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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부제 : 엔비디아 공매도에 대한 생각)

7시간 전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렌즈를 하나 씩 눈에 끼고 세상을 살아간다. 

 

이 렌즈는 우리의 경험, 교육, 가치관, 심지어는 우리가 속한 사회의 통념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세상을 더 명확하게 보도록 도와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특정 색깔로 세상을 왜곡하거나 시야의 특정 부분만을 보도록 강제하는 색 안경이 되기도 한다.

 

이 렌즈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유일한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렌즈의 강력한 영향력은 우리 집 딸아이의 사례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딸아이는 '인서울 대학교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끝난다'는 견고한 렌즈를 쓰고 있다. 

 

그 렌즈는 지난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점점 더 두꺼워져 버렸다. 

 

부모로서 아무리 인서울 대학이, 심지어 대학 그 자체가 인생의 유일한 경로가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도, 아이의 렌즈는 이미 세상을 '성공(인서울)'과 '실패(그 외)'라는 이분법으로만 보게 만든다.

 

 

비단 딸아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 또한 나만의 렌즈를 쓰고 있었다. 

 

MBA를 하며 회계를 배운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지식이 주식 투자를 할 때는 오히려 세상을 편협하게 보는 '회계의 렌즈'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력과 비전을 가진 주식이 있어도, 회계상으로 고평가(높은 PER 등) 되어 있으면 '그런 주식은 사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2023년, 팔란티어 주가가 10달러 선에 거래될 때 목돈이 생겨 투자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회계 렌즈는 PER가 너무 높다는 신호만 보냈고, 나는 투자를 포기했다. 그 후 팔란티어는 15배 이상 올랐다.

 

최근 뉴스를 보니,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인 마이클 버리가 팔란티어와 엔비디아에 공매도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시장과는 반대에 배팅해 큰돈을 번 사람이다. 경제학과 의예학을 전공한 그의 이력은 그가 쓰고 있는 렌즈, 즉 세상을 분석하고 수치화하며 이상 현상을 찾아내는 데 특화된 렌즈를 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순이익을 부풀려 보이게 하려고 인공지능(AI) 칩의 '내용연수'를 계속 늘려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억짜리 자동차를 회사용으로 구매하면 3억이라는 비용이 첫해에 모두 계상되지 않는다. 

 

내용연수, 즉 사용 기간에 따라 비용을 나누어 계상한다. 

 

이 차를 3년간 쓴다고 하면 매년 1억 원씩 비용 처리가 되지만, 6년간 쓸 수 있다고 하면 비용은 매년 5천만 원이 된다. 

 

비용이 절반으로 줄면, 이익은 그만큼 증가한다. 

 

마이클 버리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칩의 내용연수를 3년에서 6년 이상으로 늘려 이익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회계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주장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회계라는 렌즈로만 세상을 보다 보면, 다른 세상, 어쩌면 더 거대한 변화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들이 빅테크 기업에 모여 내린 결론은 'AI 칩에 막대한 돈을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마이클 버리가 보는 회계장부의 세상이 아니다. 

 

그들은 '승자 독식'의 세상을 보고 있다.

 

그들의 렌즈를 통해 본 미래는 이렇다. 

 

어떤 기업이 인간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지능인 AGI(인공일반지능)를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자. 

 

AGI는 만들어지는 순간 스스로를 개선하기 시작한다. 한 시간 뒤 'AGI 2.0'을 만들고, 'AGI 2.0'은 10분 뒤 'Version 3.0'을 만든다. 

 

하루 뒤에는 'Version 1000'이, 한 달 뒤에는 거의 신과 같은 'Version 무한대'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이 AGI는 자신의 영속성을 위해 전 세계 모든 곳에 복사본을 심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아키텍처를 순식간에 재설계할 것이다. 

 

AGI가 달성되는 순간, 후발 주자들은 그저 바보가 된다. 1등 업체가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런 세상이 오면 인류를 괴롭히던 질병과 노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핵융합 발전이 실현되어 에너지 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것이다. 

 

에너지 비용과 지식 비용이 '0'에 수렴하면, 모든 재화의 생산 비용 역시 '0'에 가까워질 것이다.

 

솔직히 이러한 세상이 유토피아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세상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파란색 알약(가짜 유토피아)과 빨간색 알약(가혹한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행복은 어쩌면 불행이 있어야만 경험이 가능한 상대적 감정일지 모른다. 

 

평생 40평대 집에서 살던 사람이 10평대 집으로 이사 가면 좌절하지만, 평생 고시원에서 살던 사람에게 10평대 집은 궁궐과 같다. 

 

우리 모두는 이재용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그가 우리가 명품 가방을 살 때 느끼는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 우리가 다이소에서 3천 원짜리 부직포 가방을 사면서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내 딸아이의 렌즈, 나의 렌즈, 마이클 버리의 렌즈, 그리고 빅테크 엔지니어들의 렌즈는 모두 각자의 세계에서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렌즈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때때로 그 렌즈를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의 렌즈로 세상을 보려 노력하는 유연성일 것이다.

 


댓글


annah5
6시간 전N

렌즈를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의 렌즈로 세상을 보려는 유연함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만의 렌즈 장착도 필요한 거 같습니다! (갈길이 멀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탑슈크란
5시간 전N

세상은 정말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서 투자가 어려운것 같습니다. 나만의 렌즈를 벗고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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