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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5월 돈버는 독서모임 <아주 작은 습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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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일의 격
✅ 책을 읽고 알게 된 점 또는 느낀 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분은 내면이 강한 분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자아가 강하다고나 해야할까, 생각이 많으시고 고민도 많고, 그걸 글로써 풀어 적고 남기고 복기하고 고민하신 흔적이 많이 있었다. 밑에 빨간색으로 색칠한 부분이 특히 나한테 많이 다가온 구절인데, 꼭 하나만 뽑자면, 이 부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글로 명료화하는 순간, 이제 그 생각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글로 명료화하지 않으면 다루기 어렵다. 생각이란 실체가 없어 여기를 잡으면 저기로 가고 저기를 잡으면 여기로 온다. 게다가 감정까지 복합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이를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두더지 잡기와 같다. 그러므로 일할 때나 보고서, 논문 쓸 때만 글로 쓰지 말고 평소 자기 삶에서도 써보길 권고한다
방금도 동료를 상담하면서,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의견을 드렸지만 마지막으로 드린 팁은 꼭 종이에 적어보라는 것이었다.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이러면 어떻게 하고 저러면 어떻게 할까 미리 정하라고 알려드렸다. 나 또한 그 위기의 순간에 나를 살린 것은 나의 글이었다. 글을 적으면서 신수정씨 말씀처럼 그 생각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 생각은 그 이상 또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정하고 내가 남기는 글자와 글로 인해 내 생각은 정의되고 남으며, 나는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적은 글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여튼 이 신수정 작가님은 글을 정말 많이 써 보신 분이다. 이런 분을 뵌 적이 있다. 그 분도 내면이 강했다. 자아가 강했다. 이미 많은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셨고, 나름의 확고한 방향들을 정하셨 더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도 계속 적으셨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적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생각을 적으셨고, 그래야 생각이 모래알처럼 손사이로 빠져나가지 않고 잡힌다고도 말씀해주셨다. 그 이후로 난 글을 적는 것이 왠만한 부분보다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취미가 되었다. 물론 독자가 있으면 더 좋고 말이다.
여튼 글쓰기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이 분은 T적인 코멘트를 굉장히 많이 하셨다. 예를 들어 과제를 분리한다거나 선택을 주저하는 것이 나에게 이득이 있어서라고 적으시거나, 내가 부여한 의미가 나의 삶을 좌지 우지 한다거나 등등 말이다.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저자의 말은 모두 그냥 나의 생각일 뿐, 외부가 직접적으로 나를 움직이거나 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왜냐면 나의 생각을 통해서만 전달이 되니깐 말이다. 그러니 과제가 분리가 되고 선택을 주저하는 것이 이득이 있어서라고 확고히 생각하식(2번이나 적음) 부여한 의미가 어쩌구 저쩌구 적으셨다.
오해하지 마라, 내가 저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생은 사람은 그렇게 무 짜르듯 아주 클리어하게 깔끔하게 경계가 확고하고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매칭되는 세계가 전혀 아니다. 좀 과한 예지만, 부모님이 아이가 죽으면, 그 것 또한 내가 부여한 의미가 내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일까? 싫든 좋든 사람은 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동물적인 설계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더이상 번식할 필요가 없고 그냥 나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분이라면 저렇게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확고하게 나만 쿨하면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쉽게 말해 번식을 하려는 본능에 지배되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나쁘게 얘기하면 신수정 작가는 그만큼 격렬한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거나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모르겠다, 또 신수정 작가님은 다르게 생각하시겠다 싶다.
나도 뭐가 맞고 틀리고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인생은, 사람은 그렇게 명확하지 못하다, 그것 또한 님이 만든 세상이라 생각하실거 같아, 안타깝겠지만 말이다.
