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6.] 3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돌아와 이룬 10억 달성기 – 하늘아리
안녕하세요. 하늘아리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서 어떻게 이자리에 올 수 있었는지 함께 나누고,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 마음에 목표한 곳까지 한발짝 내딛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든 태풍은 지나가기 마련이죠.
태풍에 막혀 가려는 그 길 위에서 주저앉지 마시고 앞으로 묵묵히 걸어나가 우리 함께 10억..
그 이상의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를 바라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할 첫번째이자 마지막 일은 위기를 버티고 위기로 인해 망가지지 않는 것이다. 인생에 쉽고 편안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망상이다. 예기치 못한 위기를 침착하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내면의 강점과 지혜를 찾아야한다. 비극은 그것이 변명거리가 될 때만 진정한 비극이 된다.
-부자의 언어-
| 행복했던 회사 생활 중 맞이한 실직의 위기
저는 제가 다니던 회사를 참 사랑하고 만족하며 다녔습니다.
전공했던 과와 무관했지만 돌아다니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성향과 잘 맞았던 회사 분위기
닮고 싶고 존경했던 리더, 업무를 하는데 의지가 되는 동료들까지..
제 삶의 시간표는 회사의 그것과 똑같이 흘러갔고 사업계획, 인사이동, 출장시즌 등에 맞춰
개인적인 일정을 고려하는 것이 항상 우선이었죠.
그렇게 언제까지고 함께 회사의 장밋빛 미래를 맞이하자며
회사의 성장을 조직원들의 기여로 돌리며 감사해 마지않던 회사는
위기를 맞이하자 그 차갑고도 감정없는 민낯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네. 제가 일하던 회사는 바로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업종이었어요.
처음에 저를 포함해서 많은 동료들은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휴직과 마치 월세처럼 일하지 않아도 통장에 들어오는 지원금에 기뻐했어요
오랜 회사생활에 내려진 단비 같은 시간이라 생각하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 배움을 이어나가기도 했죠.
하지만 회사는 결국 창사이래 처음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진행했고
지금은 자진퇴사를 포함하여 호황기를 누리던 때보다 50%도 되지 않는 인력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면서도 참 씁쓸했던 나날들이었어요.
당시 저는 19년도부터 월부에서 수업을 들으며
자본주의를 알고 투자를 통해 자본소득을 늘려가며
노후준비, 목표한 금액까지 차근차근 나아가야 함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투자를 시작하지 얼마되지 않은 제게
그동안 소득의 원천이었던 근로소득이 크게 흔들리자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게 되고
투자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했어요.
책상에 앉아 임보를 펼쳐놓고
스마트스토어 오픈
배달업체 파트타임
온라인 마케팅
프리랜서 마켓 등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서칭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흔들리는 시간은 잠깐이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막연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을 때
저는 월부에 있는 동료들 튜터님, 멘토님들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제가 월부를 하면서 참 감사한 순간들이 많은데..
이때 당시 학교 담당 튜터셨던 방랑미쉘 멘토님이 임보 발표 모임 전에 잠시 보자고 하시더라구요.
카페에서 뵙기로 한 시간.
정말 바쁘신 분이 시간을 쪼개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를 뛰어오시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저 현재 어떤 고민들이 있는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참 힘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는데..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월부 안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성공한 분들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것.
그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투자를 응원해주던 남편도 지금 당장은 불안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투자에서 좀 더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방향이 옳다고 응원해주었어요.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강의를 수강하며 꾸준히 앞마당을 만들어 갔습니다.
19년 내집마련 2기로 시작해
19년 열반스쿨 기초, 열반스쿨 실전반, 실전준비반,
20년 월부학교 겨울학기 봄학기 여름학기..
(두번째 위기가 오기 전까지는요 ㅎㅎ)
그렇다면 같은 시기를 보냈던 당시 회사 동료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누군가는 위기를 빠르게 직시하고 이직에 성공하거나, 수험생이 되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퇴직금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셨다는 분도 계시구요
자산의 증폭기에 부동산 주식을 통해 돈을 불리신 분들도 적잖이 있으신 것 같아요.
