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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스쿨 기초반 - 월급 300 직장인이 부동산으로 부자되는 법
월부멘토, 너바나, 주우이, 자음과모음

안녕하세요
꿈꾸는대로 행동하는 투자자
구르구르망입니다:D
오늘은 강의후기에 앞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린시절. 나에게 ‘돈’이란 것은
저는 남들이 보기에 참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누구나 살고싶어하는 1급지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주변친구들만큼 아주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부족함은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항상 불안감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바로 ‘가정불화’ 때문입니다.
제 어린시절의 기억은 부모님이 매번 ‘돈’때문에 싸우는 장면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외벌이에 살림을 맡아서 하는 어머니. 전형적인 윗세대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사치가 심하다고 항상 화를 내셨고,
어머니는 벌이가 충분하면서도 쥐꼬리만한 생활비를 주며 아버지가 돈을 숨긴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지긋자긋한 싸움의 반복속에서
저에게 ‘돈’이란 ‘필수적이지만 사람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지저분한 존재’로 남았습니다.
/
갈등의 최고조는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고 아버지의 사업장은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사업장을 크게 리모델링하기를 원했는데,,
어머니는 결국 한푼도 아버지에게 보태주지 않았습니다.
고성과 울부짖음. 매일밤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며 저도 큰 상처가 남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오랜 우울증과 사회불안장애 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ㅎㅎ
‘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나쁜존재였습니다.
투자를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22년 11월 처음 열반 기초반을 수강하고
돈에 대해서 긍정적인 모습을 배워갔고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며 24년 2월에 월부에서 첫 투자를 했습니다.
제 스스로 이뤄낸 것에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하고나니 보이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근로소득만으로 절대 1급지에 살 수 없었는데, 우리집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지??’
여기에는 제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인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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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보면 저는 어린시절 항상 낡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1급지 이지만 그 유명한 구축..ㅎㅎ
가을이면 쥐가 돌아다니고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는 것은 일상입니다.
겨울이면 녹물을 받아내야 보일러가 돌아가는 그런 집
새벽이면 복도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상한 이웃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 추억이네요.ㅋㅋ
좀 더 좋은 집으로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no를 외치며 반대하셨습니다.
낡은 구축에서 오랜 전세살이로 자본을 모으고자 함이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어린시절 이 동네로 이사온 후
10년이상의 전세살이 끝에 드디어 우리집이라는 곳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으로서는 약 20년만의 결실이었습니다.
분명 넉넉한 생활비를 준다고 했는데 돈이 없다고 싸웠던 이유는
갈아타기를 위해서 어머니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차곡차곡 준비를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큰 갈등을 만들었던 할아버지의 유산은 어머니의 상가투자로 이어졌습니다.
한푼도 사적으로 쓰지 않고 현금흐름을 만드는데 집중하셨습니다.
덕분에 몇년 전 아버지가 은퇴를 했는데도 자식들에게 아쉬운소리 안해도 될 만큼
충분한 생활비를 마련하셨습니다.
/
사실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는 수입은 꽤 있었지만 돈을 모으는 재주는 없으셨다는 것을요.
아버지는 지금도 예금, 적금의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하십니다.
근로주의에 살고있는 아버지에 반해
어머니는 자본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배울 기회는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임장을 가셨고(그땐 임장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요??)
그러면서 맨몸으로 부딪혀 배우고 투자를 반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든든한 울타리. 감사합니다.
24년 2월 지방에 투자를 하며 비로소 알게된 사실.
어머니가 꽤 오래전에 제 이름으로 집을 마련해두었습니다.
날짜를 보니 아버지와 갈등이 가장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1급지 구축. 방하나에 낡고 좁은 집이지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가치만큼 몸집을 불려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이번 1급지 신축 59로 갈아타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의 부족한 실력때문에, 추격매수로 싸지 않게 산,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변수를 커버할 수 있을만큼 어머니는 많은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제가 직장을 가지고 난 다음, 다시한번 저를 위해 자산을 차곡차곡 모아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지금 오랜시간 병원에 입원해있고, 아직도 퇴원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교통사고와 지난 과거의 병치레로 많이 약해지셨고 힘든 상황인데도
오히려 저에게 용기를 주고 좋은 자산으로 갈아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아무 걱정말라고, 단단하게 일러주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얼마나 든든한지…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힘껏 지원해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슬프고 속상한지..
이제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도 충분하실 텐데 여전히 어머니는 저를 위한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야망은 사이즈가 남달랐다……….
조금 길게 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유는
이제야 비로소 제가 어떤 목표를 향해 투자를 하는지 이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10년 후, 가족의 안전장치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돈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 ‘돈’을 가지고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명확한 목표의식은 없었기에
그 좋아하는 돈을 두고도 어딘가 치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일을 계기로 저에게 분명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10년 이내로 경제적기반을 다잡아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실패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어서
망하지 않는 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이번 갈아타기를 계기로 돈이 있는데 실력이 없는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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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님은 분산투자보다는 올인하는 투자를 해야한다며
그 전에 올인할 수 있는 ‘잘 하는 분야’를 만들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족한 실력으로 벌어진 실수로 인해 3~4년은 투자를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히려 실력을 키울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복기하고 또 복기해서 앞으로 다가올 기회에는 만족할 만한 투자의 성과를 이뤄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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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길을 개척하는게 아니라면 경험자를 따라가라
실제 부자와 공통점을 만들어가라는 조언이 있었는데요.
비록 아버지는 자본주의는 몰랐지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생활비를 줄 수 있게 성실하게 40년을 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싸우는 길이 막막했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투자를 지속했고, 결국 시간의 복리로 그 성과를 이뤄내셨습니다.
부자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나의 환경에서도 언제나 부자를 만날 수 있고,
그리고 월부라는 환경에서는 앞선 선배님들과 튜터님, 멘토님을 따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아직 제 삶에 부족한 부분들, 많이 배우며 부자의 습관을 하나씩 익혀 나가겠습니다.
1년에 한번씩 열반기초반을 들으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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