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강의
실전준비반 - 1억 더 오를 아파트, 임장・임장보고서로 고르는 법
너나위, 자음과모음, 김인턴, 코크드림

실전준비반 - 1억 더 오를 아파트, 임장・임장보고서로 고르는 법

나는 월부에 21년에 들어왔다.
눈팅하고 임장을 어설프게 다녀보다가
22년 7월에 실준 30기로 첫 강의를 들었다.
그때는 상승장이 끝난 직후로 거래가 끊어진 상태였다.
전고점이 찍혀있고
그 이후 거래가 없어서
어디까지 하락인지 알수 없었던 시기였다. 누군가는 전고 대비 50%를 하락을 말했고 누군가는 30% 하락을 말했다.
강의를 듣던 우리에게 너바나님은 공부하라고 했다.
1년간 공부하고 투자하라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23년 7월이 되었다
23년 2월, 3월에 용감한 퍼스트 펭귄들이 전저점을 찍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무서웠다.
18년 19년 20년 들어왔던 선배들이
역전세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임대차 3법으로 전세가가 폭등하자
높은 전세가에 기대어 작은 갭으로 투자한 선배들은 23년 장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너바나님, 너나위님, 밥잘님, 코크님 등등 무수한 튜터님께서
폭풍우가 불면 피하라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역전세를 막으라고
누구도 이 싼 시기에 물건을 사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투자를 하라고 말할 여유가 없었다.
옆에서 역전세에 괴로워하는 선배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강의에서는 역전세 경험담들이 빠지지 않았다. 코크님의 역전세담은 아직도 기억난다. 도미노처럼 안양의 역전세를 막지 않았으면 줄줄이 다음달, 다음달, 돌려줘야할 역전세금이 몇천 단위로 있었고. 다 합치면 억대의 역전세금이 있었다고.
시간이 흘러 23년 가을. 투자공부를 한지 1년하고도 3개월이 다되어 가도록 나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투자금에 맞지 않는 지역을 다니고
강의에 나오는 지역을 다녔다.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투자를 하지 못했다.
무서웠다
선배들이 역전세를 겪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투자를 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튜터님들은 비싼 취미하지 말라고 했다.
공부를 했으면 결과를 내라고 했다.
그리고 등을 떠밀었다.
나는 유리공을 관리하지 못하고 월부를 떠났다.
앞마당은 10개가 넘어갔던 시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4년
동료들의 투자소식이 들려왔다.
누구는 성동에, 누구는 천안에, 누구는 부산에 투자를 했다.
누구는 월부를 떠나 똘1 커뮤니티에 들어갔고 역전세를 안겨주었던 다주택 시스템을 원망하며 영끌을 해서 강남에 들어갔다.
대치 입성한 동료의 축하 집들이 약속이 잡히던 날
유리공을 깨가면서 공부했지만 결국 투자가 아니라 소비를 했다는 사실이 못내 괴로워
집을 사기 위해 다시 월부에 돌아왔다.
유리공을 깨는 값비싼 비용은 지불했는데 편익을 얻지 못해서 너무 억울했다.
그만두더라도 집 사고 그만두겠다.
집을 샀다.
비교평가를 한다고 했지만 제대로된 비교평가가 아니었다. 투자금 +1억부터 보고 좋은것 부터 보라 하셨다.
내 종잣돈은 1.5억이었고 1.5으로 서울4급지에서 내가 살수 있는 집은 북한산 아래 아니면 관악산 아래였다.
더 있다고 더 넓게 보라고 튜터님들이 말씀해주셨지만 내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신투기에서 임장 갔던 지역을 매코에 넣으면서
얼결에 1호기를 했다. 북한산도, 관악산도 아니고 경기도에 투자를 했다.
그때가 24년 6월이었다.
전세가 없어서 잔금을 길게 11월로 잡았다.
6월에 집을 사고 여기저기서 축하를 받았는데 잔금이 5개월뒤라 아주 오래오래 천천히 축하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불안했다.
매물털기도 안하고 사버린 집이었다.
당장이라도 팔아버릴것 같았다.
가계약금 보내자마자 불안했다.
단 하나 그때 내가 버텼던것은
매코를 통과한 매물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그때부터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내가 산 집에 대해 확신을 가지기 위해 공부를 했다.
집 사고 투자판을 떠나겠다고 샀는데
집을 사서 투자판을 못떠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9월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규제가 발표되었다.
6월에 산 내 물건은 11월 잔금이라
9월 규제를 맨몸으로 맞게 되었다.
튜터님들은 주전 물건을 사거나 올 현금 세입자를 찾으라는 조언을 하셨지만
나는 이미 매도인과 계약을 마친 상태였고
지금은 주전 맺고 허그 보증기한 3개월 정도로 이사 날자를 조절하지만
그때는 주전을 내려 앉힌다는 것도 매도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주전하고 몇개월 뒤에 전세보증대출이 나오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일잘러 부사님은 매도인을 설득하여 주전을 앉혔고, 매도인의 대출을 갚기 위해 본인의 사업자대금 1억을 빌려주면서까지 거래를 성사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잘러 부사님이셨는데 그때의 나는 부사님이 일잘러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다.
투자의 모든 단계는 배우는 것과 직접 겪어보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규제도 지나보면 대응방법이 나오지만 막상 닥쳤을 때는 세상 막막했다.
그리고 규제를 생짜로 만난 나는 전세금 낮췄다.
더 낮추고, 더 낮추고, 더 낮춰서
해당 지역에서 나보다 낮은 전세가 없도록 낮췄는데
그래도 대출을 받지 못할까봐 임차인들은 내 집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투자자라는 이유로 동층향이 더 별로인 매물를 선택했다.
