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후기

[지투26기 가치파악하고 2젠즐겁게투자하조 단호한파블로] 가치튜터님과 행복했던 튜터링 데이 후기♡

25.10.22

 25년 10월 19일. 새벽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는 오전 5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부스스한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어제 임보를 쓰던 컴퓨터를 정리하여 책가방에 넣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오진 않았으나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10.15 대책이 발표됐지만… 그래, 여전히 투자할 수 있는 계절이야.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주춤할 순 없지.”

 

 엉뚱하게도 이런 이상한(?) 확언을 중얼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커피 하나, 초코바 하나, 단백질 바 하나. 아침 대용으로 몇가지 식품들을 샀다. 날씨는 전날 온 비 때문인지 쌀쌀했다. 휴대폰의 일기예보를 살폈다. 아이폰의 예상에 의하면 오늘은 비 소식이 없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야 할 텐데…”

 

 어제는 제법 비가 와서 임장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쩌면 임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조원들중에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나올지도 몰랐다. 

 

 “이런! 날씨가 제법 쌀쌀하네?”

 

 산뜻한 마음으로 새옷으로 갈아 입었으나, 미처 기온을 예상하지 못한 코디라 추웠다. 하는 수 없이 어제 입었던 바람막이를 다시 꺼냈다. 아직 빗기가 남아 있어 축축했다.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와 초코바를 먹으며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을 읽었다. 옷에서 굽굽한 냄새가 났다. 안되겠다. 다시 길을 나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페브리즈 있나요?”

 

 퀭한 눈 빛의 나이든 점원이 ‘거 한번 보이소’라고 말했다. 말투에 밤을 샌 자의 무거움이 뭍어 있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였다. 진열대 여기 저기를 뒤적이다 페브리즈를 발견했다. 상쾌한 향으로 골라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입었던 바람막이에 페브리즈를 뿌렸다. 책가방을 싸고, 방안을 정리한 후 짐을 챙겨 일찍 로비로 나왔다. 다시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을 읽으며 조원들을 기다렸다. 시간은 막 7시로 접어 들고 있었다.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이길래 나는 이런 부산을 떨고 있는 것인가? 오늘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튜터링데이다. 난생 처음 지방투자실전반을 수강하고, 다시 난생 처음 겪어보게 되는 튜터링데이. 실전반의 꽃이라 불리는 바로 그 튜터링데이에서 난 나의 첫 튜터님을 만난다. 나의 첫 튜터님은  ‘함께하는가치’튜터님이다.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오후에 있을 스터디를 위해 조장님은 미리 괜찮은 스터디카페를 하나 예약해 두었다. 그곳 앞 편의점에서 우리는 바나나 우유를 먹으려 튜터님을 기다렸다. 시간이 오전 8시 30분을 막 가리키고 있었다. 조장님이 우산을 들고 튜터님을 마중하러 나갔다.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시려면… 아마도 튜터님은 첫 기차를 탔어야 했을 것이다. 아니, 어젯밤 늦게 까지 같이 올뺌을 했었는데 첫 차를 타고 내려오신다고? 거기다가 오늘 튜터링데이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있었을텐데? 조장님은 아마도 튜터님이 전날 밤을 새웠을거라고 얘기했다. 

 

 “아!”

 

 이런저런 상념에 잠시 젖어 있는 사이, 툭툭 떨어지는 빗줄기 너머로 밝게 웃으며 걸어오는 튜터님이 보였다. 이런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애플의 일기예보는 오늘도 틀렸단 말인가? 튜터님도 아이폰을 쓰고 계셨던 것인지, 비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산을 하나 드렸다. 밝게 웃으며 건내는 우산을 받아드는 튜터님. 비가 와도 싱글벙글,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도 싱글벙글. 우리는 젊은 시절 첫 미팅에서 자신의 소지품을 꺼내 파트너를 정하는 수줍은 청춘들처럼 발도장을 찍었다. 튜터링데이 스타트!

 

 비가 와서 일정이 조금 밀렸다. 우리는 조원들을 3개조로 나눠 한조씩 돌아가며 임장 튜터링을 했다. 한 조당 약 1시간 정도씩의 튜터링 시간이 배분되었다. 즉, 3시간 정도를 걸으며 임장 튜터링을 받는 것이다. 코스는 튜터님이 짜 주신 분임 루트를 통해 정해졌다. 우리들은 튜터님이 사전에 내주신 과제에 입각에 지역을 읽어나갔다. 더불어 지역에 대한, 그리고 투자 전반에 대한 범위를 가늠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질문들을 튜터님에 쏟아냈다. 

