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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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지 이동을 목표로 하는 분들이 꼭 읽어야 하는 글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1호 초이스 헬퍼 & 부동산 가치평가사

'시크릿브라더' 입니다.


오늘은 몇 년 만에 채사장님의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다시 읽고 마음에 와닿은 챕터가 있어서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부동산이 본인 세계의 중심일 수도 있고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실 테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제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이고, 더 좋은 부동산을 매수하고 자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콘텐츠를 보게 할까를 고민하기 때문에 때로는 자극적인 글과 말로 상대방을 현혹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세계관이 정답인 양 그리고 이것을 모르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떠들기도 하죠.


그런데 이 책을 다시 읽고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 정말 정답일까? 이게 진리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이 드넓은 우주에서 코딱지보다 작은 행성인 지구에서, 또 코딱지만 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또 코딱지만 한 부동산 씬에서 우리가 정답이라고 하는 것들이 정말 모든 사람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정답이자 진리가 맞을까요?


특히 붇카페를 보다 보면 정답이나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지방 물건을 사면 욕을 먹습니다. 심지어 수도권에서도 외곽은 무시당하기 일쑤죠. 순자산이 10억이 안되면 돈 자랑이 아니라 명함도 못 내밉니다. 본인보다 더 낮은 급지라고 생각되는 곳이면 그저 까내리기 바쁘죠. 서로 자기 동네가 좋다고 싸우고 물어뜯습니다.


누군가 돈 모아서 강남 입성을 했다고 하면 다들 칭찬해 주고 부러워합니다. 아이가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게 당연하고 학원은 대치, 목동 정도는 가줘야 합니다. 이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고 이 정도 수준이 안되면 글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을 의심받습니다.


그런데.. 강남 입성이 인생의 진리인가요? 진리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게 좋은 건가요? 혹시 당신께서도 '돈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사는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계시진 않은가요?


저 또한 열심히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고 열심히 자산 증식을 해서 조금 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강남, 서초를 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이를 대치동 학원가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곳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선택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쁘고 잘못된 선택이 아니란 겁니다.


당신은 왜 강남에 살고 싶습니까?

당신은 왜 상급지로 이사 가고 싶습니까?

당신은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까?


'혹시 그곳에 가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로 남들이 진리로 여기는 그것을 본인도 진리로 생각하고 계시진 않은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상급지로의 이동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가족 전체의 행복이 아닌 저 개인의 행복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가족들 특히 와이프와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은 '캐나다 1년 살기'라는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습니다. 저희가 선택한 이 선택 또한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끊임없이 우리 가족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아닌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지.

남들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그곳에 정말 행복이 있는 게 맞을지.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삶이 정말 정답이 맞는지. 끊임없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우리 가족만의 답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도 마음이 흔들리고 심란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나요? 너무 당연합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우리가 믿는 세계관 또한 진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자책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엮여있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얻는 정보와 지식이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만의 혹은 본인 가족만의 답을 찾아보세요. 그건 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인지.

본인이 왜 이렇게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것인지.

돈은 왜 필요하며 언제까지 벌어야 하고 얼마나 있어야 하는 것인지.


모든 답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소음에 눈과 귀를 닫고, 본인의 진실된 마음부터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글을 함께 읽어보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오늘 글이 당신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되었길!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中



@ 진리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진리'는 사전적으로 '참된 이치'를 말하지만,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 실제 사용에서는 고정되지 않고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다양한 사용 방식을 넘어 진리는 거의 모든 경우에 긍정적인 의미로 다뤄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종교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에서,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진리는 지향해야 할 하나의 방향성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진리는 긍정적인 개념인가? 단정적으로 말하면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인위적으로 제한된 특정한 영역에서는 옳을 수 있지만, 일상이라는 실제 현실에서는 진리는 긍정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폭력으로서 드러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당신도 경험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신이 폭력의 주체였을 수도 있고 대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쉽게 진리가 만들어내는 불필요한 갈등의 상황에 처한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야근을 마치고 그나마 한산해진 지하철에 실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앉은 좌석 앞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빈자리가 충분한데 왜 내 앞으로 오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부유해 보이도록 신경 썼다고 생각되는 중년의 여성이 손잡이에 의지한 채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귀에서 이오폰을 빼며 무슨 일인지를 묻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다짜고짜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젊은이, 예수님 믿어요?"

