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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6월 돈버는 독서모임 <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독서멘토, 독서리더


무슨일인지 모르겠지만
전에 작성해놓은 것이 사라졌다. ㅠㅠ
다시 복습하는 후기 ㅎㅎㅎㅎ
보아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인데
오래된 질문이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생물학 분야에서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던 이기적 유전자를 반박한 생물학자가
우리나라 사찰을 순례하는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쓴 책이라고..
오오.
일단 생물학자가 쓴 책이라는 것
그리고 삶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에 끌렸다.
읽고나니
노블님의 목소리는 거의 들어가있지 않고
스님들의 말씀으로 채워져있음.
하지만 스님들의 말씀은 왠지 따뜻하고 축축한(?)느낌이다.
성당에 다니지만
그리고 의미가 같은 이야기가 성경에도 쓰여져 있지만
왠지 스님들의 말씀에는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비유를 많이 사용하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아니면 동양적 정서와 서양적 정서의 차이인가?
조용히 힘이되는 책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가, 안 맞는가.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런 겁니다. 알고 보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죠.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결국은 길을 잘 모를 때, 헤매느라고 너나없이 고생하는 거니까요. 다음은 두 번째 화살에 관해 부처님이 말씀하신 초기 경전의 일부입니다.
수행승들이여,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도, 잘 배운 고귀한 제자도, 똑같이 즐거움, 괴로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정을 느낀다. 그렇다면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과 잘 배운 고귀한 제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수행승들이여,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은 괴로움과 마주하면 우울해하고 피곤해하며 슬퍼하고 통곡하며 미혹에 빠진다. 그는 몸과 마음, 두 가지 고통을 느낀다. 이를테면 사람을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로 찔렀을 경우, 그는 두 개의 화살 때문에 몸으로 마음으로 두 가지 고통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과 접촉하면 그에 대해 분노한다. 그런가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즐거움을 좇고 감각적 쾌락에서 환락을 찾는다.
왜 그럴까? 그는 감각적 쾌락 이외에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거워하며 그에 대한 탐욕에 빠진다. 그는 그런 느낌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 유혹과 위험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저 괴로움, 즐거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정을 속박으로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삶,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 등의 괴로움에 속박된 자라고 부른다.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괴로움을 마주해도 우울해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고 통곡하지 않으며 미혹에 빠지지 않기에, 단 한 가지 신체적인 고통만을 느낀다.
이를테면 사람을 첫 번째 화살로 한 번만 찌르고, 두 번째 화살로 다시 찌르지 않는다고 해보자. 그는 단 한 개의 화살 때문에 몸의 고통 한 가지만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마주해도 그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 않고, 굳이 즐거움을 좇고 감각적 환락을 찾지 않는다.
=> 새 책 시작!
저자가 유전학계 최대의 아웃풋인 이기적 유전자를 반박한 생물학자라는 점
그러한 생물학자가 삶에 대해 고민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미 너무 흥미로웠다.
첫 부분부터 공감대가 너무 많이 형성되서 앞으로도 너무 기대되는 책이다.
두번째 화살에 대한 부분을 가져왔는데
이 부분을 읽고 생각난 건 ‘상황과 감정을 분리하라’
현대판 언어로 쓰여진 자기계발서에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인데 불교에서는 화살로 비유한 게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첫번째 화살은 누구나 겪는 일.
두번째 화살은 그로 인해 여러가지 감정이 생기면서 마음의 고통이 더해지는 일이다.
그게 다른 감정으로까지 이어지면 (화가 증오가 된다거나..) 세번째 화살까지 맞는 일이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물리적 상황으로 표현을 하니까 더 잘 와닿는 것 같다.
아 내가 첫번째 화살을 맞았구나. 그럼 두번째까지는 가지 말자… 이렇게 메타인지해봐야지.
즐거움이 쾌락이 되지 않게, 괴로움이 슬픔이 되지 않게.
