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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1. 책의 개요
1. 책 제목: 미움받을 용기
2. 저자 및 출판사: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마타케 ㈜인플루엔셜
3. 읽은 날짜: 2019년 + 2025년 2월 18~19일
4. 총점 (10점 만점): / 10점
STEP2. 책에서 본 것
세계는 아주 단순하며 인간은 오늘이라도 당장 행복해 질 수 있다
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다.
이의 주장을 납득 할 수 없는 한 청년이 그를 찾아가
5번의 밤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라도 행복해 질 수 있다. 오늘이라도 당장 !!!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내가 변하면 세계도 단순하게 변한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지금 이 순간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첫 번째의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세계는 단순한 곳
세계가 복잡해 보이는 것은 ‘나’의 주관이 그렇게 한 것.
인생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프로이드의 원인론이 아닌 목적론에 입각해서 살아야 한다.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된다.
트라우마를 부정해라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떠밀려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
목적론의 대전제는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인간은 늘 스스로 생활양식을 선택한다.
내가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인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반복했기 때문
나에게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할 용기가 부족하다.
즉,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불행한 것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것.
‘나’ 인채로 그저 생활양식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들러의 목적론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없다.” 라고 말해준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나 이다.
두 번째의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려고 뒤로 미뤄서는 안돼.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상황.
‘이대로’에 멈춰 서 있는 것이라네.”
왜 자기 사진을 싫어하나?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라고 결심 했기 때문에.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왜 필요로하나?
“내가 그 남자와 사귀지 못하는 것은 적면공포증 때문이야” 라며 스스로 납득 시킬 수 있고,
“만약 적면공포증이 나으면 나도.....” 라는 가능성 속에 살 수 있으니..
핑계 할 할 것이 필요하고, 탓 할 것이 필요하니까.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 이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혼자라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타인, 사회, 공동체가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독한 것.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데도 타인을 필요로 한다.
즉, 인간은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개인’이 되는 것.
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
열등감이란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과 관련된 말.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
주관적 해석의 좋은점 하나는 자신의 뜻대로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
나는 어느 쪽이나 선택 할 수 있다.
우리는 객관적 사실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주관적 해석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가 있다.
우리는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
‘가치’ 도 사회적인 맥락에서 성립되는 것.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치에 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가치의 문제도 최종적으로는 인간관계로 환원되는 것.
‘열등감’과 ‘열등콤플렉스’
열등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님.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열등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말한다.
“A라서 B를 할 수 없다” 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 이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난 것.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
모든 인간은 ‘같지는 않지만 대등’ 한 존재.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 말로 가치가 있는 것.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우라.
분노는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니까.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말이 있다.
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
말의힘. 논리적인 말.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들러의 심리학의 목표 (심리는 행동을 뒷받침 한다)
*행동의 목표
‘ 자립할 것 ’
‘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
*심리적 목표 (위 행동의 목표를 뒷받침 하는)
‘ 내게는 능력이 있다.’ 라는 의식 갖기
‘ 사람들은 내 친구다.’ 라는 의식 갖기
이 목표는 ‘인생과제’를 직시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인생과제’ = ‘일의 과제 + 교우의 과제 + 사랑의 과제
과제란 사회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말.
인간관계의 거리와 깊이에 관해서.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인생의 과제.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는 의미에서 말 그대로 ‘과제’.
피하지 말라,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루지 말라.
설령 끝내 가위로 끊어내더라도 일단은 마주 볼 것.
가장 해서는 안되는 것이 이 상황. ‘이대로’ 에 멈춰 서 있는 것.
‘인생의 거짓말’ =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남탓 하고, 환경 탓으로 돌리고,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결정은 내가 하는 것.
우리 인간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휘청거릴 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목적론 입장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생활양식을
자신의 손으로 고르는 것.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용기를 가진다면.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
도리어 인정받기를 바라서는 안된는 말.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타인에게 인정받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럼 대체 왜 인정받고 싶은 걸까?
왜 타인에게 칭찬받기를 원하는 걸까?
대개의 경우 상벌교육의 영향이 크다.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 받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이에 대한 결과로
“칭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 같은
잘못된 생활양식이 생긴다.
인정받기를 바란 나머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된다.
즉,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기억하라.
당신이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타인 역시
‘당신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돼. 그것이 당연하다.
병약무인하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을 이해해보자.
아이의 공부를 예로 들어
‘공부한다’ 라는 과제가 있을 때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한다.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
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 에 의해 발생하게 되니
과제를 분리 할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가 급격히 달라질 것.
과제 구분 방법은 간단.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라.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방임은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
그게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아이)의 과제임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것.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함.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돕는다. 하지만 끝까지 개입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믿는다는 행뒤 또한 과제의 분리이다.
상대방을 믿는 것. 이것은 나의 과제.
하지만 나의 기대와 신뢰를 받는 상대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
그 선을 긋지 않은채 자신의 희망만 밀어붙이면 그건 스토커나 다름 없음.
그것이야 말로 하지 말아야 할 ‘개입’
비록 상대방이 내 희망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믿을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아들러가 말하는 ‘사랑의 과제’에는 그런 질문까지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정하라.
