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은 그저 ‘오늘의’ 양식만을 구하라고 가르친다. 오늘의 빵이 우리가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빵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모래알이 좁은 관을 통과하는 것처럼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의 육체나 정신은 망가지기 마련이야.
오늘 하루만은 삶의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 들지 않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데만 집중하겠다. 평생 한다면 끔찍한 일도 열두 시간 동안이라면 할 수 있다.
어제의 짐에 더해진 내일이라는 짐을 오늘 지고 가면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한계>
인간은 대부분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우리는 한번도 이용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내적 자산을 지녔다.
윌리엄 제임스는 “일단 결정이 내려지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 남았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이나 관심은 완전히 무시하라”라고 말했다(그는 여기서 ‘관심’과 ‘걱정’을 동의어로 사용했다). 사실에 입각해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면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다.
거슈윈의 재능에 감탄한 벌린은 지금 받는 것보다 세 배의 급여를 줄 테니 비서가 되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충고했다. “하지만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말게. 그렇게 하면 벌린의 아류가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지금처럼 자신의 모습을 지켜나간다면 언젠가 일류 거슈윈이 될 거야.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라 승리감이다” 즉, 행복은 성취감, 성공감,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었다는 승리감에서 온다.
니체는 초인(超人)을 “어려움을 견딜 뿐 아니라, 사랑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면 할수록, 놀랍게도 많은 사람의 성공 비결이 애초에 가진 핸디캡이었음을 확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거의 다 써야 할 정도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는 한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깊은 우물이 숨겨져 있다.
나는 인생의 역경이라는 위대한 대학을 다니면서 부유하고 편하게 사는 사람은 절대로 얻지 못할 인생관을 배웠다. 나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법과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미래라는 어두운 위협 앞에 겁쟁이가 된다. 나는 그런 위협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그때가 되면,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주어지리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복과 평화>
“비참에 지는 비결은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할 여유를 갖는 것이다.” 굳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소매를 걷어 붙이고 부지런히 움직이라.
앞을 볼 수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앞이 안보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불행하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비걸은 올바른 가치 판단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걱정의 절반이 즉시 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자신을 지배하는 것뿐이다. 생각을 지배하고, 두려움을 지배하고, 마음과 영혼을 지배하고 싶다. 놀랍게도 행동을 통제하기만 하면 그것이 반응을 통제하면서 내가 원할 때마다 이러한 지배력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마음 가짐>
주어진 환경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 우리의 감정은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 즉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다. 예수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옥도 마찬가지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은 말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놀라울 것도 없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런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처방만 따르면 2주 만에 우울증이 나을 겁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기쁘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하우스먼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만이 삶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무슬림이 아니거나 숙명론자가 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납고 뜨거운 바람이 삶에 들이닥치고 우리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면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자. 그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부지런히 움직여 뒷수습을 하자.
은행이 내게서 빼앗지 못한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여전히 건강하고 친구들이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피로; 휴식과 재미>
그는 피로를 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피로를 ‘예방’했기 때문이다. 자주 휴식을 취한 덕에 그는 건강하고 활기찬 상태로 자정이 한참 넘어서까지 일할 수 있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피로는 거의가 정신적인 것이다. 육체적으로만 탈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피로는 일 때문이 아니라 걱정, 좌절, 분노 때문에 생겨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녀는 지루함에서 오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는 보상을 받았다. 지루한 일을 흥미롭게 만들고자 회선을 다했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얻었고, 여가 시간에는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가치 있는 임무를 맡았다는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심 없는 일, 자신이 잘못 배치되었다는 생각,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 재능이 허튼 곳에 낭비되고 있다는 믿음은 실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재적인 피해를 입혔다.
✅ 나에게 적용할 점 1. 피로를 ‘예방’하자
지금껏 내가 해 오던 피로 해소 법은 ‘영양제’와 '운동' 정도였지 자주 쉬어가면서 예방해 볼 생각은 못했다. 물론 임장을 갈 때에는 신체적으로 피로하기에 의식적으로 자주 쉬었지만, 임보를 쓰거나 독서를 하는 등 실내 활동을 할 때면 ‘엉덩이 오래 붙이는 데’ 자신이 있는 나는 몇 시간이고 주구장창 앉아 있었다. 그리곤 잠자리에 누워 느껴지는 피곤감에 뿌듯함을 느끼곤 했는데, 책에서 권장하는 방법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자기관리론을 읽으면서는 1시간에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괜히 설거지 한 번, 창틀 청소 한 번 하거나 5분간 눈 감고 소파에 눕기도 하면서 쉬어갔다. 아직까지는 꽤 마음에 든다. 생각보다 쉬는 데에 시간이 많이 쓰이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2. 마음 가짐
‘베풂의 기쁨'이라는 문구는 상용적으로 참 많이 듣지만 내심 깊이 있게 공감하거나 이해하진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학창시절에는 성적을 두고 친구들과 경쟁을 하던 좁은 마음을 가졌는 데, 성인이 되고 나서 그때의 어린 마음을 깨닫고는 ‘오, 좀 어른이 되었구나!’생각을 했다. 그러나 단순히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 기여를 할 지 고민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진짜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책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특별하진 않은 것도 같은데, 어쩐지 ‘베풂의 기쁨’에 대한 설명이 유난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래서 어제부터 (수기) 다이어리에 쓰는 회고 방식을 살짝 변형 해 보았다.
(1) 감사한 일 (2) 도와준 일 (3) 개선할 일
3. 고난의 극복
근심과 걱정에서 멀어지면 나 자신의 한계를 끌어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사실 월부 생활을 통해 내가 도달하고 싶은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이 모습은 분명 아버지를 비롯한 내 주변의 ‘안정감’을 중시하는 친구들은 충분히 말릴 법 한 모습이다. 일반적인 회사원의 모습을 꿈꾸는 것은 아니기에 대부분 ‘불안정한 삶이 아니냐’하는 걱정을 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에겐 이런 꿈을 꾸는 나를 지지해 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하지만 나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내 꿈에 취해 위험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위험을 알기 때문에 월부 생활을 통해 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부업) 나는 자꾸 될 것만 같다. 월부를 통해 내가 그리는 삶의 방식에 도달하는 게. 그래서 ‘온 열정'을 다 쏟아가며 하진 못하지만 ‘길고 길게' 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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