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부동산투자 여정 정리

1. 2011년 처음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투자,자산같은 개념이 없었다. 그냥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는다면, 그것이 모두 현금흐름으로 환원될 것이라 믿었다. 난 사업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5년정도는 매년 망할거라고 생각했다. 입시학원 특성상 매년 초봄에 "올해가 끝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불안감과 경각심을 가지고 살았다.

2. 사업은 잘되어도 돈이 들고, 잘 안되어도 돈이든다. 잘되면 추가capex같은게 들어간다. 학원은 학생이 늘어나면 수용인원을 늘려야 하기에 더 비싼 보증금과 월세가 있는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2013년 봄부터 2014년 가을까지 총 3번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원상복구 비용과 인테리어비를 추가로 부담하게 되었다. 그래서 월 현금흐름은 강했지만, 사실상 남는게 없다는 생각에 상당히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규모가 커지다 보니 적자가 날 때는 더 큰 적자가 나게 되었다. 고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점점 압박감이 심해졌던 시기다. 지난 입장에서는 한살이라도 어릴때 이 압박을 경험한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3. 그래서 난 사업한지 5년 이하인데, 많은 돈을 번다고 하며, 많은 소비를 하는 사람을 경솔한 사람으로 본다. 아직 그 리스크의 전체 덩이를 보지 못하고, 현재에 취해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입을 다물게 되고, 다시는 보지 않는다.

4. 이런 상황들로 인해 당연히 개인소비는 상당히 위축되었다. 당시에는 이게 소비통제, 짠테크등으로 인식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난 다들 그렇게 사는줄 알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학원에서 일년간 노숙을 하며 버티다가 너무 힘들어서 고시원에 갔다. 차는 당연히 없었고, 당시에 쓰던 hp최저가 파랑 컴퓨터가 기억난다. 30만원 행사가에 사서, 5년 정도를 사용했다. 워낙 용량이 적어서, 엑셀같은 것은 깔지도 못했다. 그래서 회계정리를 학원용 컴퓨터에서 했다. 학원용 컴퓨터는 60만원짜리였기 때문에 엑셀이 잘 돌아갔다. 당시에 옷은 대부분 유니클로에서 샀고, 몇개를 십년정도 돌려 입었다. 그래도 항상 잘 세탁해서 관리를 잘 하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이라는 지위가 있으니, 애들에게 노숙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침에 항상 옷을 환복하고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말 그대로 집도절도 없이 보낸 시기가 20대중후반 5년이 넘는다. 물론 이게 합리적인것은 아니다. 그냥 소비본능 자체를 꺼놓고 살았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듯.

5. 당연히 생존에만 관심이 있었다. 부자가 된다거나,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거나, 강남에 아파트를 사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냥 사업이 망해도 얼마간 근근히 살 수 있는 상태이고 싶었다. 그렇게 얼마간 근근히 살 수 있는 생활비 정도를 사업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벌 수 있다면, 결국 재기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심을 갖게된 것이 서울 초역세권 오피스텔이다. 16년 마한푸 오피스텔의 분양권을 사서 월세세팅을 하고 돌아오던 지하철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에 월세 70을 세팅했는데, 눈물이 났다. 이렇게 한번만 더하고 월세가 역사적 평균 수준으로만 상승하면 월200정도의 수동적 소득을 올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다면, 난 사업이 망해도 재기를 노리며 뭔가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6. 인간이 참 웃긴게 믿을 구석이 생기니 점점 일에서 여유가 생겨갔다. 여유부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뭐가 중요하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지 좀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고, 사업이란 것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를 할 시간도 낼 수 있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학생은 심지어 거절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월 70만원의 수동적 소득은 사실상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 내 심리에는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사업도 점점 방법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적립된 공식들은 대부분 그때 실마리를 발견한 것들이다.

7. 그러던 중 2018년 서초에 브랜드 오피스텔 분양공고를 보게 된다. 당시 마한푸보다 0.3평이 큰 원룸이었는데, 가격은 3천만원 저렴했다. 계산해보니 총 5천정도 저렴하게 나왔다. 그래서 청약을 넣었고, 19:1이었는데, 되었다. 당시 모닝 사려고 모아둔 1500만원에 1000만원 정도를 빌려서 투자했다. 수업중에 당첨 문자가 왔는데, 화장실 가는척 하고 소리질렀던 기억이 난다. 이 역시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월200의 현금흐름을 완성할 수 있는 마지막 단추였다. 마한푸 월세가 당시 이미 80정도로 올라왔고, 여기도 주변시세를 보니, 월세90은 충분히 받을것으로 보였다. 20년 입주시기에 어쩌면 각각90,110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계산이 섰었다. 실제 이 서초 물건은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데 월세가 140이다.

