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회사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게 그냥 계속 굴러갈 거라고, 자연스럽게 믿었죠.”
2020년, 코로나가 발발하며 영속성을 의심해본 적 없던 직장이 한순간에 휘청였다.
코로나와 여행 산업이라는 특수성에 여러 악재가 겹치며, 회사는 결국 천 명 가까이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보라매님은 구조조정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불안감에 하루도 편히 자지 못하며,
무급휴직으로 1년을 쉬어야 했다.
그는 낮에는 이직 준비에 각종 자격증을 따며 온갖 곳을 쏘다녔고,
밤이면 대리운전을 하며 버텼다.

[ 직장을 잃는 것은 전쟁이 난 것과 같다.]
어디선가 들은 문구를 떠올리며, 그는 깨달았다.
자본주의에서 회사라는 시스템은 어쩌면 내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불안 속에서 그는 선택했다.
혼자 버티는 대신, 이미 검증된 방법을 배우기로.
그 선택은 4년 뒤 결과로 증명됐다.
순자산 10억.
이후 보라매님은 특별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10억 자산 달성기를 쓰기까지 1년을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뷰를 통해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특별함 아닌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우리는 보라매님의 문장을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코로나가 시작되자마자 회사가 크게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회사는 해외로 나가는 비중이 90%가 넘는 구조였는데, 국경이 닫히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거든요. 실제로 2020년 초부터 회사는 셧다운에 가까운 상태가 됐고, 저는 1년 가까이 무급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오래 다닌 회사를 잠시 쉬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느슨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월급 대신 정부 보조금으로 버티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게 단순한 ‘쉼’이 아니라는 걸 바로 느꼈어요. 주변에서는 택배, 편의점, 대리운전을 시작하는 동료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저 역시 밤마다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이 회사가, 이 업계가,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시스템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요. 게다가 함께 해외에서 인턴쉽을 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서 충격을 한 번 더 받았고요.
네. 오랜만에 만나보니 부동산 투자로 회사를 퇴직했다고 말하더군요. 저보다 어린 친구였고, 예전엔 비슷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 때 “사람이 회사를 안 다닐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그날 이후로 잠이 안 오더라구요. 나는 지금까지 뭘 했던 걸까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거든요.
그 충격 이후, 저는 거의 생각할 틈도 없이 행동부터 했어요. 친구가 추천한 경기도 외곽 신축 아파트를 구경다니기도 했고요. 경기도 외곽 아파트 현장에, 오픈도 안 해서 펜스 쳐진 곳을 둘러보고 오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네이버 부동산을 보고, 친구가 큰 평수가 좋다고 말한 걸 기억해서 큰 평수 아파트 하나 찍고 보러가겠다고 예약했죠. 부동산 가는 길에 검색해보니 더 싼 물건이 있어서 “더 싼 게 있던데요?” 부동산 사장님께 말하니, 어이구 앉아앉아, 내가 돈 벌게 해줄게, 하셨어요. 그리고 눈 떠보니 제가 분양권 하나를 샀더라고요. 제 첫 투자였죠.

맞아요, 정말 홀린 듯 샀어요.
심지어 복비도 더 줬고, 알고 보니 그 아파트 매도자 분이 부동산 사장님 친구 분이시기도 했고요.
검색도 전화도 제가 하긴 했지만…
다행히 큰 손해는 보지 않았어요. 21~22년도에 더 많이 오르면서 제가 샀을 때가 최고점이 아니게 됐거든요.
계산 하나 제대로 못해서 대출을 추가로 받고 끙끙 앓았어요.
아내에게도 많이 혼났고요.
결국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으니, 이 실패에도 배울 점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투자를 하고 싶단 생각은 원래 있었고,
주식, 펀드는 다들 해보셨겠지만, 저 역시 거기서 큰 재미를 본 적이 없었어요.
마침 친구가 부동산 투자로 퇴직한 것을 보았으니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월부에 오게 됐죠.
좀 안정적인 걸 해보고 싶은데 그게 뭐지? 찾다보니까 직장다니면서, 가장 안정적인 투자가 뭐지?
따져보니 바로 아파트 투자더라고요.
최소 3년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월부에 와서 가장 먼저 들은 강의가 너나위님 하는 저평가 아파트 특강이었어요.

