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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후기 쓰는 양식
책 제목(책 제목 + 저자) : 몽테뉴의 수상록(몽테뉴)
저자 및 출판사 : 몽테뉴
읽은 날짜 : 25년 10월
핵심 키워드 3가지 뽑아보기 : #나 #죽음 #내면
도서를 읽고 내 점수는 (10점 만점에 ~ 몇 점?) : 10
1. 저자 및 도서 소개
: 몽테뉴
2. 내용 및 줄거리
3. 나에게 어떤 점이 유용한가?
4. 이 책에서 얻은 것과 알게 된 점 그리고 느낀 점
사실 이 책을 읽은지 꽤 됐다 10월 말에 완독을 했으니, 거의 2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서평을 끝끝내 쓰려는 이유는 이 책이 정말 감명 깊었다는 것이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이 서평을 시작하기 전에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으면서, 다시 그 부분을 읽으면서 기억나지 않는 내용을 떠올리면서, 이 책의 소중함이 기억난다, 마치 옛 연인의 기억처럼 말이다.
한때 내 서평을 열심히 읽어 주던 사람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주절주절 말 많은 내가 쏟아내는 내 생각들이라 읽기 힘들거나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을텐데, 당시 정성들여 읽어줄 때마다 참 고마웠다. 서평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왠만한 노력과 정성이 없이는 사실 쉽지 않은 부분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튼 이번에 몽테뉴 형님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최근 나만의 큰 화두인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에 대해서 몽테뉴 형님이 제법 많은 부분에서 언급을 하셔 아마 더 이 책 서평을 쓰고 싶었다고 생각이 들고 인정이 된다.
사실 이 형님이 시작부터 죽음이 어떻니,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연설 아닌 연설을 하셔 웃음이 튀어 나왔다, 나도 모르게. 뭐 굳이 그 이유를 자세히 적을 필요는 없다 생각이 드는데, 여튼 웃음이 나왔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는 우연이지만 몽테뉴 형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면서 뒤늦게 당시 내가 이해못했던 부분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과연 오늘 죽어도 후회없을만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떤 마음 가짐일 때 그게 가능할까?
몽테뉴 형님은 여러가지 말씀을 적으셨지만 이렇게 초반에 시작하셨다. "이렇듯 나는 내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품고 스스로에게 새겨 넣기 때문에 언제나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다.그래서 죽음이 갑자기 닥치더라도 놀랄 일이 전혀 없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한다."
건너가기 책을 통해서도 배웠고, 당시 지인을 통해서도 배웠으나 아직도 어려운 부분은 인생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히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일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 외에는 굉장히 오늘 해야할 일들 목표를 향해 달리는 양생마인 척 하면서 하루를 정말 심리적으로 쥐어짜면서 사는 느낌이긴 하다. 적다보니 허무하긴 한데, 아직 속을 온전히 드러낼 만큼 안전한 대상을 인근에서 찾지 못해 더 그렇긴 한데, 그러면 스스로와도 대화를 하여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함에도 여전히 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고 살아가려고 한다. 도데체 왜 그럴까?
몽테뉴 형님은 또 이렇게 글을 남기셨다
"물론 아내와 자녀, 재산,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특히 건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이 그것들에 좌우될 정도로까지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온전히 자신만의 뒷방, 즉 은신처를 마련해 진정한 자유와 고독을 만끽해야 한다. 그장소에서 매일 자신을 돌보며 외부의 교류나 소통이 전혀 접근하지 못할 만큼 철저히은밀한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아내나 자녀, 재산, 하인이 없는 사람처럼 웃고 떠들다보면 실제로 그것들을 잃는날이 왔을 때도 우리는 초연하게 견뎌낼 수있다. 우리 영혼은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릴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착실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 영혼은 공격하거나 방어할 능력, 주고받는 능력도 있다. 그러므로고독할 때 지루한 무위에 빠져버릴까 염려하지 말자.
“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
거 참.. 글 한번 정말 잘 쓴다.
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고 적으시다니.
그런 의미에서 수상록이라는 글 형식 자체가 마음에 든다 여튼 스스로를 다잡아 가며 쓰신 글 아니겠던가. 그럼에도 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는 말은 정말 살짝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서글프게 마음에 든다. 혹 몽테뉴 형님도 나같이 외로우셨나?
