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은, 좋은 부동산을 찾는 방법, 에 대한 글이 아니다.
그런 (현실적인) 가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어느 정도 공신력을 담보하는 평가 시스템이더라도?
그간 제대로 된 부동산 하나를 마련해 보겠다는 이유로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최선을 다해 매달렸더랬다.
솔직히 제대로 된 절차대로, 당부대로, 월부에서 배운대로 진행한 건 아닌 듯 싶지만,
그 과정조차도 나로선 최선이었다고 변명하고 싶고
어제 잔금을 치룬 것으로 일단 큰 산은 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지금은 잘 했다고 믿고 싶은 마음 뿐. 그리고 부디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
이리저리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아직은 내가 폭풍 속에 있는 느낌이라 아무래도 정리에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그 중 하나.
부동산 중개업자에 대한 소회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어 글을 적어본다.
파워 I 성향인 나이지만
그래도 사회 생활을 통해 단련된 내공이 있어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는 걸 어려워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단독으로 부동산을 “매수”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혼자 독립해서 살았던 기간도 있으니 부동산 거래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그럭저럭 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이번에 아주 귀한 경험을 했다.
바로 1. 집을 잘 찾아주고 알아봐 주는 것과 계약을 진행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
2. 부동산에 전달한 요구사항은 상대방에게 100%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
3.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
먼저 이번에 만난 부동산 사장님은, 아주 적극적으로 집을 찾아주셨다.
인상도 선하게 좋으시고 먼저 팔짱을 낄 정도로 친근하게 대해 주시고 꼼꼼하게 같이 집을 봐 주시고
본인이 보기에도 아니다 싶으면,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일러주시고
다만 한 가지, 예산보다 너무 큰 물건을 소개해 주셔서 난감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것도 좋은 물건들을 구해다 주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계약 전까지 내가 부동산을 잘못 만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상세하게 얘기하자면 정말 끝이 없기에
그 중에서도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어이없다, 싶었던 부분으로만 추려보겠다.
근저당 말소 확인과 관련해서 수차례 문자를 보내고 당부를 했는데 그걸 한낱 소음으로 취급하더라.
참다못해 은행 대출 상환을 위조하여 등기 말소를 한 주택을 등기부등본만 믿고 매수한 매수인에게 법원이 책임을 물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부동산에게 보내주고 읽어 달라고 했었음에도, 끝까지 그 기사를 안 보고서는 (꼬치꼬치 물으니까 결국 볼 필요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자기가 다 책임진다, 라고만 무한 반복. (부동산 공제증서 보험 가입금액 2억보다 대출 금액이 더 큰 상황인데? 기본적으로 등기부등본이 공신력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해 주지 않았다.)
이 타이밍에서는 정말 나한테 수수료 받을 생각이 있냐, 는 말이 목구멍 바로 밑까지 올라왔었다.
내 입장을 대변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누구 편을 들면서 나를 설득하려 하냐, 정도로 얘기하니까 한발 물러서긴 했다만. (이후 계속 나 때문에 못살겠다고, 힘들다고 하소연…)
소유권이전 등기 접수 후 집에 돌아와 하루를 되짚어보니, 잔금 전 등기부등본 확인도 안했더라.
물론 잔금 전 근저당 말소도 확인했기에 등기 변동 사항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지만
이건 관례적으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 날 이 점을 꼬집었더니 말소 등기 확인했기에 안 해도 된다, 원래 우리는 잔금일에 안 한다, 라고…)
여기까지만 써도 정말 버라이어티 한 계약이었다고 생각 중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계약이 힘들었던 적은 정말, 정말 처음이었다.
부동산을 끼고 한 계약이었음에도 도저히 부동산만 믿고 손 놓은 채 있을 수가 없어서
없는 시간을 쪼개어 다른 사례들을 찾아보고 알아보고
하나 하나 내가 다 되짚어야만 했었다. 은행, 법무사, 타 부동산 등등
일반인이 굳이 부동산 중개거래를 하는 것은
물론 쌍방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거래 과정에서 얽혀져 있는 다양한 전문적인 지식을 보완하고 위험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 아닌가?
집 잘 알아봐주고 한 동네에서 오랜 시간 중개거래 경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미처 내가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도 꼼꼼히 따져 계약을 체결해 줄 거라고 믿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럼 앞으로는 뭘 보고 중개사를 골라야 하는 걸까?
상황을 보아하니 양측의 중개사들이,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고분군투 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심지어 내 요구사항을 매도인에게 전혀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하게 됐다. (이게 맞나?)
아마 중개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계약만 잘 마무리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계약이 마무리되면 당사자들은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니까.
덕분에 매도인도 나도, 서로 서로에게 열 받고 억울해 하면서 잔금이 마무리되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씁쓸한 기분만 들어서 서둘러 마무리를 해야겠다.
원래 계약을 하게 되면 다양한 케이스들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접하게 되는 거라
그냥 이런 경우도 있었다, 라고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런 중개사는 이런 방식으로 검증해서 거를 수 있어요, 라는 조언을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앞으로 AI 시대가 오면 부동산 중개업이 사라지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만
그 전까지 월부 가족들 역시 다양한 부동산 중개사들과 만나게 될텐데
월부 내에서라도 지역 별 추천 중개업소 같은 목록이 공유되면 좋겠다, 는 생각도 한다.
좋은 집을 고르는 것도 어려운데
좋은 대리자를 고르는 것도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전 재산이 달린 계약을 하는 일을 “운”에 기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전문가로 포장하고 자신들이 다 책임진다느니, 자기만 믿고 하라니, 이런 식의 감언이설로만 구슬리는 걸 보니
매번 나의 운을 시험 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계속, 같은 생각만 반복하게 된다.
내 요구가 부당했던 걸까?
다음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
좋은 부동산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미친듯이 돌진해서 돈, 시간, 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씁쓸한 기억으로 마무리 된 계약이었다.
그래도… 이제 다 끝났으니까…
이젠 나도 마음을 털고 지워야겠지. 이만 끝내자!
댓글
에볼루션님, 어려웠던 계약을 이렇게 자세히 또 일목요연하게 복기해주셨군요! 중개사 분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검증이 가능하단 인사이트를 또 다른 분들을 통해 얻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목표를 향해 달리시고, 계약까지 마무리하신 것,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와... 아직 한번도 매수를 해본적이 없지만, 정말 챙겨야할게 많은데 이렇게 비협조적인 부사님이라면 정말 앞이 캄캄하네요 ㅠㅠ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