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후기

[앵자] 독서후기 / 행복의기원 / 서은국

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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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개요

제목 : 행복의 기원

저자 : 서은국

출판사 : 21세기북스

읽은 날짜 : 2025.08.12

점수 : 10점만점에 8점🎵

 

#행복사실별거아니다 #그냥즐겨도돼

 친구야 들어봐, 행복은 말이야 사실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한 본능적인 도구일 뿐이야~ 쾌감과 고통은 니가 생존할 수 있도록 행복을 느끼게 했다 말았다 하며 뇌가 너를 조종하는 거야. 니가 행복하려고 돈을 벌고 외모를 가꾸 잖아? 그것도 사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함이란다. 너는 지금껏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로부터 시작된 왜곡된 행복론에 의해 고통받고 있었어. 진화론 적으로 생각하면 참 쉬운 것 이란다! 행복 그거 별거 아니야,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상을 나누며(=소소한 행위들로) 행복을 느껴봐!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덜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를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글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생존과 번식에 너무 힘을 줘서 그것만 기억 남는 느낌~ 제일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로 인해 행복이 왜곡되었다고 시작하며 논점을 펼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2. 책에서 본 것

 

[p.20 1장 행복은 생각인가 p.36 2장 인간은 100% 동물이다]

#생각은이성이고 #행복은본능이다

 

 많은 책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생각을 바꾸라고 말한다. 하지만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 지침서를 읽고 행복해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 행복은 대부분이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며 생각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며(본능적 욕구보다 이성적으로 통제된 행위를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우선시 함) 스스로 행복해지고자 하는 본능을 방해한다.

 

 2장은 인간은 생각하는 이성적 동물이기 전에 본능을 우선하는 동물이라는 것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p.50 3장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행복은목적이아닌도구 #진화론적행복론

 

 행복이 달성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처럼 보이겠지만(행복해지기 위해 돈도 벌고, 식사를 하는 등 생활을 영위)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인해 그렇게 인식된 것뿐이고 사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은 행복한 경험을 통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된다. 그것을 계속 경험하고 싶기에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근데 이것은 인간을 생존하게 하여 결국 번식하게 만들기 위한 본능(뇌의 조종)이다.

 

 

[p.68 4장 동전 탐지기로 찾는 행복 p.86 5장 결국은 사람이다]

#행복신비주의타파 #또생존 #또번식

 

 아리스토텔레스로 인해 지금까지 행복은 그저 로맨틱하고 관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최상의 선, 존재의 최종적인 이유와 목적이 행복이라고 말하기엔 상당히 인간 중심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다. 생명체로 넓혀보면 결국 생존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행복하려고 사는 생명체는 없다.

 생명체들의 뇌에는 쾌감센터가 있으며 행복은 쾌이고 우린 쾌감센터에 불을 켤 행복전구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뇌의 행복전구는 언제, 그리고 무엇에 접근할 때 켜질까?(인간은 언제 행복을 느낄까?)

 

 인간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독보적인 사회적 동물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진화 여정에서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연인과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받았다. 고통과, 쾌감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진화 여정에서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죽음을 뜻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조상이 된 사람들은 연인과 친구들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았던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사회적 인간의 유전자를 받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생존 비법’을 전수받았다.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쾌감을 예민하게 느꼈던 자들의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절실히 찾는 것이고, 가장 강렬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람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람과 무관해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p.106 6장.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많이갖게되면행복할까 #아이스크림은먹을때행복하지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건 확실하다. 많이 갖는 것(물질적인 것들, 돈, 외모 등)이 행복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들로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 가령 복권당첨과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이나 외모, 건강 같은 인생의 조건들은 사막에서의 물과 비슷하다.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줄이는 데는 효력이 있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유의미하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원하던 직장에 취업하게 되면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막상 출근하여 스트레스 받는 일상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행복의 지속성을 간과하고 있으며 원하는 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너무도 불행해질 것 같지만 잔치의 짧은 여흥보다 잔치 뒤의 시간이 더 길다.

