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약은 갑작스런 전화를 타고 온다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은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반차를 내고 행한 임장이 힘들었나? 나도 모르게 잠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여보세요! 아까 만난 000부동산인데요!”
전화 목소리는 아까 매임한 부동산의 사장님이었다. 몹시 다급한 목소리. 마치 119나 112에 신고 전화를 하는 사람처럼 목소리 톤이 한층 올라가 있었다.
“집주인이 하시겠데요! 아까 말씀하신 금액으로 매도하시겠답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불현듯 드는 생각? 아니 왜? 이렇게 갑자기?
“아, 그래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짧은 순간 너무나 많은 것들을 판단해야만 했다.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 생각해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감사합니다.’ 하고 바로 계약 준비를 할 줄 알았던 나는 뜻 밖에도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로 생각해 보겠다고 답하고 말았다. 그리곤 갑작스런 전화에도 놀랐지만, 이렇게 태연하게 말하는 나 자신에게 더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근데 이거 빨리 결정하셔야 해요. 그 가격에 앞서 계약하시겠다고 얘기하신 분이 계신데, 사장님이 아까 하도 간곡하게 말씀하시고 가셔서 전화드린거에요. 꼭 연락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드릴께요.”
이 통화를 한지 3시간 후 나는 계약금을 송금하고 역사적인 1호기의 가계약을 체결했다.
#2. 권유디님이 말했다, 닻을 내리라고
가계약금을 송금하기 불과 9시간전 나는 000부동산 사장님과 한 집을 매임하고 있었다. 신축이라 집 상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지난 9월 서투기때 임보를 쓰며 1등 단지로 선정한 곳이었다. 사실 이 단지를 매임한 것은 지난 9월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11월초에 한번 더 매임을 했었고, 이번이 총 3번째 매임이었다. 이 단지에 매물로 나온 것은 거의 다 본 셈이었다.
지난 9월, 첫 매임때는 가격 협상을 하지 않았다. 아직 다른 곳과의 비교평가를 하기 전이었기 떄문이었다. 임보를 완성하고 이 단지가 1등 단지로 뽑히자 다른 지역의 다른 단지와 다시 비교를 해 보았다. 그래도 이 단지가 1등으로 뽑히자 흥분되는 마음으로 본격적인 매임을 이 단지로부터 시작했다. 그때가 11월초였다.
처음엔 이 단지의 전용 84가 1등으로 뽑혀 이것을 집중적으로 시세트레킹하고 매임했다. 11초에 집중 매임한 것도 전용 84였다. 당시 가격은 7~8월 실거래가보다 최소 6천이 오른 가격이었다. 가격 네고는 어려웠다. 6천 정도는 네고를 해야 직전 실거래가로 매수할 수 있었는데, 현실은 많이 해봐야 2천 정도였다.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추격 매수를 할 수는 없었다.
그 다음에 집중한 것은 이 단지의 전용 59였다. 이 단지의 전용 59가 2등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전용59는 7~8월 실거래가 보다 최소 4천이 올라 있는 상황이었다. 이 단지는 전용 84의 가격과 전용 59의 가격차가 크지 않아 가격만 맞다면 전용 84를 사는 것이 휠씬 유리한 단지였다. 그래서 전용 84가 1등, 전용 59가 2등이었던 것이다. 내가 전용 84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전용 84는 아무리해도 가격이 네고 되지 않았다. 매수 희망가를 일단 부동산 사장님께 던져 놓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리고 2순위인 전용 59도 매임을 하고 매수 희망가를 던져 놓고 함께 기다려 보기로 한 것이다.
전용 59에 4천만원 네고를 걸자 사장님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전용 84에 3천 네고를 걸었을 때보다 더 많이 웃었던 것 같다. 나는 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가격에 집주인이 뜻이 있다면 바로 거래를 할테니 한번만 더 문의를 해 달라고만 했다. 사장님은 일단 알겠다고 했다. 사장님이 다른 단지 잔금건으로 몹시 바쁘셔서 더 길게도 얘기 못하고 부동산을 나왔다. 그게 전화오기 불과 7시간 전이었다.