그리고 타인의 과제는 버리라.
그것이 인생의 짐을 덜고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다.
내 삶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 하는 것.’ 그뿐.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내 인생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내 과제를 직시하자.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 입구이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택할 것이가.는 중요한 문제.
부자연스러운 삶을 택하면서 인정욕구라고 말 하는건
정확하게는 ‘누게에게도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이다.
과제를 분리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진로와 배우자감까지 간섭한다. 이게 자기중심적인게 아니면 뭔가?)
스스로 자유를 택한 어른이라면 오히려
자유롭게 사는 것을 응원할 것이다.
자유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 질수 있을까?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며 충동이다.
칸트는 이런 욕망을 가리켜 ‘경향성’이라고 했다.
그런 경향성에 이끌린 채, 다시 말해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려 사는 것.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돌맹이 처엄 사는 것이 ‘자유’ 일까?
그런 삶은 욕망과 충동의 노예일뿐.
진정한 자유란
굴러 내려가는 자신을 아래에서 밀어 올려주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경향성에 저항할 수 있는 존재이다.
굴러떨어지는 자신을 멈추고 비탈길을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비탈길을 굴러가야 할까?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고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내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건 부자유스러운 동시에 불가능한일.
자유를 행사하려면 대가가 뒤따른다.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 밖에 없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
남에게 미움을 받아라 가 아니라
미움받은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 는 것.
미움을 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비탈길을 굴러가듯이 살지 않고
눈앞의 언덕을 올라간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진다.
내가 관계를 회복하기로 ‘결심’ 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의 생활양식이 무엇인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다가서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상대방이 나와 관계를 회복할 의사가 없어도 상관 없다.
문제는 내가 결심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
인간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다는 말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자네도 나도 세계의 중심이 아니야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네.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개인심리학과 전체론
개인 = Individual = 분할할 수 없다 = 그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단위
아들러는 마음과 몸은 하나이고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 보았다.
인간은 통일된 전체.
인간을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는 존재로 파악하고
‘전체로서의 나’를 생각하는 것을 ‘전체론’이라 한다.
과제를 분리 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출발점.
우리는 타인과 어떤 인간관계를 맺어야 할지 더 깊이 논의해 보자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이다.
‘공동체 감각’은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
‘공동체’의 참 뜻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범위 뿐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 우주 전체를 아우른 ‘만물’을 공동체라고 역설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불행의 근원은 인간관계에 있다.
거꾸로 말하면
행복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 있다.
공동체 감각이란 행복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공동체 감각 = social interest = 사회적 관심
사회의 최소 단위는?
‘나와 너’
공동체 감각을 이해하기 위한 기준점
‘나와 너’를 기준점으로
자기에 대한 집착 (self interet)을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st)으로 바꾸는 것.
자기중심적 인간이라고 하면?
과제 분리를 하지 못하고 인정욕구에 사로 잡힌 인간.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얼핏 타인을 보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자기 자신밖에 보지 않는다.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즉 자기중심적.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 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
‘나’에게 집착 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 중심적,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야 한다.
지구의를 생각할 때
무수한 중심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나는 공동체의 일부이지 중심이 아니다.
이걸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 소속감을 갖기 원한다.
이 소속감은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어질 수 있다.
인생의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일, 교우, 사랑이라는 인간관계의 과제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어야
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타인이 ‘나를 위해 무엇가를 해주는 사람’이니
굳이 내가 행동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니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길이다.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란
가정이나 회사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까지 포함된다.
더 큰 공동체를 의식해야 하는 이유
만일
‘학교’라는 공동체만이 내가 있어야 할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여기 있어도 괜찮다’라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생기고
그렇다면 더 작은 공동체. 이를테면 가정으로 도피해 그곳에 틀어박히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집 안에서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소속감을 얻으려 할 테니까.
그런데 이때
‘다른 공동체가 있다.’ 무엇보다 ‘더큰 공동체가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학교 ‘바깥’에서 내가 있을 곳을 찾으면 된다.
전학을 가도 되고, 자퇴를 해도 상관없다. 라는.
이런 결단이 쉬운건 아니다.
이때 염두해 두어야 할 행동원칙.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학교라는 공동체의 상식으로 사리판단을 하지 말고
더 큰 공동체릐 상식을 따르라는 것.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집착하지 말고
보다 다른 ‘나와 너’
보다 다양한 ‘사람들’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한다.
과제를 분리하면서 어떻게 원만한 관계를 만들까?
즉 어떻게 서로 협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시킬까? 하는 점.
‘수평관계’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열등감이란 수직관계에서 생기는 것.
모든 사람이 ‘같지는 않지만 대등’한 수평관계에 있다면
열등 콤플렉스는 생길 여지가 없다.
수평관계에서는 개입이 사라진다.
‘지원’이 필요하다.
공부는 아이의 과제라는 것을 이해한 상태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
아이에게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것.
강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과제를 분리한 상태에서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
이러한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 = ‘용기부여’
과제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것은
그 사람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있든 없든
‘과제에 맞설 용기를 잃은 것’ 이 문제.