반면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고 계신 분들도 있구요.
제가 만약 월부 환경에 있지 않았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상상이 가진 않지만
위기를 직면한 시기에 월부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고
이곳에선 제가 부를 스스로 이뤄나가는 사람으로 커갈 수 있는
올바른 방향과 방법만이 있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대소사에서 고민이 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항상 멘토 튜터님들을 찾는 것이 루틴 아닌 루틴이 되었습니다.
때론 깊게 고민하지 못한 문제들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도있게 고민해주시고 방향을 제시해주신 덕분에 하나의 옳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뒤쳐질까 두려웠던 둘째 출산으로 인한 위기
참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다둥이 가정을 꿈꾸는 제게
한해 두해.. 지나면서 둘째 출산을 막연히 지연시킬 순 없었어요.
그렇게 20년 월부학교 여름학기 도중 소중하게 얻은 둘째와 함께
잠시 천천히 갈 수밖에 없던 저는
아직 실력도 부족하고, 투자 성과도 없는 상황이었죠.
제가 할 수 있는 강의수강, 독서 등을 지속해나갔지만
뒤쳐진다는 생각을 쉽게 놓을 순 없었어요
함께 했던 동료들이 자산을 불려가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저는 여전히 20년 여름 월부학교 때에 머물러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 늦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레이스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했습니다.
힘이 되었던 것 열반스쿨 기초 재수강이었어요.
너바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새롭게 들리고,
함께 하는 조원들에게도 제가 해 줄수 있는 이야기들이 꽤 많았습니다.
과거 부동산 초보자 수준에만 머물러있는 줄만 알았던 제가
어느정도 성장해있음을 알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처음 열반스쿨을 수강하며 만들었던 비전보드도 가족과 함께 다시 만들며
모두 다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계획들로 채워나갔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몇 년도에 몇억 달성, 현금흐름 발생 등을 확인하니
지금의 제 상황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19년도에 월부를 시작해
너바나님 너나위님을 눈앞에서 뵙고 오랜시간 김치찌개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구요
수도권에 투자한 물건들이 좋은 벽돌 자산이 되어 줄 수 있음을 알았고
임신 전까지 만들어놓았던 여러 지방 앞마당에서 충분히 투자처를 고를 수 있었기 때문이죠.
멈춰있는 줄 알았던 저의 투자 시간은 여전히 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목표하는 곳까지요.
그렇게 저는 출산 후에 무사히 학교에 돌아와 2학기째 수강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동료들과 한달에 하나씩 지역을 발로 밟아나가고 있구요.
뒤돌아보니.. 긴 것 같았던 임신과 출산 후의 시간들은 금새 지나갔고, 멈추지 않은 덕분에 그 원동력으로 투자자의 삶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그동안 이뤄온 것들을 잘 복기하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되 남과의 비교가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 그리고 내가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
여전히 둘을 키우면서 육아와 투자 사이에서 허덕이지만
지금도 제 마음속에서 잊지 않고 되뇌이는 것중에 하나입니다.
기존의 페이스대로 투자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씁니다.
그때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어나가기만 하더라도
다음 스텝을 훨씬 수월하게 하실 수 있어요.
그렇게 나와의 레이스에서 절대 지지 마시길 바랄게요.
| 누구나 겪지만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하는 가족의 반대로 인한 위기
가족과의 위기는 앞선 그 어떤 위기들보다도
제게 더 강력하고 투자 전반에 걸쳐 오래갔으며..
풀기 어려운 숙제였어요.
가족을 위해 시작했지만 가족으로 인해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곤 했죠.