또한 누군가로부터 바라는 것이 생기면 욕심이 생기면 또는 기대가 생기면 절대 저렇게 쿨하게 지낼 수 없다. 과제를 분리하고 내가 부여한 의미 때문에 내 삶이 좌지 우지 된다는 둥 이런 말은 수학적인 말이다. 내가 알고리즘으로 태어난 AI이고 기계라면 저게 맞겠지 싶다. 그러나 난 기계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으면 나만의 총천연색 부채를 들고 더울 때 부채질 하고 살 것이다, 내가 덥다고 생각해서 더운 것이 아니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부분에 대해서 마지막에 적어주셨다. 사실 이는 양자역학적으로 미래가 현재를 과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증명된 바 있어 유사한 멘트이다. 즉 이게 현실세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는 말이고, 신수정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것은 ‘현재의 나’가 ‘과거’가 아닌 ‘미래’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한테도 말이다.
-추가-
생각해보니 마치 행복의 기원의 서은국 교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할 때와 비슷해서 노파심에 적자면, 저자가 말하는 방식은 뭐랄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습관이 잘 안 말들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과제를 분리하고 해석을 다르게 하라는 등의 말은 아무 쓰잘데기 없는 말이다. 좀 공손하게 적자면, 습관이 잘 안 만들어지는 것이 디폴트지, 과제를 분리하고 해석을 다르게 하라가 디폴트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말인 즉슨, 필연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이 많은 인간이 스스로 약점을 “인정하고” 그 뒤를 도모해야한다는 말이다. 스스로의 약점을 마치 잘못 생각해서 그런거라고 치부해버리면, 쉽게 말래, 너 참 잘 났다라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책 자체가 일본 책처럼 굉장히 짧은 글들이 계속 된다. 그로 인해 독자인 나는 저자의 충분한 설명없이 결과만 보게되는 부득이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죄다 자기 자랑 뿐이다. SNS가 난무하고 쇼츠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 책이 이 글이 굉장히 읽기 편하고 강렬하고 뭔가 바로바로 배울 수 있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그만큼 깊이 없이 그냥 단순 결론만 나열하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동감하기 어렵고 그냥 역사책 외우듯 외워야 하는 수준이다. 마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정말 중요한 책을 중간 과정 없이 약 1~2장으로 압축하여, 습관을 잘 만드는 방법과 그 효과만 적어버리면 그게 어떻게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메뉴얼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메뉴얼은 많다. 성공방식도 많다. 꿀팁은 난무한다. 그런데 다들 성공하거나 모두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럴까? 자신에게 맞는 메뉴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충분히 설명했다면 독자는 자신에 상황에 빗대어 적용하고 메뉴얼 같은 결론을 나만의 결론을 내렸을 법한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그냥 비싸고 멋진 옷들만 가득한데 내가 입을 옷이 없는 겉만 화려만 의류매장 느낌이다.
✅ 나에게 적용할 점
나눔글을 많이 적고, 확언/이미지화를 습관처럼 만들자
✅ 가장 인상깊은 구절 1가지는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은 비범한 일도 평범하게 만드는데, 어떤 사람은 평범한 일도 비범하게 만든다. 일 자체가 평범하거나 비범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일하는 태도가 평범과 비범을 나눈다.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은 계획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려 하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정리하고 가시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이 계획만큼, 아니 계획보다 더 중요하다. 계획을 이루어나가려는 노력은 하라. 그러나 계획대로 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3) 그러면 우연은 그냥 오는 것인가? 크럼볼츠 교수는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는 성공에 있어 행운의 요소가 크지만, 행운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행운을 부르는 5가지 요소가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5가지 요인은 ‘호기심, 낙관성, 끈기, 융통성, 위험 감수’이다. 즉, 이러한 태도가 있을 때 행운을 잡아채고 불운을 극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1. 일본의 호리에 노부히로 코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5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 『스스로 답을 찾는 힘』 〈호리에 노부히로, 예문 아카이브, 2018〉
1) 내가 얻고 싶은 결과는? (원하는 것)
2) 나는 왜 그것을 얻고 싶은가? (목적)
3) 어떻게 하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가? (실현 전략)
4) 그것은 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
5) 지금 내가 할 일은? (행동)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글로 명료화하는 순간, 이제 그 생각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글로 명료화하지 않으면 다루기 어렵다. 생각이란 실체가 없어 여기를 잡으면 저기로 가고 저기를 잡으면 여기로 온다. 게다가 감정까지 복합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이를 다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두더지 잡기와 같다. 그러므로 일할 때나 보고서, 논문 쓸 때만 글로 쓰지 말고 평소 자기 삶에서도 써보길 권고한다
‘빵을 굽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남과 다르게 빵을 굽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당신의 재능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 재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가?
