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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행하면 누구라도 '불안감' 없이 집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곧바로 지옥문이 열립니다

26.01.18 (수정됨)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괴물을 만나 지옥으로 갑니다 

이것의 이름은 바로…

 

 

 

 행동하는 시, 단호한파블로입니다.

 

 실거주든 투자든,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노후를 설계하기 위해 아파트를 삽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산을 삽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실행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노력은 좋은 결실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실행이라는 ‘양질전화’의 순간에 이 ‘딱 한가지’에 충실하지 못해 후회의 고통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괴물’을 만나게 되면 말입니다.

 

 조급함, 익숙함, 오만과 편견은 오랜 시간 공들인 우리의 노력을 한 순간에 후회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괴물’입니다. 누구나 그 괴물을 만날 수 있고, 누구나 그 괴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실행의 순간에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고금만 더’를 잊게 되면 그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익숙한 것이어서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별 것 아니네’ 라는 오만과 편견의 생각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 하기 시작했다면, 그래서 겸손과 감사의 마음보다 우매함의 산봉우리에 마음이 먼저 도달하기 시작했다면 그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2호기를 준비하며 그 괴물을 만났습니다. 아래의 글은 150일간 겪었던 그 괴물의 민낯입니다.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다시는 그 괴물을 만나고 싶지 않기때문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괴물의 반대말은 바로 ‘원칙’입니다.

 

 

 

# 영화 <박하사탕>의 명대사가 생각나는 밤, “나, 다시 돌아갈래!”

 

 

 

 

 

2025년 12월 31일. 

 

 퇴사했다. 30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끝냈다. 나는 더이상 월급쟁이도, 부자도 아니었다.  내 청춘을 갈아넣었던 시간들이 사내정치의 추악한 뒷통수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어떠한 후회도 원망도 남지 않았다. TV에선 송희구 작가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을 막 끝낸 참이었다.

 

 드라마처럼 나도 나의 김부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빗속을 뛰어 다니며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김부장처럼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맙게도 아내만 수고했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마지막 월급과 얼마 안되는 위로금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매꿨다. 서울에 마련한 2호기 잔금을 치르며 생긴 빚을 최종 정리했다. 그리곤 아내에게 들킬까봐 혼자 길거리를 쏘다니며 눈물을 훔쳤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드라마속 김부장은 급한 마음에 상가를 덜컥 사서 공황장애에 걸릴만큼 마음고생을 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아파트를 덜컥 사서 공황장애가 도질 만큼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25년 12월 29일. 

 

 마이너스 통장 대출금으로 2호기 잔금과 법무사비, 등기비, 중개수수료를 치뤘다. 서울에 2호기를 마련하는 이 기쁜 날, 축하하듯 날도 화창했다. 하지만 아침 기온은 낮았고, 거리의 사람들은 옷깃을 세웠다.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려 애썼지만 억지 웃음뿐이었다. 분명 아내는 내 기분을 눈치 챘을 것이다. 아내는 계속해서 눈빛으로 나를 위로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오랜 단골 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날은 추웠지만 아내의 손은 따뜻했다. 우리 부부가 식사하는 이 풍경이 참으로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 비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점심때가 되자 눈이 조금 녹았다. 맨땅이었던 식당 주차장은 금새 물컹해져 신발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었다.

 

 

2025년 11월 21일.

 

 인사팀으로부터 퇴사 통보를 받았다. 정식 명칭은 계약종료. 통보를 전하는 인사담당 상무가 나보다 더 벌벌 떨었다. “대표님의 지시사항을 전달드립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멘트가 아직까지도 귀에 생생하다. 그는 끝내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나를 최전방에서 공격했던 ‘주적’이었다.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던 이유가 그의 양심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쿨함에 오히려 당황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승리와는 달리 현실은, 오랜 사내정치에서의 패배를 선고받는 자리였다.

 

 

2025년 10월 15일.

 

 이재명 정부의 사상 초유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서울 전지역과 경기 일부지역이 투기과열지구와 조정지구로 묶였다. 그리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 범 서울지역에 구리와 부천, 안양 일부를 제외하고 투자가 어려워졌다. 나는 가까스로 세이프였다. 운 좋게 대책전에 계약을 먼저했던 것이다.

