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강임투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자이코입니다.
오늘은 투자 이야기가 아니라,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알고 보면 뭐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2년간 월부 활동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무의식과 긍정 암시에 대해 실천하고 있지 않았고,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불평불만이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모두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계속 성장하겠지만, 이론과 원리를 알면 훨씬 더 수월하게 감사일기를 작성하고 100번 쓰기를 왜 해야 하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고, 입버릇처럼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본인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수 있고요.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10억 달성기에도 작성했지만, 순자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제가 가장 오래 씨름한 건 시세도, 전세도, 앞마당도, 입지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이야"라는 내 자신에 대한 큰 믿음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만 2년간 월부에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월부 입성 전에 경험했던 것들에 살을 붙여서 투자 과정에서 부딪힌 두려움들을 돌이켜보니, 결국 하나로 수렴하더라고요.
내가 "내 생각"이라고 믿어온 것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이 깨달음 하나가 제 인생을 꽤 많이 바꿔놨습니다.
그 과정을 나눠볼게요.
너바나님께서 항상 하시는 Not A But B 내 자아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인식하는 것 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 같습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개념인 암시부터 살펴보시죠.
암시의 사전적 의미는 "감각, 관념, 의도 따위가 이성에 호소함이 없이 언어 자극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현상"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암시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또 다른 이에게 옮겨진 것입니다. 강요가 아닙니다. 직접적인 명령도 아닙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거예요. 반복되는 말, 태도, 분위기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어느 순간 그것이 "나의 신념"이 되어버립니다. 본인은 그게 타인으로부터 옮겨온 줄도 모릅니다. 원래 내 생각인 줄 알아요.
나폴레온 힐의 「긍정의 힘」에서는 암시를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암시는 타인으로부터 옮겨온 생각, 자기 암시는 내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든 생각, 자동 암시는 내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암시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식탁에서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합시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특별히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냥 하루 일과 중에 툴툴거리며 내뱉은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을 수백 번 들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합니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뭘 원하는 거지?"가 먼저 듭니다. 본인은 이걸 자신의 성격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원래 사람을 잘 안 믿는 성격이야." 그런데 그건 그 아이의 성격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식탁에서 수백 번 반복된 암시가 그 아이의 무의식에 뿌리를 내린 겁니다.
태어났을 때는 완전 무결한 아이였겠죠.
동양에서는 근원, 본성, 적자지심, 본래자리, 서양에서는 내면아이(Inner Child), 온전함(Integrity) 등등 완전 무결한 자아의 많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암시라는 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왔고, 특히 어렸을 때 많이 마주치는 부모, 형제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게 내 생각이 아니고 외부에서 온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왜 인간은 암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걸까요?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라기 때문이죠. 어렸을 때는 부모 형제의 영향을 많이 받고, 학창 시절에는 어울리는 친구, 취직 후에는 회사 사람들,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매일 많은 암시에 노출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무의식에 대해서 조금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프로이트가 의식을 빙산에 비유한 거 다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수면 위에 보이는 꼭대기가 우리가 자각하는 생각·감정·판단이고, 수면 아래에는 그 몇백 배에 달하는 무의식이 존재합니다.
의식은 논리로 작동합니다.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된다." 언어와 숫자로 따지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거죠. 그래서 의식의 언어가 인지(사고, 논리)입니다.
그런데 무의식은 논리를 모릅니다. "맞다/틀리다"를 구분 못 해요. 대신 이미지, 감각, 느낌으로 작동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레몬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노란 레몬을 칼로 반 가르고, 즙이 흘러내리는 걸 혀 위에 짜는 장면을. 지금 침이 고이지 않나요?
실제로 레몬은 없습니다. 그런데 몸이 반응했어요. 상상만으로 신체가 움직인 겁니다. 이게 무의식의 언어가 상상력이라는 뜻이에요.
의식에게 "침 흘려"라고 명령하면 안 됩니다. 논리로는 몸을 못 움직여요. 그런데 생생한 이미지 하나 던져주면
무의식이 받아서 바로 실행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 안 하고요. 반대로 의식에서 "침이 나오지 마"라고 명령해도 우리 몸에서는 침이 나옵니다.
그래서 의식과 무의식이 대결을 하는 경우에는 거의 100% 무의식이 이기게 됩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의식이 무의식을 이긴다"라고 생각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의사 결정은 무의식에 의해서 결정이 되고, 이때는 의식적인 생각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Not A But B.
그리고 이 무의식을 채우는 가장 강력한 재료가 바로 암시입니다.
암시가 무의식에 들어가는 경로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반복.
한 번 들은 말은 흘려보낼 수 있어요. 그런데 같은 메시지가 형태를 바꿔 반복되면 진실처럼 굳어집니다. "넌 형만 못해", "형은 안 그러는데", "형처럼 좀 해라" 각각 다른 문장이지만 전달하는 암시는 하나예요. "너는 부족하다." 수년간 반복되면 "나는 형보다 부족한 사람이야"라는 핵심 신념이 됩니다.
둘째, 강한 감정과 함께 올 때.
