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좀 오래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주식 시장에 갓 들어온 초보 시절에는 소위 '가치 투자'니 '펀더멘털'이니 하는 말에 꽂혀 살았다. 기업 실적? 물론 중요하다. 밤새워 재무제표 뜯어보고, 매출액 늘어나는 거 확인하고, 영업이익률 계산기 두드려보는 거 다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산전수전 겪으며 강세장과 약세장을 온몸으로 맞다 보니, 진짜 시장을 움직이는 '보스'는 따로 있더라. 바로 '유동성'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기업이 아무리 잘나가고 돈을 잘 벌어도, 시장 전체에 돈이 마르면 주가는 못 간다. 가뭄 든 논바닥에서는 제아무리 좋은 볍씨도 싹을 틔우기 힘든 법이다. 반대로 기업이 좀 비실대고 적자를 내도, 시중에 돈이 넘쳐흐르면 개도 소도 다 오르는 게 주식 시장이다. 지난 코로나 상승장을 떠올려 보라. 실적은커녕 당장 망할 것 같은 기업들도 돈의 힘으로 천장을 뚫지 않았던가. 결국 주가는 기업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유동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가끔씩 복잡한 리포트나 뉴스 다 치워버리고, 딱 두 개만 확인하러 들어간다. 바로 "지급준비금 계좌"랑 "재무부 일반 계좌(TGA)"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경제학 원론에나 나올 법해서 머리 아파 보이는데, 원리는 기가 막힐 정도로 단순하다. 경제 경영을 전공한 사람람들이 어렵게 포장해 놔서 그렇지, 까놓고 보면 우리집 가계부와 다를 게 없다.
먼저 '지급준비금 계좌(Reserve Balances)'부터 보자. 이건 그냥 시장의 유동성을 보여주는 '온도계'라고 보면 된다. 시중 은행들이 연준(Fed)에 맡겨놓은 현찰이다. 이 계좌가 두둑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은행 금고에 현찰이 넘쳐나서 주체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은행은 돈놀이하는 곳이다. 금고에 돈 쌓아두고 구경만 하면 손해다. 돈이 많으면 그 돈 놀리기 싫어서라도 대출해 주고, 여기저기 자산에 투자한다. 즉, 지급준비금 그래프가 우상향하면 시중에 돈이 넘쳐 흐른다는 뜻이다.
그다음 확인해야 할 건 '재무부 일반 계좌(TGA)'다. 이게 아주 물건이다. 지급준비금과는 정반대로 해석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계좌는 '시장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다.
재무부 계좌가 두둑해진다는 건, 미국 정부가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을 세금 징수나 국채 발행으로 싹 긁어모아서 자기들 통장에 박아뒀다는 뜻이다. 우리 주머니에 있어야 할 돈, 기업들이 투자해야 할 돈이 정부 금고로 빨려 들어간 거다. 시장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악재다. 유동성 풀에는 물이 말라가는데, 정부 혼자 댐에 물을 가득 채우고 문을 잠가버린 꼴이니까.
반대로 재무부 계좌가 홀쭉해지면? 이건 두팔 벌려 환영할 호재다. 미국 정부가 공무원 월급 주고, 도로 깔고, 다리 놓고, 학교 짓느라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무부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그 돈은 어디로 갈까? 공중분해 되는 게 아니다. 민간 기업과 가계로 흘러 들어간다. 정부 지갑이 얇아지면, 투자자들의 지갑이 점점 두꺼워지는 구조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돈을 풀고 쓰면 시장은 환호하고, 안 쓰고 움켜쥐고 있으면 시장은 굶어 죽는다.
지난 11월을 한번 복기해 보자. 주식 시장이고 코인 시장이고 유독 힘들어서 곡소리가 났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니, 금리 인하 지연이니 하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였지만, 필자 눈엔 딱 하나만 보였다. 거시적인 '돈맥경화'였다.
연준이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QT(양적 긴축)를 진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재무부가 자기네 통장 잔고 채우느라 바빴다는 거다. 연말 대비한다고 국채를 찍어내서 시장의 돈을 계속 빨아들이니, 시장에 남은 돈이 없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물이 빠지고 있으니 배가 나갈 리가 있나. 그래서 11월에는 아무리 호재가 터져도 시장 반응이 미적지근하고, 주식시장과 암호화폐 시장이 유독 힘을 못 썼던 거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러운 건, 12월이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점이다. 차트를 보니 베센트트 재무장관이 드디어 지갑을 열었다. 재무부가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포착됐다. 현재 재무부 잔고(TGA) 그래프는 고점을 찍고 꺾여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재무부라는 거대한 댐의 수문이 열렸다는 소리다. 재무부 잔고가 내려가면서 시중에 유동성 물결이 다시 밀려오고 있다. 그 돈이 돌고 돌아 어디로 가느냐? 결국 다시 은행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유동성 지표인 지급준비금 계좌를 다시 두둑하게 채우고 있다.
TGA가 내려가고 지급준비금이 올라가는 이 '크로스'가 나올 때가 투자하기 제일 좋은 타이밍 중 하나다. 11월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꽉 막혔던 "돈맥경화"가 이제야 좀 뚫리는 느낌이다. 혈관에 피가 돌기 시작했으니, 이제 시장은 다시 활기를 찾을 확률이 높다.
주식 시장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수요와 공급, 그리고 '돈의 양'이 결정한다. 기업 실적 챙겨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거대한 돈의 파도가 어디로 흐르는지도 봐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돈을 풀고 있다. 이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재무부 계좌가 홀쭉해지고 지급준비금이 빵빵해지면, 우리는 그저 그 파도 위에 올라타 있으면 된다.
어찌보면 이 모든 것이 산타랠리를 위한 트럼프와 베센트의 큰 그림이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