일단 온라인 강의라, 편하게 들었어요. 그 때 배워서 지금도 하고 있는 방법은 ‘시세 트래킹’이에요.
(*시세 트래킹 : 특정 지역·아파트의 가격(매매·전세)을 정해진 주기로 계속 기록하며 흐름을 보는 것)
아파트 단지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어떤 양식과 방법을 보여주셨거든요.
그걸 똑같이 따라하는 걸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어요.
강의에서 “투자자가 시세를 아는 건 기본”이라고 강조하셨거든요.
실제로 하면서 시장의 흐름, 아파트의 가격 흐름을 더 잘 알게 되었고 덕분에 투자도 잘 진행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사실 아주 당연한 작업이에요.
우리가 회사를 다닐 때, 그 업계 흐름을 당연히 알고 면밀히 동향을 살피는 것 처럼,
투자자라면 시세를 보는 건 평생 가져가야 할 기본 루틴인 거죠.
그럼요, 180도 달랐어요. 어떤 점이 가장 다르냐면, 바로 불안감에서요.
첫 투자했을 때는 그냥 막연했어요.
분양권 사면서 대출 계산이 제대로 안 됐으니까 대출상담사도 급해서 닥치는 대로 만났어요.
실제로 제가 살 집이 아니어서 전세를 주려고 하는데
전세 찾는 사람이 없어서 여러 부동산에 전세 잘 맞춰달라고 부탁하러 돌아다니고…
손에 집히는 대로 일을 진행했죠.
하지만 월부에 와서 공부한 뒤로는, 계약하고 잔금 치르 때까지 뭐 할지,
잔금 치르고 전세 맞출 때까지 어떻게 할지, 정말 수많은 체크리스트가 있거든요?
그걸 따라서 하기만 하면 되니까 불안하지 않고 발 뻗고 잘 수 있었죠.
게다가 물어볼 데도 있으니까요.
월부의 시스템들, 월부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이요.
투자가 끝났을 때는 ‘운에 맡기지 않는 투자’를 하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졌어요.

저는 22년에 중소도시 투자 이후, 23년에는 첫 투자했던 분양권을 파는데 집중하고
25년 하반기까지, 계속 투자를 해왔어요.
그 과정에서 성공 요인은, 월부에서 공부하면서 시장 동향과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기민할 수 있었단 사실이예요.
예를 들면, 22년에 당시 지방까지 계속 부동산이 상승했을 때거든요.
그래서 저도 또 투자를 하려고 월부에서 진행하는 매물 코칭을 넣은 적이 있었어요.
여름 끝무렵이었는데, 빈쓰 튜터님이
“이미 시장이 냉랭해지는 걸 느끼고 있다.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말씀하시더라고요.
전 그때 어떤지 잘 몰랐는데, 정말로 두 달 뒤에, 임장을 열심히 계속 다녀보니
사실이라는 걸 현장에서 확 느낄 수 있었어요.
다행히 두 달 전에 전 알았기 때문에 떨어지기 전에 투자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비슷한 사례로 23년에 서울이 쌌던 시기를 알아챈 것도 마찬가지예요.
전반적으로 혼자 알았더라면 전체 시장 흐름을 늦게 알았을 텐데, 빠르게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었어요.
저는 23년에 가격이 전고점 대비 많이 조정됐고,
동시에 전세가율이 올라와 있을 때를 중요하게 봤어요.
그러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투자 검토가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그 시기에는 서울 아파트와 지방 광역시의 ‘좋은 아파트’를 계속 비교해봤어요.
예를 들어 부산이나 대구처럼 인구가 많은 지역의 대장 아파트와,
서울의 같은 가격대 아파트 중 어디가 더 유리할지요.