그런 상황이 있고 7시간이 지나 부동산 사장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해왔다.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한 나는 3시간 후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천만원 더 네고해 주시면 잔금을 1달 안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고에 응한 집주인은 아쉽게도 전용84가 아닌 전용59의 집주인이었다. 1등이 안되면 2등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헌데 집주인이 응한 네고가는 3천만원. 내가 제시한 가격은 네고 4천만원. 3천만원만 해도 훌륭한 가격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나는 타협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당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이 용기는 후술하겠다. 그런 용기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어디서 나왔겠는가!) 나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월부에서 배운대로 했다. 엥커링효과. 내가 먼저 닻을 내리기로 했다. 집주인은 필경 내가 내린 닻으로부터 생각을 시작할 터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집주인은 급했다. 여태까지 호가를 고수해 오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지선이 무너졌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네고에 응한 것이다.
“아, 그래요? 그건 힘들 수도 있는데…… 알겠어요. 한번 얘기해 보고 전화 드릴께요……”
부동산 사장님이 힘없이 전화를 끊으셨다. 자칫 이러다가 거의 낚은 물고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나 나는 애써 그런 내색을 비치지 않고 꾹 참았다. 기다렸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단속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30분 후 전화가 왔다. 그 30분이 정말 지옥 같았다. 집주인은 천만원을 더 네고해 주었다. 결국, 내가 제시한 희망 매수가에 매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생각은 맞았다. 집주인은 명확한 사정이 있었다. 집주인분도 참 힘드셨을 텐데, 어려운 내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꼭 말씀드리고 싶다.)
#3. 어설픈 자산재배치를 결심하다
내 월부 생활은 작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3년 7월에 열반스쿨기초반 강의를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신청하고 수강했다. 이 강의는 내 인생의 후반기를 송두리채 바꿔버렸다.
나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자본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게 이 강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알게 해주고 자본주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게 해주었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자본주의를 알아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자본주의로부터 독립 -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자본주의를 알아간다고나 할까?
사실 내가 자본주의에 반감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돈을 못 벌었기 때문이다. 투자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투기에 가까운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번번히 실패했다. 그 중 가장 커다란 실패가 파주에 집을 산 것이었다. 그것도 2채나.
30대 중반에 산 집은 20년이 지났음에도 물가 상승률보다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돈이 없었던 나는 집을 사며 무리한 대출을 받았었는데, 이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내가 자산을 증식시킬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나는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월급의 대부분을 썼다.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돈을 벌려면 내가 그토록 나 자신을 갈아 넣었던 부동산 가격이 올라 줬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지난 21년~22년, 그나마 가격이 오르며 절호의 매도 기회가 왔지만 팔지 못했다(않았다). 그동안 갈아 넣은 본전 생각에(더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아니 바람에) 팔지 못했다(않았다). 그러니 세상을 비관하고 부정할 수 밖에. 나는 그것을 한 때 비판적인 지성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었다.
자본주의를 비난하고 세상을 한탄하는 일상을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테크 관련 서적과 유튜브에 곁눈질을 하던 시기가 바로 23년이었다. 그 이율배반의 자기분열 시기에 너나위님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난생 처음보는 그 진정성에 반해 책 까지 사서 읽었다. 그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홀린듯이 월부강의 수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결국 열반스쿨기초반 강의를 들으며 후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
나는 어설프게 자산 재배치를 했다(결코 따라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말 그대로 어설펐다. 그저 운이 좋았다). 특례보금자리론 덕분에 -30%까지 빠졌던 부동산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열반스쿨기초반을 듣기 시작할 무렵, 나는 파주집 2채를 모두 내 놓았다. 매도하고 상급지로 갈아탈 생각에서 였다. 데드캣바운스의 영향으로 집을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매도했다. 매도한 금액의 절반은 통장에 넣어두고, 절반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했기에 파주에 대형평형 전세를 얻었다. 당시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떠 떨어진 상황이라 비교적 싸게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월부 강의를 수강하며 반전이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일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경기가 안좋아지자 다니고 있는 회사가 많이 힘들어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행되었다. 나는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월급쟁이부자가 되어 자본주의의 노예생활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아이러니 하게도 아직까지는 조금만 더 월급쟁이여만 했다. 투자 공부보다(갈아타기로 시작한 공부는 어느덧 투자 공부로 바뀌어 있었다) 회사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강의를 듣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집은 그나마 좋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그래봐야 수익이 얼마 되지 않는다. 물가상승을 생각하면 거의 제로다) 경기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좋은 매수 기회를 많이 놓치게 했다.
그렇게 좋았던 23년 겨울과 24년 봄을 또 다시 흘려 보냈다. 그러면서 회사내 급한 불을 껐고, 투자 공부를 하지 못했던 불안감을 ‘괜찮아, 더 떨어질거야’라는 근거 없는 전망으로 위로하며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24년 여름. 저 멀리 기회들이 또 한번 날아가는 것을 목도했다.