속으로는 나만의 뒷방 은신처를 찾으면서 또 동시에 외면 받을까 두려워 하는 내면의 나를 보자면 도데체 뭐하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몇 번의 상담을 통해 현재의 생각은 결국 같은 것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만의 뒷방에서 안전하다 판단되는 사람과 맘 편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살이가 어디 그리 쉽나, 또는 그런 큰 운을 쉽게 주나 싶다보니 결국 겉으로나 실제로나 별로 아프지도 않은 침을 가진 어슬픈 고슴도치가 되어 안아달라고 애처롭게 징징 우는 모습이다.
여튼 난 이대로는 못 죽겠다
열심히 못 살아봐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데 미련이 남아서 그런가
다만 몽테뉴 형님의 이 말씀에 또 터질 것 같은 내 심장은 날 미치게 할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부여 잡는다.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무엇을 누리게되든, 우리는 그것이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현재의 것이 적당함에도 언제나 미지의 미래를 좇는다. 그러나 실은 현존하는 것들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우리가 마구잡이로 잘못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근데, 난 마구잡이로 잘못 받아들인 적 없는데라고 변명하고 싶긴 하다. 한때 나우누리에서 "기대실망"이라는 닉으로 숨어(?) 살면서 가끔 사람들이 열반을 꿈꾸시냐 물어서 뭔말인가 했었는데, 아이러니 하지만 난 지금 열반기초를 듣고 있다. 아니, 웃길려고 쓰는게 아니라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나? 태어나 처음으로 건강검진 재검이 떠서 병원에 갔고,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의사라고 부르는 분이 아니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분을 만나 설명을 듣고 다음 상담 일정을 잡는데 내년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이라고 가끔 머리가 아팠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항생제만 2달을 먹었는데도 낫지 않아 결국은 큰 병원 가보라는 의사 말을 들으면서, 지금 적는 내가 생각해도 좀 뭔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했다. 이런게 언제 죽어도 괜찮을 만큼 열심히 살아서일까? 아니면 이미 불치병을 앓은 적이 있어, 마치 "누수는 대응의 영역입니다"라고 여유롭게 말하는 또다른 나의 모습일까. 아니면 "사람 죽는 일도 아닌데"라는 옛 드라마 대사에 일부 마음을 기대고 있는 것일까?
몽테뉴 형님은 모든 말씀이 다 이렇게 적재적소인지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하지 못한다. 단지 우리의 영혼에 재료와 씨앗을 주어 더욱 강해진 영혼이 원하는 대로향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자의만이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유일한 근거이자주권자다."
아니, 이런 강심장이 있나. 형님 말씀대로라면, 지금 이 작금의 운명도 결국 나를 행복/불행하게 못만든다시는 말씀인데, 이게 또 적고보니 또 그럴듯 하다. 읽을 때보다 말이다. 아니 뭐 니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다 뭐 이런 얘기신거 같긴한데, 그렇게 치면 도데체 외부 자극이 무슨 문제겠으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데 외부의 자극 교류 없이 독야청청 살기 어려운 존재인데, 그걸 모르실리도 없고, 뭐 저리 혼자 슈퍼히어로급 멘트를 하실까. 네, 제가 그게 잘 안되네요 라고 급히 고해를 해야할까. 이론적으로 저 말이 이해가 되는데 현실에서는 뭐랄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운명에 영향을 받고 살고 싶다고나 해야할까, 왜 운명을 쌩까며 살아야 행복한것일까, 그냥 운명의 파도를 타며 행복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나도 무섭다, 병원에서 저리 말할 때 말이다. 마치 저 운명은 그냥 하는 소리요, 내가 보는 관점에 따라 난 행복할 수 있는 강한 영혼이요라고 외치기보다 그냥 누군가가 괜찮냐고 물어주면 좋을 그런 일반적인 인간일 뿐이다라는 말이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굳이 물어보지는 않는 상대에게 검사 결과를 덤덤히 공유할 때는 그게 덤덤한 것은 아닌데, 나조차도 나를 속이는 기가막힌 코가막힌 무의식의 잔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 형님의 나 중심론에는 적극 찬성한다
또 이렇게 주옥같은 글을 적으셨더랬지
"28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나 자신에게 쏟는다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권세와 명예를 위해 애정을 베푼다면, 나는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 나 자신에게 쏟는다. 새어나가는 애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 앞을 보지만 나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스스로를 평가한다. 저마다 자기 앞을 바라보지만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만 돌보며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분석하며 음미한다.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은 늘 자신이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앞으로 가기만 한다.
