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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독서후기 #4/5_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독서TF_지니플래닛]

26.01.22

 

STEP1. 책소개

 

사랑하라, 한번도 상치 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난 류시화 신드롬이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소설은 좋아했지만

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까지 시집을 읽었을 정도니까

 

그 때 그 시집이 류시화작가가 직접 쓴 시는 아니었지만

교과서 속 

‘공부’처럼 배우던 시

‘느껴야 할 점’과 ‘생각해야 할 내용’이 이미 정해져있었던 시와 다르게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아무렇게나(?) 읽어지는

쉽게 와닿는 시가 생경한 동시에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그 뒤로 시가 막 좋아졌다.

그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류시화’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시는.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일찍일어나는 새가 벌레는 잡는다

그런데

그럼

벌레는 늦게 일어나야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새롭게 기존의 것들을 뒤집어보는 문장들이

나는 특히 마음이 갔다. 

지금도 그렇고. 

 

여튼.

이번 책도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읽은 류시화님의 책!! 

 

시집은 아니지만

조용히 내 마음을 들어다보게 한다.

나에게는 참 서툰 일이라서 자주 이런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함.


STEP2+3. 책에서 본 것 + 느낀 것

 

  •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판단력을 갖게 된 사람은 남을 의심하거나 절망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을 섣부른 충고나 설익은 지혜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면 괜한 남탓 상황탓으로 삶을 낭비하지않는다는 관점이 새로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 또한 그러한 일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말을 아끼고 신중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아이에게있어서가 그런듯.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본 세상과 다르다. 나의 편협한 경험으로 아이의 날개가 펼쳐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생각하자. 

 

  •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우리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돌아보면 내가 상처라고 여긴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 삶의 그물망 안에서 그 고통의 구간은 축복의 구간과 이어져 있었다. ‘축복blessing’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blesser’와 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 상처라고 여긴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이라는 말이 많이 와닿았다. 마음의 상처는 내가 가진 여러 마음 중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파고들어서 나에게 그런 못남과 부족함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몸의 상처에서 오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는데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몸을 함부로 막 쓴다. 일부러가 아니라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까 어떻게 내 몸을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는거라고..어떤 다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문장을 읽고 그 부분이 생각났다. 마음의 상처 덕분에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게 되고, 그게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는 여정이라는 의미라고 이해가 되었다. 

 

  • 남자의 얘기를 듣고 제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 우리는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길 끝의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모든 작가들이 진정한 작가가 되기 전에 미완의 작품을 수없이 완성해야 하고, 모든 새가 우아하게 활공할 수 있기 전에 어설픈 날개를 파닥여야 하듯이.

=> 과정이 없으면 길 끝의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건 욕심이고 다른사람이 해놓은 것을 결과만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더 깊은 진흙탕 속으로 나를 밀어넣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힘들 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너바나님의 말씀 ‘대가를 치르세요’ 와 같은 말인데….. 참 다르게 표현해내신 류시화님. ㅎㅎㅎㅎ

 

  •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생각의 과잉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는 데는 선수이다. 행복을 수놓기 위한 마음의 실과 바늘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으로 고통의 천을 짜는 기술만 뛰어나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일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 행복이 ‘불행 제로’인 상태라고 오해한다.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의 기술은 불행을 포용하는 데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늘 행복 찾기에 실패한다.  ‘이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까?’  ‘이 물건을 소유하면, 이 차를 타면 행복할까?’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행복할까?’  ‘이 명상 수행이나 요가에 능통하면 행복할까?’  열심히 사다리를 오르지만 그 사다리가 잘못된 벽에 기대어져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딱한 생각마저 든다.
  •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 사랑해 줄 누군가를 갈구한다. ‘넌 불완전해.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넌 아름다워.’라고 말해 줄 사람을. 하지만 만약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 안에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이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불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것.

=>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누군가!!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렇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첫번째 사람은 ‘부모’일 것이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이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지만 ‘아이가 그렇게 느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아이가 그렇게 느꼈을까? 아닌 것 같다. 나는 한없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엄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해놓은 틀에 아이가 맞춰지길 바라며 몰아치는 엄마도 아니었지만.. 지금(지금은 많이 발전함)보다 더 어리고 철없는 엄마였을 때 나도 아이에게 크고 작은 ‘의심’의 순간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뭘 잘해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건가? 하는 의심으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참 후회된다. 