#4. 인생의 반고비에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숲길을 안내해줄 스승 라즈베리님를 만났다.
2번째 서투기를 듣던 24년 여름에는 임보를 쓰기 위해 시세를 매주 따야만 했다. 매주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쩍쩍 하고 멘탈이 붕괴되는 소리가 들렸다.
월부 강의를 듣기 시작하며 어렴풋하게나마 했던 결심. 1년되는 날 1호기를 하겠다는 결심. 그 결심은 날아가 버린 집값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나는 1호기는 커녕, 숲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집값은 올랐고, 오르고 있었고, 나는 집없는 무주택자고, 나이는 50대 중반이고, 큰 고비는 넘겼다해도 회사는 여전히 어렵고, 무엇보다 노후준비는 채 아무것도 해 놓지 못했고…… 단테가 처음 들어선 지옥문이 바로 이와 같았을 것이다.
7월. 전설의 투자코칭을 신청했다. 구조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바다에 던졌다. 그동안 기초강의를 대부분 수강해서 아너스 회원이 됐지만, 코칭을 아너스로 신청하지 않았다. 아너스로 신청하면 코칭료가 할인되긴 하지만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였다. 하루라도 빨리 받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이렉트로 신청했다. 상담일정이 잡혔다. 다행히 유리병 편지가 잘 도달했다. 8월 9일. 운명의 날이 잡혔다.
아내와 함께 설문지를 정성스럽게 작성했다. 작성하고 고치고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 작은 빈칸에 내 얘기를 최대한 담아야 했다. 그날부터 나는 ‘절박함’, ‘절실함’이라는 말의 정의를 작은 빈칸에 채워 넣은 말들의 교체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도 바꿔 써 보고, 저렇게도 바꿔 써 보고……
코칭 디데이. 라즈베리님은 반갑게 우리 부부를 맞이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파블로님의 사연을 접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많은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아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더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파블로님의 말씀이 정말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코칭은 1시간을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코칭은 투자 일반 이론에 당사자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뤄진다. 나는 라즈베리님의 손끝을 따라 쭉 이어진 빛을 보았다. 어두운 숲길 끝 비로소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블로님, 이제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할 수 있습니다. 파블로님을 응원합니다.”
#5. 하루 평균 8시간, 꼬박 4개월의 여정
라즈베리님의 코칭을 받은 이후, 나는 라즈베리님이 말한 곳을 알아보기 위해 세번째 서투기를 신청했다. 그리고 강의에 나오는 단지들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단지도 빠뜨리지 않고 임장을 했다. 매일 전임을 하고 매일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임장을 했다. 그리고 기록했다. 매일 시세를 땄다. 매주 주말은 매임을 했다. 주말이 일정이 안 맞으면 평일 늦은 시간에도 매임을 했다. 그렇게 어찌저찌 4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정도를 매일 갈아넣었다. 회사일도 해야했기에 극단적으로 잠을 줄였다. 비록 임보를 쓰지는 못했지만(물론 세번째 서투기 임보는 완료했다) 서울 4급지와 경기도 4급지중 광명, 평촌을 모두 봤다. 그렇게 하니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4급지와 경기4급지의 시세를 매달 전수조사했다. 거기에 빈약하지만 그동안 쌓아둔 앞마당도 보탰다. 전임, 매임한 기록을 계속 업데이트했다. 그것을 내마중 강의때 받은 엑셀로 정리했다. 전고점과 전세가율, 투자금을 종합해 고려해 보니 단지들의 순위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내가 투자를 결심한 단지는 이렇게 해서 최종 1등으로 뽑힌 곳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6. 슬럼프의 순간에 찾아온 동료, 주유밈 조장님
단지 순위를 매기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했던 단지들보다 조금 더 좋은 단지들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이 정도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도전해볼까?’
하지만 전임을 하고 매임을 해 보면, 내 기대는 어김없이 깨지기 일수였다. 실제 매물들은 시세를 딴 것 보다 투자금이 1~2억 이상은 더 들어갔다. 전세대출에 한계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세 낀 물건들을 알아보게 된 것인데, 세가 너무 낮게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기가 짧으면 되는데, 대부분이 계약 갱신을 쓸 예정이라 해서 최소 2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빠른 시간내에 전세금을 회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매임을 하는 것마다 아쉽게도 투자 범위를 넘어갔다. 나는 조금씩 초조해져 갔다.