단순한 정보는 잘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의 경험? 한 방이면 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망신당한 경험, 부모가 심하게 싸우는 걸 목격한 순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느낀 수치심 등등. 이런 건 한 번이라도 강렬하면 깊이 박혀요. 무의식의 언어는 감정과 강하게 반응하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셋째, 권위 있는 사람에게서 올 때.
동네 아이가 "넌 바보야" 하는 것과 아버지가 "넌 바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향력을 가집니다. 권위자의 말은 우리 무의식에서 사실 확인 없이 받아들여져요.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인간은 더 강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게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인생을 살면서 정말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부정 암시를 긍정 암시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일단 내 안의 암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인 이상 암시를 완전히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미 무의식에 깊이 박힌 걸 통째로 빼낼 수는 없어요. 그리고 새로운 암시들이 우리의 오감을 통해 매일 채워지고 있습니다. 암시로 인해 한번 형성된 기존의 정체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 옮겨진 것이었다"는 인식, 그 한 가지만으로도 흐름이 달라집니다.
"나는 원래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믿음. 이걸 그냥 사실로 받아들이면 거기서 끝이에요. 그런데 "잠깐, 이건 내가 선택한 생각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심어진 것일까?"라고 한 발 물러서는 순간 나와 그 생각 사이에 간격이 생깁니다.
그 간격이 자유의 시작입니다.
저도 "나는 원래 돈에 관심 없는 사람이야"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지금 보면 메타인지가 진짜 안 됐던 겁니다. 그런데 그게 내 생각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 심어준 암시였다는 걸 인식한 순간, 비밀번호를 "2029년10억!"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주는 암시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암시는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매일 누군가에게 암시를 주고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암시를 주고 있는 그 순간, 동시에 그 암시를 내 자신에게 더욱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모라면 자녀에게, 직장에서 선후배에게, 월부에서는 동료에게… 등등
“그걸 왜 해? 돈이 돼?” 누군가의 도전을 가볍게 꺾는 말.
"너 그거 진짜 잘한다" 누군가의 가능성에 불을 붙이는 말.
둘 다 암시입니다. 차이는 어떤 씨앗을 심느냐에 있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이 점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3~6세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그 자체거든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한숨 한 번이 필터 없이 아이의 무의식에 들어갑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요. 저도 두 아이의 아빠로서… 이 부분은 정말 매일 조심하려고 합니다.
완벽하진 못하지만요.
그래서 우리 투자 동료들은 이걸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까요?
사실 월부에서 하라고 하는 것들이 바로 이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감사일기는 단순한 일기가 아닙니다. 하루에 감사한 것을 적는 행위는 내 무의식에 "내 삶에는 좋은 것이 있다"는
긍정 암시와 풍요를 반복적으로 심는 것입니다. 암시가 무의식에 들어가는 첫 번째 경로가 반복이라고 했죠. 매일 쓰는 감사일기가 바로 그 반복입니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면서 불평 불만을 습관처럼 하는것분들 도 계실겁니다. 이건 마치 케이크를 만드는데 진흙 위에 크림을 바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장 습관적으로 불평불만을 말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 돌아 보시기 바립니다.
100번 쓰기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반드시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를 100번 쓰는 건 의식에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무의식에게 이미지를 심는 겁니다. 손으로 쓰면서 머릿속에 그 장면이 그려지고, 반복될수록 무의식은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단순하게 100번 쓰는 것에 매몰 되는 아니라 한땀 한땀 나의 무의식에 각인하면서 작성 해야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조모임에서, 단톡에서, 임장 동행에서 동료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암시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넌 할 수 있어", “이번 앞마당 진짜 잘 만들었다” 이 말은 동료의 무의식에 긍정의 씨앗을 심는 동시에, 내 무의식에도 똑같이 심어지는 겁니다.
반대도 성립합니다. 불평, 비관, 냉소를 입에 달고 살면
그 말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상대가 아니라 내 무의식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지금 내 안에 있는 부정적 믿음을 인식하세요. 그것이 정말 내 생각인지, 어디선가 옮겨온 것인지.
2. 감사일기, 100번 쓰기, 긍정 확언을 "그냥 하는 숙제"가 아니라, 무의식의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거는 행위라고 이해하세요.
3. 동료에게 긍정 암시를 주세요. 그것이 결국 나에게 가장 먼저 강하게 돌아옵니다.
무의식은 바꾸기 어렵지만,
매일 한 줄의 감사, 한 마디의 격려, 한 번의 긍정 확언이 쌓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기본값이 달라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내 무의식에 좋은 씨앗을 심는 것도 독강임투의 일부니까요.
모두들 독강임투로 성투하세요~
댓글
위대한 사람 자이코님!! 무의식에서 나오는 부정을 죽이고 긍정 암시를 심어주자! 100번쓰기, 목실감 더욱 소중히 작성하겠습니다. 이코옹 문과 인가요? 이과인줄 알았는데요!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시고 찐기버시네요~!!
어제 비교임장 같이 걸어가며 느꼈지만 참 긍정의 기운을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ㅎㅎ 3달 간 이코님의 긍정의 애티튜드를 열심히 BM해보는 자세를 가져보겠습니다 이번 한 주 도 화이팅입니다!!
이코님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너무 멋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의식에 숨어있는 제 부정적인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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