첫째가 두살이었을 적부터 시작한 투자생활
육아도 회사생활도 힘든 남편
몸이 불편하신 친정 엄마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밖으로 다니고 있는 저를
막연히 응원해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가족과의 문제는.. 꼭 언젠가는 풀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요
저를 포함해서 가족과의 문제로 힘들어하셨고
그걸 극복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해나갔던 것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 같아요.
가족의 마음을 얻는데 모두에게 알맞은 100점짜리 정답은 없지만
내가 투자에서 성과를 얻고 실력을 갖출 수 있는 정답지는 눈앞에 놓여져있죠.
중간에 포기한 채로는 나도 가족도 평범한 노후 생활을 절대 얻을 수 없어요.
호화로은 노후생활이 아닌, 평범한 노후생활이요.
배우자가 계속되는 싸움에..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다짐한 그날
추운 겨울 임장지에서 돌아와서 몸을 녹인다며 화장실에 들어가 잠들어버린 그 모습을 보고
본인도 대체 이 투자가 무엇인지 수업을 들어봐야겠다 생각했다고 해요.
저에게 그동안..
이때까지 홀로 고군분투하느라고 고생많았다고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며.. 편지를 써주었던 그날은..
배우자가 지방투자반을 수강하며 하루 6만보를 걷고 온 다음이었어요.
한발 한발 힘겹게 내딛고 있는 그 시간들이 채워지며
투자에 대한 실력이 쌓이고 성과를 어으며
가족과 주변도 함께 돌볼 수 있는 마음과 시간도 가지고
가족들 또한 우리를 봐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올거라 믿어요.
| 10억 달성보다 더 값진 자산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 입학하고 큰딸이 너무 자랑스러우셨던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도.. 큰 마음을 먹고 뉴코아백화점 1층 매장에서 학교 다니면서 신고 다니라며 예쁜 구두를 2켤레 사주셨습니다.
할인 판매대에 있는 구두도 아닌 매장 진열대에 신제품으로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봄 구두를 갖게 된 저는, 기쁨에 젖어 새로산 구두를 신고 왕복 3시간이 넘는 통학길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형화된 교복과 운동화에서 벗어난 많은 친구들은 그동안 눌려왔던 욕구를 폭발하듯 원없이 꾸미고 다녔고..
그 중 집이 부유한 친구들은 가방과 옷 브랜드는 제가 입은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고가의 명품을 학교 가방으로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강의실에 앉아.. 제가 신고 있는 그 구두가 잠시 초라해보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초라했던 건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할 줄 몰랐던 제 마음이었습니다.
항상 남과 비교하며 살아왔던 인생.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뒤쳐지거나 튀는 인생을 싫어했던 나.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저는 제가 가진 것들이 얼만큼인지 참 몰랐던 것 같습니다.
투자를 시작하고 나서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배운게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제 삶을 비로소 돌아보고
참 운이 좋은,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건데요.
그동안 제게 닥쳤던 여러 시련들을 곱씹으며
‘그때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며 과거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가진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남과의 비교가 아닌..
제가 가진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감사해합니다.
눈앞에 닥친 문제들은 제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당장은 뒤쳐지는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제 삶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그 시간은 아주 잠시일 뿐입니다.
‘회사가 잘 운영되었더라면’
‘코로나가 발생되지 않았더라면’
‘둘째를 투자 이전에 낳았더라면’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여러 위기들 속에서 이런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면
지금의 자산과 마음의 평안은 얻을 수 없었을 거예요.
저 뿐만 아니라 제 아이들에게도
앞으로 좋은 생각과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물려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육아를 하는 엄마로써 참 든든합니다.
그동안 실력이 뛰어나지도, 부동산을 보는 냉철한 판단력도, 미친듯한 열정도 부족했지만..
운이 함 좋은 제가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시는 너바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며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침내 해방의 날이 찾아와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꿈처럼 여겨진 것과 같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모든 시련들이 언젠가는 하나의 악몽으로 생각도리 날이 올 것이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BM: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끝나는 레이스가 아님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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