내가 대답했다.

"네, 붓다도 믿고, 무함마드도 믿어요."

굳어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잘못 말했음을 느꼈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귀찮은 듯 대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짓으로 답변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나는 실제로 <티벳 사자의 서>를 즐겨 읽고,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종종 놀러 가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가 내게 한 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불쌍하다는 말이었다. 승강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그녀는 나를 따라오며 성경의 구절과 신실한 믿음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설교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좋은 말씀들 속에서 나는 감춰지지 않는 그녀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생각보다 인상적이었다. 나는 말조심을 해야 함을 배웠다. 하나의 확고한 진리관을 가진 이에게는 그 세계 밖의 것들에 대해 말할 때 주의해야 함을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녀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고 그녀의 세계 밖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녀는 그렇게 분노했던 것일까.

나는 이후에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지만, 무수히 많은 곳에서 그녀의 것과 동일한 형태의 분노를 목격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오랜 시간 직장 생활 속에서 배운 경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입사원에게 분노하는 부장님을 보았고, 자신이 평생 연구한 학문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타과 학생을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수님을 보았으며, 신의 나라를 외치며 불신하는 이들의 심판을 경고하는 종교지도자를 그리고 자신이 평생 걸어온 길이 정의의 길이었다며 지지자와 반대자를 선과 악으로 양분하려는 정치인을 보았다.

많은 시간이 흘려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생각이 정리될 무렵, 나는 내가 목격한 분노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진리였다. 너무나 확고한 하나의 진리가 세상에 등장하면 그것이 어떻게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 전이되는지를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여기 전체집합 U가 있다. 이것은 다양한 세계를 포함하는 집합이다. 전체집합 안에는 수많은 세계관과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어느 때에 이곳에 하나의 단일한 부분집합 A가 탄생한다. 집합 A는 스스로를 진리로서 규정한다. 문제는 진리의 개념 자체가 보편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즉, A는 스스로 진리임을 외치는 동시에 이렇게 믿는다. 모든 것이 A 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U=A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 문제가 발생한다. U에는 집합 A에 포함되지 않은 이질적인 세계관 집합 B, C, D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에게 이들의 존재는 인정될 수 없다. A에게 B, C, D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다만 A의 여집합, 즉 'A가 아닌 것들'로 규정된다.

이제 A에게는 역할과 의무가 발생한다. A가 진리이고 보편이며 전체이기 위해 A가 아닌 것들에 대한 제거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폭력은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회유, 유인, 강제, 억압.

이 와중에 A의 감정 상태는 흥미롭다. 분노와 연민, 우월감과 초조함. 이것은 스스로 진리 집단이 된 존재가 진리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느끼기에 적합한 감정 상태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미시적 폭력의 실체다. 학문과 종교에서, 정치와 사회에서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나의 진리 집단이 일어서고 그것이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해왔는지를 당신과 함께 돌이켜보고자 함이다.

우리는 세계를 점검해 봐야 한다. 나의 세계 안에는 무엇이 있고 밖에는 무엇이 있는ㄴ지. 혹시 나는 고집스레 단일한 진리관을 움켜쥐고 빈곤하게도 이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닌지를. 또한 외부의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단순히 비진리라 규정해버림으로써 그것을 안 봐도 괜찮은 것들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던 것은 아닌지를. 당신이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려는 사람이라면 점검해 봐야 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세계가 흑과 백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선택하는 하루!

Make a good choice ~♡



- 대한민국 1호 초이스 헬퍼&부동산 가치평가사 -

" 시크릿브라더 "



[시크릿브라더의 두 번째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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