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를 사지 않는 이유 (feat. 빌라 반장 경험담) [맹맹]


여러분이라면 어디를 사겠습니까?


저는 2015년 서울에 주택을 매수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은 아파트가 아닌 빌라였고

원룸에 살다가 신축 투룸 빌라로 옮긴 저는

"거실"이라는 공간이 따로 있고,

쇼파에 앉아 있다가 화장실까지

세 발자국 이상을 걸어야 이동할 수 있다는 현실에

마냥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름 행복한 4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맞바람이 치지 못해서

환기가 잘 되지 않았고,

밤이 되면 골목골목이 조금 무섭긴 했지만

이전에 살았던 원룸들에 비해서는

훨씬 업그레이드 된 주거 공간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빌라와 아파트의 차이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거주민이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관리주체의 부재입니다.


100세대가 보통 넘는 아파트에서는

관리실을 설치하고, 관리업체와 계약을 해서

편리하게 생활하는 반면


빌라의 경우 세대 수가 적기 때문에

거주민들이 직접 반상회를 통해서

건물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살았던 빌라는

첫 입주 이후 모든 일을 도맡아서 관리하시던

세대가 이사를 간 이후부터

매년 제비뽑기를 통해서 반장을 선출하고

선출된 사람이 한 해 빌라 관리를 도맡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동생과 거주하고 있었고

반상회 따위 현생 챙기기 바쁘다며

저희 둘 다 한번을 참석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빌라 단톡방에서 카톡이 왔습니다.


"불참하신 세대를 대신해서 제비뽑기를 한 결과

이번 반장은 OOO호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렇게 동생과 저는 졸지에

OOO빌 반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일부 참석한 세대들은

"곧 이사를 갈 계획"이라며 여러차례 다시 제비뽑기를 했고,

결국 참석하지 않은 저희 세대에 통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빌라 반장으로서

해야할 일은 꽤 많았습니다.


옥상에 있는 물탱크 점검이 나올 때마다

회사 출근 일정을 조율해서 오전에 점검을 해야했고

지자체에서 엘리베이터 점검이 나올 때

회사 출근 일정을 조율해서 엘리베이터 점검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 배출용 마대자루

직접 사서 갈아끼우고,

엘리베이터에 CCTV의 저장공간이 꽉 차면

리셋하고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계속 확인해야했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님께

매달 청소비를 정산해드려야 했고,

이렇게 조금씩 나가는 관리비들을

투명하게 장부에 기록해야했습니다.


무엇보다 관리비 수거를 직접 해야하는데

입금해주시지 않는 세대들이 꽤 많아서


퇴근하고나면 각 집을 돌아다니며

관리비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이전에도 아파트로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빌라 반장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하며

아파트로 이사가야겠다는 마음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민들과 마주치기 껄끄러워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있으면

밖에서 기다리다가 귀가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봉사정신으로

열심히 관리해주시는 반장님들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본인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점점 건물 관리에 대한

책임주체가 사라지면,

당연히 건물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낡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노후 빌라"와

"노후 아파트"의 관리 상태에 차이가 있는 이유입니다. 




결국 저와 동생은 1년간 빌라 반장을 역임하고(...)

다음 해에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면서 겪은 또 다른 빌라의 문제 : 환금성)

https://cafe.naver.com/wecando7/6011031




당시 저는 빌라를 매수했고

빌라의 절대가는 낮았으나,

빌라는 50% 주담대,

아파트는 70% 주담대였기 때문에


동일한 자본으로 당시

B 아파트와 C 아파트도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매수 한 이후 가격 변동입니다.

(빌라 시세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반입니다)


사실 균질성이 좋지 않은 지역이라

나홀로 B아파트나

나홀로 C아파트 외에도

더 좋은 선택지가 많았습니다. 



https://cafe.naver.com/wecando7/8785878


하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 않고도

당시 둘러보던 동내에서도

빌라에서 조금만 눈을 돌렸더라면,

바로 옆 나홀로 아파트들도 빌라보다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환금성도 더 뛰어나고

건물관리도 잘 되는 곳에서 살면서

나중에 갈아타기 하기도 더 수월했겠죠 :)




아파트에는 보편적인 수요가 있습니다.

그 보편적인 수요의 뒷 편에는

더 수월하게 확보 가능한 조망권과 일조권,

보안과 관리의 용이성으로 인한

수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와 동생의 수요도 여기에)


그렇기에 아파트가

상승장에서도 더 많은 수요가 따라붙고

그에 따른 시세 상승이 함께 이뤄집니다.


가격에 인한 허들로

아파트는 언감생심, 빌라만 고려하고 있다면


유리창을 깨고 조금만 더 주변을 돌아보고

더 좋은 기회를 잡으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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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행복user-level-chip
23. 11. 21. 00:01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맹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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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경자user-level-chip
23. 11. 21. 00:38

빌라를 빼고 b, c냐 고민했는데,,, 역시나 역과 가까워야 하는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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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케user-level-chip
23. 11. 21. 19:06

너무나 현실공감 가는 이야기예요! 생생한 체험담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맹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