 

  • 나’에게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역동성에 눈뜨게 된다. 그때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열심히 놀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다른 놀이로 옮겨 간다.  ‘나’의 품사는 흐르는 강처럼 순간순간 변화하는 동사이다. 나는 ‘나의 지난 이야기My Story’가 아니라 이 순간의 ‘있음I Am’이다. 만약 내가 ‘시인’이라는 호칭을 존재의 고정된 틀로 지니고 다닌다면 그것은 죽은 명사가 된다. 죽음만이 유일하게 동사가 될 수 없는 고정 명사이다.

=> 이 문장들 앞에는 자신에게 부여된 고정된 명사인 직업이나 직책, 즉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과 이미지를 나의 존재로 착각할 때 공허가 싹튼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무엇도 아니라는 것에 집중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러한 역할이 나에게 부여하는 장점도 있긴하지만 (책임감이나 성장에 대한 열망 등) 그것에 매몰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 나의 품사가 ‘동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언젠가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할 때 ‘교사, 의사, 유튜버.. ’처럼 명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아픈 사람을 돕는 사람, 영상으로 메세지를 주는 사람’ 등 동사로 표현할 때 더 시야가 넓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문장을 통해 그러한 사고의 전환이 비단 아이들의 꿈에 한정된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모습도 동사여야 한다. 

 

  •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적으로 여기지 말고 협력자로 만드는 것이 명상의 기술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잠시 화가 났을 뿐이지 화가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잠시 두려울 뿐이지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며, 잠시 슬플 뿐이지 슬픈 사람이 아니다. 본래의 나는 맑고 고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어떤 감정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가 날개의 크기에 상관없이 멀리 창공을 나는 것처럼. 다정하게 맞이하지 않으면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은 어둠 속에 갇혀 괴물이 된다. 여인숙의 깨비와 망자와 토리가 불을 끄면 공포의 괴물로 변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 나에게 찾아오는 여러 감정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면

한발 물러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내용.안녕 슬품아, 안녕 두려움아,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그 감정과 나를 떼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김춘수의 시에서 나오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와는 다른 효과 ㅎㅎㅎㅎ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찾아오면 꼭 해봐야겠다. 

 

  •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인생을 판단해선 안 된다. 한 계절의 고통으로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줄 기쁨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만 겪어 보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 만년에 자신을 찾아온 작가 지망생 아놀드 새뮤얼슨에게 헤밍웨이는 말하고 있다.  “일단 쓰라. 일단 써 보라. 그렇게 낙심하지 말고. 자네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쉽게 낙심하는 사람이야. 그것이 천재의 징후일 수도 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네 인생의 주제가 뭐야? 지금도 헤밍웨이가 내 옆에 다가와 묻는다. 너의 진실한 한 문장은 뭐야? 너의 진실한 한 마음은? 진실한 한 걸음, 진실한 한 곡조는?

=> 네 인생의 주제가 뭐야?라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주제는 뭘까? 진실한 한 문장은? 진실한 한 마음은?

내 인생의 주제는 ‘부자’일까? 아니 그런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떠오르는 단어는 ‘자유?' 

뭔가 더 구체적인 게 필요한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음.. 

 

  •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탄광 속에서 하루 열여섯 시간을 일해도 창작을 한다. 작은 방 한 칸에 애가 셋이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해도 창작을 한다. 도시 전체가 지진과 폭격과 홍수와 화재로 흔들려도, 고양이가 등을 타고 기어올라도 창작할 사람은 창작을 해낸다. 공기나 빛, 시간과 공간은 창작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러니 변명은 그만두라. 새로운 변명거리를 찾아낼 만큼 자신의 인생이 특별히 더 길지 않다면.”
  •  이상적인 작업 환경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것도 탄생시키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나는 수십 명이 오르내리는 동네 빵집의 이층 테이블, 내가 사는 세상의 작은 모퉁이에서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와서 아는 체를 했지만,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하고 ‘류시화는 지금 인도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STEP4. 적용할 점

  • 누군가의 선택 앞에서 정답을 알려주려는 욕구를 한번 더 생각하기

    => 조언이 하고 싶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이건 정말 상대방에게 유용한 조언인가, 아니면 내가 겪은 불안에 기인한 말인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을 키우는 환경 만들기

     

  • 지금의 나를 ‘명사’가 아닌 ‘동사’로 정의하기

    =>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 어떤 태도로 살았는가?

    불완전함을 포함한 ‘흐르는 나’로, 감정에 이름 붙이면서 메타인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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