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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시기다. 고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많은 사람이 출세, 부, 명예를 손에 잡히는 행복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무게 중심이 자기 안이 아니라 자기 밖에 있다. 그래서 좇을수록 의심이 들고 점점 공허해지며 더 괴로워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진짜 행복은 허상과 같아서 찾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무게 중심을 자기 밖에서 자기 안으로 옮겨야 하며 자신이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 진짜 행복을 좇으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이다.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월부에 입성해서 1년이 다되어가는 요즘 내가 원하는 부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이 많이 든다.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 위한 목표금액을 설정했고 그 금액은 그저 노후준비라고 보았을때 그럼 그 이상은 어느정도를 바라는가? 그저 남들처럼 해외여행을 가고 좋은 차를 타는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것을 위해 돈을 벌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과연 그런것들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찐행복은 과연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이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행복과 불행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달려 있다. 없으면 없다고 불평불만하고 많으면 많다고 지겨워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결핍은 고통이고 과잉은 무료함이다. 인간에게는 배고픔도 고통이지만 포만감 또한 불쾌다….. 현명한 사람은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지 않고 자신의 안에서 찾는다. 자신의 고뇌를 객관적인 조건 탓으로 돌리지 않고 고뇌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무료함의 근원인 내면의 공허를 극복하기 위해 외적인 자극 대신 내적인 풍부함을 추구한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종이한장의 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긍정적인 사고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 결핍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과잉으로 느껴지는 무료함은… 딱히 적절한 예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감정이 변덕스럽다면 감정을 컨트롤하고 들여다보는 연습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핍에 따른 고통 때문에 욕망의 충족을 추구하지만, 막상 채워지면 당연하게 여기고 다른 새로운 것에 결핍을 느낀다. 이것은 부자나 빈자나,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똑같이 나타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외적인 것에 행복의 가치를 두기 때문에 일어난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 새로운 물건, 새로운 사람 등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자신의 내적인 행복감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변화하는 대상에서 찾는 행복이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은 늘 새로운 것을 향해 있다.
남에게 비춰지는 것보다 내 안이 행복이 중요하려면 자존감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는 내 기준의 행복을 찾고, 그것을 목표로 달려야한다. 그래서 요즘 내가 진짜 행복할때는 언제인지 많은 생각을 해본다. 왜 그것 때문에 행복한가… 라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행복이란 자신의 개성과 소질에 맞도록 노력함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만족감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 가운데 자신에게만 적합하고, 자기만이 할 수 있고, 자기에게만 즐거운 것을 알아야 된다. 자신의 성격에 맞는 일을 찾아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자살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삶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증가한다. 죽음을 통해 삶의 고통을 완전히 없애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다. ……
누구나 한 번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고통을 없애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빨리 죽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을 수 있다.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살은 우리가 선택할 수도 있다. 에피쿠로스의 유명한 말대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과 함께 모든 감각과 의식이 끝나기 때문에 죽음에는 쾌락도 고통도 없다. 죽음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자살은 인생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어쩌면 가장 비겁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막다른 길에 몰려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는 된다. 내가 그런 생각을 절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다만, 언젠가 혹시나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들때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명랑하고 쾌활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즐거워진다. 낙천적인 사람은 열 가지 일 가운데 한 가지 일만 이루더라도 기뻐하지만 우울한 사람은 열 가지 일 가운데 아홉 가지 일을 이루더라도 기뻐하지 않는다. 실패한 한 가지 일에 크게 상심하고 화를 내고 기가 꺾이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람은 불행한 일을 겪어도 쉽게 화를 내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기질과 매우 관련이 있다. 그러나 꾸준한 운동이라는 노력으로 명랑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심장과 혈관, 근육을 튼튼하게 하면 우울한 기질의 사람도 어느 정도 쾌활하게 살 수 있다.
켈리최님의 웰씽킹을 읽으면서 기나긴 패배감과 무기력증을 운동으로 이겨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꾸준한 운동은 사람을 활기차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것 같다. 그 긍적적인 사고가 내가 도전하는 일에 도움이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잠시 쉬고 있는 운동을 다시 해야할때가 왔다. 움직이자!!
독서를 해서 오히려 남의 생각에 끌려다니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사고의 샘이 막혀 버렸을 때만 독서를 해야 된다. 독서보다 독자적 사고가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독자적인 사고 없이 남이 모은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사유 없는 다독을 경계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생각을 영글게 하는 건 다독이 아니라 숙독이며, 독서를 통해 받아들인 타인의 사상을 자신의 사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랜 사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서를 하다보면 책마다 저자의 생각들이 상충되어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럴때 필요한 말 같다.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여기저기 헤메이게 되는것 같다. 스스로 주관이 바로서야 독서로 인한 인사이트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아직 특별한 주관이 서지 않는 분야에서는 다독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서도 타인과 어울리는 것도 즐긴다. 고독과 사교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쇼펜하우어는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강조했다.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독립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에 의존하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약한 존재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고독의 끝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욕망이 있다.
나는 혼자있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나할까? 그런데 월부에 들어와서 활동하면서 내가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고민해보니 월부는 서로의 투자를 응원하고 주는 기쁨을 아는 집단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투자에 대한 스트레스는 있을지몰라도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는 덜하다.
사회란 모두 필연적으로 서로의 순응과 타협을 요구한다. 강요는 모든 사회에서 뗄 수 없이 붙어 다닌다. 모든 사회는 희생을 요구하는데 자신의 생각이 다를수록, 개성이 강할수록 희생이 커진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접촉 범위가 커지면서 불행을 자초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넓어지는 것이다. 가끔 어른들이 친구 많이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맞고 진실된 친구 한명이 허울만 친구인 여러명보다 훨씬 가치있게 다가온다.
현명한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불을 쬐지만, 어리석은 자는 불에 손을 집어넣고 화상을 입고는 고독이라는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불이 타고 있다고 탄식한다….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홀로서기’와 타인과 ‘함께하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말을 아껴야 되고 마음에 못을 박는 일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가끔 상대를 생각해준다는 핑계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의 경험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떠든다. 그러나 한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알게되는것 같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르고, 그래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원하면 조언을 해줄수는 있지만 원하지 않는 조언을 마치 걱정인양 해주는 것도 가끔 선을 넘는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혹시나 누군가한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지 생각해봐야겠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 그럴수록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기대할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드물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과 만나 희생할 필요가 없다. 나의 존재의 이유는 내가 알아야한다. '
나의 자존감은 나 스스로에게서 찾아야하는 것이다. 남을 통해 세워진 자존감은 그 상대가 떠나거나 변했을때 속절없이 무너진다. 함께 있어도 사람은 외로울 수 있다. 혼자있어도 사람은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와 있어도 외롭지 않고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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