제는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라. 

몸에 저절로 새겨질 때까지 정신없이 열중해 본 적 있느냐고.

그만큼 절실했느냐고.





'어차피' 속에서도 '혹시'라는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상상하고

그것들을 '반드시'로 만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내는 것. 그게 내가 여태껏 해온 일이었다. 


살아보니 인생에는 그런 게 중요하다. 버리는 것 말이다. 

선입견을 버리는 것, 상식을 버리는 것, 과거를 버리는 것. 


“과거에 실수를 했든 실패를 했든 그런 건 다 버려라. 

그때의 생각, 방법이 나빴을 뿐이지 너희가 나쁜 게 아니다. 

생각, 방법, 임하는 자세를 바꾸면 새로움이 나와. 

안 될 때, 실패할 때, 아플 때는 자기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어. 

단지 그 아픔을 실패로 끝내느냐, 시행착오로 바꾸느냐 하는 문제지. 

그리고 그건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달려 있는 거야.”


이는 선수들을 처음 만날 때면 내가 항상 하는 말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지금까지 50년이 넘게 지도자 생활을 하며 무수히 많은 선수를 만났다. 

그 선수들을 보며 몇 번이나 느낄 수 있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도 바뀐다. 

그러니까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고 스스로가 모자란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든 바꿔나가겠다는 의식으로 

지금 당장 사력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항상 실패가 붙어 다닌다. 야구도 그렇다. 

아홉 개의 이닝, 스물일곱 개의 아웃카운트. 가장 최소한이라고 해도 팀에는 스물일곱 번의 찬스가 오고,

똑같이 스물일곱 번의 핀치pinch가 온다. 아니, 사실 찬스의 순간도 핀치의 순간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순간순간의 기회에 매번 성공하는 사람도, 반대로 매번 실패하는 사람도 없다. 

이번 타석에 안타를 쳤다 해서 다음 타석에도 또 안타를 치는 게 아니다. 

아까는 삼구삼진으로 호쾌하게 잡아낸 타자에게 만루 홈런을 맞을 수도 있는 게 야구다. 

그러니 ‘과거’란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 쓸모도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실패했다면 이유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성공으로 바꿔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의 영광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성공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사실 제일 위험한 게 이미 낸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겼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하고 도취되어 있으면 바로 약해진다. 

이미 상대 팀들은 자기들이 왜 졌는지, 저 팀이 무엇 덕분에 이겼는지를 다 분석하고 있는데

지나간 승리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다음 승부는 질 게 뻔하다. 

이긴 것은 지나간 것, 대비해야 하는 것은 내일의 것. 그러니 '다음은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성공한 순간 과거를 버리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 가는 것이다. 


끝끝내 0.1%를 찾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 만족하지 않는 마음이 '다음'을 만든다


산이란 건 멀리서 보면 낮지만 가까이 갈수록 높다. 꿈도 똑같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이 차고, 힘들고, 괴롭다. 여기쯤에서 그만두거나 쉬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멀리서 보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디뎌가는 속에 미래가 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지금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뒤에 가서는 인생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만족하는 순간 이미 낙오한다. 어떻게 보면 만족이란 곧 실패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난다. 이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하면 기회를 잃어 버린다. 

인간은 언제나 도전해야 한다. 트라이하고 트라이하는 속에 인간으로서 성장한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서가서는 안 된다. 아직 없는 길에 살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돌무더기와 잡초가 무성한 길이라도 나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만약 세상이 시끄럽다고 해서 거기에 맞추고, 나의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식은 없어졌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부딪혀보면 거기에 수가 있기 마련이다. 

부딪히지 않으면 남는 것은 겁뿐이다. 비상식적이라도 어떻게든 싸워야 한다. 

이 문이 안 될 때는 다른 문을 찾아 저 문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도무지 나갈 길이 없어 보인다면, 별 수 없다. 유리창을 깨고라도 나가야지.


힘이 드는 자리를 넘어가면 반드시 그 앞에 어떤 결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는 그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다르게 살아야 강해질 수 있다. 


돈을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뛰는 경기 하나하나가 별것 아닌 순간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한 순간 한 순간이 쌓여서 인생이 된다. 

그 ‘순간’이라는 것의 가치는 말하자면 끝이 없다. 

인생이란 매 순간을 붙잡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인데


세상에 어떤 의식을 남기고 싶은가?


어떤 경지에 오르려면 숨이 찰 만큼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얼핏 똑같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성공하는 곳은 단언컨대 없다. 

모든 게 자연의 원리 속에 있어야 한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 

결국 인생이란 나이에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몇 살을 먹었든 몸이 어떻든 자기의 베스트를 다하는 것. 

세상살이에 중요한 건 그 뿐이다.


