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상세페이지 상단 배너

애쓰지 않아도 봄은 온다.

4시간 전 (수정됨)

 


[투자 관련 에세이] 애쓰지 않아도 봄은 온다. 

 

유학 시절, 타국 땅에서 고락을 함께하며 형제보다 가깝게 지냈던 아끼는 후배가 하나 있다. 귀국 후 그는 가구 사업에 뛰어들었다. 워낙 성실하고 감각이 남달랐던 터라 사업은 금세 궤도에 올랐다. 서울 근교에 웅장한 쇼룸을 짓고 직원을 여럿 고용할 정도로 그의 사업은 잘 되었다. 그는 과거 직장 생활에서 느꼈던 고단함을 잊지 않았다. '사람이 자산'이라는 신념으로 직원들에게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명절이면 봉투가 두둑한 보너스를 챙겼고, 대기업 못지않은 복지를 제공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는 자신이 베푼 선의가 견고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처참한 배신이었다. 가장 믿었던 직원이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해 종적을 감췄다. 돈도 돈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뽑혀 나간 것이 더 치명적이었다. 공들여 쌓아 올린 성은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졌고, 그는 깊은 환멸과 상실감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이후 몇 년간 그는 사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 채, 그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폐인처럼 지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의 뒷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시리게 했다.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생존의 위협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을 때,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작은 온라인 상점을 열었다. 과거처럼 화려한 쇼룸을 운영할 자금도, 사람을 믿을 용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낡은 사무실 구석에서 '패브릭 소파' 하나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로 했다. 선택지가 없어서 내린 절박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발을 내딛자마자, 전 세계를 집어삼킨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오프라인 기반의 가구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며 곡소리를 낼 때, 역설적이게도 '집콕' 문화가 확산하며 인테리어 수요가 폭발했다. 반려동물 가구가 급증하며 오염에 강한 그의 패브릭 소파는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치밀한 시장 분석이나 시대를 읽는 통찰의 결과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등 떠밀리듯 선택한 외길이 시대의 거대한 파도와 완벽하게 맞물린 것이었다. 그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대한 부를 쌓으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시지프스의 형벌 같았던 나의 2010년

 

후배의 극적인 삶의 궤적을 지켜보며,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터널인 2010년을 떠올린다. 그해 초,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여의며 나는 삶의 이정표를 잃었다. 슬픔을 갈무리할 새도 없이 출근해야 했던 직장인의 비애였을까.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영혼은 늘 구천을 떠돌았고, 집중력이 흐려진 탓에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뻔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다행히 평소 나를 아끼던 선배의 도움으로 위기는 모면했지만, 조직에 커다란 폐를 끼쳤다는 자책감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나를 찔러댔다.

상사의 배려로 MBA 과정을 마치고 복귀한 내게 맡겨진 임무는 해외 법인 관리였다. 말이 좋아 '관리'지, 실상은 해외 곳곳에서 터지는 온갖 사건과 사고를 수습해 보고하고, 윗분들의 날 선 질책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간 방패막이 역할이었다.

 

보고서가 쌓인다는 것은 곧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시차 때문에 밤낮없이 울리는 메신저와 메일, 그리고 매일같이 쏟어지는 상사들의 짜증과 폭언을 견뎌내야 했다. 그 화살이 온전히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매일 마주하는 상사의 찌푸린 미간 앞에서 내 멘탈은 가루처럼 바스라졌다. 설날 밤 10시에도 상황 보고서를 내라는 독촉에 가족들을 뒤로하고 근처 PC방으로 달려가 자판을 두드려야 했던 삶. 끝도 없이 반복되는 가혹한 일상 속에서 결국 내 몸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어느 점심시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허리 쪽에 벼락이 치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난생처음 겪는 극심한 고통에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보도블록 위로 고꾸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안간힘을 다해 턱을 붙잡고 일어서려 애쓰던 그 찰나, 차가운 보도블록의 촉감과 함께 서늘한 깨달음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아, 여기서 더 버티다가는 내가 먼저 죽겠구나. 이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구나.'

며칠 뒤, 나는 사표를 던졌다. 부장님의 만류와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도 이미 산산조각 난 내 마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살기 위한 탈출이었다.

 

 

투자와 인생, 결국은 ‘때’를 기다리는 일

 

이제 쉰(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인생에는 분명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내가 아무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운명의 신이 허락한 '때'가 아니면 일은 꼬이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 시기가 도래하면, 힘을 빼고 설렁설렁 일하는 것 같아도 모든 상황이 나를 돕는 것처럼 술술 풀린다.

 

주식 투자 역시 인생의 이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기업의 가치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적기라 판단해 매수 버튼을 눌러도, 내 손을 떠난 주가는 비웃듯 지하실로 흘러내릴 때가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밤을 새워 차트와 재무제표를 파헤치며 노력해 보지만, 노력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 통장 잔고를 보며 처절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럴 때는 억지로 노력을 더하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우리가 애써 밀어내지 않아도 계절은 흐르고 봄은 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그저 다가온 봄기운을 마음껏 만끽하면 그뿐이다. 지금 내 삶에 혹독한 눈보라가 치는 겨울이 찾아왔다면, 조만간 눈을 녹이며 다가올 따스한 봄이 있음을 알기에 더는 좌절하며 자신을 갉아먹지 않는다. 반대로 지금 내 삶이 찬란한 봄날의 정점에 서 있다면,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겨울의 한기를 준비하며 겸손히 고개를 숙일 뿐이다.

 

인생의 사계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나의 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내가 고통스러운 삶의 파도와 변동성 심한 투자 세계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며 배운 가장 값진 지혜다. 결국 투자의 성패도, 인생의 행복도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계절을 기다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


실행해보자
4시간 전

손주부TV님의 아픈 경험과 삶의 지혜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의 사계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나의 자리늘 지키며 '때' 를 기다린다"는 말씀 속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탑슈크란
2시간 전

비우면 채워진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순리대로 맡기다 보면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봅니다. 감사합니다.

커뮤니티 상세페이지 하단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