8. 이 물건까지 계약하면서 월세 목표를 월200에서 월500으로 올렸다. 월 500이면 단순히 재기를 위한 시간을 버는 정도가 아니라, 더이상 가난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 음식점 서빙이라도 하면 200은 벌 수 있으니, 월 700이면 그냥저냥 살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월 현금흐름을 발생하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엔 한달한달이 너무도 불확실하여 이런 목표를 갖게 된듯하다.

9. 이런 투자 아이디어는 지난 상승장 중기에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인게, 난 그래서 월세 수익률에 민감하다. 전세가율의 변화에도 민감하다. 태생적으로 투자를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2년 시기에 무리한 투자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23년에 좋은 가격에 망설이지 않고 메이져 서울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었다. 비록 결과적으로 돌아왔지만, 월세수익 목표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내가 앞으로 투자를 평생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주요한 이력이 될 것같다. 시세차익을 첫 투자 아이디어로 했던 사람보다 그래서 훨씬 보수적인듯 하다.

10.19년에는 지방 아파트에서 시세차익을 노린, 정확히는 존자돈의 수익률 극대화를 노린 투자를 했다. 그만큼 지방 시장의 가격이 너무나 저렴했다. 지금은 34평 아파트 공사비만 해도 3억은 나온다. 당시 34평 신축이 2.5억 이랬던 시기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않고 두번만 투자를 했다. 단아무리 수익이 좋아보여도, 어느정도 뒤가 있는 물건(신축)만 했고, 아주 싼 시기(20년 3월이 마지막)에서만 했고, 채수를 너무 늘리지 않았다. 이런 적당함이 23년에 물건들을 정리하고 좋은 서울 아파트를 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난 지금도 한번 더 영끌 하면 서울 중급지 한채를 더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풀로 하는 것보다, 넉넉하게 적당히 하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건 어디서 배웠다기 보다는 약간 기질적인 부분이다. 이제 원주 물건을 마지막으로(세입자가 갱신권 사용하지 않고 나가기로 함) 지방 아파트는 모두 매도한다. 이번에 매도할 원주가 수익률적인 측면에서 가장 좋은 매도가 될 듯 하다.

11. 20,21,22년은 부동산과 주식 모두 할 수없는 벨류였다. 그래서 모두 멈췄다. 16년부터 해오던 부동산 투자를 올 스톱한다. 그리고 사업에 몰두한다. 그 과정에서 요식업에 도전한다. 21년 1월 1일에 첫 가게를 오픈했는데, 올해로 이쪽 업계를 경험한지 4년차다. 가게 두개는 손해를 봤다. 한개를 약간의 이익을 봤고, 한개를 현재도 운영 중인데 큰 이익을 봤다. 처음에 4개를 오픈할 때는 2개 정도 성공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도 성공한 가게가 적었다. 다만 요식업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요식업은 결국 건물 1층을 운용한 경험을 하루라도 어린 나이에 많이 경험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그래야 나중에 건물을 잘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에, 당시 요식업을 시작한 것이 대박일지, 중박일지, 쪽박일지는 아직 모른다. 최종 결과나 나오려면 지금으로부터 십년은 더 지나야 한다고 본다.

12. 22년말 부동산의 대폭락이후, 자잘한 물건2개를 정리하고, 서울 메이져 주택을 2채 구입했다. 또 주변 지인 4명도 서울과 서울에 준하는 입지에 메이져 주택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번 상승턴을 맞고 있다. 물론 난 이 시기를 청산하려면 아직 한번의 덜컹거림(하락)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다만 내 입장은 시장의 관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꼴저꼴 보기싫어 그냥 갈아탄 것이다. 그래서 이 랠리를 그냥 즐기는 중이다.

13. 이제 만40까지 2.5년 남았다. 내년정도면 자산의 자잘한 부채나 보유채수등도 어느정도 정리될듯 하고, 오랜기간 살아남은 사업부터 법인으로 돌릴 예정이다. 넉넉잡아 26년 만39세가 되면, 인생의 종자돈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순자산을 쥐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마음에 드는 지점은 그 액수뿐이 아니다. 순간순간 해야할 것들을 하면서 결국 마음편한 자산으로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이제는 사실 더이상 뭘 하지 않아도 될것 같긴 하다. 물론 목표는 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못 이루고, 심지어 지금 해놓은 것들을 유지한다고만 해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방향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목표가 또 잇긴 하다.

14. 이 액수와 그릇(자산)을 가지고 다음 액수와 그릇으로 가야한다. 만40부터 시작하면 40년은 투자를 더 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은 20년, 즉 만60이 되면 만40이전에 모아놓은 순자산의 10배를 달성하는것이 목표다. 부자보고서를 봐도, 내가 여러변수를 넣어 계산해봐도 이렇게 되는 것은 엄청 어렵거나 엄청 쉽지 않다. 딱 목표로 삼기 좋은 난이도다.

16. 그 다음 20년인 만60~80까지는 그때가서 생각할런다.

 

 

원본글 : https://blog.naver.com/kyungj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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