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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1편 - 경험복기) 월부를 만나기 전 나의 경험

26.06.20

 

  열반스쿨 기초반 1강에서 너바나님께선 복기를 하지 않는다면 성장할 수 없다고 하셨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복기 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겪었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23년 4월에 월부에 입문하여 23년7월에 내 집 마련(신혼집)을 했고, 24년 9월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해 25년 10월 서울에 1호기 투자를 했다. 본격적 공부를 시작한 건 1년 남짓이다. 나는  내 집 마련 한 것까지 포함하면 현재 두 채의 매수 경험과 한 채의 매도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복기하지 않았다. 사실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쓸 수록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글을 쓰는 느낌을 받았고 팩트보다는 감정적인 글이 되어가는게 느껴졌다. 그게 싫어 그만두었다. 생각해보니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 복기의 목적은 순전히 나의 성장을 위해서인데, 왜 보여주기 위한 복기글을 쓰고 있었던 거지? 

  Not A But B의 관점에서 부자들은 투자를 복기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장에 들어온 초보자인 나 따위가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비대한 자아를 만들어 냈고 스스로의 성장을 가로 막고 있었던 셈이다. 투자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특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금액을 들여 자산을 구매 했다. 그런데 내가 그 과정을 기록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래서 나의 성장을 위한 복기글을 써보려 한다. 오래 걸리더라도 좋다. 내가 투자하면서 겪었던 상황, 감정, 배운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해보자. 훗날 내가 부자가 되었을 때도 그때의 기록을 꺼내볼 수 있도록 기록하자. 이건 나를 위한 나만의 투자 일기이다.


  먼저, 첫 번째는 투자 복기글은 아니다. 월부를 만나기 전 큰 실수를 할 뻔 한 경험도 내 인생에 값진 경험이라 생각되어 되새기기 위해 제일 먼저 적기로 했다. 부동산을 알게 된 첫 번째 경험이었기에 또 배운 점이 있었기에 복기글에 함께 쓰기로 마음먹었다.

  월부를 만나기 전 나는 부동산 청약 당첨의 경험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청약당첨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역사적인 기회였다면, 나에게는 지옥의 입구에서 문을 여는 경험이었다. 2021년도 문재인 정권시절 나는 8년차 직장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취직을 해 이제 막 30대에 접어 든 청년이었다. 결혼 적령기의 나이가 되니 자연스레 집에 대한 관심이 생기던 차였다. 하지만 그때 시장은 요즘 말하는 FOMO에 빠진 사람들의 패닉바잉이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내가 거주하고 있는 대구도 마찬가지였다.(전국이 불장이었다)