“아무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29 나라는 존재를 충실하게누릴 줄 안다
자신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이며 숭고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기 위해 다른 조건을 구하고,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자신에게서벗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죽마에 올라탄들 무슨 소용이랴. 죽마 위에 있어도 결국 우리 다리로 걸어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보좌에 앉아 있더라도 이는 사실 우리 엉덩이 아래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 아무리 운명을 타고 죽음에서 초연하며 고독한 가운데 군중이 된다한들, 내가 나를 잘 이해해야 했고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나를 이해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고, 몇개월 지나 아직도 수련 중인데, 수련 시스템이 망가진 이 작금의 의료사태를 차치하고 스스로 수련을 하여 그 언젠가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는 날이 그런 날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운명에 죽음에 외부의 시선과 말에 지금보다는 조금더 초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치 날 잡아먹을 것 처럼 눈의 살기를 띈 그 남자를 향해 자신있게 "너 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얘기한 그날 처럼 말이다.
이렇게 서평을 끝내려고 했으나(얼마나 멋있나) 마지막 이 문구를 빼고 마무리할 순 없겠다 싶다, 나랑도 꽤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 형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우리는 분노를 감춤으로써 그것을 더 키운다. 선술집에서 눈에 띌까 두려워 구석에숨었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에게디오게네스Diogenes가 말했듯이 “뒷걸음질칠수록 더 앞장설 뿐이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지혜로운 태도를 표방하고자 심연의 저의를 억누르는 것보다 하인의 따귀를 갈기는 편이 낫다. 그리고 나를 희생시켜가며 내 격정을 숨기기보다는내 감정들을 느껴보는 게 좋다. 바람을 쐬고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면 감정은 완화된다.감정의 날카로운 끝이 우리를 향해 굽어 있기보다는 외부를 향해 있는 것이 낫다.
“드러나는 결함은 차라리 덜 심각하다.정말 위험한 결함은 건강한 기색을 하고 숨어 있다."
그래, 나도 말하고 살아도 된다.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난다, 화가 난다 싶으면 화가 난다고 소리지르지 않되 내 감정을 나 중심으로 표현을 하면 되는 거였다. 이도 많이 배운 부분이다. 그렇게 보면 참 사람이 큰 사람이었다.그리고 추측컨데 나는 스스로를 옥죄고 숨기면서 도망 쳤던 시간 동안, 반대로 일부 두려워도 최후의 보루인 내면과 소통하면서 근본적인 철갑방어막을 완성하여 보낸 시간에게는, 나로서는 처음부터 크게 느꼈던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많이 배웠다, 마치 그때처럼 몽테뉴 형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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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그 시간이 더 바랄 것없이 유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곧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죽는 법을 깨우치고 나면 반대로 죽음에 속절없이 당할 거라는 두려움을 잊게 된다. 죽음이 뭔지를 알면 모든 굴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을 박탈당하는 것이 해악이아님을 깨닫고 나면 삶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사람은 모두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
단 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도 그것이 내가 죽기 전에 마쳐야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짬을 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언젠가 어떤 이가 내 수첩을 뒤적이다 내가써놓은 ‘죽은 이후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의 목록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집에서 10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집까지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건강하고 활기가 있을 때 그것을 적고자서둘렀노라고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이렇듯 나는 내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품고 스스로에게 새겨 넣기 때문에 언제나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다.그래서 죽음이 갑자기 닥치더라도 놀랄 일이 전혀 없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사라지고 난 후에는 길고 짧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히파니스 강(쿠반 강의 옛 이름-역자)에는 단 하루를 사는작은 벌레가 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죽으면 요절한 것이고, 저녁 5시에 죽으면 장수한 셈이다. 이렇게나 짧은 생애를 놓고 행복과 불행을 따진다면 우리 중에 비웃지 않을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네 길고 짧음도영원이나 자연, 어떤 동물들의 시간에 대보면 가소롭긴 마찬가지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앞서 흘러간 영겁의 시간이 너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보아라.”
