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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드냐고 - 니체가 물었다 독서후기

(철학책을 꺼내들어서 정말 재밌으면서도 어려웠습니다)
니체는 책에서 인생은 운명과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왜 나만…왜 내 인생은 이렇게 불공평할까…”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의 운명이 유난히 가혹하다고 느낀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책에서 니체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데,
운명이 평온하기를 바라지 말고
차라리 베수비오 화산처럼 가혹해지기를 바라라고 말합니다
밥 먹다 말고 하는 생각🍴#5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사는게 힘든 당신에게 [스리링]
본깨적
인생은 이러한 운명과의 싸움입니다. 이러한 싸움에서 우리는 좌절하면서 자신이 부딪힌 운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에 비해 너무나 가혹했고 인생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한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는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평온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베수비오 화산처럼 가혹해지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과 대결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다 강하고 깊은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이 가혹한 운명을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사랑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근대는 사람들이 투쟁하지 않고 서로를 동정하고 도우면서 평온하게 사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여깁니다. 니체는 이러한 근대적 경향에 대해서 온몸으로 저항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안락과 길고 긴 연명이 아니라 자신이 고양되고 강화되었다는 느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운명이 있어야 합니다.
니체는 가혹한 운명과의 대결을 통해 소수의 인간은 보다 강하고 심원하며 아름다운 존재로 고양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 자신도 두통, 위통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험난한 운명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그런 질병을 통해 자신이 보다 심원해지고 보다 강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그대의 운명이 평탄하기를 바라지 말고 가혹할 것을 바라라’라고 외치며, 그런 운명과 투쟁하면서 장렬하게 죽을지언정 패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강건한 정신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찾아다니고,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시킵니다.
상어 떼의 정신을 가리켜 ‘비열하고 천박한 기회주의의 정신’이라고 부르고, 니체는 이렇게 쉽고 안락하게만 인생을 살려는 정신을 ‘말세인들의 정신’이라고 일컫습니다.
스스로 위험한 투쟁을 택하기보다는 남의 전리품을 약탈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상어 떼의 정신입니다.
고통과 험난한 운명을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위해 오히려 요청하는 패기에 찬 정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초인이란 고난을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고난에게 얼마든지 다시da capo 찾아올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과 마주했을 때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운명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더 성장하고, 그렇게 될 때 그 가혹한 운명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자기연민에 빠지기 보다 이 상황이 나를 어디까지 키울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혹시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이 내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고통은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시험이지 않을까?
투자에서도 관계에서도 부담을 없애려는 선택보다 이걸 감당하면 어떤 내가 될지 떠올려보자
2. 안락함을 추구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철학은 우리가 이미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개념화해서 우리 눈앞에 보여줍니다. 따라서 철학적 진리를 담은 말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런 말은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 저 사람이 먼저 말해서 기회를 놓쳐버렸네’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설령 사후死後 세계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곳에서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모든 욕망이 충족된 천국에서는 권태로 인해 고통에 시달릴 것이고, 지옥에서는 온갖 결핍으로 인해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삶에 대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인간은 바로 논의의 당사자이자 심지어 논의의 대상이지 논의의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많은 곤란과 좌절을 겪으면서 삶에 지치고 병들어버린 인간은 세계를 추악하기 그지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부딪히는 온갖 곤경을 자기발전의 계기로 삼으면서 그것에 감사하는 건강한 인간에게는 이 세계가 아름다운 곳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친구가 말하듯이 소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똥을 싸대는 것보다는 새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계가 훨씬 좋은 곳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그대들이 바라는 안락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종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조소해야 할 것, 경멸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몰락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힘이 증대되었다고 느끼려면 어떤 저항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저항을 극복하는 것에 의해서만 우리의 힘이 강해졌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바로 이렇게 힘이 증대되었다는 느낌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화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다고 보면서 그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불렀습니다. 니체는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안락하게 오래도록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실에서 여러 곤경을 겪게 될 때 이 세계는 그들의 안락함을 방해하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세상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 니체가 비판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안락함이다 우리 사회는 가능하면 부딪히지 않는 삶을 이상적으로 그리지만 니체는 인간이 진짜 원하는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자신이 고양되고 강화되었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나도 안전해 보인다는 이유로 덜 힘든 길을 택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을 스스로 낮춘 적도 있었다 니체가 말하는 말세인의 정신이나 상어 떼의 기회주의가 꼭 극단적인 모습만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편한 쪽으로 기울어가는 것 불편함을 피하려는 선택들이지 않을까?
조금 편한 선택을 하는 건 도망치는 건 아닐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명언이 떠올랐다
니체는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세상을 먼저 원망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진 건 아닌지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같은 상황인데도 어떤 날은 버겁고, 어떤 날은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내 에너지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수록 외부의 문제를 분석하려고만 했지 정작 내 컨디션이나 마음의 리듬을 점검한 적은 많지 않았다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아무런 의미도 근거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그러다가 늙어가면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니체가 말했던 것처럼, 아이처럼 인생을 살려 하고 있습니다.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곧 인생을 유희처럼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놀이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놀이가 재미있어서 놀 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왜 이 놀이를 해야 하지?’라며 놀이의 의미를 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놀이의 재미가 사라졌는데도 계속해서 그 놀이를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삶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면서 ‘왜 이 짐을 짊어져야 하지?’라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그런 물음이 제기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삶을 재미있는 유희처럼 살아갈 때에만 해소될 수 있습니다
> 삶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니체는 삶에 본래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그럼에도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왜 이걸 해야 하지?라고 묻지 않는 이유는 그게 그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ㅏㄹ하면 "의미를 왜 찾을까? → 재미가 사라졌기 때문에"
의미를 묻게 되는 순간은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의무로 느껴질 때라는 말이 정말 크게 와닿았다.
실제로 의미를 고민하던 시기들은 대부분 이미 많이 지쳐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처럼 투자 생활을 재미있게 하자
재미있으니까 몰입하고 몰입하니까 묻지 않고 그렇게 살다 보면 의미는 나중에 따라올지도 모른다
영원회귀 사상은 ‘모든 것이 영원히 되돌아오더라도 그대는 생을 사랑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을 다시 한 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되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다시 되풀이되어야만 한다. 모든 것이 동일한 순서로 말이다. 이 거미도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지금의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나 자신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언제까지나 다시 회전하며 그것과 함께 미세한 모래알에 불과한 너 자신 역시 회전할 것이다.”
우리가 험준한 산을 올라간다고 가정해봅시다.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약할 때 우리에게 그 산은 저주의 산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우리는 ‘왜 이 산을 올라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면서 그 산을 올라가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게 되지요. 이에 반해 우리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강할 때, 그 산은 아름답고 장엄한 산으로 나타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 산을 올라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이상 던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물음을 던진다면 우리는 ‘이 산이 아름답고 산을 오르는 것이 재미있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협동과 협조는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경쟁은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니체는 경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쟁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자신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쟁과 투쟁은 내가 겨루어야 할 상대가 나와 비등하거나 나보다 더 우월한 존재여서 나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 때만 정당화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에만 경쟁과 투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니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사회 탓이나 남 탓으로만 돌리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세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영원회귀는 읽을 때마다 알 듯 말 듯하다 지금의 이 삶을 지금의 선택을 끝없이
반복해서 살아도 괜찮겠느냐는 질문 앞에서 그렇다는 대답은 사실 나오진 않는다
어떻게 하면 무엇하나 변하지 않는 삶이 영원히 돌아오더라도 지금의 생을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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