 

 지방투자실전반을 듣고 있던 나는 울산을 오가며 이 소식을 접했다. 함께하는가치 튜터님과 하루쌓기 조장님에게 내 2호기 문제를 많이 물었다. 울산을 오가는 10월 내내 2호기에 대한 치열한 복기를 수행했다. 튜터님과 조장님으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많이 받았지만 후회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지독한 불안이었다.

 

 

2025년 9월 18일.

 

 2호기의 중도금을 치뤘다. 가격을 많이 깎느라고 중도금을 상당히 많이 지불했다. 다주택자인 매도인은 올해와 내년에 각각 집을 매도하고 싶어했다.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 거래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매도인은 조금 서두르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시세보다 2천만원이나 싸게 집을 내놨다. 나는 잔금을 일찍 치뤄준다는 조건으로 2천만원을 더 깍으려 했다. 협상은 1.5천을 깎은 선에서 정리가 됐다. 시세보다 3.5천을 싸게 매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1호기를 2024년 12월 27일에 매수했기 때문에 일시적 1가구 2주택 혜택을 받으려면 1호기 취득 후, 1년 후인 2025년 12월 27일 이후에 2호기를 취득해야만 했다. 성급한 결정을 하다 보니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매도인과 다시 협상을 해서 잔금일을 12월 29일로 조정했다. 기존 잔금일은 중도금일로 하고 애초 깎았던 금액에 2백만원을 더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변경했다. 불안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임장 클래스 수업을 들으며 줴러미 튜터님께 내 2호기 상황을 문의 드렸다. 줴러미 튜터님은 함께하는가치 튜터님이나 하루쌓기 조장님과 같은 말을 했다. “혹시 매물 코칭 받고 매수 하신 것인가요? 복기글은 쓰셨나요?” 나는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역시 후회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그것은 지독한 불안이었다.

 

 

2025년 8월 28일.

 

 나는 서울 4급지 역세권의 한 아파트를 아내와 함께 매임했다. 초역세권의 아파트였지만 나홀로 느낌이었고 초등학교가 멀었다. 반면에 주변에 중고등학교가 괜찮았고 상권이 좋았다. 유해시설은 없었다. 마트의 문화센터도 좋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초역세권 단지로 강남, 시청, 여의도까지 30분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시세보다 2천이나 싸게 나온 물건이었다. 방2개, 화장실 1개, 복도식, 노브랜드인 그 아파트를 매수하느라고 나는 그날 밤에 계약금을 송금했다.

 

 그리고 이 결정이 후회와 불안이라는 악몽으로 이어지는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 글을 쓰기까지 5개월여를 고통스런 복기의 시간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영화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나는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하고 팔을 하늘 높이 벌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외쳤다. 150일 후의 나에게. “나, 다시 돌아갈래!”

 

 

 


# 드라마 <서울자가…> 김부장이 덜컥 상가 사기를 당했던 이유

 

 

 

 

 

2025년 8월 12일. 

 

 나는 주우이님으로부터 투자코칭을 받고 있었다. 당시 사내정치는 불안한 가운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올해를 이렇게 무탈하게 보내고, 내년 1년만 더 월급쟁이로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고 있던 때였다. 그나마 작년 말에 마련한 서울 1호기가 있어서 든든했던 때였다. 앞으로 조금은 더 월급쟁이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2호기를 마련하고, 이어서 3호기를 마련하는 꿈에 부풀어 있던 때였다. 1년에 한 채씩 매수하겠다는 계획(?) 또는 결심(?)을 차근차근 수행하고자 했던 때였다. 


 주우이님은 내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시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임대사업자 제도가 부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다주택자에 대한 제제는 강화될 것 같아요. 파블로님은 일시적 1가구 2주택 혜택을 십분 활용하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제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어지는 한 최대한 활용하여 조금 더 나은 물건으로 갈아타기를 추진해 보세요. 가격 기준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서울 4급지 전용 84기준으로 매매 9억, 전세 6억을 기준으로 잡으세요. 그리고 늦어도 10월안에 매수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는 그 날부터 서울 4급지 84의 매물을 뒤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우이님이 말한 가격기준에 들어오는 물건은 없었다. 매매가 9억, 전세가 6억. 투자금 3억. 이것이 기준이었는데, 그러한 물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투자금 3억은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자금이었다. 그러나 9억짜리 매물은 없었고, 있다해도 전세가가 터무니 없이 낮게 들어가 있어서 투자금이 3억을 넘어서기 일쑤였다. ‘주우이님이 기준을 잘 못 알려줄리는 없는데… 왜 나는 물건을 못 찾고 있는걸까?’ 초조한 마음속에 하루하루 나의 매물 찾기는 계속되었다 (물건은 나중에 드러났다. 내가 2호기를 계약하고 나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성급했던 것이다. 더 치열하게 물건을 찾았어야 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월부에서 배운대로 과정을 묵묵히 밟아 나가야 했다.)


