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부를 만나기 전 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신앙이나 나름의 해탈한 듯한 인생철학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회피하며 살아왔다. 우연히 알게된 월부라는 세상에서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스승님들이나 수강생들이 나와 달리 자신의 현실적 삶에 대해 야무지게 직면하고 엄마로서, 친정집의 든든한 딸로, 시댁의 굳건한 며느리로 신뢰받는 어머니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더 나아가 타인들을 돕는 역할까지 해 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신을 진정으로 다시 되돌어 보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너무 방관해왔던 것 같다. 그간 온실속의 화초처럼 유년기를 보내왔고 안정된 배우자를 만났으니 마지막 삶까지도 화초처럼 무탈하게 생을 이어나갈 수 있겠지...하고 말이다. 나에게 인생의 가장 큰 가치는 ‘경험’이었다. 좋게 말하면 ‘경험을 통한 의미추구’이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계획없는 충동적인 경험 추구를 반복했던 삶에서 아무리 거부하려 했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막을 수 없었다. 여전히 나의 원하는 삶은 아름다운 지구별을 돌며 다양한 것을 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다. 월부 스승님, 선배님 그리고 동료들과 한걸음 내딛어가며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아닌척 하면서 즐거운 삶을 사는 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진정한 심리적 안정감을 토대로 지구별 여행을 하고 싶다.
나는 그간 나이값을 하면서 살지 못했다. 종잣돈만 모이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지구별 여행을 열심히 하다가, 결혼도 출산도 늦어졌다. 늦어진 결혼과 출산은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문제는 내 객관적인 연령에 맞는 발달 과업에 대한 사색이나 고찰도 늦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모습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남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이답지 않게 나이들어 가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중의 하나가 태어났으면 죽는 것이 마지막인 인간이면 누구나 해야 할 ‘경제적 고민’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 이 모든 것을 40대 후반 나이임에도 노령의 부모님과 배우자에게 은연중에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못난 심보를 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경제적 자립만 스스로 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 내가 경제적 자립, 더 나아가 내 노후를 든든하게 책임질 수 있을 때 내 나이에 걸맞게 남에게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고 ‘자비로운 노년’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번 열반 수강으로 월부 커리큘럼에 들어선 것은 나에게 또하나의 ‘대학원’등록의 개념으로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둔 엄마인 나는 보통의 엄마처럼 자녀에게 학업을 위해 강요하기도 재촉하기도 하는 엄마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자신의 본분인 학생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나의 화려한 연설 뒤에는 자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늘 남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자녀를 공부로 괴롭히는 만큼, 나도 내가 성장을 위해 강요받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공부할 때 나도 매일 루틴처럼 행했던 것이 직장일 말고도 ‘일기, 걷기, 독서, 악기 연습’이었는데 사실 이것은 나의 젊은 시절부터 익숙해진 힐링활동이었기에 전혀 힘들지 않아, 또 다른 무엇으로 내 자녀가 겪는 동일한 스트레스 양을 나도 겪고 싶었다.
월부수강은 내게 필요한 공부이기도 하지만, 내 자녀에 대한 미안함을 보상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월부는 다른 곳과 달리 숙제도 의무고 재촉하시는 분도 많고 숙제를 안하거나 열심히 조활동을 안하면 쫓겨날거라는 위협(^^)은 나를 살벌한 수험생으로 돌아오게 했다. 아주 제대로 잡힌 기분이다. 이제 나는 ‘취미생활처럼 하는 공부’가 아니라 ‘죽기살기로 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숙제와 피드백에 대한 스트레스도 받아가면서 말이다. 오늘 모처럼 연차를 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공부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