  나 또한 굉장히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 올라간다고 뉴스가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여자친구(현 아내)와 결혼을 염두하며 만나기도 했었기에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아파트를 매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이러다 내 인생에서 집 못사는거 아냐?"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그렇게 청약을 모집하는 아무 아파트에 청약통장을 넣기 시작했다. 당시 대구는 신축 청약이 꽤 많이 나왔다. 먼저, 당첨되고 나서 고민하자는 밈(선당후곰)이 유행했는데 나도 거기에 휘말려버린 셈이다. 물론 내가 넣는 대상에 대한 꼼꼼한 검토는 없었다. 사실 그땐 뭘 봐야하는 조차 몰랐다. 당시 청약에 나오는 아파트들은 경쟁률이 굉장히 높았는데, 나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떨어질 때 마다 마음이 안좋았다. 마치 경쟁에서 늘 지고 있는 루져 같았다.그게 운이 좋은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청약을 계속해서 도전했고, 결국 21년 5월 한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내가 당첨된 아파트는 320세대의 소규모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총 2개동으로 49층짜리 고층 아파트였는데 나는 5층에 당첨되었다. 지나고 보니 5층에 당첨됐던게 정말 운이 좋았다. 고층이었으면 바로 계약을 했을 것 같다. 당시 여자친구와 나는 굉장히 큰 실망을 했는데 49층 중 5층인데다가 바로 앞에 빈 공터가 있었는데 언제든 건물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건물이 들어온다면 그 집은 앞이 꽉 막혀버릴 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또 기회를 놓쳐버릴까봐 계약을 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당시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여있어 대출이 많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분양가와 중도금 대출 이자를 열심히 계산해보니 모아 놓은 돈과 회사대출을 전부 영끌해야만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아직 그 계산한 엑셀파일을 종종 들어가본다) 그 주변에 이미 청약을 끝낸 신축 단지들이 플러스 피가 붙은 채로 분양권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고, 나도 나중에는 플러스 피를 붙여서 팔 수 있을거라는 욕심에 사로잡혔다. 5층이 내심 아쉬웠던 나는 아파트 매수를 포기 한다는 생각보다는 비슷한 가격에 더 좋은 분양권을 찾기 위해 대안을 찾아 해맸다. 그러다 몇개의 분양권 매물에 연락을 했고 +1억원이 붙은 분양권을 매수하기 직전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계약을 할 생각으로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휴일에 찾아가 설명해주기로 하고 근처 도장 집에 찾아가 인감도장을 만들었다. 그 도장 집 사장님은 나를 빤히 보시더니 젊은 총각이 인감도장을 만들때 늘 해주는 말이 있다며 말을 보태셨다. 그 말인 즉슨 작은 도장에는 도장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가 있는데 인감 도장에는 그 표시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도장을 찍을 때 제대로 된 방향을 맞추기 위해 바닥을 천천히 보며 시간을 끌면서 머리 속으로 이걸 찍었을 때 큰일 나는거 아닌가?하며 다시 생각하고 한숨 고르며 도장을 섣불리 못 찍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다.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그 얘기가 스치듯 떠올랐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분은 나를 잠깐 스쳐간 귀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분이 가르쳐 준 도장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를 가슴에 깊게 새긴다.

  휴일에 어머니가 계신 포항에 찾아가 내가 만든 계산서를 펼쳐놓고 한참을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결혼 적령기인 나를 위해 준비해 놓으셨다며 1억원을 지원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으로 목놓아 울었다.(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감정이 올라온다)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마련했을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참지 못했었던 것 같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집은 가난했다. 학창시절에는 작은 어촌마을 바닷가 바로 앞 아버지 친구들께서 급하게 만들어주신 컨테이너에서 살기도 했다. 파도가 많이 치면 마당까지 바닷물이 넘어오는 그 집은 너무 작았기에 내가 있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었다. 어머니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맞나?싶을 정도로 육체적 노동 강도가 높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다. 그녀의 직장 동료들 중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으며, 대부분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얼마 전 일의 후유증으로 어깨가 안좋아지셔서 큰 수술을 하시기도 했다.)그렇게 열심히 일하신 돈으로 시골마을의 작은 구축 아파트에 이사를 가게 됐을 때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직 핸드폰에 그 컨테이너 사진을 간직하고 계신다. 그때 독하게 이겨냈던 마음을 잊고 싶지가 않으신가보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시는 어머니에게 잘난것 하나 없는 나는 언제나 자랑스런 아들이었다. 빨리 취직해줘서 고마운 아들, 앞가림 잘해줘서 고마운 아들, 가끔식 그런 표현을 하실 때면 부끄러움에 얼른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그녀 늘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 본인이 더 해주지 못한 것에 죄의식이 있기에 나의 결혼자금 명목으로 돈을 차곡차곡 마련해놨던 것 같다. 정말 무서운 건 탐욕에 눈이 멀면 그런 가족들의 고통과 희생 마저 외면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탐욕에 눈이 멀어 그 돈을 받기로 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받아서 그 아파트에 넣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미친놈이 따로없다.

  그렇게 며칠 후 청약에 당첨 된 아파트 계약을 취소하고 대안으로 찾아 낸 인근 아파트 분양권을 계약하기 직전이었다. 가계약금을 넣기 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1억의 플러스피가 붙은 아파트를 사는게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나에게 주는 돈은 아깝지 않지만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 그 1억을 쉽게 가져가는 것 아니냐며 아깝다고 하셨다. 계약하기 직전에 왜 이런 말을 하실까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그 때 당시 나는 정말이지 미친놈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힘들게 모은 돈 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게 정말 맞는걸까? 순간 도장 집 아저씨 말이 스쳐갔다. 내가 섣부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통화 후 계약을 포기했다.

