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월부 온 거 아닌가요? 혼자 공부하고 임장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투자는 결국 내 돈으로 내가 결정하는 건데, 왜 이리 동료, 동료 하는 건가요?”
혹시 이런 의구심을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저 또한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동료보다는 투자시간을 더 챙기려 했던 철저한 '효율 중심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투자 공부 5년 차, 몇 번의 매수/ 매도/ 그리고 개인적인 부침을 겪고 난 지금의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동료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고 이미 시장을 떠났을 겁니다.”
오늘은 그 동안 체감한 ‘투자의 길에서 동료가 단순한 인맥 이상의 가치를 갖는 3가지 이유’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나눠보고자 합니다.
1. 동료는 ‘롱런’의 엔진입니다.
2. 동료는 나의 ‘인지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정밀한 백미러입니다.
3. 동료는 나조차 믿지 못하는 나의 '잠재력'을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투자는 한두 채 매수하고 수익을 실현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꾸는 비전보드—순자산 30억, 50억, 혹은 100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매수와 매도, 그리고 긴 보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레이스입니다.
이 긴 여정에서 기쁜 날만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옆을 보세요.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동료가 있습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햇살이 좋아서 이불 잘 마르겠어요!"라며 엉뚱한 농담을 던지는 동료,
폭우 속에서도 "이제 더위는 좀 가셨네요!"라며 뒤집힌 우산을 가리키며 깔깔 웃는 동료.
혼자라면 '고난'이었을 순간들이 동료와 함께라면 '에피소드'가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내 마음을 잠식하기 전에, 긍정의 에너지를 가진 동료가 그 자리를 웃음으로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마음은 동료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투자가 목전에 다가오면 평소에 배웠던 객관적인 기준들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이른바 '매물과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죠.
저의 1호기 투자가 떠오릅니다.
몇몇 소위 ‘월부단지’에 꽂혀 시야가 굉장히 좁아져 있었습니다.
급매가 떴다는 연락에 업무도 제쳐두고 KTX에 몸을 실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 때 저를 멈춰 세운 건 한 동료의 차분하지만 묵직한 조언이었습니다.
"부총님, 그 단지 좋죠. 하지만 우리 지금까지 앞마당 왜 만들었나요? 더 넓게 봐야죠. 저랑 같이 전수조사 다시 시작해 봐요."
부끄럽게도 저는 그때까지 강의에서 배운 '전수조사'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동료의 조언 덕분에 앞마당 전체를 펼쳐놓고 차분히 살펴볼 수 있었고, 결국 처음에 꽂혔던 물건보다 훨씬 좋은 물건을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마지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fMRI 등 뇌 영상 기술을 활용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뇌에서 실제로 주도권을 쥐는 것은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임을 밝혀냈다.
감정이 먼저 ‘좋다’, ‘싫다’는 방향을 정하면, 이성은 그 후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이성 중심주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 <라이프코드 LIFE Code>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지음) 중에서
인간의 뇌는 감정이 먼저 결정을 내리고 이성은 그 뒤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 아무리 수련한 투자자라도 자기 자신에게 100% 객관적이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동료는 내가 좁은 시야에 갇혔을 때, 진심으로 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 지금 감정에 치우쳐 있어"라고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입니다.
투자의 길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하락장도, 세금도 아닙니다.
바로 '자기 불신'입니다.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자산을 만들 수 있을까?"
"주말마다 이 고생과 비용을 들여서 하는 게 맞는 걸까?"
이런 의문들은 근거가 없기에 더 지독하게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 불신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는 건, 나보다 나를 더 신뢰해 주는 동료의 시선입니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고 좋아하는 운동을 강제로 쉬게 되었을 때 저는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의욕은 사라졌고 생각은 자꾸 어두운 곳으로만 향했습니다. 실제로 쉽게 지치는 등 컨디션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를 다시 궤도로 올린 건 화려한 격려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희 반 반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먼저 연락해 주었습니다.
본인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먼저 꺼내며 마음을 열어 보여주었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조건 없는 믿음'이 저로 하여금 다시 신발 끈을 묶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나를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말라고 손을 내밀어 주는 동료가 있다는 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여분의 라이프'를 여러 개 가지고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동료가 곁에 있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좋은 동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돈의 그릇은 마음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크기를 키우려면 ‘마음이 찢어지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커진 그릇으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품은 사람들은 나에게 훨씬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 갱지지 튜터님
타인을 내 마음에 들이는 일은 때로 귀찮고, 때로는 상처받을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나에게 동료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의 이면에는 사실, ‘나는 좋은 동료가 될 용기가 없어’라는 주저함이 있진 않나요?
가끔 마음이 찢어질 수도 있겠지만 ‘한 번 해보자’는 용기를 내어 보셔요.
우리에게 과거 누군가가, 그렇게 먼저 용기를 내어 줬듯이요 :)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먼저 짧은 메시지 하나 건네보시면 어떨까요?
"그때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여러분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라이프' 한 칸이 될지도 모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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