언제 생을 마감하든, 그게 당신 몫의 전부다.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오래 살았지만 조금 산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삶에 전념하라. 충분히 살았는지의 여부는실제로 몇 해를 살았는가보다 그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끊임없이 지향하고도 이르지못할 만한 곳이 있는가? 끝이 없는 길은없다. 게다가 동반자가 그대를 도와준다면,온 세상이 왜 그대와 함께 가지 않겠는가?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내 삶의 안락과 즐거움에 죽음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죽음은 크고 중요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기를바란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지나간 삶을 향유하는 것은 두 번 사는것과 같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그러나 나는 죽음이 결론일지언정 삶의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의 끝이자 극단에 죽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목적은 아니다. 삶이 삶 자체의 목적이자 목표여야 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처신하도록용인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앎은 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염려에 무게를 실어주지만 않는다면 이는 가벼운 삶의 요소일 수 있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그렇게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남의 일을 자기가 취하지 않고,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고 계발하며, 필요 이상의 소유나 불필요한 사유와명제를 거부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갈망하는 대상이 멀리 있을 때는 다른무엇보다도 그 대상을 열망한다. 그러나 그것을 얻고 나면 다른 것을 바라며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고 무엇을 누리게되든, 우리는 그것이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현재의 것이 적당함에도 언제나 미지의 미래를 좇는다. 그러나 실은 현존하는 것들이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우리가 마구잡이로 잘못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고통에 무감각해지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정신의 둔화와 육체의마비다.”
불행도 인간의 한 요소다. 그러므로 항상고통을 쫓아내고 쾌락을 좇기만 해서는 안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24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중요하다
부유함과 궁핍함은 개인의 마음에 달려있다. 부든, 명예든, 건강이든, 그것을 소유한 이가 부여한 의미 이상의 아름다움이나즐거움을 지니지 못한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다. 스스로의 확신이야말로 본질적이고 진실한 것이다.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하지 못한다. 단지 우리의 영혼에 재료와 씨앗을 주어 더욱 강해진 영혼이 원하는 대로향하고 실행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자의만이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유일한 근거이자주권자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모든 일은 그 자체로 괴롭거나 힘들지 않다. 우리의약함과 비겁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위대한 일을 판단하려면 크고 위대한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악함이 그 판단에 영향을 준다. 곧은 노櫓도 물안에서는 굽어져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어리석은 자의 인생은 즐거움 없이 완전히 미래만을 향해 있어 불안하다.”
나는 후회 없이 삶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는 삶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때문이지, 결코 귀찮거나 고통스러워서가아니다. 삶을 즐기는 사람이 죽음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잘 견딘다.
삶을 즐기는 방법은 있다. 나는 인생을 남들의 두 배로 즐겼는데, 즐거움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전심전력했는지로 측정할 수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보는 지금, 나는 즐거움에 더 깊이 잠기고싶다. 민첩하게 달아나는 삶을 민첩하게 붙잡고 싶다. 서둘러 흘러가는 인생을 더 잘활용함으로써 보상받고 싶다. 인생이 짧을수록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28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나 자신에게 쏟는다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권세와 명예를 위해 애정을 베푼다면, 나는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 나 자신에게 쏟는다. 새어나가는 애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 앞을 보지만 나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스스로를 평가한다. 저마다 자기 앞을 바라보지만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만 돌보며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분석하며 음미한다.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의 시선은 늘 자신이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앞으로 가기만 한다.
“아무도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29 나라는 존재를 충실하게누릴 줄 안다
자신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이며 숭고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기 위해 다른 조건을 구하고,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자신에게서벗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죽마에 올라탄들무슨 소용이랴. 죽마 위에 있어도 결국 우리다리로 걸어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높은보좌에 앉아 있더라도 이는 사실 우리 엉덩이 아래에 있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보편적이고 인간적인 형식에 질서 있게 들어맞으며, 비범하지만 부조리가 없는 삶이다. 그러나 늙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줄 필요가 있다. 신에게 그들을위한 건강과 지혜를 구하되, 밝고 사교적이기를 간절히 바라자.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30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온전히 나를 위해 산다
타인을 위한 삶은 충분히 살았다. 이제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 자신을 위해 살자. 모든생각과 의도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안위를지향하게 하자. 확실한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라 다른 일과 병행하기에는 다소 벅찰 수 있다. 하지만 신이우리에게 떠날 겨를을 주었으니 채비를하자.