  그 후 꽤 오랜시간 무기력했다. 또 나에게 온 기회를 놓친 것 같았다.(기회도 아니였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눈과 귀를 닫았다. 연신 나오는 부동산 뉴스는 듣지 않았고, 주변에 집을 샀다는 동료가 있으면 마주치지 않게 피해 다녔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내가 계약하기 직전까지 간 그 아파트는 내가 봤던 가격에서 1억5천만원이 떨어져 있었다. 정말 놀랐다. 한 순간의 선택이 내가 그간 모았던 모든 돈을 송두리째 없애버릴 수 있구나. 너무 무서웠다. 그때 포기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치가 떨린다. 아마도 나는 평생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렸을 것이다. 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짓을 저질렀을수도 있고, 그마저 실패했다면 세상을 원망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세상은 잘못한게 없지만 말이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눈과 귀를 닫고 살았던 2년을 반성한다. 그때 눈과 귀를 닫지 않고 오히려 그 세계에 들어가 치열하게 공부했어야 했다. 나는 그저 현실을 회피했다. 그런 위험한 경험을 하고도 왜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당장의 무기력한 현실을 피한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닌데. 그 때 당시에는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때 치열하게 공부하고 종잣돈을 더 열심히 모았더라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느낀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모르는 분야에 요행을 바라고 돈을 넣지 않겠다는 것이다. 요행을 바라는 순간 탐욕이 몰려온다. 탐욕에 눈이 멀면 가족의 고통마저 눈감아 버리는 것 처럼 탐욕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었다. 천천히 가더라도 절대로 요행을 바라지 말자. 두 번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그때 내가 계약을 포기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였다. 그저 어머니의 걱정과 세상이 나에게 준 행운이다. 끝까지 이 경험이 나에게 행운으로 남기 위해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무식하면서 용감한 짓을 절대 하지말자. 세 번째는 도장을 함부로 들지 말자.(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 도장은 어마무시한 책임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순간의 선택의 인생의 몇 년을 좌우한다. 내가 그때 계약을 했었다면 적어도 3~5년은 바로 잡기 위해 고군분투 했을 것이다. 지금 잘못된 결정을 한다면 나 뿐만 아니라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내 가족의 시간마저 뺏어 갈 것이다. 투자를 할 때 그 무게를 지독하게 느끼고 행동하자. 네 번째는 회피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자. 나는 위기를 겪었지만 이후 그것을 이겨낼만한 방법을 찾지 않았다. 현실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겪었음에도 회피한 것이다. 위기가 곧 기회다. 위기가 닥쳐온다면 회피하지말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이겨 낼 방법을 찾자.

 이 글을 쓴 직후 내가 뭐라도 된 사람인냥 거창하게 쓴 거 아닌가? 라는 생각과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들어 기가차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제 1호기 투자한 초보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고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가 된 것 마냥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들었다. 언젠가 내가 부자가 됐을 때 내 자서전 하나쯤 남겨도 되는거 아닌가? 그때 이 글이 한 챕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시간이 흘러 내 아들이 아버지의 실수를 읽으며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구나하며 알아줄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글을 이어나가야겠다. 다음 편은 월부를 만나고 내 집을 마련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 투자도 너무 아쉬웠기 때문에 참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댓글

민배님 제가 읽어본 복기 중 가장 진심이 담긴 복기네요.... 저는 엄청 뭉클하게 읽었습니다..... 도장의 무게 저두 기억하겠습니다 ㅎㅎ 빠이팅!!

아속
26.06.21 14:43

인감도장 이야기 정말 저에게도 큰 교훈이 되네요. 어려운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하신 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건지 보여주는 글 감사합니다. 민배님의 1호기가 무럭 자라기를,앞으로 있을 2호기,3호기 모두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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