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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무주택 부모님 내집마련을 도우며 깨달은 숫자보다 중요한 것

26.05.12

최근 서울 집값이 많이 오르고, 덩달아 내집마련을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이유 때문에 망설이시는 분도 있으실텐데요. 

가고 싶은 집의 가격이 많이 올라서
대출 받는 것이 무서워서
준비하다보니 너무 복잡해서 

혹시 공감 가시나요? 

사실 저희 부모님이 그러셨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30년 동안 내집이 없어 전세를 찾으며 여러 번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최근에 어머니의 은퇴를 앞두고 드디어 내집마련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부동산에 대해 계속 공부를 했던터라 부모님의 내집마련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집마련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내집마련을 도우면서 부동산 공부를 하지 않은 분들께서 내집마련이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저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혹여나 내집마련을 하거나, 누군가의 내집마련을 돕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는 그냥 대출이 싫다 

부모님의 내집마련에 여러 조건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는 대출을 하지 않겠다였어요. 

"요즘 누가 대출 없이 집을 사요..." 

부동산을 공부하면서 몇 천만원 차이로도 자산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대출 없이 집을 산다는 부모님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같이 임장가고 매물도 보면서 부모님께서도 마음에 들어하셨던 단지가 있는데요. 4000세대가 넘고, 조경이 너무 잘 관리되어있고, 커뮤니티가 없는게 없는 신축 단지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출을 1억 정도 받아야 한다는 말에, 

"아들아, 나는 대출을 죽어도 싫다. 남은 여생에 빚 갚으며 살고 싶지 않아." 

물론 마음 편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부모님의 말씀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만큼 좋은 단지이고, 지금 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집은 창피해서 못 살 것 같아 

조금은 가격대를 낮춰서, 나름 입지 좋은 구축 아파트를 보러갔습니다. 

강남을 30분대로 갈 수 있는 지하철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역세권 단지였습니다. 동시에, 지하철역 주변 아웃렛, 대형마트, 상권 등 주요 인프라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편의시설 또한 훌륭했습니다. 

저희 부모님 또한 지하철역 주변에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입구에서 단지 모습을 본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아들아, 여기 살면 아무도 집에 초대 못할 것 같아. 이런 집은 창피해서 못산다." 

'부동산은 입지가 중요해!' 라는 것을 지겹도록 들은 저로서는 단지 모습만으로 안가고 싶다라는 부모님이 의아했습니다. 

부동산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지와 주변의 모습이 중요함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이 아파트가(만) 좋다 

그렇게 두 아파트를 놓친 뒤에도, 더 많은 가성비 아파트들을 부모님과 같이 임장도 가고, 매물도 보면서 추천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 말이 튕겨져 나오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도 괜찮네, 그런데 이런게 좀 별로지 않니?"
음... 그런데 나는 이런게 별로야.”

"내가 보고 있는 아파트가 더 낫지 않니?"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두 분 마음에 쏙 드는 단지 외에는 귀에 담아두시질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여기, 저기 아파트를 추천하며 왜 좋은지 장황하게 설명하고, 지난 아파트 가격 상승을 보며 제 이야기 좀 들어 달라 호소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파트 아니면 안된다고 외치는 부모님의 강경한 모습에 더 이상은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럴 거면 저한테 부동산은 왜 물어보세요? 알아서 하시지!!!" 

물론 해당 아파트도 좋은 아파트였습니다. 하지맘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동산 공부한게 부모님께 큰 도움이 안되는구나... 현타 온다..."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실 부동산에 대해 점점 알면 알수록, 부동산에 대해 무지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울 아파트라도 사놨으면 내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망 서럽다..." 

매주 주말 임장, 새벽 출근, 저녁 늦게 귀가, 4시간 수면 등 빡샌 일정으로 살며 스스로 미래를 바꿔나가는 저랑 다르게, 

 

높은 부동산 가격과 잘못된 정책이라며 정부 탓을 하는 부모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은퇴 후 내집 하나 마련하겠다고 도와달라는 부모님의 부탁이 너무나 반가웠는데, 제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내집마련 과정에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화를 내며 연락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온 어머니의 장문의 메세지가 왔습니다.

"아들 신경써줘서 고마워. 엄만 네가 얼마나 잘해주고 있는지 알아. 도리어 네가 부담스러울까봐 고맙다는 말도 아끼고 있고든. 아침 일어나 생각해보니 네가 맘이 많이 상했겠구나 싶었다. 오늘도 힘차게 시작하셔." 

해당 메세지를 받고 눈물을 삼켰습니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가 되어 자식 하나 밥 먹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잘 키워주신 부모님을 기껏해야 부동산 공부를 했다고 원망했던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사실 부동산을 공부하기 전 항상 존경스러웠던 부모님이었습니다. 가정의 큰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큰 버팀목이 되었던 부모님인데 말이죠. 

제 주장을 강요한 것도 사실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은 여생을 부모님 두 분이 행복하게 잘 살기만 하면 되는 집인데 말이죠. 

그동안 제가 부동산을 너무 자산의 관점으로 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두 분이 원하는 아파트에 괜찮은 가격에 내집마련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매수세가 붙은 시장을 기민하게 살펴보며 이 가격과 컨디션이면 괜찮다는 판단 하에 매수를 결정했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겐 최고의 집은 아닐 수 있습니다. 더 오를 것 같은 좋은 집을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모님 두 분께는 그 집이 남은 여생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보금자리임을 확신합니다. 
 


혹시나 내집마련을 앞두고 계시거나, 누군가의 내집마련을 돕는다면 숫자만 보고 사람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내집마련까지 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

허씨허씨creator badge
26.05.12 13:58

부모님 내 집 마련 이야기 너무 감동적이고 공감됩니다. 언젠가부터 부동산이 누군가의 삶이 담겨있는 공간이라는 걸 저도 잊고 살더라고요. 두 분께서 노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보금자리로 이사가셨으니 댕부님도 기분 좋으실 것 같아요!!! 축하드립니다.

함께하는가치
26.05.12 13:58

댕님 정말 공감되는 이야기네요ㅠ 저도 최근에 가족의 내집마련을 도우며 단순히 아파트를 숫자로만 보았던 제 모습도 떠올라서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부모님 내집마련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도리밍
26.05.12 13:58

댕님 부모님 내집마련 축하드려요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어렵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고생많았고 그래도 결국 후회하지 않는 선택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ㅎㅎ 든든한 아들 잘 두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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