짐을 꾸리고 직장에서 미리 휴가를 얻자.그리고 다른 것에서 자신을 분리시켜 우리를 옭아매는 폭력적인 속박들을 풀어내자.그 속박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의무감에서벗어나 이제는 이러저러한 것들을 사랑하되, 오직 자신과만 혼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모든 것과 관계를 맺되 자신의 일부를 벗겨내거나 뜯어버리지 않고서는 그것과 분리될수 없을 만큼 결합하거나 달라붙지 말아야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스스로를 충분히 존중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릴 때는 배워야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숙달해야 하며, 나이가 들었을 때는 어떠한의무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물론 아내와 자녀, 재산,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특히 건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이 그것들에 좌우될 정도로까지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온전히 자신만의 뒷방, 즉 은신처를 마련해 진정한 자유와 고독을 만끽해야 한다. 그장소에서 매일 자신을 돌보며 외부의 교류나 소통이 전혀 접근하지 못할 만큼 철저히은밀한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아내나 자녀, 재산, 하인이 없는 사람처럼 웃고 떠들다보면 실제로 그것들을 잃는날이 왔을 때도 우리는 초연하게 견뎌낼 수있다. 우리 영혼은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릴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착실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 영혼은 공격하거나 방어할 능력, 주고받는 능력도 있다. 그러므로고독할 때 지루한 무위에 빠져버릴까 염려하지 말자.
“고독 한복판에서 스스로 군중이 되어라.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자신이 내면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의 시금석이 될 내면의 기준을 세워, 이에 따라 때로는 자신을 칭찬하고 때로는 비난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기준으로 판단하기 위해 나만의 법규와 법원을 두고 그곳에 나 자신을 제소한다. 다른이들의 기준으로 내 행위를 제한하면서도나의 기준으로 내 행위들을 펼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나는 조언을 받지 않을 뿐더러 조언을 즐겨 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적고 그만큼 보내는 신뢰도 적다. 게다가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내 의견을 반영하거나 그로 인해 어떤일을 바로잡은 적도 없다.
우연히 나에게 귀 기울인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의 의견에라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영향을 줄 권리보다는 쉴 권리가더 좋기 때문에 이대로 만족한다.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세우고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다른사람의 일에 휘말리거나 그들을 보호해주지않아도 된다면 나로서는 기쁜 일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나는 무신경함을 타고났는데, 이 특성을 개발하기 위해 성찰과 담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나는 소수의 일에만 열중하고 골몰한다. 통찰력이 예리하지만 소수의대상에 대해서만 이를 발휘한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또한 나는 나 이외의 일에 내 애정을 분산시키고 집중하게 하는 애착에 일심전력으로대항한다. 다른 것에게는 자신을 빌려주기만 할 뿐 내주지는 말아야 한다. 만약 내 마음이 쉽게 다른 일에 몰두하고 전념했더라면 내가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너무 심약하기 때문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나는 전혀 다른 태도를 견지한다. 나는 나자신에게만 매달린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원하는 것을 조용히 바라지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하며 바쁘게 지내는 일도 뜸하고 막상 바쁠 때도 잠잠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열과 성을 다해모든 것을 원하고 운영한다. 하지만 난관이너무도 많기 때문에 세상의 일들을 다소 가볍고 피상적으로 흘러가게 두면 안전하다.쾌락도 본질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37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스스로 경외심을 갖는다
세상이 그대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보다 그대가 자신에게 무어라 이야기할지를신경 써야 한다. 자신에게서 벗어나되 그 전에 먼저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자신을 다스릴 줄도 모르면서 스스로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는 것은 미친 짓이리라.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그대의 영혼이 참된 선은 깨달은 만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대는 생명을 연장하거나 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만족할 수 있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우리가 받을 만한 영광 이상을 탐욕하지않는 법을 배우자. 유익하고 순수한 행위를가끔씩 하는 사람이나 과시할 일이다. 그런사람들은 그 행위에 본인이 치른 대가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소리가 큰 선행일수록 나는 그 가치를 낮게 보는데, 이는 그 행위의 목적이 소리를 내기위함인지 선하기 위함인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39 나를 잘 알기에 거짓 찬사를 즐기지 않는다
모든 일을 명예와 영광을 위해 하는 자는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등장한다. 그러나이로써 그들은 무엇을 얻는다고 생각하는가? 누군가 꼽추의 키를 칭찬한다면 상대방은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대가소심한 사람인데 우리가 그대를 용맹스럽다고 치하한다면 과연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이 그대가 맞는가? 이는 우리가 그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그렇소, 하지만 그는 나에게 물을 부은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인 줄 알고 그사람에게 부은 것이오.”
