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떠 있고, 손가락은 그 위에 있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 상태는 편해. 실패도 없고 후회도 없거든.
대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공부해야지"는 공부가 아니야.
"운동해야지"는 운동이 아니야.
"책 읽어야지"는 독서가 아니야.
"내 집 사야지"는 자산이 아니야.
'해야지'는 상태가 아니라 대기야.
대기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고 해서 진료를 받은 게 되진 않아.
누르는 순간 뭐가 달라지냐면, 내가 바뀌어.
공부해야지 하던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운동해야지 하던 사람이 운동하는 사람이 되고, 사야지 하던 사람이 자산을 가진 사람이 돼.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신분이 바뀌어서야.
대기하던 사람에서 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런데 우리는 착각해. 오래 고민할수록 더 신중한 선택이 된다고.
아니야.
5년 망설인 사람과 하루 만에 결정한 사람이 같은 집을 샀으면, 시장에는 똑같이 한 줄로 기록돼. 시장은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안 물어봐. 뭘 확정했는지만 봐.
그리고 이 말도 해야겠어.
안 누르는 것도 하나의 확정이야.
5년 동안 안 산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5년치 무주택을 확정한 거야.
결정을 미룬 게 아니라 미루는 쪽으로 결정한 거지.
취소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뿐, 시간은 계속 체결되고 있었어.
이게 무서운 이유는 이 손실엔 알림이 안 뜨기 때문이야.
잘못 산 집은 아프게 알려주는데, 안 산 5년은 조용히 지나가. 그래서 더 늦게 알아차려.
그럼 오늘 당장 계약서를 쓰라는 말이냐. 아니야.
되돌릴 수 없는 버튼은 함부로 누르면 안 돼. 그건 맞아.
근데 우리가 5년을 못 움직인 진짜 이유는, 처음부터 제일 큰 버튼만 쳐다봤기 때문이야.
3억짜리 버튼 앞에서 매일 손가락만 올렸다 내렸다 한 거지.
버튼에는 크기가 있어. 그리고 되돌릴 수 있는 버튼이 훨씬 많아.
오늘 누를 버튼은 매수 버튼이 아니라 이거야.
이번 주말, 관심 지역 한 곳을 정해서 임장 날짜를 달력에 적는 것. 날짜와 시간까지.
이건 취소할 수 있어. 3억이 들지도 않아.
근데 이 작은 버튼을 누른 사람과 안 누른 사람은, 1년 뒤에 완전히 다른 자리에 서 있어.
큰 체결은 언제나 작은 체결들 위에서만 일어나거든.
우리 인생은 취소할 수 있는 무수한 고민과, 취소할 수 없는 몇 번의 체결로 이루어져 있어.
그리고 그 몇 번의 체결은, 대부분 아주 작은 버튼에서 시작됐어.
지금 달력을 열어. 날짜 하나만 적어.
그거면 오늘은 충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