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니근데진짜하면된다 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결과만 보고,
정작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 채널에서는 매일 한 명씩,
지금은 성공했지만 한때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작게 시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분을 모셔왔어요.
곧 아흔이 되는 나이에도
매년 마라톤을 완주하는
권오율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다 읽으시면,
권오율 박사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지금 우리가 나이나 상황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걸 미루고 있었는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을거에요.
저도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아흔을 앞둔 박사님이
아직도 "더 도전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저 스스로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권오율 박사님은 서울대 상과대학을 나와
캐나다와 호주에서 40년 넘게
교수로 활동해온 학자예요.
그런데 이분을 유명하게 만든 건 따로 있습니다.
60세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해서
68세에 첫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고,
80세에는 보스턴 마라톤 연령대 부문에서 우승,
그리고 아흔을 바라보는 아니에도
여전히 마라톤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대회 주최 측이 "90세 이상 부문이 없다"며
박사님을 위해 새로 부문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죠.

지금 상황을 핑계로 도전을 미루고 계신 분이라면
오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세요!
개똥을 주우며 자란
가난한 소년
권오율 박사님은 일제강점기 시절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공출이라고 수확한 곡식의
90%가량을 빼앗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쌀은 제사에나 쓰고,
평소에는 늘 보리밥을 먹었어요.
비료 살 돈도 없어서,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버지가 "개똥이나 주워오라"고 하셨다고 해요.
직접 거름을 만들어야 할 만큼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셨죠.

그리고 열네 살 6·25전쟁이 터지면서
인민군 치하에서 두 달을 살아야 했고
그 혼란 속에서 어머니마저 떠나보냈습니다.
전쟁 통에 아버지의 사업까지 어려워지면서
대학은 꿈도 못 꾸고 바로 취업을 준비해야 했어요.
돈이 급했던 박사님은 신문 장사에도 뛰어들었지만
석 달 만에 손해만 보고 결국 접어야 했어요.
"제 첫 사업은 그렇게 망했습니다."
우연히 만난 인생의 목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고
돈만 급하게 쫓아 가고 있던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중
우연히 서울대 교수 한 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이 박사님에게 평생의 목표를 심어줬어요.
"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학부터 마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집안 형편으로는 상상도 못 하던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떨어지면 시골 가서 농사짓겠다"는 각오로
딱 한 번만 도전할 기회를 겨우 얻었어요.
다행히 서울대학교에 바로 합격했지만
그때부터 박사님은 완전히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가정교사로 생활비를 벌었는데 늘 쪼들리다 보니
담배 한 대 배울 여유조차 없었다고 해요.
"군대에서 담배를 공짜로 나눠줄 때도
저는 담배를 안 펴봤으니까... 그걸 친구에게 줬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게
어떻게 보면 제가 제일 건강하니까
가난이 저를 살린 셈이죠."
겨우 얻은 안정을 버린 도전
졸업 후 한국은행에서 1년쯤 일하던 박사님은
동료 중 절반이 석박사 학위를 가진 걸 보고
"나도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캐나다에서 1년짜리 장학금 소식을 듣고
아주 오래 망설이다 유학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한국은행 초봉을 2년 반 모아야
비행기 편도 요금이 겨우 나오는 형편이었거든요.
이제야 생활의 안정이 생겼는데…
다시 도전한다는 결정도 쉽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여비가 부족해 시작도 전에 포기할뻔 했지만
유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고
덕분에 간신히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박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독학으로 익힌 회화 실력으로는
수업 시간의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거예요.
장학금은 매년 성적에 따라 갱신되는 조건이었고
성적이 나쁘면 학교에서 나가야 했거든요.
당시 그 대학에는 아시아 출신 학생이 다섯 명 있었는데
한 학기가 지나자 박사님을 빼고 전부 나가 떨어졌다고 해요.
“그때 나가면 뭘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죠.”
하지만 배수진을 친 심정으로 버틴 끝에
결국 캐나다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 60에 시작한 마라톤
교수 생활을 하며 테니스를 즐기던 박사님은
50대 중반 대학에서 받은 체력검사에서
“당신의 체력은 30대 중반 수준”
이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이 결과는 박사님에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줬어요.
"몸과 마음 모두, 나보다 스무 살 젊은 사람의
건강을 유지하며 의미 있고 재밌게 산다."
그리고 60대의 나이에
딸이 철인3종 경기를 하는 걸 보고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10km부터 시작했어요.
그마저도 "한 발자국도 더 못 뛰겠다"
싶을 만큼 힘든 거리였죠.
하지만 몇 년 뒤 21km에 도전했고,
68세에는 마침내 첫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우리 잠재력은 조금씩 밀어붙이는 만큼
계속 자란다는 걸 저는 확신해요."
세계 마라톤에서 인정 받다
보스턴 마라톤은
'세계 7대 마라톤'으로 꼽히는 대회예요.
그중에서도 참가 자체가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참가하려면 나이대별로 정해진 기록 안에
먼저 다른 마라톤을 완주해야만 자격이 주어집니다.
권오율 박사님이 68세에 뛴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기록은 4시간 8분.
당시 68세 자격 기준이 4시간 15분이었으니
첫 마라톤에서 이미 그 기준을 통과한 거죠.
한창 나이의 젊은 사람도 쉽게 넘지 못하는 벽을
박사님은 68세에 완주 한 번으로 넘어선 셈이에요.