얼마 전에는 어떤 부부가 찾아왔어요. 연애를 10년 하고 결혼 생활을 한 지는 8년째에 접어들었는데, 요즘 들어서 특별한 이유 없이 남편이 싫어졌다는 게 부인의 고민이었어요.
“남편 냄새도 싫고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요. 예전에는 남편이 술을 한잔 마시는 것도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싫습니다. 남편의 성격이나 행동이 예전과 다르게 보일 때마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고 혼란스럽습니다. 그저 좋기만 했던 옛 시절이 그립고, 함께하는 지금의 하루하루가 불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지금 과거와 현재의 남편을 비교하는 것은, 남편과 다른 남자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남자 생각을 그만두세요. 지금 옆에 있는 남편의 모습만 보면 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한다면 과거가 아닌 현재의 남편을 마주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자신의 태도로 말미암아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행동하지 않으면 계속 마음이 부대끼는 거죠. ‘왜 내 뜻대로 안 되지?’, ‘왜 그런 행동을 하지?’ 하면서 괴롭죠. 때로는 상대방의 행동은 그대로인데 나의 관점이 바뀌어서 그 행동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모든 문제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이지요.
내가 만든 틀을 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딱 정해두지 마세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세요. 그러면 비로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해지며 사랑도 싹트게 됩니다.
/
차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은 대체 어떤 걸까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상태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태가 되기까지 과거의 시간과 모든 것들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차별하지 않는 습관을 만들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충만하게 살 수 있습니다.
=> 서로 다른 장에 있는 부분인데
나에게는 연결되는 내용으로 느껴져서 같이 가져왔다.
두 내용 모두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같은 듯 다른 것은..
위 내용은 같은 사람이라도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하고,
아래 내용은 그 사람의 과거까지 현재와 연결시켜야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는 점.
언뜻보면 모순되는 것 같지만,
과거의 모습과 현재를 비교해서 어느 것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현재의 모습을 편견없이 이해하려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이구나…
키워드는 ‘판단’ 인 것 같다.
‘판단’ 은 기대나 실망을 만들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두번째 화살이된다.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게 없어요. 어디 가면 밥맛이 좋은지, 어디 가면 놀기 좋은지, 요즘 유행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소를 잘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약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찰’입니다. 자기 성찰을 진지하게 하면, ‘아, 내가 소를 타고 있었네.’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먼 데만 쳐다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는 겁니다. 나를 가까이 살펴보면 뭐가 보여요? 내가 타고 있는 소가 보이잖아요. 그런데 다들 가까운 곳을 보지 않고 계속 멀리만 보고 있어요. 국가를 보고 민족을 보고 종교를 봅니다. 결국, 자기성찰을 하는 것이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하나의 길입니다.
두 번째는 ‘대화’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돼요. “내가 지금 소를 찾고 있는데, 혹시 소 못 봤어?”라고요. 그럼 이렇게 대답하겠죠. “바보야, 지금 네가 타고 있잖아.”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질문해야 돼요. 그게 바로 진짜 대화죠.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나면 역시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 어떤 책들은, 특히 자기계발서는
앞부분에 임팩트가 크고 뒤로 갈수록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에 조금 몰입도가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 책은 뒤로 갈 수록 더 몰입도가 커지는 것 같다.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느낌?
이번에 읽은 장은 어제 읽은 부분과 연결되는 ‘무아’에 대한 것,
그리고 ‘나’에 대해 아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음.
‘나’를 ‘소’로 비유하면서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다. 라는 문장으로 현대인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 진짜 와닿았다. 이렇게 절묘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깨달음의 상태임을 알려 주는 듯.
그리고 이미 내가 소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성찰과 대화’
다시 말하면 메타인지와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고개를 숙여 내 다리를 바라만 봐도 내가 소를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아예 보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 이 메타인지가 부족한 원인, 그리고 옆 사람에게 물어만봐도 또 내가 소를 타고 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는데 솔직하게 소통하려 하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원인
그러면 궁극적으로는 ‘무아’ 나를 잊어야 세상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한 것과 연결지으면 나를 제대로 알아야 나를 잊을 수 있는건가?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 라는 질문이 생김.

