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에서 기버가 되기로 마음먹은 날
새 부서에서 깨달은 것들
올해 2월에 저는 새로운 부서로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환경도, 사람도, 하는 일도 모두 낯설었습니다.
“일단 내 자리부터 제대로 잡자. 내 업무부터 확실히 해야 인정받을 수 있지 않나.”
처음에는 이 생각 하나만 붙잡고 버텼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새로운 보고 체계, 다른 스타일의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솔직히 제 하루하루는 ‘생존 모드’에 가까웠습니다.
누가 옆에서 힘들어하는지, 누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눈앞에 있는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보고서 양식이 손에 익고, 부서 업무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 대부분 저보다 최소 5년은 어린 후배들이라는 사실을요.
함께 일을 하면서 그들의 업무 처리 방식을 지켜보다 보니
제가 예전에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보고서를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우선순위를 잡지 못해서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섞어 처리하고,
상급자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들.
그 모습 속에 과거의 제 그림자가 겹쳐졌습니다.
“아, 나도 저랬지. 나도 저걸 혼자 깨우치느라 참 오래 걸렸지.”
그때부터 저는 자연스럽게 옆에서 조금씩 돕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사소한 이야기부터였습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하면 보시는 분들이 훨씬 이해하기 편할 거예요.”
“이 보고는 먼저 ‘결론’을 말하고, 그 다음에 ‘근거’를 붙여보는 게 좋아요.”
“이 업무는 사실 이 부서 입장에서는 이런 의미가 있어서, 이 포인트를 잡고 진행해보면 좋아요.”
누군가를 가르친다거나, 거창한 멘토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전의 저에게 누군가 한마디만 해줬어도
훨씬 수월했을 것 같은 것들을,
후배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빨리 건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업무에 막혀서 혼자 고민하던 후배가
이제는 슬쩍 제 자리로 와서 “이거 이렇게 해봐도 될까요?”라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보고서를 보내기 전에 먼저 제게 보여주며
“선배님, 혹시 보시기에 빠진 부분 있을까요?”라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는데,
후배들이 먼저 다가와 “이 부분은 제가 준비해둘게요”,
“저 부분은 제가 자료 찾아볼게요”라며 도와주겠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팀 안에서 기버의 역할을 조금씩 하고 있었구나.”
새 부서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저는 온통 ‘나’에 집중해 있었습니다.
내 커리어, 내 성과, 내 평가. 하지만 후배들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아끼지 않고 나눌 때
그게 결국 나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후배들이 저를 신뢰하고, 저에게 의지하고, 제가 어려움이 있을 때 도와주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가 제가 혼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산’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숫자로도, 평가서 한 줄로도 다 표현되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가짐을 조금 분명하게 바꾸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 남 일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였다면,
지금은 “나는 이 팀에서 어떤 기버가 될 수 있을까?”를 먼저 떠올리려고 합니다.
후배들이 막히는 지점을 보면 그냥 ‘어렵겠구나’ 하고 지나치지 않고
한 번쯤은 옆에 서서 같이 화면을 보며 방향을 잡아주려 합니다.
보고서 하나를 보더라도, 단순히 빨간 펜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이 문장의 의도가 뭐야?”, “이 보고를 받는 사람이 제일 궁금해 할 건 뭐라고 생각해?”
같은 질문을 던져보며 스스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선택이 항상 편한 길은 아닙니다.
내 할 일만 해도 바쁜데,
추가로 늘어나는 설명, 피드백, 검토의 시간은 분명 에너지를 씁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솔직히 있습니다.
특히 일정이 몰려 있을 때는
잠시 기버 모드를 끄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길을 계속 가보고 싶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저는 이미 월부를 통해 ‘기버’라는 개념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버는 결국 장기적으로 더 큰 신뢰와 기회를 얻고,
같이 성장하는 사람들을 곁에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라는 공간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둘째, 후배들의 성장이 결국 제 성장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려준 방식으로 후배가 더 좋은 성과를 내면
팀의 성과가 오르고, 그 팀의 일원인 저에게도 파급 효과가 돌아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후배가 또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이 조직 안에 ‘기버의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셋째, 저 자신이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같이 고민해주던 선배”,
“힘들 때 먼저 손을 내밀어주던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흔들릴 때가 있을 겁니다.
당장 눈앞의 평가나 성과에 쫓기다 보면
다시 ‘나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오늘 이 글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더라도
쉽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기버의 행동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방식이 제게 가장 자연스러운 ‘기본값’이 되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새 부서에서 저는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일도 배우고, 사람도 배우고, 기버로 사는 법도 배우는 중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마음속에 새겨두려고 합니다.
“회사에서도 기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나와 팀, 그리고 다음 세대의 후배들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길이다.”
오늘도 저는 제 자리에서, 후배들의 화면을 한 번 더 같이 들여다보며
기버로서의 한 걸음을 더 내딛어 보려고 합니다.
항상 응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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