그렇게 이듬해 처음 도전한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25km 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나 크게 고생했지만
끝내 완주까지 이루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1등한 80세 할아버지
이후 10년 가까이 한 가지 목표를 마음에 품었어요.
"보스턴에서, 내 나이대 1등을 해보자."
80세가 되던 해,
박사님은 다시 보스턴 마라톤
출전 자격을 따서 나섰습니다.
그해 80세 이상 부문에는 10명 남짓이 있었고,
그중 3명은 박사님보다 6~7분이나 빨랐어요.
보스턴 코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데,
박사님은 오르막엔 약하지만
내리막엔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전략대로 내리막 구간에서 힘을 쏟아부은 끝에
결국 80세 이상 부문에서 1등을 했어요.
“1등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이후로도 밴쿠버 마라톤에서
여러 차례 상위권에 올랐죠.

그런데 최근에는 자기 연령대에서
1등도 하고 꼴등도 한다고 해요.
왜 그렇게 됐냐고요?
경쟁자가 없어서 혼자 뛰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90세 이상 부문 자체가
대회에 없었다는 거예요.
"85세 아이 같은 애들이랑 어떻게 같이 뛰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더니
대회 측이 박사님을 위해
90세 이상 부문을 새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박사님의 도전이 없던 자리까지 만들어낸거죠.
몸과 마음의 싸움
90세의 나이에 마라톤을 뛴다는 게
쉬운 일일 리 없습니다.
"30km쯤 뛰고 나면, 몸은 더 이상 가려고 하지 않아요.
주저앉고 싶어지죠."
"그 자리에서 마음이 정신력과 의지로
몸을 끌고 가는 거예요."
"마라톤은 흔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몸과 마음의 싸움입니다."

"조금 늦게 뛸지언정, 여전히 끝까지 뛸 수 있다"는건
권오율 박사님이 지금까지 증명해온 사실입니다.
뚜렷한 목표만 있다면
누구든 할 수 있다
권오율 박사님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 정도 나이에 이 정도 하는 게 대단하다"가 아닌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생각해요.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누구나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건강하게 살겠다는 뚜렷한 목적으로
한두 번씩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가면
누구든 결국 할 수 있다고 믿어요."
10km가 힘들어서 못 뛴다는 사람이 21km를 뛰고,
결국 42km까지 완주하게 된 것도
한 번에 큰 목표부터 세운 게 아니라,
딱 자기 한계보다 조금 더 되는 목표를
계속 갱신해왔기 때문이거든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지금 나이나 상황 때문에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정말 늦은 건지, 아니면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건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가난한 소년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개똥을 주우며 자라 전쟁 통에 어머니를 잃고,
첫 사업까지 망했던 소년은,
겨우 찾은 안정을 버리고
몇 번이나 새로운 도전을 택했고
60세에 처음 달리기 시작해
80세에 보스턴 마라톤 연령대 우승을 거쳐,
이제는 세계 대회가 그를 위해
새로운 부문을 만들 정도가 됐습니다.

누구나 하면 된다
권오율 박사님은 늦었다고 생각될 때마다
포기하는 대신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더 밀어붙였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이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딱 지금의 나보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는 목표부터 세워보세요.
이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오늘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인사이트가 숨어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힘이 되는 소식을 가져올게요.
팔로우하고 다음 이야기 받아보세요 🍀
참고 자료 (출처)
- 유튜브 '지식인사이드' 채널, 권오율 박사님 인터뷰
- 유튜브 '뛰는 인싸' 채널 권오율 박사님 인터뷰
- 권오율 박사님 저서 『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