‘아니, 이렇게 시간을 갈아 넣어도 투자할 단지 하나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내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언제가 어느 라이브에서 자음과모음님이 말했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지금 투자하기 너무 좋은 시기에요. 그런데 왜 투자를 하지 않는 건가요? 내 메시지를 듣는 분들이라면 누구랄 것도 없이 투자를 위한 6개월 계획을 일단 세워보세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월부 1주년에 1호기를 한다는 계획을 수정해 올 해 안에 1호기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그토록이나 갈아넣었던 것인데…… 엑셀표상에는 분명 투자 가능할 수도 있는(어느 정도 무리를 한다면) 단지였던 것들이 실제로 매임을 해 보면 투자금이 최소 1~2억이상 꼭 더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 잔금을 치를 것도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투자금에 대출을 일으켜 잔금을 치른다면 최대 매매가를 얼마로 잡아야 하는가? 어? 그러고 보니 애초에 내가 1등으로 뽑았던 물건처럼 아직은 덜 오른, 입지가 덜 좋은 지역의 신축들도 다시 알아봐야겠다. 신축들은 전세금이 높으니 분명 투자범위에 들어오는 좋은 물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생각과 노력끝에 나는 내가 1등으로 뽑았던 단지보다 조금 상위 입지의 신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단지가 신축이다보니 전고점이 분명하지가 않았다. 전고점만 확실하게 알 수만 있다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보통의 경우, 전고점이 불분명한 단지들은 주변 비슷한 연식, 비슷한 규모의 단지들이 전고점을 참고한다. 그러나 이 단지는 그러할만한 참고 단지가 없었다.
일단 부딪혀보자고 생각하고 전임, 매임을 진행했다. 평일 늦은 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었다. 아내와 함께 해당 아파트를 보러 갔다. 단지는 조금 작았지만 신축이라 깔끔했다. 역과의 거리 등 입지도 나쁘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집만 보고 부동산 사장님과 헤어졌다. 그리고 그주 주말에 해당 단지가 있는 곳을 전체 단임을 다시 했다. 시세도 다시 따 봤다. 주말을 그 단지 분석에 온전히 다 할애했다.
월요일. 부동산에서 문자가 왔다. 어떠셨냐고? 3천 정도 네고하면 직전 실거래가였다. 단지가 너무 맘에 들어서 3천 네고하면 매수 검토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알아보고 연락주겠다고 답장이 왔다. 그로부터 1주일간 그 부동산으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계속 다른 단지를 알아보며 맘에 든 이 단지의 전고점을 생각했다.
해당 단지의 전고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 낮게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었다. 주변 비슷한 연식의 단지 전고점을 적용하면 -20%의 하락율을 보이지만 해당 단지의 전고점을 그냥 적용하면 -10% 정보 밖에 하락하지 않은 단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신축은 전고점이 어렵고, 구축은 투자금 안 맞아 좌절하고 있음 즈음 매임한 단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제가 보신 물건 3천 깎아서 잡아놨습니다. 전세도 좋게 들어가 있어서 0.0억이면 투자가 가능하세요. 오늘 오후에 물건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장님이 생각나서 일단 잡아뒀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 부동산 사장님들은 왜 항상 직전에 전화를 해오는 것일까?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제가 하루만 생각해보고 내일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일단 하루 정도 시간을 벌어 놓고 백방으로 이 단지에 투자해도 되는지를 알아봤다. 그동안 숱한 시간들을 이 문제에 쏟아 부었는데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장 걸리는 것이 전고점이었다. 전고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 단지 가치 판단이 어려웠다.
‘아, 매물코칭이라도 있었더라면!’
가격은 괜찮은 것 같은데,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급한 김에 월부에 나와 있는 지역분석 강의를 결재하고 들어봤다(강의 들으려고 회사에 휴가를 냈다). 아쉽지만 확신을 얻기는 어려웠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휴대폰을 뒤적이다…… 지난 9월, 라즈베리님이 추천해준 지역 임장을 같이 했던 서투기 조장 주유밈님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바로 걸리지 않았다. 초조함은 극에 달해 갔다. 잠시 후 주유밈님으로부터 콜백이 왔다.
“와~ 파블로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정말 유쾌한 주유밈 조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무 인사도 잠시, 나는 급한 마음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주유밈님, 00단지 아시죠? 제가 거기 매물보고 투자 검토하고 있는데, 전고점이 너무 맘에 걸려서요. 매물코칭도 없고…… 물어볼 동료가 주유밈님 밖에 없어서요. 단순한 의견이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아, 네! 그 단지 잘 알죠. 저도 투자하려고 스터디했던 단지입니다. 지금은 제가 업무가 아직 안 끝났으니 이따 밤 9시에 전화 괜찮을 까요?”