 나는 서울 4급지를 거의(아, 이 애매한 표현이란…) 앞마당으로 가지고 있었다. 동대문구, 은평구, 성북구는 임장보고서를 썼다. 서대문구와 관악구, 강서구는 임장보고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분임, 단임, 매임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지역에 대한 이해는 있었다. 특히 강서구는 직장이 있던 곳이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곳이었다(그러나 나의 이러한 판단이 얼마나 커다란 오만이었는지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오만이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투자 코칭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사고가 터졌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나는 두갈래 길중 반드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길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평소 신념대로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 선택이 나의 ‘적’들에게 먹잇감을 주고 말았다(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반대쪽 선택을 했다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차피 ‘적’들은 올해 나를 끝내려고 생각보다 굉장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정치상황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년이 불투명해졌다. 당연히 2호기에 대한 조급증이 심해졌다.


 아무리 해도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주우이님이 제시해준 기준을 내 마음대로 수정했다. 전용 84가 아니라 전용 59까지 물건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전용 59라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순위에 있는 물건은 59라 해도 투자금을 넘어섰고 투자금에 들어오는 물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당시 나는 구로구를 임장중이었는데 차라리 구로구를 매수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벌써부터 급지를 낮추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상황이 그래서 그랬을까? 초초하게 쫓기는 생활이  계속됐다. 


 김부장도 처음부터 상가를 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재취업을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다보니 우선수위에 들어오는 곳은 들어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급여가 터무니 없이 작아 ‘가오’가 빠지고…… 현역에 있을 때는 접대를 받을 정도로 ‘갑’의 지위를 누리던 거래처에도 취업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건내졌던 상가 분양 찌라시가 기억에 떠 올랐던 것이다. ‘내가 이정도까지 내려가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최선도 최악도 아닌, 기준이 모호해지는 쫓김의 순간에 찌라시처럼 엉뚱한 선택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벌인 추격전에서 단순히 도망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모른 채 덜컥 유혹의 손을 잡아 버리는 것이다. 내게도 2호기는 그렇게 왔다.


 김부장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지 하는 착각이 있었다. 오만함이 있었다. 성급함이 있었다. 결정을 내리고, 실행을 하고(이건 저질렀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한동안은 뿌듯함속에 살다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부터 서서히 자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계약금을 치루고 나서 만 하루가 지나자 현실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내가 성급했구나. 내가 오만했구나. 내가 미쳤구나!’ 내게는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회사를 못 다니게 되면 이게 나의 마지막 투자가 될 수 있는데…… ‘나는 최선을 다해 원칙에 맞게끔 투자했는가?’ 아니었다. 아니었다. 아니었다! 뒤늦게 나의 판단을 위로 받고 싶어 매물코칭을 신청했으나 그 마저도 되지 않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안해서, 내 자신이 이해가 안가서, 무엇보다 용서가 되지 않아서…… 지옥문이 열렸다.

 

 


 2호기는 앞서 말한대로 초역세권 단지다. 강남, 시청, 여의도를 30분내에 주파한다. 그것이 최대 장점이다. 그리고 환경이 좋다. 주변 상권이 깨끗하다. 유해시설이 없다. 대형마트, 극장, 공원, 병원이 가깝다. 중고등학교도 길건너에 바로 있다. 다만 초등학교가 멀고 나홀로(주변에 소규모 단지들이 듬성듬성 포진해 있다. 길 건너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군집해 있다)라는 점이 최대 약점이었다. 세대수는 300세대가 넘었다. 브랜드는 약했다. 복도식, 방2화1이다. 지역내 공급은 거의 없다. 현재 투자금은 3억이 드는데, 전세가 현 시세보다 1억 정도 낮게 들어가 있어서 2년후에는 1억 정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나는 내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후 5개월동안 이 문장들을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다녔다. 김부장이 홀딱 빠져버린 상가의 광고문구처럼!


