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는 오래된 공식이 있었습니다.
강남이 흔들리면 외곽도 같이 주저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공식이 완전히 깨지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강남구 아파트값은
일주일 새 0.17% 하락, 3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강남·서초·송파·강동·성동·동작구 등 7개 지역이 동반 하락세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노원구는 0.23% 올랐습니다. 구로구는 0.20% 올랐습니다.
강남이 빠지는 날, 외곽은 신고가를 찍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강남에 급매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정부의 다주택자 압박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가 예고되자,
수십억 원의 시세 차익을 가진 고령의 고가주택 보유자들이 달라진 계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금 부담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팔고 규모를 줄이자.
급매물이 쏟아지니 호가가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건 손해가 아닙니다.
수억 원을 덜 받아도 차익은 충분히 남습니다.
이른바 '주거 다운사이징'입니다.
과거 규제가 강화될 때마다 버티기에 들어갔던 강남 주택 보유자들이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사이클의 첫 번째 특이점입니다.
강남 급매 소식이 퍼지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들이 움직였습니다.
무주택 3040세대입니다.
이들은 강남을 볼 수 없습니다.
대출 한도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15억 원을 넘는 아파트에는 주택담보대출이 최대 4억 원밖에 나오지 않고,
25억이 넘으면 2억으로 더 줄어듭니다.
반면 15억 이하 아파트에는 최대 6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합니다.
서울 외곽이 바로 이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입니다.
"강남이 흔들린다고? 그럼 지금이 내 집 마련 타이밍이다."
이 심리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로 수요를 집중시켰습니다.
실제로 올해 2월 서울에서 5건 이상 매매 계약이 체결된 아파트 8개 단지가
모두 구로·관악·노원·도봉구에 위치했습니다.
거래가 살아난 곳이 정확히 이 지역들이었습니다.
데이터가 이 흐름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최근 서울 전체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억 원 이상 하락했습니다.
그런데 노도강·금관구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강북구. 1년 새 평균가 약 2억 원 상승, 5억 8852만 원 → 7억 1502만 원 (2021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7억 돌파)
노원구. 전년 동월 대비 7442만 원 상승, 6억 5791만 원
도봉구. 전년 동월 대비 6798만 원 상승, 5억 8219만 원
구로구. 1억 원 가까이 상승, 7억 6340만 원
관악구. 1억 4599만 원 상승, 8억 5191만 원
서울 전체 평균이 떨어지는 동안,
이 지역들은 오히려 수천만 원에서 최대 1억 5000만 원 이상 올랐습니다.
실거래에서도 신고가가 나왔습니다.
노원구 월계동 동신아파트 93㎡는 9억 5000만 원,
강북구 미아동 송천센트레빌 59㎡는 10억 3000만 원에 매매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구로구 신도림4차e편한세상 117㎡는 처음으로 20억 선을 넘은 21억 원에 매매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과거 강남이 빠질 때는 외곽도 함께 빠졌습니다.
강남 하락 → 한강벨트 하락 → 외곽 하락.
이 연쇄가 부동산 시장의 기본 문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강남 하락 → 한강벨트 하락 → 외곽 상승.
왜 이번에는 연쇄가 끊겼을까요.
두 가지 구조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대출 구조가 시장을 계층화했습니다.
15억 이하는 6억 대출, 15억 초과는 4억 대출, 25억 초과는 2억 대출.
이 기준이 서울 아파트 시장을 사실상 '접근 가능한 계층'과 '접근 불가능한 계층'으로 나눴습니다.
현금 부자들만 강남을 살 수 있고, 3040 실수요층은 외곽 15억 이하 시장으로 몰립니다.
둘째, 고가 주택 보유자와 무주택자의 심리가 동시에 자극됐습니다.
강남 급매 뉴스 → 고령 다주택자는 "지금 팔아야지" → 외곽 무주택자는 "지금 사야지"
두 심리가 한 방향으로 시장을 밀었습니다.
여기서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외곽에서 벌어지는 매수세는 두 가지 성격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실수요에 기반한 정상적인 매수입니다.
대출이 가능한 가격대에서 출퇴근이 편한 서울 아파트를 구하는 3040세대의 내 집 마련입니다.
다른 하나는 '패닉바잉'의 조짐입니다.
"지금 안 사면 더 오른다"는 공포감이 시장을 과열시키는 현상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자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외곽 중저가 지역에서
무주택자들의 패닉바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서울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이 지역들은 버텨주는 수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 25개 구 어디에서나 소위 '대장아파트'로 불리는 전용 84㎡ 아파트는
8억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강력한 수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도봉구조차 2021년 이후 하락기에도 이 선을 지켜냈습니다.
세 가지를 함께 보시면 이 시장이 보입니다.
① 강남은 '공급 없는 희소 자산'으로 굳어가고 있습니다
강남 핵심지 신축은 현금 부자들에게 '달러나 금 같은 초우량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굳어졌습니다.
이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의 하락은 조정이지 붕괴가 아닐 수 있습니다.
② 외곽 상승은 '대출 가능선'이 만든 구조적 현상입니다
15억 이하 아파트에 대출이 집중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수요는 계속 외곽으로 흘러들어옵니다.
③ 서울이냐 아니냐가 가장 큰 변수입니다
서울 외곽과 수도권 외곽은 다릅니다.
서울이라는 행정 경계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텨내는 수요가 작동한다는 걸, 지금 시장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울이라는 경계는 서울만이 아닌 강남(최고 양질의 일자리)을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까지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강남이 흔들릴 때 외곽이 오른다는 건, 시장이 무너지는 신호가 아닙니다.
수요가 재무상황에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현금 부자는 강남 급매를 줍고,
대출이 가능한 3040세대는 서울 외곽으로 향합니다.
시장은 지금 두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방향 모두, 결국 '서울 or 강남1시간 이내 수도권 안에 먼저 집을 사야 한다'는 하나의 결론을 향하고 있습니다.
강남이 떨어져도. 서울이 흔들려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 주소와 강남을 1시간에 안에 갈 수 있는 곳을 원합니다.
이것이 지금 이 시장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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