밤 9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왜 그토록 길게 느껴졌던 것일까? 째깍째깍. 쿵쾅쿵쾅. 시계초침에 맞춰 심장이 금방이라도 내려 앉을 것만 같았다. 입도 말라 마른 침을 계속 삼켜야 했다. 이윽고 9시. 나는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주유밈 조장님?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아, 네! 제가 지금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습니다. 조금 늦게 끝났죠? 괜찮습니다.”
“00단지 투자 관심있는데, 전고점이 확신이 안서서요.”
“네, 맞아요. 그 단지, 저도 투자하려고 스터디 했던 곳인데, 전고점이 좋지 않았어요. 주변 단지와 비교하기도 무리가 있고요.”
“네, 맞아요 제가 그 단지 3천만원 깎아놓은 상태인데, 부동산 사장님한테 내일까지 얘기해줘야 해요.”
“아, 파블로님, 상황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투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는데 투자하실 수는 없어요. 알아보신 곳도 좋지만 지금 그 가격에 더 좋은 곳들도 많이 있거든요. 우리 같이 임장했던 곳도 좋은 곳들 중 하나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럼 조장님은 00단지 어떻게 결론내셨나요?”
“저도 파블로님과 비슷했었어요. 급하게 생각할 뻔 했죠. 동료들과 스터디 결과 우선 순위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됐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파블로님이 고민하고 계신 부분도 한 부분 차지했습니다. 파블로님,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곳도 한번 더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00단지, 충분히 알고 계신 곳일까요?”
지금 기록은 당시 통화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축약한 것이다. 많은 부분이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말은 분명히 기억난다. 충분히 알고 있는 곳인가? 주유밈 조장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기본을 다시 되새기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라즈베리님의 투자코칭 이후, 나는 길을 찾았다. 그래서 그 길 대로 진도를 뽑았다. 시간을 갈아 넣으며 단지를 찾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물론 좋은 단지들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또는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것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분명 욕심을 냈다. 그러나 과도한 욕심을 냈다. 그러다 보니 투자처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다시 길을 잃을 뻔 했다. 운 좋게 스스로 방향을 다시 잡았으나 충분히 알지 못하는 곳에 시간에 쫒겨 급하게 투자하려고 했다.
어설픈 자산재배치 이후에 다른 초보자와는 달리 나는 서두르지 않고 1년 6개월을 공부하며 잘 참아왔다. 그런데 스스로 정한 임계점에 이르자 잠깐 충분치 못한 조건에 타협하려 들었다. 그걸 주유민 조장님이 잡아준 것이다.
주유밈 조장과 통화를 끝내고 라즈베리님의 투자코칭부터 그때까지의 공부를 다시 정리했다. 많은 시간들이었으나 정리하는데 그리 큰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평정심을 갖고 원칙에 입각해 생각해 보니 답은 자명했다. 그 주 주말, 나는 내가 뽑은 1등 단지의 전용 59를 매임하고 부동산 사장님에게 희망 매수 가격을 말했다.
#7. 다시 계약은 갑작스런 전화를 타고 온다
1등 단지 전용59의 가격이 네고 됐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준비가 됐기 때문이다. 과도한 욕심을 부린 단지도 아니고, 투자 원칙에 맞았으며, 무엇보다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는 단지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내가 더 많은 앞마당을 가진다면 아마 나는 다른 곳에 투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이 단지가 내게 최선이다. 최고는 아닐지언정 최선은 되는 것이다.
주유밈 조장님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조장님, 우리가 임장했던 곳에서 00단지 투자하려고 합니다. 가격은 3천 네고 했어요. 마음이 편안하고 어느 정도 확신은 서는데, 처음이다 보니 이게 맞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묻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조장님께 전화했습니다.”
“와~ 정말 전화 잘하셨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전화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면 언제든 도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단지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졌어요. 투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지막 하나가 걸리네요. 선배로부터 답을 듣고 싶어지는 그거요.”
“왜? 확신이 안 서세요? 불안감이 있나요?”
“아니요. 이건 불안감하곤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라가기 보다는, 제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요.”
“그런군요. 그럼 제가 조금 도움을 드려 볼께요. 저도 제가 알고 있는 튜터님께 들은 이야기 입니다. 매물코칭이 있으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파블로님, 이 단지가 아니면 투자할 수 있는 다른 단지가 20개 이상 있으세요?”