 상가의 광고문구가 맞았다면 왜 김부장이 공황장애에 걸렸겠는가? 왜 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보냈겠는가? 정신승리로 정신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몸은 속일 수가 없다. 나는 아팠다. 내 몸은 내가 잘못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가장 큰 잘못은 원칙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주우이님이 제시해준 기준에 맞는 물건을 더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그 물건들은 나중에 가서야 보였다. 그나마 후보로 정리해둔 물건들을 한번 더 점검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앞마당도 아닌 지역의 물건을 계약했다(25년을 다닌 직장이 있던 곳이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판이었다. 더 들여야 봤어야 했다). 


 앞서 얘기한대로 많은 튜터님과 동료분들이 ‘복기’글을 써보기를 권했다. 하지만 글을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아니, 이 감정은 부끄럽다기 보다는 미안한 감정에 가까웠다. 나는 1호기 후기글을 쓰며 분명히 말했다. “1호기는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함께 해 온 동료들과 같이 이뤄낸 성과다.” 그렇기에 매수계약서를 받아들며 자랑스럽게 동료들의 얼굴을 떠 올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호기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부끄러운 결정을 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흘린 땀을 배신했다.

 

 

 


# 영화도 드라마도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이제 내가 월급쟁이로 나오는 영화는 끝났다. 이 영화가 멜로인지, 코미디인지, 액션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건 마지막 장면은 스릴러거나 공포였다는 것이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었고, ‘우매함의 봉우리’가 있었다. 도돌이표처럼 길 잃었던 숲속으로 다시 왔다. 쫓기는 마음과 오만이 더해져 선무당처럼 저질렀다. 그래서 새로운 위험에 직면했다. 새로운 위험! 분명 위험인데 위험처럼 안보일 수 있다는 위험이다. 


 나는 2026년 1월 14일. 월급쟁이로서의 마지막 투자 코칭을 받았다. 투자 코칭보다는 라이프 코칭을 더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재이리멘토님은 내가 직면한 새로운 위험에 대해 그야말로 솔직한 애기를 해 주었다. “지금 상태를 보니… 원칙을 지켰던 1호기 보다 그렇지 못했던 2호기의 성과가 더 좋아요. 다행이죠.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거에요. 이 행운때문에 파블로님은 다시 원칙을 어길 수도 있어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기글을 쓰시길 권해요. 어떠세요, 이번주 일요일까지 써 보시는건? 약속하실 수 있을까요?” 나는 어정쩡한 대답을 하고 코칭을 마쳤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재이리님의 그 말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복기글을 쓴다는 것. 어쩌면 반복될 수도 있는 위험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면서, 내가 배신했던 동료들의 땀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나는 실수를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돌이켜보면 그나마 내가 월부에서 했던 수련(?)이 몸에 남아 있어서 이정도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리석은 생각이란……

 

 아무튼, 영화는 끝났다. 나의 영화가 2호기를 준비하는 관객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길 바란다. 이제 나는 이번 영화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화 만들기에 재돌입한다. 다음 영화는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관객은 물론 내가 될 것이다. 

 

 


 이제 정말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출연자와 스태프의 잇단 흐름을 ‘크레딧’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나는 이 의미를 다시는 저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코칭을 마치고 나와서 본 월급쟁이부자들 건물 위로 내가 월급쟁이시절 만났던 수많은 출연자들의 이름이 오버랩된다.

 

 나는 150일간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열병을 앓고 난 직후처럼 온 몸과 이부자리에 땀이 흥건하다. 어찌보면 허물을 벗은 것 같고,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어선다. 지금은 월급쟁이가 아니라서 월부를 잠시 떠나지만. 꼭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때 까지 뜨거운 안녕, 월급쟁이 부자들……

 


댓글


헤라
26.01.18 00:04

파블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앞날을 축복하며 즐거운 제 2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꼼 다
26.01.18 00:08

파블로님 굉장히 힘들었던 시간을 복기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새롭게 시작할 그 날을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꼭 다시 봬요!! 기다리겠습니다!

하루쌓기
26.01.18 00:09

블로님~ 나이와 관계 없이 우리는 모두 과거보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이 괴로우셨을텐데 용기 내서 글로 남겨 주셔서 감사드려요 :) 앞으로 더 멋진 모습 보여 주실 선배님의 행보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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