이 책에서 말하는 성찰과 대화는
단순히 자기분석이 아니라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는 과정에 가까워요.
이걸 모른 채 “나를 내려놓자”라고 하면
사실은 놓는 게 아니라 회피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되기 쉽죠.
그래서 먼저 필요한 건
👉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아는 것”
여기서 말하는 무아(無我)는
‘나를 없애버린다’가 아니라,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는 상태에 가까워요.
즉,
👉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거리 두기’
당신이 말한 비유,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다”는 바로 이 구조를 잘 설명해요.
👉 자기를 깊이 이해할수록, ‘굳이 붙잡을 나’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게 철학처럼 들리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렇게 나타나요:
이 순간이 바로
**‘나를 알았기 때문에, 나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상태’**예요.
오호.. GPT 고마워. :)
매일의 일상이 바로 인간이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신비고 기적이고 불가사의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삶이 어떻겠습니까? 아마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어른은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는 어른들에게, 서로를 소중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큰 기적인지 모르다 보니까 자꾸 엉뚱한 다른 걸 찾아요.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니, 돈이 억만금 있다고 쳐봅시다. 돈 자체가 우리를 평화롭게 하거나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아요. 다만 삶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죠. 그러나 돈이 많이 쌓였다고 해서 무조건 완벽하게 평화롭고 행복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권력, 명예 다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사실은 그런 물질보다 삶이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그 자체, 그게 핵심입니다.
삶이 평화롭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첫 번째가 만족감이에요. 만족감을 느끼면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만족감은 억지로 채우고 싶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습니다. 자꾸 엉뚱한 걸로 채우려고 하면 욕심만 커져버리죠. 진짜 만족감은 인생을 제대로 알 때 자연스럽게 느끼게 돼요. 만족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죠.
그럼 대체 뭘 알아야 할까요? 나에게는 이미 재물과 명예, 권력보다 좋은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숨을 들이시고 내쉴 수 있는 능력을 높은 권력과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먹고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천금 만금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걸 이미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허황된 가짜 이야기에 속아서 자꾸 저 멀리만 쳐다보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진짜 인생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지금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가는 것이 잘 나이 드는, 진짜 어른이 되는 길입니다.
=> 나태주남의 에세이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다.
행복은 만족에 있다는 것!!!
매일이 기적이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는
종종 매체를 통해 만나는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삶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병이나 사고로 죽을 뻔한 순간을 이기고 다시 삶을 산 사람들을 보면 ‘삶 자체’가 기적이고 기쁨이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것을 죽을 고비가 없이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의 길로 가는 방향!!
돈의 방정식에서 나온 내용과도 결이 같다. 돈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돈이 있을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도 생긴다. 현재에 대한 만족으로 행복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가?
이걸로 한참 생각했는데 얻은 결론은..
성장에 대한 욕구가 ‘내가 부족함’에서 출발하는 것은 조급함과 불안함을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재에도 만족하지만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충분함에서 출발하는 성장은
부족함에서 시작한 성장보다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타인의 인정이 중요하지 않으므로 훨씬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순수하게 ‘더 잘하고싶다’라는 나의 내적 욕구에 충실하므로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을 듯.
그럼 지금 나에게 성장의 출발점은 충만함일까? 부족함일까?
과거에는 확실히 부족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꾸준한 독서와 좋은 동료들 덕분에 점점 충만함의 포션이 높아지고 있는 중!! 행복한 성취주의자에서도 강조한 ‘해야한다’가 아니라 ‘할수있다’ 로의 생각전환도 부족함과 충만함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와 나 출근할 수 있어!! 대박!!! ㅋㅋ ㅋㅋㅋ 재밌어!!