2) 무슨 일을 할 때 제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그 열정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가?
3) 당신의 가이드와 멘토는 누구인가? 누가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는 데 도움을 주고 지지해 주는가?
4) 당신은 주위 사람이 재능을 발견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도록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대개 과도하게 착하거나 과도하게 좋은 사람은 어렸을 때 부모 등으로부터 온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다. 이로 인해 무의식에 내가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자동화된 생각이 깔려있거나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자신의 삶의 가장 큰 우선순위가 된다. 좋은 사람이어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자신은 착하기만 한 엄마나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기도 한다.
5. 물론 이 세상에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남들을 배려하는 삶은 훌륭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체적인 선택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면 결국 자신도 힘들고 타인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
6. 중요한 것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남들의 기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거절하기도 한다. 거절 당해도 다시 도전한다. 오지랖 넓게 내가 다 해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거나 내버려 둔다. 돈을 쉽게 빌려주지 않는다. 고민이 되면 혼자 고민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상대에게 그냥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때로 독한 인간이라는 소리 듣는 것을 즐겨라. 쿨(Cool) 할 필요가 있다.
7. 어떤 책을 보니 이런 멋진 말이 있다. “나는 위성이 아닌 빛나는 별이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삶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행복하면 주위도 행복해진다. 남들 주위에 돌면서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고 남들이 가진 빛(인정, 사랑...)을 얻어 가려는 삶을 그만둔다. 사람들을 배려하고 돕지만 그것이 상대의 기분에 맞춘 도움이나 인정받으려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체적 선택으로 한다. 우리 스스로가 빛으로 별로 산다. 그게 나답게 사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의 길을 결정할 수 없다. 당신이 ‘과제의 분리’를 한다는 것은 당신이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바꾸기 위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를 바꿀 뿐이다. 나는 나의 일을 담담히 한다. 사람을 도울지라도 대가에 그리 연연치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좀 쿨 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럼 왜 선택을 주저하는가?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보다 현재가 주는 ‘혜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 혜택은 ‘자기 연민’일 수도 있고 ‘자기 옳음’일 수도 있고 현재 상태가 주는 ‘편안함’일 수도 있다. 놓지 않는 이유는 생각 부족,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그 혜택을 잃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선택할 필요가 있다. 거울을 본다. 자기 연민 속에 빠진 자신의 몰골을 본다. ‘이제 그만하자’고 외친다. 그리고 면도(또는 화장)를 한다. 스스로를 가두는 방에서 나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싸워본다. 그게 다다.
11. 삶은 선물이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통찰 넘치는 말을 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다. 환경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뿐이다”
3. 우리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이 자신을 만든다고 여긴다. 부모, 상사, 승진, 성공, 실패, 이별, 실직… 그러나 실제 이러한 환경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환경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실패가 ‘절망하고 포기하는 나’를 만들고, 성공이 ‘자신있고 훌륭한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실패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은 절망하고 포기하지만, 어떤 사람은 다시 배우고 성장하며 용기를 낸다. 환경은 그의 실제 모습을 드러낸다.
2. 내가 보기에 그는, 과학으로 따지면 코페르니쿠스의 ‘지구가 돈다’ 정도의 엄청난 통찰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해석)이다”라는 것이다. 나도 이게 얼마나 엄청난 발견인지 잘 몰랐지만 예전에 한 포럼을 통해 실감했다.
