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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션] 죽음의 수용소에서 독서후기 8/15

24.12.20

STEP1. 책의 개요

책제목: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 및 출판사: 빅터프랭클,이시형옮김 / 청아출판사

읽은 날짜: 2024년 12월

총점 (10점 만점): 10/10점

STEP2. 책에서 본 것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등의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을 매우 담담하게 기록하였고 뒷부분에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한다. 삶의 의미는 각자가 찾아야 하는 고유한 것이고 이것이 있다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저자는 직접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과 비슷한 맥락으로 내 삶을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인간을 결정론적으로 보는 프로이트 보다 빅터프랭클의 시선이 훨씬 마음에 든다! 

 

STEP3. 책에서 깨달은 것

사랑의 고귀함에 대해서 깨달았다. 

매일 폭력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굶주림과 수면 부족으로 시달리면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내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누군가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주어진 시련을 의연하게 극복하는 것은 품위 있는 인격을 갖게 해준다.   

STEP4. 적용할 점

어떤 시련이 왔을 때 가령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했을 때 이 이 책을 생각해야겠다. 

내 인생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절망의 그 시점에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것도 내 내면의 자유를 뺏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STEP5. 책 속 기억하고 싶은 문구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같이 매시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 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세 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했던 그 짧은 결혼 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수감자들의 무감각이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는 것 외에 여기에는 또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굶주림과 수면 부족(이것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이 무감각 상태로 그들을 이끌었으며, 수감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조함이 이런 무감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수용소 체험으로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입증해 주는 예(이런 이야기는 종종 영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인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 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인생이란 치과 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인간의 정신 상태─ 용기와 희망 혹은 그것의 상실 ─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의 갑작스러운 상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져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 방식일 수 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 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神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인생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단순한 유용성과 혼동하는 것은 개념상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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