지금 이 만남이 세상에서 단 한 번의 인연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세상에서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때가 모두 기회이니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일회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항상 새롭고, 잘해보고 싶은 의지가 생겨납니다. 언제 어떤 일이든, 어느 사람이건,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당당하게 맞을 수 있어요.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건 따로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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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에서 제 직책은 주지입니다. 모두들 저를 주지 스님이라고 불러요. 언젠가 한번은 대체 주지가 뭘까 생각하다가 농담 삼아서 이렇게 말했어요. “주지는 주는 사람이야. 사람들에게 잘 나눠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지.”
사람들이 부처님께 떡을 공양하곤 하는데, 그 떡은 조금 지나면 금방 굳는 데다 우리 사찰에서 다 먹을 수 없는 양일 때도 있잖아요. 그런 떡을 보면 바로 잘라서 그릇에 담아 보이는 사람마다 나눠 줍니다. 떡 주지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가끔은 엄마 손에 억지로 이끌려 오는 꼬마들이 있는데 표정이 별로 안 좋잖아요. 그럴 때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탕을 꼬마들 손에 쥐어주면 금세 얼굴이 환해지죠. 그때는 제가 사탕 주지가 되고. 또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 주지, 밥 주지, 부채 주지, 책 주지, 재워 주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 나는 참 주지를 잘한다’라고 혼자 마음속으로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선방 앞에 서서 날이 밝아오는 풍경을 보고 있었어요. 붉은 해가 저 달마산 위로 떠오르는데 문득 숲을 보니 나무들이 따스한 빛을 맞으며 활짝 웃고 있는 거예요. 새들도 아주 신나서 명랑한 소리로 노래하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어요. ‘이야, 해가 뜨니까 나무와 새들이 저리도 기뻐하는구나.’ 그뿐만 아니라 저도 좋고,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들과 작은 벌레까지도 한껏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 태양이 단 한 번 떠올라서 이 수많은 생명들에게 나눠 준 빛에 비하면 내가 지난 20년 동안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은 반딧불만큼도 안 된다는 것을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수많은 것들로부터 받고 있었구나.
태양뿐만 아니라 이 땅이 나에게 주는 것이 수없이 많고
이 바람이 나에게 주는 것이 수없이 많고
이 빗방울이 나에게 주는 것이 수없이 많고
또 옛날 사람들이 나에게 준 것이 수없이 많고
그래서 내가 아무리 평생을 나눠 준다고 해도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수천 배가 많겠구나.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실제로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수백 배, 수천 배 많으니까요. 받은 것을 아는 이는 나에게 주어지는 많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베풀고 나눠 주는 삶이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요.
=> 완독.
일기일회의 마음. 항상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임을 알고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전에 이야기했던 ‘판단’하지 말고 나를 보고 타인을 보아야 함을 시간에도 적용하면 되는 구나.. 생각.
지금 이 시간, 내가 속해있는 상황도 나의 편견과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 자체로 소중함을 느끼면서 몰입하면 되는 것. 그러면 여기서 물음표가 생겼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걸까??
그 답이 뒤에 또 쓰여있다.
‘이미 많은 수많은 것에 감사하고 나누면서 사는 것’
이미 수많은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 ‘만족’하게 되고 이미 충만하므로 모든 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 순간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을 찾고 나누는 것.
그리고 더 많이 나누기 위해 부족함이 아니라 충만함을 시작점으로 더 잘하고 싶은 열정을 갖는 것.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은 느낌!!!
언젠가 어렸을 때, ' ~~하게 해주세요. ’ ‘~~가 이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본인에게 좋은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이게 맞는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서운해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게 맞나? 의문이 들었었다.
그리고 나중에 좀 더 커서 종교라는 것이 무언가를 이루어 달라고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 한번 더 힘을 낼 수 있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이 책도 그런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단단해지도록 해주는 책.
결국 무엇을 더 얻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지금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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