 

 보통 사람의 체력과 집중력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사전에 전부 준비할 수도 없었을 그 대답들을 튜터님은 단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그 수많은 질문들을 공개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질문한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임과 동시에 답변을 해주신 튜터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아무튼,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조원들의 질의응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부가 되는 지경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 정도의 경지까지 다다르려면 얼마나 많은 말들을 들어야 하는지 가늠이 안될 것이다. 튜터님은 그 말들을, 수 많은 말들 속에서 가려낸 그 말들을, 아이 손에 빵을 쥐어 주듯이 우리 손에 쥐어 주었다. 급기야 나는 질문을 하며, 질문과 동시에 답을 스스로 (어떤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도 하게 되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이 끝나갈 무렵 튜터님이 임장 튜터링을 마감하는 말을 하셨다.

 

 “언젠가 너나위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투자는 계절과 같은 것이다. 긴 안목과 호흡으로 가는  것이다. 오늘 당장의 날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날씨가 나쁘다고 안하고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정부 대책으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신다. 계절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날씨가 변하는 것 뿐이다. 변화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투자의 본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 모두는 다 잘 될거에요,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잘 안된다면 그건 너무 이상한 일 아니에요?”

 

 튜터님이 앞서 하신 말과 뒤에 하신 말들이 섞여 내 기억속에 최종적으로 이 말들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어떠리. 말들의 순서가 뭐가 중요하리. 메세지의 진정성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그걸로 충분한데!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스터디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사임 발표회를 가졌다. 튜터님은 우리들의 사임을 일일이 다 살펴보시고 최종 3인을 뽑아 발표를 시켰다. 마음님은 임보에 전화임장의 내용을 꼼꼼하게 기입했다. 덕분에 손품의 내용이 현장과 바로 연결되었다. 여신님은 정말 디테일한 임보를 작성했다. 지역을 줌아웃-줌인하며 입체적으로 보려 한 부분이 돋보였다. 조장님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바탕으로 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방식으로 임보를 작성했다. 새로웠다. 충격과 함께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실전반이 처음인 나로서는 모든게 새로웠고 경이로웠다. 순간 함께 가고 있는 동료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낯이 간지러울까?

 

 발표가 모두 끝나고 튜터님은 발표자들의 임보에 대해 세세한 피드백을 주셨다. 피드백의 모든 것이 다 좋았으나 특히, 공급에 대한 피드백이 정말 좋았다. 지방에서는 공급이 정말 중요한데, 우리 조원들 모두 그 부분에 대해 다소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해 주셨다. 언제 어디에 얼마나 공급되는가를 정확하게 지도에 그려보고 지난 장에서 공급과 가격과의 상관관계도 잊지 않고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셨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듣는 순간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의 순간까지도 아까워 쥐어짜낸 시간이 어느덧 종착점에 다다랐다. 저녁 먹는 시간도 아까워 햄버거로 먹는 둥 마는 둥 채워 나갔던 시간이 끝을 알려 온 것이다. 튜터님은 준비한 내용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 말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여러분, 투자하다보면 슬럼프가 올 수 있어요. 저도 그랬고, 여러분의 앞선 모든 선배분들도 그랬어요. 슬럼프는 나의 치열함이 덜 해졌거나, 내가 자신을 남과 비교할 때 올 수 있어요. 슬럼프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치열하게 사는 것이에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슬럼프가 우리 생활에 끼어들 틈이 없어져요.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우리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어요. 성장에는 어느 정도 고통이 따라요. 여러분이 잘 해내실거라 믿어요, 우리 가치즈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물론 이 말도 내게 남은 기억을 이리저리 종합해 낸 것이다. 어쩌면 종합된 저 말들속에 내 생각과 인상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튜터님이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종이를 꺼내 적지 못했고, 휴대폰을 꺼내 녹음하지 못했다. 오로지 부실한 내 기억만이 이 말들을 들었을 뿐인데, 그 감동을 채 전하지 못했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낡은 뇌의 문제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기차역에서 마무리 발도장을 찍었다. 발도장을 마지막으로 튜터님은 먼저 일어나셨다. 안타까운 인사를 나눴다. 몇몇 조원들이 튜터님을 배웅했다.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났다.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그리고 내가 탄 기차가 종착역에 다다를 때 쯤, 카톡에 번쩍하며 새 넘버가 새겨졌다. 튜터님이 보낸 톡이었다. 사전임보 피드백. 내 사전 임보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튜터님이 정성글을 보내오신 것이었다. 아, 마지막까지…… 이런 감동을! 

 

 내 생애 최초의 튜터링데이는 이렇게 끝났다. 나는 내 첫 튜터님을 이렇게 처음 만났다. 튜터님과 조원들과 함께 해서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먼 길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얼핏 떠났던 길을 다시 돌아온 것 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얼마나 멀리 갔다왔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월부는 입이 닳도록 말한다. 나는 함께하는가치 튜터님과 함께 갔다. 그리고 멀리 갔다. 정말 멀리 갔다 왔다.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휴대폰에 짧은 기록을 남긴다. 

 

 ‘가치가면 멀리 간다.’

 

 


댓글


단호한파블로님에게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