정말 소용없다는걸 알지만 “저 너무 속상해요”라고 부사님에게 말했다.
처음 투자금은 1.5였는데
최종 투자금은 신용대출까지 끌어서 2.2억이었고 세금과 복비를 내고 나니 2.3억이 들었다.
계약을 했던 24년 6월에 투자금 2.2억이면 성북구 길음 뉴타운을 볼 수 있었다.
잔금 안늘리고 바로 계약했다면 규제도 피해갔을텐데.. 이런 생각을 수 없이 했다.
이 돈이었으면 북한산 관악산 아래 아니고 동대문구도, 서대문구도, 평지도 가능했을텐데… 이 생각도 수없이 했다.
길뉴와 1호기 수익률과 수익금을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마다
혹시나 내가 신용까지 끌어서 길뉴를 샀으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규제를 맞았으면 나는 시장에서 사라졌겠다 생각한다.
내가 1호기를 위해 24년 6월에 부동산을 찾아갔을 때도
부사님들은 한발 늦었다고 했다.
이미 저렴한건다 팔렸다고 했다.
재미있는건 지금도 늦었다고 한다.
이미 올랐다고 부사님들이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23년 시장에 있었지만 전저점을 잡지 못했고
거래가 풀리던 24년 초반에도 잡지 못했다.
그러니 늦은거 맞다
하지만 26년에 보는 그때는 투자하기 참 좋은 시기였다.
26년도 29년에서 보면 투자하기 좋은 시기일수 있겠다.
지금 같이 공부하는,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것일뿐이니까. 지금도 지나고 나면 어떻게 보일지 현재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24년 11월 임차인의 도배까지 맞춰주고
매일같이 1호기 집을 보았다.
출근할때 보고 퇴근할때 보았다
한달에 거래가 한두건 찍혀있었는데 그걸 보는게 삶의 낙이었다.
내가 산 금액보다 높으면 예스
내가 산 금액보다 낮으면 새드
한참을 박스권에 갖혀 있었다.
높은 실거래를 보면 로얄 동층향이었고
낮은 실거래는 비선호 동층향이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대통령이 바뀌고
대출규제가 비율이 아니라 신박하게도 6억이라는 정액으로 묶였다.
한달에 한두달건 매매거래가 찍히는 우리단지에 거래가 10개가 넘게 찍혔다.
25년 6월이었다.
대출이 6억에 묶이자 9억이하 단지들에 거래가 집중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금액이 올랐다.
곧이어 토허제가 시행되었다.
서울이 불타기 시작했다.
나는 임보를 뒤져서 내가 사지 않은 관악산과 북한산 아래를 살펴봤다
경기도 30평이 서울 20평보다 나을까 궁금했다.
세상에 서울이 수익금도 수익률도 높았다.
그때가 26년 1월이었다.
나는 잘못한걸까 생각이 들었다.
가계약금을 보냈던 24년 6월의 나와
트레킹 결과가 예상과 달라서 놀라던 26년 1월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26년의 나는 수익을 본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24년 튜터님들은 사라고 했다.
그냥 공부좀 그만하고 사라고.
행동하냐 안하냐가 중요한 거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그때 시장이 너나위님이 말한 “절대적 저평가”시장이었다.
절대적 저평가는 대구같은 지방에나 있는줄 알았는데
내가 지나간 곳이 절대적 저평가 시장이었다.
수도권이지만 어느것을 사도 올랐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은 지금이 절대적 저평가 시장인지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튜터님들도 집을 사라고만 했지 “절대적 저평가 시장”이라고 말해주지 않으셨으니까. 절대적 저평가 시장은 지나봐야 안다.
이번 강의에서 삼성전자 6만원에서 사서 9만원에 판 사람이야기가 공감이 갔다.
나중에 빠지면 살꺼야
나중에 빠졌다
22만갔다가 18만 까지 갔다.
시장은 절대 속에서는 알수 없다.
벼락거지의 서러움으로 나를 월부로 이끌었던 21년이 상승장의 꼭지. 시장의 여름
이후에 이어졌던 적막했던 22년 23년 시장
역전세로 어려움이 폭우처럼 쏟아지던 선배들의 시장과 그 역전세를 맞은 사람들이 던지는 매물이 혼재했던 전저점이었던 23년 시장.
더 떨어질꺼라 폭락을 말했던 그 시장이 겨울
퍼스트 펭귄들이 전저를 찍고, 역전세에 괴로워하던 선배들이 떠나고, 햇병아리 투자자 지망생들은 두려움에 떨던 시기가 지나고 보니 봄
지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는것 같다.
나는 내가 사이클 위에 있다고 단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니 사이클 위에 있다.
시장이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23-24가 사실은 봄이었던걸
봄에 있었지만 봄 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은
아주 느린 수강생이
이제야 복기를 해본다.
시장은 변하는데 시장이 변화는 시장 속의 작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조심조심.
자산을 가진 사람은 더 조심조심
자산이 없는 사람은
시장은 알 수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그러니 모두들 화이팅이다.
감사합니다.
댓글
네뜨님의 초보 시절ㅎㅎ 귀엽고 친근하네요💗 최근 1호기를 한 입장으로서 공감이 많이 됩니다. 아직 100% 확신이 없고 불안하기도 하고 부동산 정책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기도 해요😂🫠 저도 언젠가는 지금의 네뜨님처럼 똑부러지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공부 계속해야 하는데ㅋㅋㅋ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인기🏅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