자기를 버리고 조직 속에서 조직에 플러스가 되는 일만 생각하며 가다 보면 결국은 자기에게도 플러스가 되기 마련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선택이 너무 바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원래 긴 인생에는 바보 같은 선택이 플러스가 되기 마련이다. 




3) 교육 철학

들어가며 중

"내가 최강 야구에 처음 와서 선수들에게 한 말은 사명감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요즘은 비유하자면 교과서와 참고서가 없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법이었다. 답을 모르겠으면 책을 보면 되는 식이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 자기가 가진 재능을 찾아 그걸 자기 나름대로 꽃피워야 한다. 

자기가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선수들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면 그저 이 순간이 좋다. 

무언가를 깨닫고, 고쳐가며 나도 열심이고 선수도 열심인 그 순간을 영원히 가져가고 싶다.

나의 낙이다. 공을 몇 개를 던져도 안 힘들다. "

"내가 가르친 선수들 중에는 자기 한계를 뛰어넘은 케이스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처음에는 '와, 이걸 어떻게 하지' 싶어 난감했던 선수들도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아이디어를 찾아나가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다. (중략)

선수들을 키우며 살다보니 인간이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의 잠재능력이라는 게 어마어마하다는 걸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식이 커질수록 잠재 능력도 조금씩 꺠어나 꽃을 피운다. 

그런 어마어마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의 한계를 계속 높여 왔다. 누가 봐도 무리라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며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계는 저 멀리 내 뒤에 있었다. 

생을 마칠 때 자기가 가진 잠재능력의 20-30%밖에 못 쓰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머지 70-80%는 스스로가 설정한 한계 속에서 사라진다. 


의식이 텅 비어버린 선수가 많은 게 요즘이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식이 없으니 아무리 가르쳐도 다음 날이면 다시 리셋이 된다.

누군가가 가르쳐준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의식도 없다. 

그것은 세대차이가 아니다. 배가 안 고픈 것이다. 

'실력이 좀 떨어지면 어떠나, 다른 거 하면 되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르쳐줬을 때만 해도 굉장히 좋아졌었는데, 혼자 복기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리더는 심지어 선수 자신조차 스스로를 포기했다고 끝까지 믿어주고, 희망을 가지는 사람이다. 

모두가 포기할 때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선수마다 가능성을 찾아주고 결과를 냈을 때가 가장 기쁜 것이다. 

선수를 가르치다 보면 성장하는 순간이 눈에 보일 때가 있다. 그때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진다. 

겉으로 표현을 하진 않지만 무지 기쁘다. 어쩌면 '가장 기뻤던 순간'이란 건 무수히 많을지도 모른다. 

리더란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인내하고 기다린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원래 실책을 하면 선수는 거기에 얽매여서

 ‘또 똑같은 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어제처럼 되면 어떡하지’ 하면서 주춤해 제 플레이를 못하게 된다. 

그러면 또 실수가 나고, 플레이를 하기가 두려워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혼내는 게 아니라 고쳐놔야 한다는 것이다. 

혼내봤자 뭘 하는가. 선수들도 그렇게 플레이하면 안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 

잔소리를 해봤자 ‘왜 진작 말해주지 않고선’ 하고 반감만 갖는다. 나는 원래 야단칠 때 말하는 게 짧다.



리더는 끈질기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청나게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선수들을 성장시키려면 아프다고 하든, 힘들다고 하든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정이 생기면 불쌍하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약해지고 훈련이 느슨해질까 봐 선수들과 정이 깊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부모의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리면 자식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오냐오냐 하면 그 순간이야 좋을지 몰라도 멀리 보면 지도자가 선수들의 미래를 죽이는 것과 같다.


조금 모자라고 떨어진다 해서 자식을 버릴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더 엄격하게 대하고 가혹하게 연습시켰던 것 같다.


리더는 어느 정도 신비스러움 속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깝게 지내면 서로 용납하는 게 많아진다.



누군가 조직을 해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리더는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 실력이 모자라다고 해서 사람을 버리면 안 되지만, 조직을 해치고 있다면 조금 냉정해 보일지라도 버리는 것조차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되는 팀은 강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조직은 하나가 된다.



만약 방법을 알려줬는데도 선수들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면 "다시 해 와라"라는 말만 했다. 

다시 해 왔는데도 틀렸다면? 그때도 역시나 다시 해 오라고 하는 것이다. 

큰 문제에 부딪힐 때면 그런 과정을 대여섯 번씩 거치면서 선수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했다. 

반발도 당연히 있지만, 혼자 충분히 고민하고 헤매는 동안 스스로 프로세스를 찾아낸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프로세스를 찾아내면 다음에 어떤 문제나 고비가 닥쳐도 풀어갈 수 있다. 

그렇게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아랫사람을 키우는 올바른 방법이다.



4위 5위 같은 애매한 목표를 말하는 것은 이미 도망을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리더가 있는 팀은 약하다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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