“네.”
“그 20개는 본인이 충분히 알고 있고, 투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고 있는 단지들입니다. 투자원칙에 맞아야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나는 지난 1년여의 시간과 매일 하루 8시간 이상을 갈아넣은 최근 4개월을 생각했다. 욕심낸 단지, 충분히 모르지만 타협할 수도 있는 단지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들도 많았다. 충분했다.
“네.”
“00단지, 00단지, 00단지, 00단지, 00단지를 아시나요?”
“네.”
“그 단지들과 파블로님이 투자하려는 단지를 비교해 봤을 때 여전히 파블로님이 투자하려는 단지가 1등이신가요?”
“네.”
“그러면 파블로님, 준비가 되신 것 같아요. 서울 5급지 신축과 경기 4급지 신축들 하고 가격 비교만 마지막으로 해 보시고 결론을 내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파블로님에게 그 단지를 매수하셔라 마셔라 할 수는 없어요. 다만 파블로님이 투자하기에 앞서 제가 알고 있는 원칙과 기준을 다시 한번 알려 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조장님”
그날, 가격이 조정됐다는 부동산 사장님이 첫 전화를 받고 다시 전화하기 전까지 나는 마지막으로 주유밈 조장님과 충분한 통화를 했다. 그는 내게 그 단지를 사라 마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하다.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기에. 다만 내가 행동하기에 앞서 한번 더 챙겨봐야 하는 기본과 원칙들을 리마인드 시켜줬다.
라즈베리님 투자코칭 이후 정말 빨리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혼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빨리 가다 보니 슬럼프가 왔고 자칫 거기서 멈출뻔 했다. 어쩌면 이상한 길로 갈 수도 있었다. 내가 다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운 것은 내 동료였다. 주유밈 조장, 그가 있었기에 나는 혼자 가는 것보다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게 됐다.
#8. 함께 가면 멀리간다는 말의 의미
이 모든 일을 끝내고 맞이한 11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나는 내가 뽑은 1등 단지의 전용 59를 4천만원 깎아서 매수했다. 본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입금했다. 계약서를 챙겨 나오며 아내와 1호기 마지막 타임 스탬프를 찍었다.
주유밈 조장님은 계약 당일에도 전화를 주어 나를 응원해 주었다. 함께 9월의 무더위를 이겨냈던 동료들의 축하 문자들이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 그간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가장 가까운 투자 동료이자 지원자다. 아내는 지난 1년 6개월간의 월부 강의를 모두 나와 함께 들었고, 월부 임장 외 개인적으로 진행한 모든 임장에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가계약금을 쏘기 전 마지막 순간에 월부에서 배운 것을 상기시키며 잔금을 일찍 치를테니 천만원을 더 깎아보기를 권유하였던 용기 유발자 역시 아내다.
아내와 함께 축하주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옆에서 방긋 웃는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 1년 6개월간의 투자 동료들의 얼굴들이 함께 스쳐간다. 나는 1호기를 결코 나 혼자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떠 올린 그 얼굴의 주인공들이 함께 한 투자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월부의 공식 격언을 믿는다. 나는 이제 2호기를 준비한다. 이 역시 아내와 그리고 내 투자 동료들과 함께 할 것이다.
투자의 결실이 맺어지는 10년 후, 65세의 나이가 되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나는 여전히 길에서 아내와 그리고 내 투자 동료들과 발도장을 찍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멀리 갈 것이다.
댓글
BEST | 결국 해내신 파블로님 :) 너무나 멋지고 자랑스럽습니다. 좋은 자산을 심으셨기에 앞으로의 시간들은 불안보다 기대가 될 것이에요. 좋은 경험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 파블로님 갈아타기 결국 해내셨군요! 너무 축하드려요!!! 글 여전히 너무 잘 쓰시네요. 비슷한 상황이라 너무 공감하며 읽었어요. 파블로님의 기운받아 저도 내년 상반기 내에 갈아타기 완료해 보겠습니다(저도 얼마전 아너스와의 만남에서 라즈베리님 뵈었는데, 왠지 느낌이 좋네요)
더운 여름날 함께 임장했던 게 엊그제같은데 이렇게 좋은 성과 내셔서 제가 다 기쁩니다!! 회사일도 자산재배치도 신경쓸 일들이 많은 와중에 그동안 봐온 물건 중 최선이라 할 수 있는 물건에 투자하신 거 정말 축하드려요!! 힘이 되는 1호기 경험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