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청 가능한 독서모임
[선착순] 26년 3월 돈버는 독서모임 - <돈의 방정식>
독서멘토, 독서리더


사랑하라, 한번도 상치 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시집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난 류시화 신드롬이 일어났던 기억이 있다.
소설은 좋아했지만
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까지 시집을 읽었을 정도니까
그 때 그 시집이 류시화작가가 직접 쓴 시는 아니었지만
교과서 속
‘공부’처럼 배우던 시
‘느껴야 할 점’과 ‘생각해야 할 내용’이 이미 정해져있었던 시와 다르게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에 따라
아무렇게나(?) 읽어지는
쉽게 와닿는 시가 생경한 동시에 흥미로웠다.
그렇다고
그 뒤로 시가 막 좋아졌다.
그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류시화’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시는.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일찍일어나는 새가 벌레는 잡는다
그런데
그럼
벌레는 늦게 일어나야 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새롭게 기존의 것들을 뒤집어보는 문장들이
나는 특히 마음이 갔다.
지금도 그렇고.
여튼.
이번 책도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읽은 류시화님의 책!!
시집은 아니지만
조용히 내 마음을 들어다보게 한다.
나에게는 참 서툰 일이라서 자주 이런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함.
=>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면 괜한 남탓 상황탓으로 삶을 낭비하지않는다는 관점이 새로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 또한 그러한 일에 시간을 쓰지 않도록 말을 아끼고 신중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아이에게있어서가 그런듯.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본 세상과 다르다. 나의 편협한 경험으로 아이의 날개가 펼쳐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생각하자.
=> 상처라고 여긴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이라는 말이 많이 와닿았다. 마음의 상처는 내가 가진 여러 마음 중 부족하고 못난 부분을 파고들어서 나에게 그런 못남과 부족함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몸의 상처에서 오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는데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몸을 함부로 막 쓴다. 일부러가 아니라 아픔을 느끼지 못하니까 어떻게 내 몸을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는거라고..어떤 다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문장을 읽고 그 부분이 생각났다. 마음의 상처 덕분에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게 되고, 그게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는 여정이라는 의미라고 이해가 되었다.
=> 과정이 없으면 길 끝의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건 욕심이고 다른사람이 해놓은 것을 결과만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더 깊은 진흙탕 속으로 나를 밀어넣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힘들 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너바나님의 말씀 ‘대가를 치르세요’ 와 같은 말인데….. 참 다르게 표현해내신 류시화님. ㅎㅎㅎㅎ
=>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누군가!!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렇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첫번째 사람은 ‘부모’일 것이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이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지만 ‘아이가 그렇게 느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아이가 그렇게 느꼈을까? 아닌 것 같다. 나는 한없이 따뜻하고 너그러운 엄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해놓은 틀에 아이가 맞춰지길 바라며 몰아치는 엄마도 아니었지만.. 지금(지금은 많이 발전함)보다 더 어리고 철없는 엄마였을 때 나도 아이에게 크고 작은 ‘의심’의 순간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뭘 잘해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건가? 하는 의심으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참 후회된다.
=> 이 문장들 앞에는 자신에게 부여된 고정된 명사인 직업이나 직책, 즉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과 이미지를 나의 존재로 착각할 때 공허가 싹튼다는 내용이 있었다. 내가 무엇도 아니라는 것에 집중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러한 역할이 나에게 부여하는 장점도 있긴하지만 (책임감이나 성장에 대한 열망 등) 그것에 매몰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 나의 품사가 ‘동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언젠가 미래의 꿈을 이야기 할 때 ‘교사, 의사, 유튜버.. ’처럼 명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아픈 사람을 돕는 사람, 영상으로 메세지를 주는 사람’ 등 동사로 표현할 때 더 시야가 넓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문장을 통해 그러한 사고의 전환이 비단 아이들의 꿈에 한정된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모습도 동사여야 한다.
=> 나에게 찾아오는 여러 감정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면
한발 물러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내용.안녕 슬품아, 안녕 두려움아,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그 감정과 나를 떼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김춘수의 시에서 나오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와는 다른 효과 ㅎㅎㅎㅎ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찾아오면 꼭 해봐야겠다.
=> 네 인생의 주제가 뭐야?라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주제는 뭘까? 진실한 한 문장은? 진실한 한 마음은?
내 인생의 주제는 ‘부자’일까? 아니 그런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떠오르는 단어는 ‘자유?'
뭔가 더 구체적인 게 필요한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음..
이상적인 작업 환경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것도 탄생시키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나는 수십 명이 오르내리는 동네 빵집의 이층 테이블, 내가 사는 세상의 작은 모퉁이에서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와서 아는 체를 했지만,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하고 ‘류시화는 지금 인도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누군가의 선택 앞에서 정답을 알려주려는 욕구를 한번 더 생각하기
=> 조언이 하고 싶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이건 정말 상대방에게 유용한 조언인가, 아니면 내가 겪은 불안에 기인한 말인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을 키우는 환경 만들기
지금의 나를 ‘명사’가 아닌 ‘동사’로 정의하기
=>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 어떤 태도로 살았는가?
불완전함을 포함한 ‘흐르는 나’로, 감정에 이름 붙이면서 메타인지하기
댓글
지니플래닛님에게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인기🏅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