3. 우리는 흔히 ‘외부 사건’이 나의 감정(우울,불안,분노)을 만든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외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외부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과 해석’이 나의 감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즉, 중간에 하나의 계층이 더 있다.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면 자신의 숨어있는 깊은 ‘소망’이 나온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한다. 그러나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5. 얻고 싶은 것을 얻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정말 원하는 삶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6.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다시 해보자. “그것을 다 얻었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것을 다 얻었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첫째는 지금의 ‘나’가 ‘진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부모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페르소나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자신을 찾아라. 둘째는 다른 사람의 눈에 착한 사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라. 억누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 문제없다. 자신이 원하는것을 찾아라. 그것을 위해 살려고 하라. 남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 때 타인에 대한 원망이 없어진다. 지금까지는 타인의 눈에 보이는 ‘착한 나’의 페르소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살았을 수 있다. 착한 사람들은 착하지 않은 것은 ‘악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착하다'의 반대말은 꼭 ‘악하다’가 아닐 수 있다. ‘당당하다’일 수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
많은 사람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실패할까 두려워 열심히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에 자신을 제한하는 것들을 곰곰이 고찰해보라. 실패가 두려워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3. 일어난 ‘사건’이나 주위의 ‘환경’, 나의 ‘모습’ 이 자체가 나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내가 부여한 의미(해석)’가 나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스스로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의 실패’ 자체가 나를 불행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실패했기에 나는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으며 능력이 없어’라는 의미 부여로 자신을 불행에 이끈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력’에 대한 엄청난 미신을 가지고 있다. 노력해야지만 성공하고 인정받는다고 배워왔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평생 ‘애만 쓰다 죽는 인간’이 되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부자가 되고 성공하기 위해 또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애를 쓰지만 좌절만 하면서 인생을 보낸다. 그러나(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성경의 통찰은 ‘노력’이 먼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라는 것이다. 믿고 믿음대로 담대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4. 인정받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이 인정받는 존재임을, 좋은 사람(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좋은 사람’ 정도가 아니라 ‘신의 자녀’)임을, 성공의 존재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담대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는 믿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5.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와 ‘인정받는 존재’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인정을 받기 위해 끝없이 갈구하지만 결국 채우지 못한다. 전자는 평생 인정에 목마르고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면 좌절하고 결국 인정을 이룰 수 없다. 후자는 이미 인정받은 존재이기에 인정에 애쓰고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설령 주위에서 인정을 안해도 괘념치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인정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저 신념대로 전진할 뿐이다. 이는 인정뿐 아니라 사랑, 성공, 비전(꿈) 모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6. 당신이 인정에 일희일비하고, 사랑에 일희일비하며, 돈과 성공에 노심초사한다면 당신은 ‘노력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 사랑받지 않고 미움받으며, 그리 출세한 듯 보이지 않아도 그리 크게 괘념치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인정’, ‘사랑’, ‘성공’의 존재라는 뜻이다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이득을 놓지 못해서다
이득을 놓지 못해서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현재의 나'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라고 물을 때 대부분은 ‘과거’라고 답한다. 과거의 경험, 과거의 생각이 현재의 나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일 수도 있다. 이에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과거'에 근거하여 미래의 목표와 방향도 설정한다. 이렇게 한 인간의 ‘과거’는 그의 ‘현재’ 뿐 아니라 ‘미래’를 지배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전 한 포럼에 참여 했을 때 엄청난 인사이트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것은 ‘현재의 나’가 ‘과거’가 아닌 ‘미래’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멋진 곳에 여행을 가겠다는 계획을 가지면 현재 기분을 들뜨게 한다. 그러므로 ‘미래’가 ‘현재’를 결정할 수도 있다. ‘현재’의 목표와 방향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경험, 성과, 생각에 근거하여 ‘현재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 하는 것은 ‘통념’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재의 목표와 방향 설정을 과거에 근거하지 않고 ‘미래'에 근거해서 설정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어보자. 과거의 경험, 성과, 생각은 잊어버리고 백지에 나의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고 이에 근거하여 현재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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