잃어버린 용기를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을수록 ‘나는 능력이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잘 기억해두라.
칭찬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직관계에 종속된 것.
‘나는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 없다.
칭찬은 ‘능력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에
칭찬 받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국은
타인의 가치관에 맞춰 삶을 선택하게 된다.
과제를 분리할 것. 그리고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대등한 수평관계를 맺을 것.
‘용기부여’란 그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 구체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맙다”, “기쁘다”, “도움이 됐다” 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하기.
이것이 수평관계에 근거해서 용기를 부여하는 방법.
여기서 중요한 것.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
수평관계를 맺고 있다면 감사나 존경, 기쁨의 인사 같은 더 순수한 말을 전한다.
인간은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타인에게 공헌했음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해야 인간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
‘나는 가치가 있다’고 느낄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생의 과제에 직면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느냐’
매우 간단하다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돌고 돌아 인생을 살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럼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가치가 없나?
타인을 ‘행위’의 차원에서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 하는 관점으로 보면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나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야 한다.
타인이 ‘무엇을 했는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는 관계 없습니다.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하든 상관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한명이라도 좋으니 수평관계를 맺을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은 중요.
누구와도 친구처럼 지내라 허물없이 행동하라는게 아니라
의식상에서 대등할 것, 그리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사랑에서도,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도 나이는 관계 없다.
교우의 과제에 일정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
나와의 관계에서는 조금씩 거리를 좁히면 된다.
밀착될 정도로 가까워질 필요는 없고,
손을 뻗으면 서로의 얼굴에 닿는 정도의 거리.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우리의 인생에도 ‘길잡이 별’이 필요하네
그 별은 이 방향으로 쭉 가다 보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절대적인 이상향이라네”
아들러의 심리학은 철저히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의 최종 목적지는 공동체 감각.
정말 그것만으로 좋은 걸까?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
나는 어디로 향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행복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감각을 기르는 것.
이에 필요한 것이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
자기 긍정 말고 자기수용
자기 긍정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것.
자신에게 거짓말 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칫 우월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다.
자기 수용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수 있을 때 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
60점 그대로 받아 들이고 100에 가까워 지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수용.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내는 것이 자기수용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네. 그저 ‘용기’가 부족한 거지.
‘타자 신뢰’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돌릴 때 절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번째 키워드.
‘믿는다’는 말은 신용과 신뢰.
신용에는 조건이 따르나
인간관계는 신뢰를 기반으로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아들러의 심리학.
다른 사람을 믿을 때 조건을 일절 달지 않는 것.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유지하는 태도를 신뢰라고 부른다.
우리는 조건없는 신뢰를 가져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타자 신뢰’를 통해 더 깊은 관계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가질 때
인간관계의 즐거움이 늘어나고 인생의 기쁨이 늘어난다.
두려움을 뛰어넘을 용기는
자기수용에서 나온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배신이 타인의 과제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을 신뢰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공동체 감각은 자기수용과 타자신뢰만으로는 얻을 수 있지 않다.
‘타자공헌’이 필요
친구인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 주는 것. 공헌하려는 것 = 타자공헌
자기 희생이 아니다.
타자 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
가장 알기 쉬운 타자공헌은 ‘일’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해보라.
행복해질 용기
인간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행복해 질까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타자공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상관 없는 것.
타인에게 공헌할 때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한 것.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말이
‘모든 인간은 행복하다’ 라는 것은 아니다.
행위의 차원에서든 존재의 차원에서든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것. 공헌감이 필요하다.
평범해질 용기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 뿐.
인생은 점이 연속되는 것.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찰나(순간)의 연속이다.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
그러나 문득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하고 깨닫게 되는.
춤을 출때는 그 자체가 목적.
춤추는 동안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지.
목적지가 없이
과정자체가 결과인 에네르게이아적 인생.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 나가라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았다면 그 찰나는 늘 완결된 것.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
자신의 인생에 더 없이 소중한 찰나에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것.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의 질문에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란 없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라고 한다.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것.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밖에 없다.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으로 ‘길잡이 별’이 필요하다.
이 별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지침.
이 방향으로 쭉 가다보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절대적인 이상향.
그 별은
타자공헌에 있다.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자유롭게 살면 된다.
그리고
찰나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 것.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이 사는 것.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 없이.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테니까.
인생의 의미는 ‘지금,여기’를 진지하게 춤췄을 때에만 명확해 질 것이다.
‘내 힘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
STEP3. 책에서 깨달은 것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자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건 나 밖에 없다.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나 이외에 누구도 세계를 바꿀 수 없다.
STEP4. 책에서 적용할 점
자기수용 :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기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기
타자신뢰 : 다른 사람을 조건없이 신뢰
타자공헌 :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
STEP5. 책 속 기억하고 싶은 문구
page 122~124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지는 말게.
이것이 많은 사람이 빠지는 인간관계의 함정이지.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되네.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 되어야 하네.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되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건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야. 우월성 추구란 타인과 경쟁하는 것과는 상관없네.
경쟁이나 승패의 안경을 벗어야 비로소 자신을 바로 보게 되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걸세.
page 312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았다면 그 찰나는 늘 완결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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