소크라테스는 그에 대해 사람들이 험담을 했다고 하자 “그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나는 없소.”라고 말했다. 나의 경우에도 나를 좋은 지도자이며 겸손하고 정숙하다고칭송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도않을 뿐더러 나를 도적이자 반역자, 술꾼이라고 말하는 자들에게도 전혀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대부분의 경우 나를 비난한 사람들과 화해하는데, 나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해서가아니라 예의상 그렇게 한다. 그들에게 쉽게굴복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나를 비판할자유를 고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 사람의 참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그들은 비판받을 용기가 없어 타인을 비판할 용기도 없다. 이들은 앞에서 서로 항상우회적으로 말한다.
나는 이렇게 판단받고 알려지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비난을 하는 입장이든, 비난을받는 입장이든 크게 상관이 없다. 내 생각들이 빈번히 자가당착에 빠져 자가비판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해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나는 그들의 비판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주변에 우리가 자기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우리가 주저하면 모욕당했다고 여기는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거만한 사람과는 관계를 끊는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43 수시로 의심하고 나 자신을 경계한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아느냐?”라고물었더니, 그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것 중에 가장 큰부분이 우리가 모르는 것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즉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지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플라톤도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꿈꾸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모른다. 거의모든 고대인들은 ‘우리의 지각이 제한적이고 지성이 미미하며 생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도, 인지할 수도, 깨달을수도 없다.’고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그러나 우리의 후각이 더 예민했더라면 타인의 체취보다 자기 자신의 체취가 더지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강제성 없고 개인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이를 드러내고, 내가 할 일을 규정해다른 사람들도 그 일을 알게 하면 강제성이생기는 듯하다. 할 일을 언급함으로써 다른사람들과 약속을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계획에 대해 말을 아낀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47 내가 바보일 뿐이라는사실을 배운다
나는 키케로보다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나는 타인의 논리를 수긍할 때 그가 새로이 알려준 사실보다는 그 사실에 대한 나의 무지함에 대해 배운다. 그리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는 나의 우둔함과 왜곡된 이해력을 배울 때 전체를 개선하기 때문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공간이나 사람이 나를 넘어지게하는 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행동에 대해 어디서나 조심하며 나를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 단순히 우리가 바보짓을 했거나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바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훨씬 위대하고 중요한 가르침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48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반성하고 사색에 온전히 몰두할줄 아는 사람에게 명상은 완전하고 강력한수련법이다. 나는 내 정신을 배불리기보다는 단련시키기를 더 좋아한다. 자기의 정신을 따라 생각을 지키는 것보다 더 쉽거나 강한 작업은 없다. 위인들에게 ‘산다는 것’은곧 ‘생각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자기 업으로 삼는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묵상보다 오랫동안전념할 수 있는 일은 없는데 이것은 자연이준 특혜다. 일상적으로 더 쉽게 할 수 있는일들도 그토록 오래 하지는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상이란 신들이 하는 일이며 우리가 명상을 통해 지복을 누리듯 신들은 명상으로 천복을 눔린다.”라고 말했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우리는 분노를 감춤으로써 그것을 더 키운다. 선술집에서 눈에 띌까 두려워 구석에숨었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에게디오게네스Diogenes가 말했듯이 “뒷걸음질칠수록 더 앞장설 뿐이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지혜로운 태도를표방하고자 심연의 저의를 억누르는 것보다하인의 따귀를 갈기는 편이 낫다. 그리고 나를 희생시켜가며 내 격정을 숨기기보다는내 감정들을 느껴보는 게 좋다. 바람을 쐬고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면 감정은 완화된다.감정의 날카로운 끝이 우리를 향해 굽어 있기보다는 외부를 향해 있는 것이 낫다.
“드러나는 결함은 차라리 덜 심각하다.정말 위험한 결함은 건강한 기색을 하고 숨어 있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또한 어떤 단어가 쓰였는지는 기억나지않을 만큼 말의 요지가 가장 주목받고 청자의 기억에 충만히 남기를 바란다. 글로 쓰든입으로 말하든, 내가 좋아하는 화법은 단순하고 꾸밈없는, 맛깔나고 활력 있는, 간결하고 정밀한, 격렬하거나 거칠지 않고 섬세하게 잘 다듬어진 화법이다. 귀에 꽂히는 표현이 가장 좋은 표현이다.
몽테뉴 [몽테뉴의 수상록]
5. 연관 지어 읽어 볼만한 책 한 권을 뽑는다면?
: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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