당연하죠. 5년간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무엇보다
정말 꾸준히 독서하고 강의를 수강했어요.
저는 루틴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월부 강의는 3개월마다 업데이트 되니까 시장 흐름도 빠르게 알 수 있어서 더 좋아요.
게다가 혼자 공부하면 나쁜 습관이 배기기 쉽거든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꽂히고 누가 잘못됐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 참 어렵잖아요.
덕분에 10억이란 자산도 회사를 다니며 그저 돈을 모았을 때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바뀐 건 차였어요. 막 대단한 드림카는 아니고요.(웃음)
대신 안전 시스템이 잘 갖춰진, 튼튼한 차로 바꿨죠.
지방에 살다 보니 운전할 일도 많고, 임장을 다니려면 이동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서요.
생활에서 느끼는 변화도 있어요.
제가 예전에는 가족끼리 외식하면 “둘만 시켜도 되지 않아?”라고 말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면 아내는 아이가 있어도 세 개는 시켜야 한다고 민망해했고요.
지금은 그런 말 안 해요. 먹고 싶은 건 마음껏 시키자고 말할 수 있어요.
아주 사소한 순간이지만,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이 꽤 든든해집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돈을 바라보는 기준이에요.
예전에는 무조건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음료수 하나 사는 것도 망설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돈보다 시간을 먼저 보게 돼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그 선택을 합니다.
연차도 마찬가지예요. 연차 수당을 받는 것보다,
그 시간을 가족과 보내는 게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 과감하게 써요.
회사에서 버는 하루치 효용보다, 그
시간에 쌓는 자산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제 인생에 더 큰 값을 둬도 되는 시기가 온 거죠.

정말 웃긴 게, 상반된 두 장면이 마음 속에 콕 하고 박혀있어요.
첫번째 장면은 누구보다 절박하게 혼자였던 순간이에요.
22년에 꼭 투자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주일 휴가를 내고 지방 세 도시를 도는 계획을 세웠어요.
전주였는데, 2월 초에 구정 연휴 끝난 직후라 사람도 거의 없었고 눈도 정말 많이 왔어요.
이미 5~6일째라 몸도 마음도 다 지쳐 있었고, 너무 춥고 배도 고팠어요.
패딩에 핫팩을 두 개, 세 개씩 붙이고 혼자 임장을 다녔죠.
식당도 거의 열지 않아서 외곽 상가지구를 돌다가 겨우 하나 발견해 국밥을 먹었어요.
혼자 밥 먹고, 혼자 숙소로 돌아가 자고, 다음 날 또 임장하고. 그때 느꼈어요.
투자는 혼자 하면 정말 외롭고 힘들다는 걸요.
반대로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동료들과 함께했던 순간이에요.
부산을 동료들과 처음으로 ‘놀러’가 아니라 ‘임장하러’ 갔을 때요.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다같이 걷고, 튜터님과 이야기 나누고,
어떤 생활권이 좋은지, 어떤 아파트가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는지 토론하면서 웃고 떠들었던 때가
지금 돌이켜보면 빛났던 순간같아요.
그래서 저는 투자는 혼자하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과 함께 갈 때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믿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티 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보통 10억이라는 숫자가 앞에 나오면, 이야기가 금방 왜곡되거든요.
‘운이 좋았겠지’, '저 사람은 원래 달랐겠지’ 같은 생각으로요.
그런데 저는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이 자산을 쌓아온 과정이 특별한 재능 때문이 아니라는 걸요.
그걸 누구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지난 5년간 수강한 강의가 90개가 넘거든요.
돈독모(돈버는 독서모임)부터 정규강의까지.
참…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했죠?

그래서 10억 달성기를 쓰기까지 1년을 망설였던 거예요.
”대단하고 특별하기 보다는, 누구든 하기만 하면 해낼 수 있는데.
내가 무언가 대단히 10억을 달성한 것처럼 써도 될까?
사실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제가 이걸 말하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는 혼자 국밥 먹는 시간을 더 오래 보내겠구나.
혼자 버티다가, 혼자 포기하겠구나.
이런 미래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방황하겠구나.
코로나가 닥쳐왔을 때의 나처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년이나 지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빠르게 가는 법이 아니라 오래 가도 괜찮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요.
매서운 겨울 바람에 지금도 혼자 어려우실 분들께 부디 제 말이 가닿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꾸준히만 하면 여기까지 올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보라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라매님의 10억 달성, 그 첫걸음을 함께한 특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