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앞서 내집마련 기초반을 듣기 까지의 내 이야기를 두서 없이 적어보려고한다.
집안에서 20년만에 태어난 남자아이로 친인척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나의 어린시절은 걱정이랄게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도 잘되셨고 원하는게 있으면 다 사주셨고 얻을 수 있었다.
술 좋아하시고 사람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회식자리마다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아들이라며 자랑하셨고 그런 아버지에 기대를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어린나임에도 눈칫껏 행동 하였다.
항상 승승장구 할 것만 같던 아버지 사업도 겨울이 찾아 왔고 출구전략을 세우지 못하신 아버지는 억대의 빚이 생겼다.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 하셨고 새벽에 집에 들어와 엄마를 폭행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3살이던 남동생의 귀를 막으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리는 저러지 말자.” “우리는 저러면 안되.” 라며 동생에게 말하곤 했다.
아버지 사업은 여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20대가 되었고 집안도 전보단 안정성을 되찾아갔다. 군대를 전역하고 아버지가 1년 휴학을 권유하셨다. 학비를 지원해주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1년 동안 고깃집, 치킨집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지만 어려서 아버지가 술자리 계산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무척이나 아버지와 닮아있었다. 이 때부터 나의 소비 습관은 통장에 현금이 생기면 친구들을 만나 유흥에 탕진 하였다.
20대 중반 무렵 집안에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내가 그 빚을 갚아야 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깊은 우울증이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월급 180만원을 받고 아버지로 부터 보험, 통신비 식비 등등 금전적 독립을 하였고 고정지출비를 제외하면 100만원 남짓 남았다. 이 돈은 그대로 유흥으로 탕진 하였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면 아버지 빛에대해 하소연하였고 인생 패배자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전공이 적성에 맞았고 목표로하는 회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5년동안 계약직으로 전전하다가 목표로하는 회사에 4번째 만에 합격하여 타지 생활을 하였다.
부모님 댁에서 생활하던 소비 습관으로 타지 생활을 하니 월세와 식비 등 월급으로는 생활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자존심이 뭐라고 술자리에 불러주면 매번 나갔고 신용카드로 충당이 되지 않아 리볼빙까지 사용하였다.
그런 와중에 현재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나는 처음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어 연애를 할 상황이 아니다. 연애는 힘들것 같다라고 말하니 커플통장에 20만원씩 넣고 같이 데이트 할 때 사용하자고 먼저 선뜻 제안해 주었다. 나에겐 과분한 사람이었고 여자친구에게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이때 쯤 월부 유툽을 접하게 되었고 여러 경제유투부를 보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 하였고 나의 불안은 아버지의 빚이 아닌 나의 소비 습관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아버지를 원망하던 미움이 사라졌고 감정기복이 심했던 나 또한 정서적안정을 찾아갔다.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 하기위해 주3회 퇴근후 투잡을 뛰었고 100만원 정도 추가 소득이 생겼다.
5개월 동안 열심히 돈을 아껴 리볼빙 및 중고차 할부도 청산하고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다.
투잡을 1년동안 하면서 현 직장보다 안정성은 떨어지나 수익성이 3배 이상 높다는 것을 인지한 후 큰마음 먹고 퇴사하였다.
퇴직금 800만원 전세보증금 900만원 현금 300만원이 전재산이었고 현재 착실히 돈을 모아 5천만원 남짓 모았다.
서울에 내집마련을 목표로 한 이유는 자산상승률이다. 본가의 아파트와 지인이 구매한 아파트의 구매시기가 비슷한데 가격차이는 3배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은 자산을 키우기 위해 서울에 구매해야겠다 생각 하였다.
내집 마련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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