 그럼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왜 그토록 빨리 소멸될까? 생존하기 위해서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다시 의욕이 생기기 위해선 초기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적응이며 결국 그 무엇을 얻어도 행복은 쳇바퀴를 도는 듯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렇기에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p.132 7장 ‘사람쟁이’ 성격]

#사회적동물 #혼자말고여럿이행복하다

 

 사람쟁이 성격과 행복의 고리는 매우 단단하다. 외향적일수록 행복하다는 결론은 심지어 동물(오랑우탄)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사람이 행복에 그토록 중요할까?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되었다. 가장 빈곤한 인생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그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베인 상처도 잘 아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p.158 8장 한국인의 행복]

#내행복위의타인의시선 #타인의행복이내행복이아니다

 

 여태껏 사람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단주의 문화는 사람에 묻혀 사는 문화다. 그런데 왜 한국이나 일본 같은 초집단주의적 문화의 행복감은 오히려 예상치보다 낮을까? 그 이유는 좋은 사람과 대화하고 놀고 손잡는 것만큼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것도 없지만, 역으로 사람만큼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주는 자극도 없기 때문이다. 나를 배척시키고,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 또한 사람이며, 사람은 가장 절대적인 행복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p.186 9장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행복에대한환상걷어내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엘리트주의적이다. 그것은 그가 귀족가문에서 최고만을 누리며 살았고 주변 인물들도 역사에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여성이나 노예들은 행복을 누릴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그들과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칭송받을 만한’ 삶의 구성 요인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이 추구한 행복은 정확히 ‘가치있는 삶’이지 행복한 삶이 아니다. 이 부분을 오컴의 날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행복은 가치(value)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행복을 정육점에서 판다면, 현재 시중의 고기들은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 있다. 오컴의 칼날이 필요하다. 그 칼날로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이다. 개미는 일을 하고 베짱이는 내일이 없는 삶처럼 노래부르며 즐겁게 산다. 이 베짱이는 불행한가? 불행하다면 그것은 누구의 시선인가? 한국인은 쾌락적 부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선 다소 쾌락주의자가 될 필요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내일이 없이 즐겁게 사는 여름 베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세뇌받고 살았다. 두 가지 염려 때문에. 첫째, 쾌락주의자들의 즐거움은 저급하다. 둘째, 그런 삶의 말로는 한심할 것이다. 둘 다 근거 없는 염려다. 세상 모든 베짱이들이 루저가 된다는 증거는 없다. 수많은 최근 연구들에서 나오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다.

 행복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추적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3. 책을 보고 깨달은 점

 

 - 이미 별 거 아닌 것들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나라서 사실 잘 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고 반대로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에 목말라 있으면 이런 책이 나오는 걸까? 생각하게 됐다. 책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행복이 무엇일까라고 했을 때 가장 공감됐던 건 네잎클로버 사이에 있는 세잎클로버라고 했던 말이었는데 책을 읽고 보니 찰떡 같은 표현이었다.

 

 - 근데 책을 읽다보니 책에서 말하는 행복이 마치 도파민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요즘 연애하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는 기사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건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나를 조종해야 하는 뇌가 사회의 각종 도파민들로 정상 작동을 못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음. 이 부분은 질문페이지에서도 나왔는데 피임방법의 개발로 인한 것이고 똑똑해진 호모사피엔스가 똑똑했기 때문에 자연의 본능을 거스르고 멸종하길 선택한 것이리라 얘기주셨는데 맞는 말 같다.

 

 - 마음의 고통도 뇌의 고통이라 타이레놀을 복용하니 사회적 고통이 덜해졌다는 실험은 신기했다. 진짜 인간은 뇌가 진짜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장기들이구나~

 

 -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우리 모든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시는 분들은 돈이 있어야 한 건 맞지만 본인도 가족들도 ‘돈만으로 행복할 수 없으니’ 가족과의 시간도 꼭 챙겨가면서 행복한 가장이 되시길!

 

 - 911테러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예시로 든 건 많이 아쉬웠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911테러로 생존한 사람들과 희생당한 사람들의 평소 성격이 어땠길래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분석하나 봄. 그들의 생사를 가른 것이 평소 성격이 낙관적이어서(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해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반대로 소심하고 찌질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그런 성격 덕분에 생존 확률이 높았던 것이라고 말하는데 왓더….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이 예시가 필요했나? 행복에 대한 냉철한 이해에 필요하다면 나는 굳이 행복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싶지 않다. 진짜 책 덮을 뻔^^ 대단한 지성인 납셨다.

 

 

4. 내 삶에 적용할 점

 

✅ 1 : 나는 이미 행복충전은 만렙이니 돈 버는 것에 좀 더 힘쓸 필요가 있다.

 

 

5. 기억하고 싶은 문장

 

p.121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승리의 환희도 패배의 아픔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뎌지지만, 우리의 머리는 이 강력한 적응의 힘을 감안하지 않고 미래를 그린다(서은국, 최인철, 김미정, 2006). 그래서 항상 ‘오버’를 한다. 이것을 가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저것을 놓치면 너무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p.175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꿈, 가치와 이상을 있는 그대로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는 것. 이것이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이다. 그래야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다.

 

p.194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 내면 행복은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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